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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일 치러질 영국 런던 시장 선거를 전망하는 BBC 뉴스 갈무리.
 오는 5일 치러질 영국 런던 시장 선거를 전망하는 BBC 뉴스 갈무리.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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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을 이끌 새 시장 선거가 너무나 다른 두 후보의 대결로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의 정치·행정·금융의 중심지로서 수도 이상의 의미를 지닌 런던을 두고 거대 양당은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오는 5일 치러질 시장 선거에서 노동당은 파키스탄계 이민자 후손의 무슬림 후보를, 보수당은 부유한 재벌 가문 출신의 백인 엘리트 후보를 내세웠다.

자수성가 흙수저 vs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사상 첫 '무슬림 런던시장'에 도전하는 노동당의 사디크 칸(45) 후보는 자수성가의 상징이다.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인 시내버스 기사 아버지와 재봉사 어머니의 8남매로 자란 칸은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 치과의사를 꿈꿨지만, 칸의 선생님은 토론 실력이 뛰어난 제자에게 법조인의 길을 권유했다. 그는 조언을 따라 북런던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인권 변호사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노동당 후보로 2005년 총선에 출마해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칸은 당시 고든 브라운 총리로부터 지역사회·지방자치부 차관, 교통부 차관 등으로 발탁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영국 언론은 어려운 출신 배경을 맨손으로 극복하고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하원의원과 정부 요직을 두루 역임한 칸의 성공 스토리를 한편의 '현대판 동화'(modern fairytale)라고 부를 정도다.

이에 맞서는 보수당의 잭 골드스미스(41) 후보는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아왔다. 영국의 유력 정치인과 기업가를 다수 배출한 골드스미스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개인 자산이 무려 2억 파운드(약 3350억 원)에 달한다.

영국 하원의원인 할아버지와 유럽의회 의원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정치 감각을 물려받은 골드스미스는 유럽을 대표하는 금융 명문가 로스차일드 가문 출신의 아내와 결혼한 최상위 특권층이다.

영국에서 가장 학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명문사립학교 이튼스쿨을 다니다 중퇴한 그는 세계 각지를 자유롭게 여행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귀국 후 삼촌이 창간한 세계적인 환경 저널 <에콜로지스트>에서 편집장으로 일했다.

2010년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를 시작했고, 귀족적 출신 배경답게 훤칠하고 지적인 외모에 부드러운 화법을 구사한다. 언론이 그에게 '잠자는 숲 속의 공주'(sleeping beauty)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유다.

런던 민심은 서민 후보 쪽으로?

대중교통 요금 동결 공약을 홍보하는 영국 노동당 사디크 칸 후보 트위터 갈무리.
 대중교통 요금 동결 공약을 홍보하는 영국 노동당 사디크 칸 후보 트위터 갈무리.
ⓒ 사디크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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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후보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대중교통 요금과 주택 정책이다. 칸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비싸기로 악명 높은 런던의 시내버스와 지하철 요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교통부 차관을 지낸 경력을 앞세워 '교통 전문가' 이미지를 홍보하고 있다.

반면 골드스미스는 빠르게 증가하는 런던 인구를 감당할 수 있도록 대중교통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맞섰다. 그는 요금을 올리더라도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택 정책에서도 칸은 서민이 손쉽게 구매하거나 임대할 수 있는 저렴한 주택을 더 많이 건설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골드스미스는 오히려 주택 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반박했다.

영국 BBC는 '출신 배경부터 주요 공약까지 완전히 다른(completely contrasting) 두 후보가 충돌했다'며 이번 런던 시장 선거를 주목하고 있다. 최종 결과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현재 런던 시민의 마음은 서민을 대변하는 칸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지난달 29일 영국 여론조사기관 '서베이션'이 발표한 조사 결과 칸이 49%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34%에 그친 골드스미스를 15%포인트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유고브'가 발표한 결과에서도 지지율 48%를 기록한 칸이 32%에 그친 골드스미스를 앞섰다.

보수당, 인종·종교 공격했다가 '역풍'

부유층 출신의 잭 골드스미스 보수당 후보는 서민 행보에 집중하고 있다.
 부유층 출신의 잭 골드스미스 보수당 후보는 서민 행보에 집중하고 있다.
ⓒ 잭 골드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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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해진 보수당은 급기야 칸의 인종과 종교를 공격하고 나섰다. 칸이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도와준 경럭이 있다고 주장하며 보수 진영의 '반 무슬림 정서'를 자극했다.

보수당을 이끄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최근 의회에서 "(무슬림 출신인) 칸은 위험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종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으며 망신당했고, 런던의 800만 유권자 가운데 100만 명에 달하는 무슬림 표심을 적으로 돌렸다.

칸은 "나는 오히려 동성결혼 합법화에 찬성하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표적이 됐다"라며 "골드스미스가 런던 시장이 되면 공공요금은 비싸지고, 서민의 주택 환경은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역공에 나섰다.

칸의 승리를 확신하는 진보 진영은 노동당도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강경 좌파인 제러미 코빈 당수와 달리 온건하고 실용주의 성향인 칸이 런던 시장으로서 성공적인 정책을 펼쳐 중도파의 표심을 얻는다면 총리감도 가능하다며 치켜세우고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흙수저 진보' 칸과 '금수저 보수' 골드스미스의 대결, 과연 새로운 런던 시장은 누가 될까.


태그:#런던시장 선거, #사디크 칸, #잭 골드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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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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