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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알아 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현혹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 하지 않는다" 등 <논어>에는 삶에 용기와 힘을 주는 말씀을 비롯해 주옥 같은 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논어>를 읽을 때, 당연히 공자를 주인공으로 보고 그에게서 가르침을 얻고자 합니다.

그런데 <논어>는 공자만이 아니라 공자의 제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제자들을 중심으로 <논어>를 읽는 참신한 책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다양한 제자들은 공자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각기 다른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논어, 학자들의 수다: 사람을 읽다>가 그 책입니다.

저자는 주로 동양 고전을 연구해 왔으며 숭실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로 있는 김시천입니다. 지난달 30일,파주에 있는 카페 겸 동네 작은서점인 '커피발전소 in 교하'(발전소책방.5)에서 김시천 저자를 만나 참신한 고전 독해를 보여 주는 이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제자들에 주목하면, 다양한 이들의 접속과 변주를 만날 수 있다!

표지
▲ 논어, 학자들의 수다: 사람을 읽다 표지
ⓒ 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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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출간된 <논어, 학자들의 수다: 사람을 읽다>에서 눈에 띄는 가장 큰 특징은 <논어>라는 텍스트에서 인(仁), 예(禮), 정명(正名) 같은 철학적 개념보다는 공자의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생각을 읽어 낸다는 점입니다. 이 책은 공자의 제자들인 자로, 안회, 자공, 재아, 염구, 자하, 자장 등이 각기 신분이 다르고 공자에 대한 태도가 달랐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그 덕분에 그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논어> 안의 다양한 목소리를 드러내는데요. <논어>라는 텍스트를 이토록 색다르게 읽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요?
"이 질문에 이렇게 우회적으로 말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제 주변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SNS 친구들을 비롯해서 연락처를 아는 사람들, 강의 때 만나는 학생들, 여기저기서 만나는 분들 등이 있는데,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거든요.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른데, 어떻게 그동안 <논어> 속 사람들이 다 똑같은 것처럼 생각해 왔을까 하는 당연한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는 거죠.

두 번째로 동양이든 서양이든 철학사를 보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다 개성이 있고 다양하지 않습니까! 서양 철학사에서 소크라테스는 이전의 자연철학자들과 어떻게 다른지 얘기하고,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며,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비판했다고 얘기하죠. 그러면 그런 일이 공자와 공자의 제자들 사이에서는 안 일어났을까요?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논어>를 읽어 왔던 거죠.

그동안 <논어> 속에 있는 얘기를 전부 다 공자의 얘기로 환원해서 읽거나, 공자의 생각과 다른 발언이 있을 때면 "틀렸다.", "공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해 버렸습니다. 이제는 그런 시각을 바꿔서 왜 어떤 제자가 공자와 다르게 발언했는지 따져 보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시각을 바꿔서 <논어>를 읽어 보니까, 굉장히 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 있었구나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특별한 시각이라기보다는 상식적인 얘기입니다. 즉 기존의 권위를 내려 놓고 <논어>를 상식적인 생각으로 읽어 보았더니, 제자들이 각기 다 다르더라는 상식적인 얘기가 나온 거죠.

덧붙여서, 우리는 흔히 <논어>를 공자의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논어>는 공자만의 책이 아닙니다. 제가 공자의 말을 일일이 세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약 45퍼센트가 공자가 한 말입니다. 나머지 55퍼센트는 화자가 다르거나 제자들과 얘기를 나눈 것입니다. 이렇다면 <논어>를 공자만의 책이라고 할 수 없겠죠.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의 책이라고 봐야 합니다."

오른쪽이 김시천, 왼쪽이 서상일.
▲ 김시천 저자와의 대담 오른쪽이 김시천, 왼쪽이 서상일.
ⓒ 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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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제자들 각각의 개성에 주목하는 것은 <논어>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자를 돋보이게 하고 <논어>를 재미나게 만드는 '신 스틸러'와 같은 제자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역시 '자로'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아마 저만이 아니라 다들 자로를 꼽을 겁니다. 제가 이번 책에서도 "자로가 있었기에 <논어>가 조금은 재밌는 책이 되었고, 자로 덕택에 공자가 더 돋보일 수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보통 자로를 과격하고 다혈질이며 욱 하는 성격의 사람으로 여깁니다.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나서다가 공자에게 혼이 나기도 했던 사람이라는 식으로 많이 설명합니다. 그런데 자로가 정말 그런 사람일까요?

