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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해진 산들이

여전히 투닥투닥
▲ "복댕이 가만히 있어!" 여전히 투닥투닥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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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닥투닥. 오늘도 두 살 터울 산들이와 복댕이는 다투느라 정신이 없다. 네 살 복댕이가 말을 하면서부터 명확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하자, 둘의 다툼이 눈에 띄게 잦아졌다. 무조건 때 쓰고 뺏으려는 복댕이와 이를 힘으로 제압하려는 산들이.

뭐, 대부분의 결론은 비슷하다. 결국 복댕이가 서럽게 울면서 싸움은 끝나고 만다. 지켜보는 아빠 입장으로서는 막내의 울음에 조금 더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못 본 척 지나치고 만다. 산들이도 산들이대로 그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부모가 사사건건 아이들 다툼에 개입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산들이와 복댕이
▲ 투닥투닥 형제의 난 산들이와 복댕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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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산들이의 복댕이에 대한 폭력(?)이 눈에 띄게 세지기 시작했다. 말로 하면 될 것을 밀쳤고, 툭하면 때렸다. 그때마다 산들이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녀석의 버릇은 썩 나아지지 않았다. 

왜 그러지? 둘째는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더니 부모가 그만큼 신경을 쓰지 않아 관심을 끌기 위해서 그러나? 아니면 처음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집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건가? 우리 부부는 산들이에게 이것저것 물었고, 그 실마리를 녀석의 어린이집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산들이,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 재미있어?"
"응."
"혹시 누가 괴롭히는 사람은 없고?"
"현수(가명)가 자꾸 괴롭혀."
"현수가? 왜? 어떻게 괴롭히는데?"
"응. 자꾸 옆구리 찌르고, 밀치고 그래."
"너한테만 그래?"
"아니. 다른 아이들한테도 막 그러는데, 나한테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아."
"그래? 그러면 현수한테 정확하게 말해. 그러면 싫다고. 하지 말라고."

처음 다니는 어린이집
▲ 어린이집 앞에서 처음 다니는 어린이집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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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정리 중
▲ 혼자서도 잘해요 신발 정리 중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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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이가 어린이집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동생에게 풀고 있는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녀석이 묘사하는 현수의 태도는 산들이가 복댕이에게 하는 것과 비슷했다. 형제의 싸움이야 자연스러운 거지만 어쨌든 최근 들어 산들이가 과격해진 것은 현수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한 몫 하는 것 같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그 현수란 녀석은 왜 우리 산들이를 괴롭히는 것이고, 산들이는 왜 그런 현수를 분명하게 물리치지 못하는 것일까? 아내는 산들이에게 분명한 의사표현을 한 뒤 그래도 안 되면 선생님한테 이야기 하라고 했지만, 나의 대답은 달랐다.

"산들아. 그렇게 말했는데도 현수가 안 들으면, 너도 똑같이 때리고 밀쳐."

어렸을 때 기억

아이에게 똑같이 폭력을 행사하라는 대답에 아내는 기가 막힌 듯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굳이 나의 조언을 고칠 생각이 없었다. 물론 폭력에 대해 같은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옳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매번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마냥 점잖게 대응하며 선생님에게 조르르 가서 일러바치는 것이 옳은지 역시도 확신할 수 없었다.

