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다크나이트>의 장점 조커, 배트맨, 하비 덴트라는 명확한 캐릭터를 통해 히어로와 빌런의 고뇌를 입체적으로 그렸던 <다크나이트>. <다크나이트> 시리즈가 슈퍼히어로 영화 중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남는 이유는 단순히 이분법적인 구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시빌 워>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 <다크나이트>의 장점 조커, 배트맨, 하비 덴트라는 명확한 캐릭터를 통해 히어로와 빌런의 고뇌를 입체적으로 그렸던 <다크나이트>. <다크나이트> 시리즈가 슈퍼히어로 영화 중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남는 이유는 단순히 이분법적인 구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시빌 워>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가 수많은 슈퍼히어로물 중에서도 극찬을 받은 이유는 단순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결을 탈피했기 때문이다. 놀란은 정의의 양면성과 영웅의 고뇌를 잘 그려냈다. 절대 악인 조커가 만들어내는 딜레마, 시민들에게 절대 선으로 기억돼야만 했던 하비 덴트의 타락 과정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딜레마 속에서 완전히 정당화될 수는 없었던 자경 활동 때문에 고뇌에 빠지는 배트맨의 모습까지. 이러한 고민을 영화 내내 잘 그려낸 것이 지금의 <다크나이트> 위상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평가할 때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는 말초신경을 자극할 수 있는 흡입력, 즉 단순한 재미이다. 둘째는 서사와 갈등이 주는 설득력 혹은 개연성이 그것이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아래 <시빌 워>)는 바로 이 점에서 전작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아래 <윈터 솔져>) 등을 뛰어넘는 마블의 최고작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시빌 워>가 기존 히어로물의 통념을 깰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히어로물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의 체제가 해결할 수 없는 일, 즉 권선징악을 초인적 능력을 지닌 히어로가 해결하는 과정에서 통쾌함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개의 히어로 영화는 절대 선과 절대 악, 정의와 부정의 단순한 이분법적 대결이 영화를 관통한다. 그러나 <시빌 워>는 히어로들 간의 대결, 즉 선과 선의 대결 구도를 그리게 된다. 또 선한 목적과 행위가 낳을 수 있는 폐해를 재조명함으로써 고민거리를 던져주기에 비슷한 의미에서 찬사를 받는 <다크나이트>처럼, 마블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빌 워>는 충분히 재밌는 영화이지만 내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운 영화였다. 기대가 너무 컸을 수도 있으나, 새 지평을 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입은 만족스러웠는데...

워 머신의 추락 팔콘의 추진기를 노리려던 비전의 공격이 빗맞으면서 결국 워 머신이 추락하고 만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갈등은 소코비아 협정을 두고 빚은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사적인 감정 싸움으로 번지고 만다.

▲ 워 머신의 추락 팔콘의 추진기를 노리려던 비전의 공격이 빗맞으면서 결국 워 머신이 추락하고 만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갈등은 소코비아 협정을 두고 빚은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사적인 감정 싸움으로 번지고 만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의 도입부는 매우 좋았다. 정의와 선을 목적으로 한 어벤저스의 행동이 선의의 피해자들을 발생시켰다. <시빌 워>는 과연 어벤저스의 행위가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잘 제시했다. 토니 스타크가 찰리 스펜서의 죽음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고뇌에 휩싸인 것은 <다크나이트> 배트맨의 그것과 유사했다.

물론 어벤저스가 막지 않았더라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들의 존재가 불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악당을 막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도출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체계적인 절차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 역시 합법적인 폭력, 즉 정당한 목적을 가진 공권력조차 그것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당한 목적에 입각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피해가 지나치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처럼 목적이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민간단체로 자의적인 무력을 행사하는 어벤저스는 통제가 필요하다는 게 아이언맨 팀 히어로들의 입장이다. 그리고 히어로의 존재 의의에 대한 고뇌 결과가 바로 소코비아 협정이었다. 반면 캡틴 아메리카 팀은 어벤저스가 정치적 목적에 따라서 휘둘리지 않을지 걱정하며, 권력에 의한 통제 위험성을 경계한다.

