최근까지 스릴러 및 액션 영화의 강세 속에 '악역 전성시대'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상대를 잡아먹을 듯 노리면서 이야기에 긴장감을 더해온 개성 넘치는 배우들의 향연은 분명 한국 영화의 자산이 되었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거꾸로 마이웨이를 가는 이가 있으니 바로 차태현(40)이다. 로맨틱 코미디, 가족영화 장르에서 그는 대표주자나 다름없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 누굴 죽이고 괴롭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 역시 한국영화의 자산 아닐까. 관객에게 부담 없이 다가가던 차태현은 어느새 극장을 넘어 공중파 예능 프로에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그가 15년 전으로 돌아갔다. 무슨 소리냐고? 그를 스타덤에 올린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의 속편을 올해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1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나왔다"며 의미심장한 말부터 던졌다.

전지현은 없지만 그는 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2>에서 견우 역의 배우 차태현이 1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2>에 견우는 35세의 청년이다. 만년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아내 그녀(빅토리아 분)를 만나며 회사 생활을 시작한다. ⓒ 이정민


애초부터 속편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뉴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한 직후 작품이 크게 흥행하며 제작사 입장에선 욕심을 낼만 했다. 하지만 엽기와 코미디가 어우러진 또 다른 속편이 배우 입장에선 마냥 쉽진 않았을 터. 이미 그간 더한 설정과 유머로 가득찬 로맨틱 코미디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차태현과 전지현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등장한 속편에서 차태현은 결국 전지현이 아닌 걸그룹 에프엑스의 빅토리아(중국 출신)와 호흡을 맞추게 됐다. 국제결혼 커플의 유쾌한 신혼담이 이번 작품의 주요 이야기였다.

"예전엔 시나리오만 보고 작품을 택했는데 점점 하다보니까 여러 이유로 합류하게 되네요. 이젠 시간이 많이 흘러서 참여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제 스스로도 견우가 보고 싶기도 했고. 오래 전부터 속편 이야기가 나왔을 때 지현이가 하면, 곽재용 감독(1편의 연출자)이 하면 나도 하겠다고 이유를 댔거든요. 그게 중요하니까!

전지현씨 섭외를 가정하고 나온 시나리오를 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스케일이 커진 게 아니라 결혼과 취업이라는 평범한 이야기를 소재로 잡아서 신선했어요. 그러다 여주인공이 바뀌게 돼서 엄청 고민하긴 했습니다. 한국 배우 중에 대체할 사람이 없을텐데 생각하고 있는데 국적을 바꿔서 올 줄이야! 깜짝 놀랐죠. 아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생각한 거지(웃음)."

차태현 입장에서 견우는 본인의 또 다른 자아와도 같은 존재다. 스스로도 비슷한 면이 많다고 느끼고 있고, 일상에서 견우의 모습이 불쑥 나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영화 전반에 대해 아이디어를 적극 내진 않았다. 새로운 감독과 새로운 파트너의 고유 영역이라 생각해서일까. 다만 <엽기적인 그녀2>를 찍을 당시 <암살> 세트장과 인접해 있어서 우연찮게 전지현을 만나 얘기할 기회는 있었다. 그럼에도 애써 "진행 중인 이 영화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빅토리아가 지현에게 먼저 가서 인사를 했더라고요. 저도 가서 여러 얘길 했지만 굳이 <엽기적인 그녀2>로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어요. 연락을 매일 하는 사이도 아니고 설령 연락하는 사이라고 해도 그러고 싶진 않았습니다. 우린 잡담만 했어요!"

새 시리즈의 미덕

 영화 <엽기적인 그녀2>에서 견우 역의 배우 차태현이 1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5년 전 견우를 딱히 떠나 보내야 할 생각은 없었다"면서도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한 번 정리한 느낌"이라 말했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작별할 때임을 느낀 걸까. ⓒ 이정민


제목은 같을지언정 속편의 맥락은 좀 다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1편은 말 그대로 당시 로맨틱 코미디 장르 중에선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연인 관계에서 여성의 쾌활함과 개성 넘치는 모습을 강조하며 대중의 마음을 잡은 셈이다. 세기말 이후 새롭게 다가온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였다.

