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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들의 명소가 된 인천 북성포구.
 사진가들의 명소가 된 인천 북성포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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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비슷해 보이는 풍경이 펼쳐지는 포구와 항구. 고속도로와 국도만큼이나 느낌이 다른 공간이다. 고속도로엔 없는 국도여행만의 매력이 있듯, 포구에도 멀끔한 항구에선 느끼기 어려운 정경과 인간미가 있다. 소래포구나 인천연안부두만큼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포구여행하기 좋은 곳이 인천에 있다. 서로 멀지 않은 거리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북성포구·만석부두·화수부두.

서해 연평도 조기들이 쏟아져 들어오던 유서 깊은 포구로, 과거 인천의 3대 포구라고 불렸던 곳이다. 1980년 대 연안부두 개발로 어시장이 이전하고 인근 부지가 공장지대로 바뀌면서 포구와 부두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줄어들었다. 부산했던 활기도 잦아들었다.

사람들에게 잊히고 말았지만, 관광객들에게 치이고 떠밀려 포구의 정경을 제대로 느끼기 힘든 유명포구와 달리 한갓진 포구를 해질녘까지 실컷 음미할 수 있는 포구여행지가 되었다. 포구에도 종류가 있다면 이들 포구는 도시형 포구다. 수도권 1호선 전철 인천역에서 걸어서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포구의 쇠락과 함께 포구의 기억마저 희미해져버린 인천시민들에겐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포구지 싶다.  

짜장면 박물관에서 알게 된 짜장면의 유래 

전철이 아닌 기차여행을 하는 듯한 인천역.
 전철이 아닌 기차여행을 하는 듯한 인천역.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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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을 처음 선보인 중화요리집 '공화춘', 박물관이 되었다.
 짜장면을 처음 선보인 중화요리집 '공화춘', 박물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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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찾아가는 인천역은 전철이지만 1호선 종점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역 건너편에 차이나타운의 대문 패루가 맞이해서 그런 건지 기차여행을 하는 기분이 난다. 기차처럼 완행과 급행열차도 있다. 지도도 얻을 겸 역 앞 관광안내소에 들어갔다가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할 곳을 알게 됐다. 10여 년 전부터 주말, 공휴일에 한해 짜장면을 2500원에 평소 그대로 내놓는 중국집이 있다는 거다. 원래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한 일이었는데 이젠 일반시민들도 먹을 수 있단다.

향만성, 북경반점, 태화원 등 50년이 훌쩍 넘은 전통의 중국집 거리로 나섰다. 우리나라에 처음 짜장면이 생겨난 동네답게 차이나타운 거리엔 '짜장면 박물관'이 다 있었다. 한국식 짜장면이 최초로 탄생한 '공화춘'이라는 중화요릿집이 박물관이 되었다. 짜장면의 역사는 무려 1882년 임오군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나라에 진군한 청나라 군사들을 따라온 상인들은 서해의 관문인 인천을 통해 들어왔다. 인천에 모여든 청나라 사람들은 부두 노동과 장사를 하며 이 동네에 자리를 잡으며 화교가 되었다. 이들의 고향음식인 중국의 '작장면(炸醬麵)'이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입맛에 맞는 짜장면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확실히 내가 사는 동네의 짜장면과는 무언가 맛과 면이 달랐다. 양도 푸짐하고 맛깔난 짜장면을 반값에 먹다니... 감사의 표시로 짜장면은 물론 단무지, 양파가 담긴 그릇까지 싹싹 비웠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싱긋 미소를 짓던 초로의 아주머니가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 줬다. 우리는 초대를 받아서 식사를 할 때 주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주인이 내온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깨끗하게 비운다. 하지만 중국에선 반대로 음식을 남겨야 한단다. 음식을 내왔는데 만약 손님들이 남김없이 다 먹었다면, 손님이 아직 배가 차지 않았으니 다시 음식을 준비해서 배불리 먹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찾기 어려운 점이 매력, 북성포구 