때로는 시시껄껄하게
▲ 등원 중 때로는 시시껄껄하게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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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문뜩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4~5살의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가 큰 아이였지만 놀이터에서 놀다보면 나보다 작은 아이들에게 맞고 울기 일쑤였다.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우는 소리가 들리면 그게 바로 나였다는 어머니 기억도 있지만, 나 역시 나보다 작은 아이들에게 빙 둘러싸여 얻어맞은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어머니는 그런 내게 차마 같이 때리라는 말씀은 하지 못하시고, 차라리 도망이라도 가라고 가르치셨지만 나는 매번 맞고 울었고, 어머니는 급기야 그런 나를 태권도 도장에 보내셨다. 최소한 호신술이라도 배워 맞고 울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5살짜리가 무슨 태권도를 배우겠는가. 난 도장에서 가장 어린 아이로 귀여움을 독차지했지만 여전히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다. 아이들은 키 큰 아이가 우는 게 재미있었던지 나를 계속해서 괴롭혔고,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던 내가 아이들 괴롭힘에서 벗어난 것은 6살 때쯤, 내가 남들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세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는 막무가내 폭력으로 모든 아이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어 왕처럼 군림하던 세호(가명)란 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나는 녀석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반기를 들었다. 물론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연히 나를 때리려는 세호와 그에 지지 않고 맞섰던 나. 세호는 매번 맞고 울기만 하던 내가 반항하자 흠칫 놀라면서 결국에는 짱돌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난 그 상황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비록 넓적다리에 돌을 맞아 울긴 했지만, 녀석이 치사하게 돌을 들었다는 것은 더 이상 그가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후 다른 아이들은 나를 괴롭히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를 먼저 때리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때리려고 하면 힘으로 먼저 제압했고, 예전처럼 그리 쉽게 울지 않았다. 나는 예전 같았으면 울고 말아버렸을 그 상황에 내가 대처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고 그 뒤로는 누구와 싸워도 쉽게 지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해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만약 그때 부모님이 아이들 싸움에 끼어들어 상황을 정리했더라면, 내가 느꼈던 자부심과 믿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아마도 나는 꽤 오랜 시간 나보다 센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되었을 것이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이들 세계는 아이들 것이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해 간다. 내가 그랬듯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 더 이상 산들이에게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 없었다. 폭력은 분명 나쁜 거지만, 어쩌면 6살 남자 아이들에게 폭력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이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하나의 방식이며, 그 나름대로의 서열 짓기를 위한 통과의례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폭력의 정도가 심하다면야 당연히 개입해야겠지만, 그것이 아주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부모로서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모든 것을 극복해 내는 것은 오롯이 산들이의 몫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녀석이 나의 바람대로 그것을 이겨내면 더 큰 것을 얻을 것이고, 좀 더 커서 친구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도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부모로서 그보다 기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오늘은?

활짝 웃고 있는 산들이
▲ 어린이집에서 활짝 웃고 있는 산들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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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생각은 위와 같았지만, 그래도 자식이 어린이집에서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니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퇴근길에 어린이집에 들러 산들이를 태워 집에 오는 길, 나는 녀석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오늘은 어린이집 재미있었어? 현수가 또 괴롭히지는 않았고?"

산들이는 나의 질문에 그날 어린이집에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막상 현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말은 안 했지만 자기 스스로도 그만큼 현수 이야기가 껄끄럽다는 뜻이겠지.

"그랬구나. 그런데 현수는 어쨌어? 오늘 또 괴롭히지 않았어?"
"현수? 으응. 조금 괴롭혔어."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했어?"
"하지 말라고 했어. 그랬더니 안 했어."
"그래? 다행이네. 거 봐. 네가 분명히 이야기하면 다 된다니까."
"그리고 이제 현수가 나 못 괴롭혀. 선생님이 현수는 앞에 앉으라고 했거든. 나는 뒤에 앉고."

추측컨대 현수란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니 선생님이 그 아이를 앞자리에 고정시킨 듯 했다. 아내 말을 들으니 예전에 까꿍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에도 같은 반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은 학기가 시작되고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앞에 앉힌다고 했다. 유치원 입장에서도 그 아이에게 그만큼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려니.

어쨌든 산들이의 문제는 그렇게 미봉책이나마 마무리 되었다. 비록 내가 바라던, 산들이가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극복하는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큰 문제없이 산들이의 스트레스가 줄어든 것에 만족해야 했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녀석이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만큼 시간을 벌지 못한 것뿐이었다.

조금의 위험 정도는 감수할 줄 안다
▲ 혼자서도 잘해요 조금의 위험 정도는 감수할 줄 안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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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아, 아빠는 네가 그 모든 고난을 스스로 이겨내 씩씩한 어린이가 되길 바란단다. 아빠가 고비 때마다 도와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언젠가는 네가 혼자 헤쳐나가야 할 일이거든. 물론 힘들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아빠가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면서 네게 용기를 북돋아 줄 테니. 아마 그게 아빠가 해야 할 일일 거야.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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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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