이에 비해 <엽기적인 그녀2>는 한국, 중국, 일본 배우의 합이 두드러진다. 빅토리아 외에 후지이 미나가 견우의 회사 상사로 등장해 의외의 재미를 선사한다. 거창한 메시지보다는 유쾌한 분위기의 오락 영화 느낌이 강하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2>의 한 장면.

영화 <엽기적인 그녀2>의 한 장면. 1편과는 또 다른 소소한 유머들이 담겨 있다. 빅토리아, 후지이 미나 등의 외국 배우의 활약도 주목해 볼 것. ⓒ 신씨네

"사실 전작에 비하면 지금의 <엽녀2>는 이야기적으론 부족하죠. 한중합작을 많이 하는 시점에서 제작사 입장에선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물론 각 나라 말로 프러포즈를 시키는 장면 등에선 전작의 소소한 재미를 가져간 건 있어요. 더 많은 웃음 포인트를 고민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겐 배성우 형이 필요했고요(웃음). 이번엔 견우의 이야기가 주였기에 성우 형과 어떤 메시지보단 웃음에 집중하려 했습니다.

빅토리아는 아주 다르게 접근한 거 같아요. 전지현의 빈자리를 채웠다고 그 친구가 욕먹을 일은 아니잖아요. 본인 입장에선 부담을 갖기보단 큰 도전이자 기회로 여겼다더라고요. 한국 배우가 아니니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건 원래 시나리오에 좀 스케일이 크게 표현된 장면들이 있었는데 중국 쪽 심의에서 지적받아 바뀌었어요. 대본까지 심사할 줄이야."

예전의 감독과 전지현은 없지만 제작사는 그대로다. 차태현은 "배우야 영화 하나가 망해도 다른 작품을 할 수 있지만 제작사는 그게 힘들다"며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번 영화가 잘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리고 예능

 영화 <엽기적인 그녀2>에서 견우 역의 배우 차태현이 1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의 예능 출연에 대해 그 역시 고민을 안 한 건 아니다. 다만 차태현이기에 연기와 예능 둘 다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유쾌하고 선한 이미지가 분명 시너지 효과를 만들고 있었다. ⓒ 이정민


앞서 언급했듯 차태현은 배우라는 본연의 직업과 함께 KBS 예능 <1박2일>에 출연하며 종합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 또한 갖추고 있다. 보통 배우라면 이미지 소진을 걱정하며 금방 떠났을 테지만 그는 달랐다. 벌써 5년째 고정멤버로 활약 중이다. "떠날 때를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예능 프로 출연을 너무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내가 하는 연기와 <1박2일>이 어찌됐든 통하는 게 있어요. 전 예능을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연기에 대해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김주혁(<1박2일> 전 멤버) 형이 나갈 때도 전 왜 나가시냐고 얘기 안했어요. 그 마음을 충분히 아니까요. 근데 확실히 예능을 하면 순발력에 도움이 돼요. 제가 밝고 재미난 영화를 많이 하니까 예능도 오래 하는 거 같아요. 만약 연기에 지장이 간다면? 그만둬야 하는 거죠.

근데 이번에 <엽녀2>에서 제 본래 모습이 너무 보이는 거예요. 예능을 하면서 견우의 모습이 보일 땐 많았지만 차태현의 모습이 보이는 경우는 없었거든요. 물론 이게 저만 느끼는 걸 수도 있는데 순간 당황했어요. 예능이 이런 면에서 단점이 될 수도 있구나 생각했죠."

말은 진지했지만 바로 그는 편한 미소를 보였다. "(가수) 홍경민과 노래도 불러서 '홍차프로젝트'라는 음반도 낸다"며 그는 "내가 배우인데 왜 이걸 하고 있지 생각하면 더 피곤해진다, 편하게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아마 연기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안하고 이런 여러 일을 했다면 가벼워 보였을 텐데 진심으로 고민하면서 하니까 마냥 가벼워 보이진 않나 봐요."

자, 앞으로 그의 작품 두 편이 대기 중이다.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신과 함께>, 그리고 멜로 <사랑하기 때문에>다. 견우와 완전 다른 배우 차태현이 담겼다고 그가 귀띔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 볼 때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2>에서 견우 역의 배우 차태현이 1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신과 함께>를 비롯해 차기작 두 편을 준비 중이다. 그의 모습을 기다렸던 관객 입자에선 반가운 일이다. ⓒ 이정민



차태현 빅토리아 엽기적인 그녀2 전지현 후지이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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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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