북성포구 주위에 들어선 거대한 공장과 야적장, 제철소.
 북성포구 주위에 들어선 거대한 공장과 야적장, 제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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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이 도착하면 포구엔 해산물 직거래가 벌어진다.
 어선이 도착하면 포구엔 해산물 직거래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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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천역으로 되돌아가 역 뒤편에 있는 북성포구(인천시 중구 북성동1가)를 향해 갔다. 처음 찾아간 사람이라면 북성포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밀가루를 만드는 백곰이 그려진 큰 공장 옆에 북성포구를 알리는 표지판까지 세워져 있지만, 설마 바닷가 포구가 공장안 너머에 있으리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몇 번 헤매면서 마침내 포구 들머리에 들어서게 되면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북성포구는 찾기 어려운 게 매력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북성포구는 이채로운 풍경으로 입소문이 나 멀리서도 찾아오는 사진가들의 인기 출사지가 되더니 입구에 자전거 길과 산책로가 다 생겨났다.

북성동 골목을 통해 포구로 들어서는 길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마주치면 어깨를 피해야 할 정도로 좁고 긴 골목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골목 초입에 제분회사의 사유지로 출입을 제한한다는 안내판까지 있어 초심자라면 걸음을 멈칫거리게 된다. 하지만 출입은 자유롭다. 많은 어민과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포구에 들어선 게 미안했는지 오가는 사람들을 굳이 막지는 않고 있었다.

북성포구의 또 다른 매력은 입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풍경 아니 딴 세상이 나타난다는 거다. 거대한 공장, 포클레인이 움직이는 고철 야적장, 흰 연기를 뿜어대는 굴뚝 아래로 작은 어선들이 보이고, 노란 부리 끝에 빨간 립스틱을 칠한 갈매기들, 물웅덩이 같이 조그만 포구가 여행자를 맞는다. 좀처럼 보기 드문 포구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러온 나이 지긋한 사진가들이 도열해 있었다. 사진동호회 정모로 서울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왔단다.

공장들에 자리를 내준 포구,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공장들에 자리를 내준 포구,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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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가옥같은 북성포구의 횟집들.
 수상가옥같은 북성포구의 횟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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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검게 변해버린 갯벌, 쇠락해진 포구, 그곳에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이 매력이 되어 다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다니 사람일이란 참 알 수 없구나 싶었다. 특히 해질녘엔 어느 포구에서도 볼 수 없는 노을 풍경을 찍으려 더 많은 사진가들이 찾아온다.      

때마침 바다에서 물길을 따라 포구로 어선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갯벌인 북성포구엔 밀물이 들어야만 배가 들어올 수 있다. 그래서 손님들도 물때에 맞춰 포구로 나온다고. 배에서 쏟아져 나온 해산물들로 포구 가에 직거래 좌판이 벌어졌다. 숭어, 복어, 광어, 갯가재, 꽃게, 재미있는 이름의 물고기 삼식이 등이 펄떡인다. 일반 어시장처럼 굳이 '자연산'을 강조하거나 표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어선에서 어구를 옮기던 어느 어부 아저씨는 물고기가 가득 잡히는 만선의 배 갑판위에서 장터가 벌어지는 '파시(波市)'가 열리기도 한단다. 고기가 많이 나는 섬에서 열리는 파시가 이 조그마한 북성포구에서도 펼쳐졌다니 믿기지 않았다. 혹시나 '북성포구 파시'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어부 아저씨 말이 사실이었다.

어부 아저씨는 예전엔 이곳을 '똥마당'이라 불렀단다. 한국전쟁 당시 북에서 넘어온 피난민들이 북성동에 정착해 살았는데, 공동화장실로 쓰던 재래식 화장실 분뇨를 포구 앞 바다에 내다 버렸다고 해서 생겨난 별칭이라고.