그런데 영화는 이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아 용두사미로 끝난다. <시빌 워>는 소코비아 협정을 단순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갈등의 기폭제로만 활용한다. 선과 선의 대결에서 그려지는 체제와 신념 간의 갈등을 재조명하는 데 실패했다.

기대감을 안고 영화를 끝까지 지켜봤지만, 지모 대령은 소코비아 협정을 악용하여 사적인 복수를 하게 된다. 블랙 팬서 또한, 마지막에 가서 가해자의 처벌을 법에 맡기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개인적 차원의 복수를 위해 뛰어다닌다. 영화의 주인공격이었던 토니 역시 결말 부에 개인적인 복수에 눈이 멀게 되고, 이에 맞서는 캡틴 역시 사적인 우정에 맹목적인 모습을 보인다. 처음 <시빌 워>에 품었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사적이며 감정적인 갈등, 설득력 없는 버키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져 스티브 로저스와 버키의 우정은 전작인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져>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 등에서 충분히 보여줬다. 그러나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버키가 갈등의 구심점으로 떠오른 후, 캡틴은 사적인 우정에 집착하는 모습에 급급하다.

▲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져 스티브 로저스와 버키의 우정은 전작인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져>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 등에서 충분히 보여줬다. 그러나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버키가 갈등의 구심점으로 떠오른 후, 캡틴은 사적인 우정에 집착하는 모습에 급급하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처럼 영화 내의 갈등은 모두 사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마무리된다. 물론 시리즈물이긴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가 감옥에 갇힌 어벤저스를 탈옥시킨 다음 토니에게 편지를 보내고, 토니는 그것을 어느 정도 용서하는 모습 등을 비추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전달한 메시지, 체제와 개인의 갈등, 신념 간의 충돌 구도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는다. 대신 단순히 소모적으로 활용한 데 그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영화가 용두사미로 끝맺지 않고 이러한 철학관을 끝까지 주지하기 위해서는, 좀 더 캐릭터 간의 갈등을 입체화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과 하비 덴트가 자신들의 가치관에 대한 고뇌에 휩싸이듯, <시빌 워>에 등장하는 히어로들 역시 소코비아 협정으로 인한 갈등을 구체화하고, 그것으로 인한 내적 갈등이 심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한 장치나 갈등이 없었다는 게 아쉽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언맨 팀과 캡틴 아메리카 팀으로 나뉘어 싸웠을 뿐이고, 블랙 위도우는 개인적 감정 때문에 막판에 협조를 철회했을 뿐이다. 가장 합리적일 수도 있는 비전마저 어떠한 고민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 메시지 전달의 가장 큰 흠이 아니었을까.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공항이 아니라 코믹스 원작처럼 민간인들이 밀집한 번화가에서 싸웠다면 이런 고민이 더 잘 주목받았을 수도 있다.

영화는 소코비아 협정 등 체제의 문제와 각 인물이 지닌 가치관의 충돌보다는 버키라는 개인이 구심점이 되어 이야기를 끌고 갔다. 버키를 구심점으로 내세우려 했다면, 버키의 행동이 정당한가에 대한 고뇌와 갈등을 추가적인 사건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작의 버키의 모습은 전작인 <윈터 솔져>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탓에 관객이 버키 캐릭터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전작에서 세뇌를 당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르던 버키와 그것을 옹호하는 캡틴의 모습이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작은 더 많은 것을 담아내야 할 책임이 있다. 와칸다에서 동면에 들어가며 또다시 그 책임을 다음 시리즈로 미룬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막바지에 이르러 반전이라면 반전이 드러난다. 토니 스타크의 부모를 살해한 원수가 버키였고, 캡틴 아메리카는 그것을 알았지만 이를 감췄다는 사실. 하지만 이 역시 "버키는 세뇌당했을 뿐"이라는 데서 출발한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대립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적 대립이 <시빌 워> 갈등의 핵심이라는 게 참 아쉽다. 물론 이를 이용하여 지모 대령이 어벤저스 내부의 균열을 야기한 것은 맞지만, 내부의 균열이 정의의 실현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에서 대립하였다면 더욱더 진정성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었을 터이다.

