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고 무비>는 2014년 2월에 처음 개봉했고, 올해 어린이날에 맞춰 5월 4일에 재개봉했습니다. [편집자말]
 영화 <레고 무비>의 한 장면. 에밋(크리스 프랫)은 그저 평범한 레고 사람일 뿐, 세상을 구원할 인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영화 <레고 무비>의 한 장면. 에밋(크리스 프랫)은 그저 평범한 레고 사람일 뿐, 세상을 구원할 인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취학 전의 어린아이들을 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시스템에 적응하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무엇을 잘하고 못 하는지, 어디에 흥미가 있고 집중하게 되는지 스스로에 대해 너무 잘 알게 되지요.

그러나 많은 경우 곧 까먹게 됩니다. 현대 사회는 시스템의 효율성과 편의에 따라 사람들을 평가하고 재조직할 뿐 개개인의 가치나 취향에 관심이 없으니까요. 자기만의 어떤 것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는, 세상의 흐름에 자기 자신을 맡기는 것이 편안하고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지시킬 뿐입니다.

이 영화 <레고 무비>의 주인공 에밋도 그런 논리에 푹 빠져 사는 청년입니다. 설명서에 정해진 순서대로 하루를 시작하고, 일터에 나가 똑같은 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며, 언제나처럼 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마감하지요. 그의 겉모습 또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레고 사람일 뿐입니다.

이런 그에게 변화의 계기가 찾아옵니다. 공사장 지하에서 우연히 '저항의 피스(piece)'를 찾게 된 것이죠.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레고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예언이 걸려 있는 특별한 조각 말입니다. 설명서가 없이도 레고 블럭으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마스터 빌더'도 아닌 평범남 에밋이 그 임무를 완수해내기란 참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한계를 두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라

 영화 <레고무비>의 주요 출연진.

영화 <레고무비>의 주요 출연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컴퓨터로 디자인된 레고 블럭을 사용하여 만든 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반지의 제왕>과 <매트릭스> <스타워즈> 같은 기존의 영화들 - 모두 소명을 받은 자가 임무를 완수하는 내용의 영화들이죠 - 을 슬쩍 슬쩍 패러디합니다. 또한 여러 차원의 레고 세계를 구경하는 재미와 함께 미국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들을 등장시켜 그들을 희화화하며 웃음을 주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 시퀀스도 보여주는 등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특히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난데, 코미디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크리스 프렛(에밋 역)과 엘리자베스 뱅크스(와일드스타일/루시 역)의 앙상블이 좋습니다. 나쁜 경찰 역할의 리암 니슨과 예언자 역할의 모건 프리먼은 평소 이미지를 약간 비튼 캐릭터를 시침 뚝 떼고 연기하죠. 에이미 폴러의 남편이기도 한 윌 아넷이 연기한 배트맨도 난데없이 튀어나와 배꼽을 잡게 합니다.

각본과 감독을 맡은 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는 최근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콤비입니다. 자신들의 장편 데뷔작인 애니메이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의 성장 테마와, 두 번째 장편이자 첫 실사 영화인 <21 점프 스트리트>에서 보여준 코미디 감각을 잘 버무려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특히 레고 블럭을 가지고 놀 때 생기는 딜레마, 즉 설명서를 따라 할 것이냐 아니면 자기 맘대로 만들 것이냐를 극의 주요 쟁점으로 끌고 들어와 이야기의 테마로 삼은 것이 돋보입니다. 레고 놀이의 핵심적인 특징을 이보다 잘 잡아낼 수는 없을 겁니다. 그야말로 '레고 무비'라는 제목에 걸맞은 주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두 사람은 이 영화의 성공 이후 일복이 터졌습니다. 속편인 <레고 무비 2>의 제작-감독-각본, 스핀오프 격인 <레고 배트맨 무비>, <레고 닌자고 무비>의 제작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스타워즈>의 한 솔로 스핀오프 프로젝트의 연출자로도 내정된 상태입니다.

결국, 이 영화의 메시지는 자기는 능력이 없으니 설명서대로 살아야겠다는 식으로 가능성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한계를 두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겁먹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용기를 주고, 평소 아이들에게 규율을 과도하게 강조해 왔던 어른들에게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줍니다. 물론, 이미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자기의 길을 개척하느라 애쓰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격려를 전하지요.

미국 사회에 어울리는 이야기?

 영화 <레고 무비>의 포스터.

영화 <레고 무비>의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어쩌면 이것은 미국 사회에나 어울리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미국은 개성 있고 창의적인 것을 만드는데 들이는 개인에 노력에 대해 보다 많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또한 그에 걸맞은 보상 체계도 잘 갖추고 있지요. 물론 성공하는 사람은 여전히 한정되어 있지만요. 미국이 수많은 내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분야에서 혁신을 이뤄내며 선진국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꿈같은 얘기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창업, 발명, 창작 등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지요. 기껏 기술을 개발하면 대기업이 헐값에 사들이거나 고사시키고, 새로 시장에 진입한 회사나 신인들은 그다음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IMF 이후 십 수년간 청년들이 스펙 경쟁에 내몰린 것으로도 모자라 흙수저론 같은 푸념까지 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좋은 영화를 보고도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이 자기네들의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려고 애쓰거나 자기들의 관점만을 강요하려 하지 않고, 다음 세대가 좀 더 기를 펴고 앞날을 개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더 신경을 쓰기를 바랄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레고 무비 애니메이션 필 로드 크리스토퍼 밀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