북성포구엔 30여m 길이의 골목에 10여 곳의 작은 횟집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포구나 횟집에서 생선을 고르면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회를 먹을 수 있다. 뼈대를 드러내며 바다 위에 지어진 횟집들이 마치 수상가옥 같았다. 한 아주머니가 능숙하게 바지락 조갯살을 껍데기에서 발라내는 걸 보면서 간사하게도 짜장면 대신 바지락 칼국수를 먹을 걸 후회가 들기도 했다.

화수부두의 명물 '배 만드는 어부' 

소설 <괭이부리마을 아이들>에 나오는 동네 만석동.
 소설 <괭이부리마을 아이들>에 나오는 동네 만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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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부두에 가까에 왔음을 알게 해준 식당.
 만석부두에 가까에 왔음을 알게 해준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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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포구 횟집식당을 지나면 나오는 골목길을 쭉 따라가면 만석동 경로당이 나오고, 조금만 더 가면(약 2km) 만석 슈퍼와 함께 부두를 품은 동네가 나타난다. 만석부두(인천시 동구 만석동) 또한 초행자가 찾아내기 쉽지 않지만, 동네 주민들에게 물어보면 잘 알려준다. 동네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만석부두. 옛날 충청, 전라, 경상도 삼남지방에서 강화수로를 이용해 서울로 올라가던 곡물을 만석이나 쌓아두던 곳이라 해서 '만석'이라 이름 붙었다는 포구다.

이름의 유래와 달리 만석부두를 팔 벌리면 품에 쏙 안길 것 같은 자그마한 곳으로 줄어들게 한 건 부두를 포위한 공장들. 하늘 높이 올라선 공장 굴뚝은 쳐다보다 보면 고개가 꺾일 정도다. 만석부두에 들어서면 시끌시끌했던 공장 소음이 순간 사라지고 세상과 단절된 듯 고요함이 밀물처럼 스며든다.

만석부두는 세 부두 중 수심이 제일 깊고 바다와 제일 가까운 부두로 바다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탁 트인 바다 위로 떠 있는 섬(작약도, 영종도)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과거 영종도를 왕복하는 정기선이 오갔었단다.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만이 만석부두의 영화와 기억을 잊지 않은 듯했다. 포구와 부두의 차이점을 굳이 검색해보지 않아도 풍경과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서로 다른 풍경을 품고 있지만, 지도를 보면 북성포구·만석부두·화수부두는 다 한 바다다. 부둣가 주변에 낚싯배를 운영하는 가게들이 남아있었다. 만석부두는 예전부터 덕적도, 승봉도, 자월도 등을 오가는 낚싯배들이 주로 들고나는 부두였다고.    
만석부두를 품은 동네 만석동은 알고 보니 소설 <괭이부리마을 아이들>에 나오는 동네였다. 무료한 표정의 개가 하품을 하며 지나가는 여행자를 향해 짖지는 않고 멀뚱멀뚱 바라보는가 하면, 골목 어귀에 놓인 평상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앉아 믹스커피를 손에 들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 여행지인 화수부두 가는 길을 물어보는 와중에 내손에도 따끈한 믹스커피가 쥐어졌다. 한 아주머니는 화수부두의 명물 '배 만드는 어부'도 알려주셨다. 여행을 한층 즐겁고 흥미롭게 해주는 의외의 정보는 이렇게 동네 주민들에게서 주로 얻게 된다.

바닷가에 있었던 화수등대, 바다 매립으로 육지등대가 됐다.
 바닷가에 있었던 화수등대, 바다 매립으로 육지등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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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해산물이 있는 화수부두 어시장.
 싱싱한 해산물이 있는 화수부두 어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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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부두(인천시 동구 화수동)는 의외로 쉽게 찾았다. 만석부두에서 나와 찻길 옆 산책로를 지나가는데 웬 아담한 등대가 나타났다. 등대 꽃게 그림과 함께 화수부두라고 써있다. 그런데 등대가 부둣가에 있어야지 왜 생뚱맞게 도로 옆에 서있을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조금 후 화수부두에서 만난 배 만드는 어부의 아내가 그 이유를 알려 주었다. 확실히 토박이라서 지역에 대해 훤했다. 화수등대 자리가 지금은 육지지만 전에는 바다였단다. 바다를 매립해 육지가 되면서 바다 등대가 육지 등대가 되었다는. 등대에서 화수부두까지는 몇 백 미터나 되었는데... 바다를 얼마나 많이 매립했는지 알만했다.

