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의 가치> 포스터

영화 <사랑의 가치> 포스터 ⓒ JIFF


전주가 뜨겁다. 지난달 28일부터 오는 7일까지 펼쳐지는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JIFF) 덕분이다. 부산시와의 갈등으로 부침을 겪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달리 전주국제영화제는 순항 중이다. 세계 각지에서 많은 작품과 관객들이 모여들어 전주시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적어도 흥행 측면에서 이번 영화제는 성공적이다. 개막 4일 만에 106회에 달한 매진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이전까지 전주국제영화제가 보유한 동일기간 최고기록은 2014년의 104회였지만 말끔히 갈아치웠다. 이 추세라면 영화제가 끝나기 전까지 2014년 기록한 214회차 매진기록을 넘볼만하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건 수치로 보이는 것들뿐이다. 질적으로 이번 영화제가 성공적이었는지 묻는다면 나는 쉽사리 답을 내놓기 어렵다. 슬쩍 살펴봐도 질적 개선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영화상영 이외의 부대 행사는 양마저도 부족하다. 영화상영이 끝난 직후 영화제와 관련 없는 전주 시내 다른 장소로 벗어나는 이들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가 국고지원을 받은 6개 영화제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현장만족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특히 영화제의 품격을 결정짓는 경쟁부문 출품작 면면이 실망스럽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양과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질과 수준의 문제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현실 가운데서 뛰어난 작품을 초청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수년째 제자리걸음인 현실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인지도 면에서 국내 최고수준인 영화제에서 국제경쟁부문 출품작 상영이 끝나고 만족스럽게 상영관을 빠져나가는 관객을 찾기란 어째서 이리도 어려운가.

국적 말고는 특색이 없는

사랑의 가치 <사랑의 가치>는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문 출품작이다.

▲ 사랑의 가치 <사랑의 가치>는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문 출품작이다. ⓒ JIFF


<사랑의 가치>는 모두 10편이 출품된 국제경쟁부문 출품작 가운데 하나다. 영국인 제작자의 지원을 받아 1000만 원 정도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는데 영화산업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는 에티오피아 영화로는 한국까지 들어온 몇 안 되는 사례일 것이다. 감독을 포함해 모두 9명의 제작진이 촬영에 참여했는데 감독 스스로 말하길 고충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스크린을 통해 그 고충이 전해졌으니 말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매춘부의 아들로 태어나 에티오피아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테디다. 불우한 성장 과정을 거친 테디는 한때 술과 도박에 빠져 방탕한 삶을 살았지만, 후견자격인 목사 압바의 도움으로 성실한 삶을 살아간다. 교회에서 마련해준 택시를 몰아 삶을 꾸리는 그의 가장 큰 목표는 돈을 다 갚고 택시를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그의 삶에 한 명의 여자가 뛰어든다. 거리에서 몸을 파는 매춘부 페레다. 테디는 그녀에게서 어머니를 떠올린다. 이후 카메라는 테디가 그녀를 통해 말려드는 사건을 투박하게 담기 시작한다.

영화가 펼쳐지는 배경은 에티오피아, 이야기의 주역은 매춘부와 택시기사다. 물론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가 펼쳐지는 방식은 별반 새로울 게 없다. 새롭지 않을뿐더러 투박하고 진부하기까지 하다. 당장 TV를 틀면 펼쳐지고 있을 듯한 통속극, 진부한 신파적 소재까지 이어진다. 현실감도 재미도 없다. 한 방울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더 뜨겁고 더 치밀했어야

사랑의 가치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카사훈 게타트체우(왼쪽)와 페레웨니 게브레게르그스(오른쪽).

▲ 사랑의 가치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카사훈 게타트체우(왼쪽)와 페레웨니 게브레게르그스(오른쪽). ⓒ JIFF


영화가 끝난 후 관객과 마주한 감독은 에티오피아 매춘부의 고달픈 삶을 조명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를 떠나 두바이 등 아랍세계로 나가는 걸 탈출구로 삼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그려내려 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영화 속에서 그들의 모습은 몇 차례 대사와 장면을 통해 평면적으로 드러나는 게 고작이다.

영화는 꽤 충격적 결말을 갖고 있다. 충격이 지나쳐 뜬금없이 느껴질 정도다. 상영 때마다 감독에게 이에 대한 질문이 나온 건 우연이 아니다. 그때마다 감독은 '관객에게 극적 감흥을 주기 위해 배치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당혹스럽다. 러닝타임 내내 극적 감흥을 불러일으킬 기회가 있었음에도 평이하고 진부한 이야기를 거듭하던 영화가 그 결말에 이르러서야 기존의 전개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선택을 하다니. 그리고 그 이유로 고작 '극적 감흥을 주기 위해'라는 답을 하다니. 나로선 무책임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제목은 <사랑의 가치>다. 영화 속에선 여러차례 돈이 오가는 장면이 나온다. 때로는 성실하게, 때로는 폭력적으로, 때로는 안쓰럽고, 때로는 멋있게. 돈에 담긴 뜻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안에서 무엇이 사랑의 가치인지에 대해 영화는 전혀 답을 내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영화가 관객들이 그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공간 역시 제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에티오피아에서 찍었다는 점 말고는 특색이 없는 영화였다. 불친절할 뿐 아니라 진부하며 투박하고 무책임하기까지 했다. 역량 부족이 여러 곳에서 느껴졌고 그보다 아쉬웠던 건 열정과 재능마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담아내려 한 것보다 담아낸 것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게 적절한 평이 될 것이다. 정말로 사랑의 가치나 에티오피아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다루려 했다면 보다 뜨겁고 치밀해야 하지 않았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JIFF) 사랑의 가치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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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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