<논어> 중에서 자로가 나오는 부분만 따로 모아서 읽어 보면,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자로 부분만 따로 모아서 읽어 보니까, 전에는 별로 중시하지 않았던 장면들이 새롭게 눈에 띄더라고요. 자로가 어느날 공자의 방문 앞에서 거문고를 타는 장면이 있습니다(선진 11.15). 그 전에 이런 장면은 아무런 중요성이 없는 거였어요.

그런데 자로의 삶을 중심으로 보니까, 이 장면이 산적 두목이었던 자로가 공자학단에 융화되어 가는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 되더라고요. 즉 산적 두목인 자로가 칼을 버리고 거문고로 상징되는 예악을 익히기 위해 자신을 바꿔 나갔다는 것이죠. 이것이 자로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어>에는 인물들 하나하나의 개성을 결정하는 사건들이 꽤 등장하는데, 자로가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줍니다.

저는 이 책의 쓸 때, 각각의 제자들을 상상해 보면서 썼는데요. 자로는 욱하기는 하지만, 천진난만한 면이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자로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정이 갑니다. 공자에게도 자로가 그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말 못하는 속내를 자로에게 말하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다혈질이기는 하지만 매우 인간적이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이 자로를 좋아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로는 <논어> 속에서 인생이 바뀌어 가는 과정이 드러난다는 점 때문에 재미나고 매력 있는 인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안회'가 수제자? '자공'이 감독과 같은 존재!

- 흔히, 공자의 여러 제자 가운데 안회가 수제자로 꼽히곤 하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논어>에는 공자가 안회를 칭찬하는 내용이 꽤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안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보았어도, 그가 멈추는 것은 보지 못했다"라고 칭찬하죠. 심지어 안회가 요절했을 때, 공자는 "하늘이 나를 죽이는구나"라고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안회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정면에서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무척 흥미로웠는데요. 교수님은 왜 안회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뒤집는 주장을 하시는 건지요?
"<논어>에는 안회를 칭찬하는 내용이 많이 나오기는 합니다. 그런데 수제자라면 공자의 사상을 가장 잘 물려 받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 텐데, 대체 안회의 사상은 무엇인가요? <논어>에는 안회의 사상을 재구성할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논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제자는 자로(41번)와 자공(38번)입니다. 그에 비해 안회는 21번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조차 실제 안회가 출연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공자가 안회를 추억하는 내용입니다. 안회가 직접 출연하는 장면은 5번 뿐입니다.

질문에서 예로 들었던 "나는 안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보았어도, 그가 멈추는 것은 보지 못했다"라는 공자의 말을 천천히 따져 보죠. 안회는 10대에 입문해서 31살에 요절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발전합니다. 이것을 과도하게 의미 부여를 하기 전에,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가르치는 제자가 열심히 따르려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기특해 보이겠습니다.

게다가 둘의 나이 차이가 많습니다. 안회는 공자의 자식 뻘이 됩니다. 그렇다면 공자가 안회에게 보인 태도는 자식 같은 제자에 대한 애틋한 정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안회가 치열하게 노력했으며 공자가 아꼈다고 하더라고 안회를 공자의 사상을 계승하는 수제자라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논어>만으로 본다면 안회는 오히려 비중이 작은 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 그렇다면 여러 제자 가운데 누구에게 수제자 자격을 부여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꼭 수제자가 아니더라도, 공자의 마음과 뜻을 잘 알고 있어서 공자와 함께 다양한 주제에 대해 폭넓게 대화를 나누고 공자 사상의 핵심을 제대로 전하는 제자를 꼽는다면 누가 될 수 있을까요?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제가 이 책 149쪽에 "<논어>는 공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한 편의 영화와 같다"고 했는데요. 공자가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자공'은 "각본을 쓰고 연출한 감독"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오늘날 읽는 <논어>라는 텍스트는 자공의 눈에 비친 공자, 자공이 남기고 싶어했던 공자의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공자를 성인으로 만들고자 하는 가장 강렬한 욕망을 지닌 이가 자공이었습니다. <논어> 속에서 굉장히 다채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도 자공이고, 그는 등장할 때마다 길게 등장합니다.

