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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읍 신촌리의 경우 제주에 갈 때마다 덕인당 보리빵을 먹으러 들르다 보니 어느새 우리 동네처럼 익숙해진 곳이다.

제주시를 벗어나 삼화지구를 거쳐(이제는 삼화지구까지도 제주시라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진드르 교차로에 접어들면서 시작되는 신촌리 마을은 신촌 초등학교와 조천 중학교가 함께 위치하여 아이들을 키우면서 조용히 살기에 정말 최적의 장소 중 하나다.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기준으로 우측 한라산 방향으로는 조금 큰 주택들과 신축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고, 좌측 바닷가 방향으로는 오래된 구옥들과 빌라, 하나 둘 늘어나는 게스트하우스 등이 밀집하여 있다. 제주시내에서 멀지 않다는 안도감을 주면서도 바닷가 마을의 한적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신촌리 마을 진입로에서 바라본 모습. 신촌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바다, 우측으로는 조천리로 길이 이어진다
 신촌리 마을 진입로에서 바라본 모습. 신촌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바다, 우측으로는 조천리로 길이 이어진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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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 집을 마련한 지금도 가끔 신촌리에 가면 고향에 온 듯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늑함을 느끼곤 한다. 서귀포나 애월읍의 잘 가꿔진 마을들처럼 미려한 맛은 없지만 왠지 당장 눌러앉아도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신촌리에 대한 애정은 곧 조천읍 전체로 확대되어 와이프와 토론을 할 때면 난 언제나 조천읍을 강하게 주장하곤 했다.

여담이지만 당시 매입을 고민하던 신촌리 단독주택들의 최근 시세를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되었다. 5~8천만원 내외 하던 다 쓰러져가는 구옥은 1.5억에도 매물이 없어 못 파는 상황이고, 100평 내외 마당을 가진 자그마한 단독주택은 1억에서 2억으로 몸값이 두 배 이상 뛰어 있었다(물론 이 역시 매물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당시 2.2억에 매물로 나왔던 2층짜리 집은 4억 이상으로 올라 허탈한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우리가 신촌리를 알게 된 경로는 덕인당 보리빵이다. 한 번 익숙해지면 멈출 수가 없는 보리빵에 대한 식탐이여!
 우리가 신촌리를 알게 된 경로는 덕인당 보리빵이다. 한 번 익숙해지면 멈출 수가 없는 보리빵에 대한 식탐이여!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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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는 나와 조금 달랐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대로 제주는 좋아하지만 어둠과 벌레(특히 경동시장에서나 볼 법한 사이즈의 지네!), 한적함에 아직 무서움을 느껴 되도록 아파트를 우선시했고,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해 공항에서 멀어지는 것에 반대했다.

이런 와이프의 취향은 외도일동과 딱 부합됐다. 공항에서 15분 거리에 제주에서는 흔치 않은 대단지 아파트가 형성되어 있고 단지 내 상가들이 있어 인프라 걱정도 없는, 초보 이주민에게는 제법 그럴듯한 베이스캠프가 될 것 같이 보였다.

바닷가 앞에 조성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초보 이주민들에게 아파트의 익숙함과 제주의 설레임을 동시에 선사한다.
 바닷가 앞에 조성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초보 이주민들에게 아파트의 익숙함과 제주의 설레임을 동시에 선사한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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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여 전인가, 이 동네를 탐색하던 중 아내가 중대한 결정을 했던 적이 있다. 아파트 단지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든 아내가 부동산을 통해 직접 매물로 나온 집을 보자고 했던 것이다.

아이쇼핑을 극도로 싫어하는 아내의 성격상 집을 본다는 건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사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늘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단지 내 부동산을 찾았지만 주말 오후여서 그랬는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고 전화통화마저 안 되어 결국 포기하고 시간에 쫓겨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제주 상가들은 저녁이 되면, 혹은 주말이 되면 대부분 가게 문을 닫는다. 서울과는 다르다). 

