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 역을 연기한 이제훈(좌)과 이복 형 역의 김성균.

홍길동 역을 연기한 이제훈(좌)과 이복 형 역의 김성균. ⓒ 영화 홈페이지


독재는 공포와 무지 속에서 발호한다. 사이비종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명멸했던 세계사 속 왕조와 마찬가지로 독재는 언젠간 끝이 난다. 이집트와 리비아, 이라크와 볼리비아 등의 현대사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독재를 막 내리게 하는 힘은 축적된 모순이 폭발하는 내부 에너지로 변환되면서 생긴다.

희생정신과 용기를 가진 리더,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 새로운 사회의 중심축이 될 이데올로기 - 이 3가지만 있다면 정권변화와 혁명은 가능하다. 2010년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돼 몇 해째 이어지고 있는 이른바 '아랍의 봄'이 그 생생한 사례다. 아직은 온전히 성공한 변혁이라고 부르기 힘들겠지만.

그렇다면 사이비종교는? 다수의 인간에게 해악을 가져오는 사이비종교 역시 언젠가는 사라질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사회적 암'이라 할 사이비종교를 일소(一消)시킬 수 있을까? 최근 개봉한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은 이 질문에 대한 조성희 감독 나름의 답변으로 읽힌다.

홍길동 : 이름과 출신 빼고 모두 바꾸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포스터.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포스터. ⓒ 영화 홈페이지


허균이 쓴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줄거리 역시 간단하다. :

적서차별이 엄격했던 조선사회에서 첩의 아들로 태어난 길동이란 아이. 불합리한 사회제도에 일찍 눈뜬 길동은 신묘한 도술과 빼어난 무예로 타락한 관리를 벌하고, 가난한 백성을 돕는다. 왕이 길동을 잡기 위해 그의 이복 형 길현까지 내세우지만 체포하지 못한다. 결국 길동에게 두 손을 든 왕이 병조판서(현 국방장관) 벼슬을 내리지만 길동은 이를 거부하고 표표히 사라진다. 이후 길동은 뜻이 맞는 이들과 바다 건너편에 율도국을 세우고 왕이 돼 따르는 이들을 평화롭게 다스린다.

영화 <탐정 홍길동>은 권선징악이란 교훈을 담은 이 지루한 고전소설을 '주인공 이름'과 '서자 출신'이라는 설정만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비틀거나 새롭게 해석했다. 원작에서 틀을 차용하되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의협심과 이타심의 상징이던 홍길동(이제훈 분)은 때론 음흉하고 무시로 거짓말을 일삼는 날라리 청년으로 몸을 바꿨고, 끝끝내 동생을 감싸고자 했던 배다른 형(김성균 분)은 목적을 위해 죄 없는 사람 수백 명을 살해하는 냉혹한 사이코패스로 변신했다.

여기에 허균의 소설에선 볼 수 없었던 몇몇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냈다. 홍길동을 따르는 무리 활빈당(活貧黨)의 여성 리더로 분한 고아라가 그렇고, "놀랍고 귀엽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깜찍한 연기자 김하나(말순이 역) 또한 그렇다.

어두운 현대사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

이처럼 흥미롭게 재편된 캐릭터와 식상하지 않은 설정 속에서 <탐정 홍길동>은 앞서 제기한 "사이비종교는 대체 어떤 방식으로 발본색원할 수 있을까"란 질문의 답을 찾아간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시종 민첩해서 지루할 틈이 없고, 간간히 등장하는 액션 장면도 깔끔하게 처리됐다. 영화 내면만이 아닌 외피의 완성도도 낮지 않다는 이야기다.

소설 <홍길동전>이 아닌 영화 <탐정 홍길동>의 줄거리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건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들에게 결례일 것이니, 이것 하나만 말하고자 한다.

우리도 한때 겪었던 독재시대. <탐정 홍길동>은 그 시절 정통성을 갖추지 못한 정권 밑에서 배덕과 아첨으로 행정부 고위직에 오른 이들, 그 밑에 기생하던 위선적인 사회사업가들, 종교의 탈을 쓰고 개인적 치부만을 일삼던 자들에게 카메라를 가져다댄다. 당연한 순서처럼 몇몇 군사독재자의 이름과 'OO복지원 사건'과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이비종교 관련 사건사고가 떠오른다. 그게 구체적으로 누구이고, 어떤 단체와 사건인지는 영화를 보면서 확인하면 될 듯하다.

쓰다 보니 지나치게 칭찬일색이 되고 말았다. 물론 <탐정 홍길동>은 100점짜리 영화가 아니다. 특히, 주인공이라 할 홍길동과 이복 형의 행동과 외형이 <왓치맨>의 로어셰크, <씬 시티>의 케빈을 과도하게 모방한 것처럼 보이는 건 작지 않은 흠이다. 그러나 이 단점은 꼬마 연기자 김하나의 능청스런 몸짓과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대사 앞에서 잊히고 만다.

영화를 보고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주인공 홍길동보다 더 튀는 말순이에 대한 궁금증. "쟤는 뉘 집 딸이래?"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요즈음. <탐정 홍길동>에서 말순이 역을 맡은 아역배우 김하나(좌)의 깜찍한 연기는 관객들에게 폭소를 선사한다.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요즈음. <탐정 홍길동>에서 말순이 역을 맡은 아역배우 김하나(좌)의 깜찍한 연기는 관객들에게 폭소를 선사한다. ⓒ 영화 홈페이지



말순이 탐정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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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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