그리고 공자 사상의 핵심을 '문'(文), '인'(仁), '서'(恕)라고 볼 수도 있는데, 자공과 공자의 대화에는 이러한 철학적으로 중시할 내용도 풍부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자공이 전반적인 차원의 계승자이거나 공자 학단의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 재미난 것은 <논어> 속에서 공자와 대화할 때 밀당을 하기도 하고 서로 칭찬해 주고 서로 존중하면서 대화를 주고받은 사람은 자공밖에 없습니다. 공자도 자공에게는 상당히 대접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자공이 수제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각기 제 갈 길 가는 제자들, 그들 사이의 갈등과 논쟁

- 제자 중에는 스승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제자도 있겠으나, 때로 스승에게 반기를 드는 제자도 있기 마련이죠. 공자에게는 여러 제자가 있었으니, 그중에는 공자와 대립각을 세우며 토론을 벌인 제자도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자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생각을 다듬으며 그와 토론을 벌이고 나아가 새로운 사유를 보인 제자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공자의 제자가 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에게 반기도 들고 생각도 달랐죠. 철학사가 가능한 이유도 생각이 계속 바뀌어 왔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재아'가 <논어> 속에서 특히나 그런 인물로 등장하기는 합니다. 재아는 5번밖에 등장을 안 합니다.

공자의 제자 중에 염구라는 제자가 있어요. 그는 공자의 사상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입니다. 심지어 그런 염구가 16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런데 재아는 말도 잘하고 그랬던 사람인데, 왜 5번밖에 등장을 안 할까요. 저는 '누가 재아에 대해서 나쁜 기록을 남겼을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공자와 재아 사이는 서로 미워하는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공자가 가장 출중한 제자를 거명할 때 언어 능력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 재아였다고 자공과 함께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공자는 재아의 재주를 충분히 인정하고 아꼈다는 얘기가 됩니다. 재아 역시 공자에 대해 요순보다 지혜로운 분이라고 말합니다. 굉장한 존경이고 찬탄이지 않습니까. 

공자는 재아를 아꼈고, 재아도 공자를 진정으로 존경했죠. 그런데 왜 재아에 대해서는 나쁜 기록만 남아 있을까요? 그것은 재아를 싫어하는 사람이 기록을 남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게 누구냐? 저는 아마도 자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아가 말하는 방식이 다르기는 합니다. 말할 때 가정법을 사용하고, 개념어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공자 사후에 묵가라는 학파가 바로 등장하는데, 이들이 개념을 정의하려 하고 가정법을 사용하거든요. 그렇게 본다면 재아라는 사람은 공자학단 내부에서 과거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논리를 창안해 낸 사람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 이렇게 다양한 제자들의 개성을 살려서 살펴 보니까 <논어>가 점점 더 재미있어지네요. 공자의 제자들이 각기 다른 길을 걸었다면, 제자들끼리 논쟁이 벌어졌을 법합니다. 실제로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제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습니까? 또 그 논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면, 그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우리가 싸울 때 겉으로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 돈 때문에 싸우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는 흔히 철학 책에서는 고도의 철학적 논쟁만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논어>에는 자장, 자하, 증자가 서로 비난하고 비판하는 얘기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서로 출신국이 달랐고 문화가 달랐습니다. 공자 사후에 이들은 각자 자기 나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이제 자신들이 각자 대장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서로를 경쟁자로 의식하게 됩니다. <논어>에는 공자 사후에 제자들의 갈등과 분열의 조짐을 보여 주는 대목들이 있습니다. 이때 사상적 갈등보다 출신국이 다르다 보니 문화적 이질감 때문에 싸웠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들은 정파적으로도 달랐습니다. 공자와 재아가 왕당파에 해당한다면, 자공, 자로, 염구는 계씨 밑에서 가신을 하며 계씨를 지지했던 사람들입니다. 이와 달리 증자는 맹씨 일가와 교류가 많았습니다. 이들이 후원자가 각기 달랐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이 갈등했던 이유가 훨씬 더 구체적으로 설명이 됩니다. 또 내가 누군가를 경쟁자로 생각하는 순간 차별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공자 학단 내부의 갈등을 이렇게 보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에 더 부합된다고 생각합니다."