두산인프라코어, 일진전기 등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 벽을 끼고 한참을 들어가면 나타나는 작고 아담한 화수부두. 갯골이 내륙으로 움푹 들어가 물길이 좁고 길다. 갯골 건너에 여지없이 공장이 마주하고 있다. 부두의 분위기가 아늑하다 싶었더니, 화수부두는 자연적으로 생긴 자연항이라고 한다. 다른 부두와 달리 부두의 터가 내륙 쪽으로 많이 들어온 덕에 태풍이 와도 어선을 보호할 수 있는 지리적 특성을 가졌다. 각자 다른 색깔을 한 깃대를 달고 정박한 많은 어선들을 볼 수 있었다.

부두에 기대선 배에 통발, 그물, 잡동사니 등 각종 어구가 한 가득이다. 늙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어부의 모습이다. 포구와 부두를 연이어 지나왔더니 어선들을 보는 눈이 좀 달라졌다. 갑판 위 모습은 정말이지 어수선하고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필요 없는 물건은 한 점도 실려 있지 않다. 흡사 마감을 앞둔 어느 잡지사 편집장의 책상 같았다.

5년에 걸쳐 손수 배를 만든 백전노장의 어부 부부.
 5년에 걸쳐 손수 배를 만든 백전노장의 어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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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보면 무질서하고 어수선한 게 포구와 잘 어울리는 어선.
 언뜻보면 무질서하고 어수선한 게 포구와 잘 어울리는 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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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동 주민이 알려준 '배 만드는 어부'를 운 좋게 부둣가에서 마주쳤다. 해병대 모자를 쓴 할아버지(유동진씨, 71세)는 허리도 굽지 않은 정정한 어부였다. 60대 후반에 시작해 5년에 걸쳐 만든 배가 부둣가에 자랑스레 정박해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다른 어선들과 모양이 달랐다. 이 배를 만드는데 무려 4억이나 들었다는 말을 듣곤, 옆에 앉아있는 아내(강영자, 65세)의 묵인과 지원이 아니었음 이 9톤의 큰 배가 탄생하기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고기를 잡고 횟집을 하며 힘들게 번 돈,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자금을 고스란히 남편의 꿈에 바친 것이다. 흔쾌히 사진촬영 허락을 하며 햇볕에 그을려 까맣게 탄 얼굴로 웃음 짓는 백전노장의 어부, 유달리 행복해 보였다. '배 만드는 어부'로 유명해져 여러 방송을 타더니 얼마 전 진수식을 할 땐 인천시장도 나와 구경을 했다고. 명물 어부 덕분인지 수산물유통물류센터가 곧 생기고 부두에 있는 어시장이 현대식으로 탈바꿈을 한단다.                
수도권에 위치한 지리적 장점에 월미도 유원지, 차이나타운도 가까운데다 저마다 다른 포구, 부두의 분위기에 길도 연결되어 있어 특색 있는 포구여행지로 참 좋은 곳이었다. 인천역에서 가까운 월미도와 북성포구·만석부두·화수부두를 잇는 10.9㎞의 둘레길이 조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화수부둣가에 만석부두를 경유해 수도권 1호선 전철 동인천역으로 가는 506번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다. 다시 길을 거슬러 만석부두와 북성포구로 회귀하는 것도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인천 3대 포구의 진경은 일몰 즈음에 있다고 하니 말이다. (호기심, 여행심을 높이기 위해 해저물녁 포구 사진은 생략한다)

덧붙이는 글 | 지난 5월 1일에 다녀 왔습니다.



태그:#포구여행, #북성포구, #만석부두, #화수부두, #인천3대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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