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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엉뚱한 일에 고집 비슷한 감성이 일 때가 있다. 따지고 보면 거창한 이유도 없고 적확한 근거도 없는데 어쩌다보니 습관처럼 굳어져버린 일 말이다.

내게는 오랫동안 핸드폰이 옹고집의 화두가 되었다. 처음 핸드폰을 마련한 것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였다. 남들이 최신형 핸드폰에 눈독 들일 때, 나는 무전기형 핸드폰을 신주단지 모시듯 했다. 고장도 나지 않고 통화나 문자도 그런대로 잘 돼, 충분한 만족감을 주었다.  

그러다가 선생님들과 보건교육운동을 하면서 여기저기 통화가 잦아지자 핸드폰에 과부하가 걸렸다. 불쑥 통화가 중단되거나 메시지 전송에 문제가 생기면서 핸드폰을 바꾸었다. 무전기형에서 약간 진화한 핸드폰은 햇수로 6년여를 사용했다.

생애 두 번째 핸드폰은 대학원 입학 직후부터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폴더형 핸드폰은 3G 슬라이드폰으로 교체됐다. 분홍색 케이스에 앙증맞은 디자인까지 마음에 쏙 들었는데, 가장 큰 장점은 덜렁대다 떨어뜨린 게 서너 번 되는데도 좀처럼 고장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왜 스마트폰으로 바꾸지 않는지 물으면, 딱히 둘러댈 핑계도 없어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있다며 가끔은 흰소리도 해댔다.  

그런데 지난 5년여 동안 말썽 한번 없던 핸드폰을 고장도 나지 않았는데 며칠 전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긴급하게 연락을 주고 받아야 할 메일 등을 바로 확인하는 데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스마트폰이 배달된 날, 택배 상자를 받아들고 보니, 불현듯 일상에서 함께 했던 핸드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누군가와 수 없이 말하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고받아 일상의 한 자락을 차지했던 기기들에 대한 추억이랄까. 망각하는 데는 나름 일가견이 있는 편인데, 핸드폰을 바꾼 계기는 또렷이 기억났다.

겨울바람이 차갑던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내 생애 첫 핸드폰은 임종의 신호를 보냈었고, 대학원 수업을 기다리던 대형 강의실 맨 뒷자리에서 두 번째 핸드폰은 고장을 알리는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일생동안 내가 사용할 핸드폰은 최종 몇 개나 될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세상살이가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가도 핸드폰과 함께한 추억들을 되새겨보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많은 이야기들을 관통했구나 싶다.

지난 주, 심폐소생술 교원 연수가 있어서 보건소에 갔다가 뜻밖에 영미(가명)를 만났다.  보건소 계단을 내려오는데, 누군가 선생님, 하고 불러 뒤돌아보니 영미가 환하게 웃으며 반기고 있었다.

영미는 학창 시절 내내 마음이 아파 고생하다 삽시간에 사라져 담임선생님과 내가 1층부터 5층까지 전교 화장실을 뒤지기도 했고, 갑자기 말없이 하교해 학교 밖 주변을 이 잡듯이 뒤지기도 했었다. 학교를 떠나고 나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보건소에서 꾸준히 상담 받으면서 그럭저럭 일상생활을 잘 하고 있다며 소식을 전해준다.  

교직생활 15년 동안 만난 아이들이 대충 1만여명. 그 중 뇌리 속에 깊게 각인된 아이들은 고집스럽게 부대끼고 있는 힘껏 씨름했던 아이들이다. 무슨 대단한 의무감에 떠밀렸던 것도 아닌데, 쉬이 스쳐 보내지 못하고 포기하지 못해 몇 번이고 되돌아보며 일상을 함께 했던 녀석들. 바로 돌아섰더라면 추억은 교직생활의 힘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가끔은 바보 같은 우직함을 마주하고 싶어진다. 소설가의 표현대로 그게 무엇이든 미련스럽게 내리 누르고 있다 보면 제 압력에 못 이겨 터져 나오는 것이 삶의 진실일 것이다. 살다보니 심연으로 삼투하는 고집 속에서 일상의 꽃들은 피어나고, 살랑이는 바람은 아슴아슴 풍성해진다고 믿게 됐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다시 고집 부리듯 되뇌어 본다. 미련 없이 돌아서고 망설임 없이 변해가지 않도록 일상의 한결같음을 지향하는 지표로 이 핸드폰을 버팀목 삼겠노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핸드폰, #스마트폰, #보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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