도시의 답답함이 싫어 제주를 찾지만 빼곡한 아파트숲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드는 건 어떤 이유일까.
 도시의 답답함이 싫어 제주를 찾지만 빼곡한 아파트숲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드는 건 어떤 이유일까.
ⓒ 출처 : 외도동 주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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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찾은 외도일동은 대단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소규모 아파트와 빌라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가히 아파트 밀집촌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거주지가 되었다. 물론 늘어난 인구에 맞춰 상가 등 인프라 역시 함께 발전하여 외도일동은 집값이 많이 오른 지금도 도시에서 갓 이주해온 자발적 이주민들과 제주 발령을 받아 넘어온 비자발적 이주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 중 하나다.

이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매물이 꽤 많은 편이기에 지금도 가끔 시세를 확인해보곤 한다. 당시 1.1 억 정도에 거래되던 24평형은 2억을 훌쩍 넘어섰고, 1.6억 정도면 구입이 가능했던 30평대는 3억 중반에 거래가 되고 있다. 외도일동 아파트들이 저렴한 집값과 연세로 초보 이주민들에게 편리한 주거공간이 되어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곳의 급격한 집값 상승으로 인해 제주 이주에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이 생긴 것 아닌가 하는 괜한 우려가 들기도 한다(육지인들의 제주 이주에 대해 긍정이냐 부정이냐를 떠나).

제주에 살면 내가 사는 동네를 자랑하고 싶어진다

결국 아내의 취향에 따라 소박한 아파트를 보금자리로 결정한 지금도 우리는 제주에 갈 때마다 예전 '우리 동네'가 될 뻔했던 그 곳들을 다시 찾곤 한다. 그리고 입에 보리빵 하나씩 물고 주변을 산책하며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아쉬움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상상을 즐기곤 한다.

아파트 앞에 돌담 산책로가 있는 것 또한 제주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파트 앞에 돌담 산책로가 있는 것 또한 제주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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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살아가는 동네란 어떤 의미일까.

대부분 그러하듯 그저 아파트가 몇 평인지, 평당 얼마인지, 재건축은 언제인지, 얼마나 직장이나 학교와 가까운지 만 따질 뿐 정작 어떤 동네에 살고 싶은지,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잊고 살게 된 것은 아닐까.

가끔 제주 집에 지인들이 찾아오면 우리는 함께 동네를 산책하며 이 곳을 선택한 이유를 들려주곤 한다. 그럴 때 우리가 들려주는 것은 이 집이 평당 얼마인지, 인프라가 얼마나 좋은지, 교통이 어떤지 등의 사소한(?) 것들이 아니다.

그저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 예쁘게 심어진 잔디에서 뛰어 노는 순진한 시골아이들의 모습과, 귤 밭 사이 산책로를 따라 예쁘게 피어있는 동백꽃과 유채꽃의 향기, 봄이 되면 바람에 따라 출렁이며 물결을 만들어내는 청보리의 파도를 보여주곤 한다. 그리고 집에서 10분~15분 거리에 있는 삼나무 숲과 함덕 해변으로 드라이브를 하며 자연의 혜택이 가까이 있음에 감사하고 있음을 전해줄 뿐이다.

봄이 되면 굳이 가파도를 가지 않아도 집 앞 보리밭에서 청보리의 파도를 구경할 수 있다.
 봄이 되면 굳이 가파도를 가지 않아도 집 앞 보리밭에서 청보리의 파도를 구경할 수 있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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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에도 결국 이 동네가 평당 얼마인지, 개발계획은 어떠한지, 인프라는 어떤 지에만 관심이 있어 우리를 슬프게 하는 분들도 있지만, 가끔은 우리가 느끼는 행복을 온전히 공감하는 분들이 있음에 제주에 한발이나마 걸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된다.


태그:#제주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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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 : 제주, 교통, 전기차, 복지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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