<논어>는 단지 유교 경전? 묵가, 도가, 법가 등 제자백가의 기원이 있다!

- 공자의 제자들이 이토록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니고 논쟁을 벌였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유학의 역사를 새롭게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기존에는 공자 이후에 맹자, 순자만 언급했는데, 이제는 공자에서 제자백가로 넘어가는 '잃어버린 고리'를 추적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자의 제자들에게서 제자백가로 연결되는 고리를 찾아 볼 수 있을까요?
"제가 한번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한국에서 유학 하면 가장 떠받드는 인물이 누구죠?"

- 주자죠.
"네, 그렇죠. 그런데 중국의 현대 철학자들은 누구를 떠받들까요? 중국은 현대 철학의 출발을 양명학을 기반으로 합니다. 우리와는 많이 다르죠. 우리나라에 주로 소개된 중국 저자가 펑유란이나 취엔무인데, 주자학 계열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대 중국의 사상사를 주자학 중심의 시각으로 서술된 것으로 알고 있죠. 그렇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한국 학자들 사이의 상식이지, 중국만 가도 다릅니다.

<논어>를 있는 그대로 읽으면, 다양한 제자백가의 기원들이 보입니다. 예컨대, 자로와 재아라는 사람은 공자 사후 바로 등장하는 묵가의 출현과 긴밀하게 연관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묵경에는 어떤 단어의 뜻을 정의하는 것을 시도하고 가정법을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재아의 새로운 사유 방식이지요.

그리고 안회를 비롯한 덕행파의 경우, 장자 계열로 이어집니다. 자하의 경우는 위나라로 돌아가서 매우 현실적인 학풍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증자로부터 자사를 거쳐 맹자가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논어>에는 넓은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논어>라는 책에는 '현실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반면 벼슬길로 나서지 않았던 안회의 생각은 <논어>에 나타난 것으로는 재구성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장자>를 통해서는 안회의 사상을 부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벼슬에 나가지 않고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논어>에 이미 등장합니다. 민자건, 중공, 안회가 그랬죠. 하필이면 이 사람들이 <장자>에서 긍정적으로 조명받는 사람들입니다.

<장자>를 편찬한 사람들이 <논어>에서는 상대적으로 배척당했던 사람들과 연관된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유가 학단의 가장 중요한 전통을 <논어>와 <장자>라는 두 측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천하에 도가 없을 때는 조용히 물러나서 도를 지키고(장자의 시각), 천하에 도가 있을 때는 나아가서 천하를 바로잡는다(논어의 시각)는 진퇴론으로 본다면, <논어>와 <장자>는 짝과 같습니다. 실제로, 전통 지식인들은 이 시각에서 두 텍스트를 읽었습니다."

