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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독립문이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고 세운 기념탑이다. 파리 개선문과 비슷하다. 프랑스에서 독립하고 세운 기념탑이라고 하기에는 아이러니하다. 하기야 우리도 일본식 건물이 많이 남아 있기는 했다.
▲ 빠뚜사이 라오스 독립문이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고 세운 기념탑이다. 파리 개선문과 비슷하다. 프랑스에서 독립하고 세운 기념탑이라고 하기에는 아이러니하다. 하기야 우리도 일본식 건물이 많이 남아 있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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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 하는 짓들이야."
"국력을 모아야지, 다른 나라에 가서 돈만 쓰면 어쩌자는 거야?"

지난 4월 27일, 모처럼 해외 관광을 가는 우리에게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는 한 어르신의 핀잔 속에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4박 5일간 라오스를 다녀오기로 했다. 직장을 퇴직하면 여행이나 다니면서 나만의 인생을 즐길 계획이었다. 그런데 흔히 우리가 말하는 '자신만을 위한 노후'라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라오스 관광계획을 세운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조용한 나라이고 아직은 속된 말로 '때가 덜 묻은' 오염이 덜된 곳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서 졸업 50주년 기념행사를 갖자는 이야기가 오가다가 결정되었다. 1960년대면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다. 고향이 그리운 탓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50여 년 전으로 가는 기분일 게다.

비행기 안에서다.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오가며 답답해하는 일행, 나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이성적인 사고와는 다르게 좁은 의자의 불편함, 귓속까지 파고드는 소음을 감내하기에는 신체구조가 너무나 변한 탓이다. 견딜 수 없다. 저가항공의 좁은 공간은 1960~1970년대의 조용한 나라를 방문하는 우리를 비행기에서부터 시험하는 듯했다.

비엔티엔 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예정 시간보다 30분 늦은 오전 0시 20분경, 입국 수속 창구가 3곳이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은 좀처럼 줄어드는 기색이 없다.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인 듯하다. 인천공항 출국시 못마땅해하던 어르신도 눈에 띈다.

"사 바이디~"
(안녕하십니까?)

"컵 자이더~"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있던 여행사 직원과 버스에 오른 시각이 2시가 다 되어서였다. 4년째 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정 차장이다. 라오스 인사말을 가르쳐 준다. 인사를 할 때는 턱밑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해야 한다. 숙소까지는 10여 분 거리, 주변 지형에 대하여 설명을 해준다.

도로 우측이 태국이다. 지척 간이다. 메콩강 주변 대부분을 중국인이 임대했다. 이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라 땅 소유는 불가능하다. 30년간 임대가 가능하다. 라오스 수도인 비엔티엔 인구가 68만 정도다. 이곳에 아파트 2000세대를 건립하여 30만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는 차이나타운을 조성 중이라고 한다.

숙소는 5성급 호텔이다. 중국인 소유다. 창문 밖으로 야자수와 수영장이 눈에 들어온다.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의 힘을 이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저기 중국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조금은 씁쓸하다. 제주도의 많은 땅을 중국인이 사들였다는 이야기와 오버랩되면서.

'서 있는 활주로'라고 불리는 빠뚜사이

라오스 빠뚜사이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시내 전경
▲ 빠뚜사이 라오스 빠뚜사이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시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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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라오스 정부 청사
▲ 빠뚜사이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라오스 정부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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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뚜사이는 라오스가 프랑스로부터 식민지 생활을 마감하고 세운 독립기념탑이다. 미국이 베트남과 전쟁 중, 비엔티엔 공항 건설을 위해 시멘트 등을 지원했다. 라오스는 이를 공항 건설에 사용하지 않고 독립문 건립에 전용했다. '서 있는 활주로'라고 부르는 이유다. 가난한 나라의 서글픈 역사이기도 하다.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사진사들이 몰려든다. 경차 트렁크를 개조하여 인화 장비(여러 개의 잉크가 보인다)를 갖추었다. 장기를 두면서 기다리다가 관광객만 보이면 자신들만의 포토 존으로 안내한다. 독립문 전망대에 올라가 구경하고 내려오니 사진을 내민다. A4 크기 한 장에 2$이란다.

빠뚜사이 안에 들어서니 층마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위험스러울 정도로 계단이 허술하다. 그래도 이곳 라오스 국민들의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기념탑이다. 우리도 36년 일제강점기를 체험한 아픔의 역사가 있기에 동병상련의 친근함이 엿보인다. 정부 청사 등으로 쓰는 건물은 프랑스 식민시대의 잔재다

부처의 가슴뼈가 안장된 탓루왕사원

1960~1970년대에 우리도 아이스께끼를 외치며 골목골목 팔고 다녔다. 추억의 한토막이다.
▲ 아이스께끼 1960~1970년대에 우리도 아이스께끼를 외치며 골목골목 팔고 다녔다. 추억의 한토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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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바나나 등을 구워서 팔고 있다.
▲ 라오스 노점상 옥수수, 바나나 등을 구워서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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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입구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노점상, 1960년대 '아이스께끼'를 외치며 팔던 우리 모습과 비슷하다. 졸업 50주년 기념 여행에 딱 맞는 환경이다. 정문은 겨우 사람이 출입할 정도만 남기고 닫혀 있다. 우측에는 몇 백 년 되는 듯한 보리수가 눈에 띈다.

탑돌이 축제가 11월 중에 열린다. 빠뚜사이에서 이곳까지 거리행진을 하고 사원 주변을 도는 행사다. 아쉽지만 우리끼리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게 있다. 머리 없는 불상들이다. 누군가가 머리만 잘라간 건 아닐까.

우측 뒤쪽에 와불이 보인다. 황금빛으로 치장했다. 옆으로 비스듬히 드러누어 지긋이 우리를 바라보는 듯하다. 눈빛이 너무 따뜻하다.  주위에는 납골탑이 눈에 띈다. 이곳의 장례문화는 화장이 대부분이고 유골은 납골탑에 안장한다.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이곳 사원에 모실 정도면 명망이 있으신 분들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사원의 모습.
 사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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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색 불상이 옆으로 들어 누워있다. 운주사에 와불과는 사뭇 다르다.
▲ 와불 황금색 불상이 옆으로 들어 누워있다. 운주사에 와불과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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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납골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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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해외 여행기입니다. 제가 보고 느끼고 채험한 것 외의 각종 자료는 현지 가이드의 해설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태그:#라오스, #빠뚜사이, #비엔티엔, #라오스독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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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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