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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이야기 제주에서 결혼한다니까... "너희 로또 맞았니?"에서 이어집니다)

우리는 평생을 서울에서만 살아온 서울토박이다. 하지만 워낙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고, 꽉 막힌 도로를 혐오하다 보니 특별한 일이 아니면 시내로 나가는 법이 없다. 때문에 서울 지리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각자가 살아온 동네를 제외하면 네비게이션이나 포털에서 제공하는 지도 없이는 길을 찾지 못했다. 길치에 가까운 수준이다.

하지만 제주에서의 우리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제주에서의 결혼식 이후 거의 4년 이상 제주 곳곳을 헤집고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명과 지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두 번밖에 가보지 않은 동네 구석구석 정보와 이 곳들을 잇는 동선까지 익숙해져서 간혹 지인들과 제주 여행 올 때면 머리 속에 입력된 동선을 따라 제주 곳곳의 가이드를 해주곤 한다. 제주에서만큼은 인간 네비라고 해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인 것이다.

참 폐쇄적인 제주도 부동산 거래

서울에서 길을 찾을 때는 큰 건물과 지하철 역이 기준점이 된다. 제주에서는 그 역활을 마을 앞 고목이 대신하고 있다.
 서울에서 길을 찾을 때는 큰 건물과 지하철 역이 기준점이 된다. 제주에서는 그 역활을 마을 앞 고목이 대신하고 있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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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네비 기능 강화'에 큰 몫을 해준 것이 바로 도시에 비해 폐쇄적인 제주 부동산의 거래형태였던 것 같다. 일단 제주에서 집을 구할 때 가장 큰 문제점은 팔겠다고 나온 매물에 대해 부동산에 문의해도 절대 번지수를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부동산 사무실로 찾아가도 계약금을 당장 낼 것이 아니면 매물을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쓸만한 집은 귀하고, 찾는 사람은 워낙 많다 보니 매물로 나온 집을 다른 업자가 찾아가서는 웃돈을 얹어 가로채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요즘 제주도 부동산 직거래가 이뤄지는 인터넷 카페에선 매매글에 지번을 기입하지 않으면 운영자가 아예 삭제해버리기도 한다).

잠깐 고민하는 사이 남의 집이 되어버린 유수암리의 작은 전원주택.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이 집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아쉬움이란.
 잠깐 고민하는 사이 남의 집이 되어버린 유수암리의 작은 전원주택.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이 집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아쉬움이란.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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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우리가 제주 집을 알아보는 방법은 단순무식 그 자체였다. 다른 제주 이주민들의 얘기를 듣자면 마을 이장님을 찾아가 매물이 나온 집을 묻는다거나, 무작정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 주인에게 팔기를 청했단다. 소심하기 짝이 없는 우리로써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용담이었다. 이장님을 찾아가 빈집을 묻는다니! 그렇게 용감할 수가!

성격상 그런 일은 절대 불가능할 거라고 결론을 내린 우리는 서울에 있는 동안 오일장과 교차로를 뒤적거리며 취향과 예산에 맞는 집들을 미리 선별했다. 그리고 제주에 도착하면 매물로 나온 집들이 위치한 곳을 지역별로 묶은 후 해당 마을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주변을 탐색해나갔다.

생활정보지에 대한 정보와 인터넷상의 정보를 조합해 대략적인 탐색범위를 설정한 후(그래 봐야 XX동, XX리에 있구나 하는 정도가 정보의 전부다) 매물 사진을 토대로 그 집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수색해나가는 방식이다.

놀랍게도 이 무식한 방법으로 우리는 매물로 나온 집의 90% 이상을 실제 눈으로 확인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단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뭔가 인연이 아닌지 찾아갈 때마다 영업을 안 했던 한동리의 파스타집. 우리가 대체 언제쯤 그 맛을 볼 수 있을지는 우리도 모르고, 파스타집 사장님도 모른다.
 뭔가 인연이 아닌지 찾아갈 때마다 영업을 안 했던 한동리의 파스타집. 우리가 대체 언제쯤 그 맛을 볼 수 있을지는 우리도 모르고, 파스타집 사장님도 모른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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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턱대고 집을 보러 다니다 보니 조금씩 선호하는 동네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신촌리를 가장 좋아했으며, 아내는 외도일동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제주 이주민들이 선호하는 애월읍이라든지 대평리, 서귀포의 한적한 마을은 우리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남들은 제주도 이주를 준비하는 것만으로 우리를 용감한(이라고 쓰고 무모함이라고 읽는) 사람으로 분류하지만 우리가 가진 용기의 총량은 공항과 제주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허락하지 않았다. 문명의 중심은 아니더라도 그 그림자가 드리는 곳을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마을의 조건과 아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마을의 교집합은 이랬다.

① 공항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
② 큰 병원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
③ 마트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
④ 혹시나 취업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시내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
⑤ 혹시나 게스트하우스나 카페를 하게 되면 관광객의 발길이 닳을 수 있는 곳

일단 ①번과 ②번을 만족시키는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각각 제주시의 좌측과 우측에 포진한 외도일동과 신촌리는 그렇게 우리에게 선택됐던 첫 번째 후보지였다.

내가 신촌리를 사랑하게 된 데는 어느 집 마당에서 그윽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백구와 차가 지나가던 말던 도로에 널부러져 낮잠을 자던 황구의 여유로움도 한 몫을 했다.
 내가 신촌리를 사랑하게 된 데는 어느 집 마당에서 그윽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백구와 차가 지나가던 말던 도로에 널부러져 낮잠을 자던 황구의 여유로움도 한 몫을 했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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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일동의 대단지 아파트 24평이나 신촌리의 쓸만한 단독주택 매매가가 1억 원 초반이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태그:#제주이주, #제주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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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 : 제주, 교통, 전기차, 복지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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