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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옥중화>.
 드라마 <옥중화>.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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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옥중화>는 16세기 조선 감옥에서 출생한 가상의 인물, 옥녀(진세연 분)에 관한 이야기다. 옥녀의 어머니는 임신한 몸으로 칼을 맞고 쫓기다가, 일종의 교도소인 전옥서로 피해 들어간 뒤 극적으로 옥녀를 낳았다. 이렇게 출생부터가 극적인 주인공의 인생 스토리가 이 드라마의 내용이다. 

옥녀는 출생과 함께 엄마를 잃는다. 칼부림으로 인한 중상 때문이다. 그 후 옥녀는 전옥서에서 고아로 성장하면서, 간수들은 물론이고 죄수들과도 친해진다. 똑똑하고 살가운 옥녀는 전옥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옥녀가 16세기 중후반의 유명인들인 문정왕후·정난정·윤원형·전우치·이지함 등과 얽히면서 겪게 될 이야기가 앞으로 이 드라마에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옥중화>는 옥녀의 성장 과정뿐 아니라 조선시대 감옥의 풍경도 함께 보여준다. 수감된 죄수들은 현대 감옥의 죄수만큼은 못하지만, 지금의 감옥을 상당부분 연상시키는 생활을 하고 있다.

드라마 속의 수형자들은 널찍한 공터에 모여 잡담도 나누고 체력단련도 한다. 또 복역 기간이 긴 죄수들은 오랫동안 옥녀와도 친분을 쌓는다. 장기간의 인연을 바탕으로 옥녀한테 외부 물건의 차입도 부탁하고 법률적 조언도 얻는다. 심지어는 자기를 대신해 감옥살이를 할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도 한다.

이렇게 죄수들이 장기간 복역하면서 감옥 문화에 적응해가는 모습은 실제의 조선시대 감옥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물론 간혹 가다 그런 사례가 있었을 수는 있다. 그럴 수 있었다 해도, 그것은 매우 특수하고 예외적인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 형사제도 하에서는 감옥에 장기간 수감되는 것이 원칙상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기복역수, 조선시대엔 드문 일

 MBC 주말드라마 <옥중화>가 묘사한 조선시대 감옥.
 MBC 주말드라마 <옥중화>가 묘사한 조선시대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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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감옥은 미결수와 기결수 모두를 위한 공간이다. 판결을 선고받지 못한 미결수는 구치소에 구금되고, 선고받은 기결수는 교도소에 수감된다. 이 중에서 기결수는 몇 개월에서 몇 년 혹은 몇십 년간 감옥생활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감옥에서는 수감자들이 장기간 복역하면서 감옥 문화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포함한 과거의 감옥은 원칙상 미결수를 위한 곳이었다. 감옥에서 기결수를 구경하는 것은 꽤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옥중화>에서처럼 죄수들이 장기간 복역하면서 감옥 문화에 적응하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의 대한민국 형법 제41조에서는 형벌의 종류로 사형·징역·금고·자격상실·자격정지·벌금·구류·과료·몰수라는 아홉 개를 규정했다. 이에 비해 조선시대의 형벌은 다섯 개였다. 사형·유배형·도형·장형·태형뿐이었다.

장형은 60~100대의 매를 때리는 것이고 태형은 10~50대의 매를 때리는 것이었다. 도형(徒刑)은 매질·노동형·금고형이 결합된 것으로 지금의 징역형과 유사했다. 도형을 받는 죄수는 매를 맞은 뒤 노역장에 가서 강제 노동을 하면서 수감 생활을 했다.

법제적으로 보면, 다섯 개의 형벌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태형일 수밖에 없었다. 지방 사또가 자기 재량권으로 부과할 수 있는 형벌은 태형뿐이었다. 텔레비전 사극에서는 사또가 그보다 무거운 형벌도 임의로 부과하고 어떤 때는 사형까지 마음대로 선고해 버린다. 하지만, 이런 일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었다.

지방 사또는 1심 재판장, 관찰사는 2심 재판장, 임금인 주상은 3심 재판장이었다. 여기서 1심 재판장이 임의로 부과할 수 있는 것은 태형 하나였다. 태형 이상의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2심이나 3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판결이 선고되면 이들은 매질을 당하거나 노역장에 가거가 유배를 가거나 사형을 당했다.