- 안회의 생각이 <장자>로 이어진다는 얘기, 무척 흥미롭습니다. 자하의 경우, 현실적인 학풍에 영향을 주셨다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더 나아가서 순자, 한비자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까?
"예, 그렇게 얘기들을 하죠. 이른바 '법술학'이 성립될 때 자하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얘기를 합니다. 자하의 제자들 가운데 현실 정치인들이 많았고, '변법'에 직접 참여한 역사적 인물들도 있습니다. 자하는 이렇게 현실 정치와 계보가 닿기도 하고, '경학'의 성립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논어>에는 자하의 그러한 면모가 잘 드러나기도 하죠. 한편, 자하와 비교되곤 하는 자장은 역사학 중심의 학문적 실천을 중시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그는 나중에 '경세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모델의 개척자라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파주의 '커피발전소 in 교하'(발전소책방.5)에서는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 공개 방송이 종종 이루어지곤 하는데, 동네 주민들이 참여해 함께 얘기를 나눈다.
▲ 김시천 저자와의 대담 파주의 '커피발전소 in 교하'(발전소책방.5)에서는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 공개 방송이 종종 이루어지곤 하는데, 동네 주민들이 참여해 함께 얘기를 나눈다.
ⓒ 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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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하나의 정통이 아니라 다양성을 품고 있다!

- 이제까지 여러 제자들을 통해 <논어>를 보다 보니, <논어>가 단일한 가치가 아닌 다양한 색채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네요. 또한 <논어>에는 하나의 정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엮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간 <논어>를 너무 권위적인 방식으로 읽었던 듯합니다. 이 책은 기존의 권위적인 <논어> 읽기를 넘어서,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포스트 모던 시대의 <논어> 읽기' 또는 '민주주의 시대의 <논어> 읽기'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가능하겠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의도가 있었던 것인지요?
"제 의도를 잘 파악한 좋은 질문이네요.(웃음) 네, 그러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과거의 <논어>는 사대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필요한 <논어>는 시민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이 책에 지금은 없지만 원래 원고에는 '현대 시민을 위한 <논어> 읽기'라는 부제가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오늘날 일반적인 교양인이나 독서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현대인의 가치와 호흡하면서 소통될 수 있는 측면을 부각시키려고 하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제 창작이거나 아주 다른 재해석은 아닙니다. <논어>에 나오는 다양한 목소리를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다만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도록 인물별로 모은 것이죠. 저는 이 책 마지막에 제 취지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던 출중한 인물 공자, 그리고 그를 따랐던 제자들의 다양한 삶이 얽히고 포개어져 있는 텍스트로서 <논어>를 다시 읽어야 합니다. <논어>는 공자가 어떤 완벽한 가르침을 남겼는데, 그보다 떨어지는 인간들이 덜 완벽하게 이해하고 행동했다는 내용을 담은 책이 아닙니다. 제자들 각각이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 가르침을 각자의 삶 속에 적용하거나 때때로 거부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색깔을 만들어 나갔죠. 이런 다양성을 어떻게 공유하고 만들어 나가는지가 새로운 <논어>읽기의 출발이자 완성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논어>에서 찾아야 하는 진면목은 공자라는 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네가 되고 내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우리의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363쪽)

<논어>를 읽을 때 공자라고 하는 영웅을 등극시키는 방식은 다른 사람의 삶의 그늘을 지워버리는 것이 됩니다. 때문에 공자와 다른 사람의 삶이 엮이면서 공자의 생각이 무르익고 발전하고 전개되는지를 읽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의 사람을 읽는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읽을 때, 공자를 더 제대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교수님께서는 2006년에 낸 책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에서 이미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고전 독해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를 진작부터 했지요. 이제 이번 책 <논어, 학자들의 수다: 사람을 읽다>로 하나의 결실을 맺었다는 판단이 듭니다. 오늘 대담 즐거웠습니다. <논어, 학자들의 수다: 사람을 읽다>는 그간 <논어>와 담 쌓고 지내 왔던 사람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는 책이자, 오늘날 시민의 교양을 위한 징검다리 책으로 꽤 유용해 보입니다. 언뜻 어려워 보이는 내용도 있지만, 편안하게 수다 떠는 듯한 김시천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논어>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에서 전체 내용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8151

* 파주의 '커피발전소 in 교하'(발전소책방.5)에서 '학자들의 수다' 공개 방송이 종종 이루어집니다.
https://www.facebook.com/booksdot5



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

김시천 지음, 더퀘스트(2016)


태그:#김시천, #논어, #학자들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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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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