흥미진진했지만, 결국 간과해버린 무언가

헬리캐리어를 바라보는 캡틴 닉 퓨리와 갈등하는 스티브 로저스.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에서도 캡틴은 권력에 의한 감시와 통제를 경계하면서 자신만의 정의를 우직하게 밀고 간다. 그러나 이처럼 우직한 캐릭터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는 별반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관객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 헬리캐리어를 바라보는 캡틴 닉 퓨리와 갈등하는 스티브 로저스.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에서도 캡틴은 권력에 의한 감시와 통제를 경계하면서 자신만의 정의를 우직하게 밀고 간다. 그러나 이처럼 우직한 캐릭터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는 별반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관객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가 용두사미로 끝나게 된 것은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한계 탓도 크다.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가 발산하는 매력은 어떠한 위기에도 망설임 없이 뛰어들 수 있는, 정의에 대한 신념과 우직함이다. 나쁘게 말하면 단순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성격만으로는, 소코비아 협정 등을 활용한 메시지를 영화 끝까지 흡입력 있게 끌고 가기에 역부족이었다.

전작인 <윈터 솔져>에도 쉴드의 존재 의의 등과 같은 쟁점에서 캡틴은 비슷한 역할을 했다. 그때는 나름 설득력 있는 모습으로 사랑 받았다. 그러나 똑같이 우직한 모습을 <시빌 워>에서 보였을 때는, 많은 관객이 그에게 실망하게 됐다. 버키가 영화의 구심점이 되었고, 캡틴이 그것을 일관되게 옹호한 근거가 정의와 같은 가치관이 아니라 사적인 우정이 컸기 때문이다. 그의 집착에 별다른 설득력이 부여되지 않으면서 캐릭터의 설득력도 제대로 구축되지 못했다.

물론 버키가 진범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고 있었고, 지모 대령의 존재와 슈퍼 솔져의 위험을 막아야 했다. 개연성이 아주 없다고는 하기 어렵다. 하지만 작위적인 측면이 지나쳤다. 토니 팀에게 협조를 구했을 수도 있었으나, 지레짐작으로 부탁 한 번 해보지 않고 단 둘이 간 점, 제국에 균열을 주겠다는 의도는 알겠지만 지모 대령이 공중전화를 통해 스스로 발각된 점 등은 영화의 몰입을 방해했다. 버키보다도 강하다는 슈퍼 솔져 5명을 어떻게 상대할지도 궁금했었는데, 그렇게 간단하게 진행될 줄도 몰랐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오히려 캡틴의 우직한 성격이 장점이 됐을지 모른다. 언제나 흔들림 없이 정의를 위해 돌진하던 히어로가 고뇌에 휩싸여 망설이고 극복하는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줬을 것이다. 그러나 캡틴은 그러지 못했고, 오로지 버키만을 구하기 위해 또 다른 친구인 토니의 등을 돌리게 했다. 캡틴 아메리카가 소코비아 협정으로 인해 자신의 정의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고, 그에 대한 고뇌를 잘 풀어갔다면 평가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왜 어벤저스가 아니고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로 나온 것인지 참 의문이다. <다크나이트>처럼 이번 영화가 캡틴의 가치관을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도 아니고, 주인공으로서 설득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영화의 메시지는 토니가 더 잘 전달해줬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라는 제목에서 '캡틴 아메리카'도 '시빌 워'도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캡틴 아메리카라는 잘 구축되어 온 캐릭터가 무너졌다. 시빌 워(Civil War, 내전)가 어벤저스의 내전이 아닌, 캡틴 아메리카 마음속의 내전(내적 갈등)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물론 버키가 와칸다에서 냉동 수면에 들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준 점 등을 미루어 짐작할 때, 다음 시리즈를 통해 미완의 아쉬움을 충분히 풀어낼 수도 있다. <반지의 제왕>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것은,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 아니라 시리즈로 완성됐을 때 극대화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리즈적 완결성이 <시빌 워>에 대한 평가를 참작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시빌 워>는 아주 흥미진진했다. 공항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이 어우러지는 모습과 박진감 넘치는 전투는 매우 좋았다. 그러나 서사 측면에서는 용두사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단순한 오락 영화, 팝콘 무비에 너무 깐깐한 평가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시빌 워>가 애초에 전달하고자 했던 갈등이 무엇이었는지를 간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영화 마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어벤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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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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