이랬기 때문에, 판결이 끝나면 죄수는 원칙상 감옥에서 나가야 했다. 유죄라고 법적으로 인정된 사람은 원칙상 감옥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방 감옥뿐 아니라 중앙의 전옥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수감자들은 기본적으로 미결수일 수밖에 없었다. 이랬기 때문에 <옥중화>에서처럼 죄수들이 오랫동안 감옥에 살면서 감옥 문화를 형성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태형이 부과되는 모습. 한국민속촌에서 찍은 사진.
 태형이 부과되는 모습. 한국민속촌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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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토지 단위당 농업생산성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그래서 국가는 조세수입을 항상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국가의 자금력이 미치는 지역적 범위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지방관청 직원 대다수에게 고통을 주었다. 국가가 그들에게 원칙상 봉급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은 지방 공무원은 중앙에서 파견된 사또 같은 극소수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다. 별도로 생계를 꾸리든가, 관청 금고에 손을 대든가, 뇌물을 받든가 해야 했다. 국가는 지방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어느 정도는 눈감아 줬다. 이랬기 때문에 무보수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지방 공무원직을 선호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묵인한다 해도, 지방관청에 필요한 적정 인원을 모두 채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국가는 하급직 지방공무원의 상당수를 공노비(관노비)로 충원했다. 정조시대의 성균관 유생인 윤기가 지은 <반중잡영>이라는 성균관 안내문(시의 형태)에 따르면, 국립대학 혹은 행정연수원인 성균관의 하급 직원들도 거의 다 공노비였다. 문서 작성을 비롯한 실무 작업의 상당수가 이들 공노비들에 의해 수행됐다.

공노비는 국가 소유물이라서 별도로 봉급을 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을 관청 실무에 대거 투입한 것이다. 이들에게 원칙상 봉급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국가는 180일(한양) 혹은 300일(지방) 정도의 비번을 줌으로써 이들이 별도로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했다.

궁색한 국가, 사형 남발하기도

국가가 이렇게 궁색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산업생산성과 조세수입의 한계 때문이었다. 현대 국가는 온갖 방법으로 돈을 벌어들이지만, 옛날 국가는 그럴 만한 수단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궁색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가 <옥중화>에서처럼 죄수들에게 장기간에 걸쳐 숙식을 제공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국가 입장에서는, 가급적 사형을 선고하거나 유배를 보내거나 아니면 매질을 한 뒤, 하루라도 빨리 감옥에서 내보내는 게 손해를 최소화하는 길이었다. 사형·유배·매질로 처리할 수 없는 죄수라면, 노역장에라도 보내서 일을 시키는 게 이익이었다.

참고로, 옛날 감옥에서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 상황은 좀 달랐던 듯하다. 김구가 <백범일지>에서 조선 후기의 감옥제도을 설명한 바에 따르면, 감옥에서는 수감자의 노동을 조건으로 식사를 제공했다. 한편, 유배형을 받은 사람들은 본인이 직접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수감자를 내보내기 위해 매질뿐 아니라 사형 선고까지 남발하는 국가의 모습은 <대명률직해>라는 형법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 법전은 명나라 법전인 <대명률>을 조선 실정에 맞게 수정한 것이었다.

<대명률직해>에 따르면, 노비가 고용주를 나무라거나 욕설을 하기만 해도 국가는 노비를 교수형에 처했다. 그렇게 한 것은 당시에는 그런 행위가 중대 범죄로 인식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옥에 죄수가 많아지면 국가가 감당할 수 없다는 점도 고려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12권에 따르면, 어떤 때는 호패를 위조한 사람뿐 아니라 신청하지 않은 사람한테도 사형을 부과했다. 이것은 호패 착용이 중요시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옥에 죄수들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고려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옛날 국가는 감옥에 죄수가 불어나는 것을 경계했다. 그것은 돈이 드는 일이었다. 국가는 그런 부담을 감당할 힘이 없었다. 공무원들의 봉급도 제대로 못 주는 상황에서 죄수들까지 먹여 살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미결수가 아닌 사람이 감옥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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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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