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주간 아내 없이 혼자 살아보니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내 '절친'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아내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다. 나 없는 처가에서 한없는 자유를 만끽하며 모처럼 부모님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니까. 

얼마전 수술을 마친 아내는 한 달 정도 절대안정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귀촌하자마자 집안에 큰 사건들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모두 액땜이다 생각하고 잘 넘겼다. 아내의 수술도 그중 하나였다.

수술 후 아내는 휴식과 안정을 취하기 위해 처가로 갔다. 덕분에 나는 벌써 2주째 독수공방 신세다. 하지만 아내가 없다고 해서 특별히 불편한 것은 없다. 적어도 물리적인 면에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결혼 전까지도 10년 가까이 자취 생활을 했던 터라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쯤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게다가 결혼 후에도 빨래나 집안 청소는 아내의 몫이 아닌 내 몫이었다. 나는 기질적으로 빨래가 바구니에 높이 쌓여 가는 꼴을 보지 못한다. 아이가 없는 우리 집은 일주일에 빨래를 두 번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때문에 빨래 쯤은 그다지 큰 노동도 아니다.

더구나 결혼 후에도 전기 밥솥에 밥이 비어 있으면 밥을 지었고,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직접 요리도 했다. 집안일 만큼은 아내의 일과 내 일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먼저 본 사람이 미루지 않고 한다'라는 원칙 아닌 원칙으로 살아왔다. 결혼 후 특별히 달라진 게 있다면 내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렇게 산 것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아내와 나는 결혼 10년차 부부다.

그래도 역시, 아내가 없으니 어딘가 허전하다. 아마도 서울에 살았다면 아내가 없는 틈을 타 하루 이틀 쯤은 친구들을 모아 술도 마시고 유흥도 즐기며 자유를 만끽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좁디 좁은 지역 사회로 이사 오다 보니 별다른 유흥 거리도 없이 아내가 없는 빈자리를 자력(?)으로 꿋꿋이 버티고 있다.

그래서 일까. 요즘 부쩍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는 횟수가 늘었다. 종종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들을 살피며 어디로 전화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선배 별일 없지?"
"너 요즘 부쩍 자주 전화한다. 외롭냐?"

정곡을 찔렸다. 그래 난 외롭다. 깔끔하게 인정하고 나니 아내의 빈자리가 좀 더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아내가 늦는 날엔 내가 밥상을 차려 놓고 기다렸다. 물론 반대로 내가 늦는 날은 아내가 밥상을 차리고 날 기다렸다.

우리 부부는 아침은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저녁 만큼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함께 했다. 저녁을 먹으며 집안일부터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이야기까지 폭넓은 주제로 대화를 했다. 그렇게 식사를 하며 대화를 주고 받다 보면 어느새 복잡한 생각도 정리가 됐다. 운이 좋을 때는 고민 거리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나에게는 아내처럼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없다. 내 말을 오해 없이 잘 들어주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씩 의문이 풀린다. 내 외로움의 정체는 '대화 다운 대화가 없는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휴대전화에 집착했던 것이다. 결혼 생활 10년 동안 이번처럼 오래 아내와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다.

그동안은 너무나 익숙했던 탓에 아내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조차 잘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내와 떨어져 있는 동안 아내가 나에겐 아내이기에 앞서 세상에서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절친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태그:#절친 , #아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