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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의 한 방송사 NHK가 스페셜 <노인표류사회-'노후파산'의 현실>을 방송(2014년 9월)했다. 이 방송으로 당시 일본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이미 내 집이 있거나, 연금가입 등과 같은 방법으로 나름 노후준비를 착실히 해왔던, 연금도 꼬박꼬박 받는 노인들이 외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죽지 못해 간신히 버티는 현실을 알린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노후 정책이 잘 되어 있다고 알려진 일본의 사회복지제도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난 방송이기도 했다.

<노후파산>(다산북스 펴냄>은 NHK 스페셜팀이 <노인표류사회-'노후파산'의 현실> 방송 이후 보충 취재한 것들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노후파산> 책표지.
 <노후파산> 책표지.
ⓒ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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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절약을 위해 전기도 쓰지 않고 식비도 최대한 아껴 보지만 그럼에도 파산 직전의 상황에 몰린 고령자들이 지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가운데 꾹 참고 살아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노후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풍요로워진 오늘날에도 뉴스 등을 통해 사람이 굶어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듣는다. 다케다 씨도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목숨을 건진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뉴스에서나 보고 들을 수 있는 남의 일이 아니다. 다케다 씨는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이었으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노후파산의 위기에 몰려 있다.' - <노후파산> 중에서.

'노후파산'이란 의·식·주 모든 면에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노인의 비참한 현실을 일컫는 말이다. 노후파산으로 비참한 생활을 하는 노인을 지칭하는 '하류노인'이란 말과 함께 NHK의 스페셜 방송 이후, 최근 2~3년간 일본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신조어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노후와 노후파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책에 의하면 현재 일본에서는 노후파산 현상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방송 시점인 2014년 현재 일본의 독거노인 수는 600여만 명 정도. 이 중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고독사하거나, 굶어죽을 가능성이 높은 위기에 처한 즉, 노후파산에 이른 노인들은 200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에 일본은 시설을 늘리는 등 나름의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시설 증설이 독거 고령자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해 대기 희망자가 50만 명이 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이런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저자들은 노후파산에 이른 몇몇 하류노인들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가 그들의 생활 동선을 따라 밀착 취재했다. 그리하여 어떻게 사는지를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한편, 인터뷰 형식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준다.

첫 사례자는 월 100만 원(기자 주: 엔화 100엔 기준, 한화 1000원으로 환율 적용 번역한 책이다)의 연금을 받으나, 집세와 공과금을 내고 난 후 남는 20만 원정도로 생활한다는 다시로씨.

그는 번화가 뒤에 위치한 연립주택에서 전기가 끊긴 5평 남짓한 공간에서 산다. 1000원에 두 다발 하는 소면을 사 끼니 때마다 조금씩 나눠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마저도 연금이 나오는 날 그 며칠을 앞두고는 거의 먹지 못해 굶다시피 할 때도 많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 부부 각자에게 나오는 연금을 합해 겨우 살 수 있었는데 한 사람이 죽고 난 후 절반으로 줄어든 연금으로 겨우 연명하며 살아가는 노인 ▲ 매달 받는 연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의료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노인 ▲ 자신도 연금을 받는 몸으로 초고령의 부모를 모시면서 발생하는 의료비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노인 ▲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아들과 겨우 한 사람 살 수 있는 연금으로 살아내면서 경제적 파산에 이른 노인 ▲ 우리처럼 젊은 일손들이 떠나버린 일본 농촌 노인들의 암담한 미래 등, 노후파산에 이른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 그들의 현실을 들려준다.

최근 일본을 덮친, 일본 사회의 심각한 문제임에도 대안이 뚜렷하게 제시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노후파산에 이른 하류노인들의 비참한 생활과 사회복지의 사각지대,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현실을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장을 알아야 야 비로소 논의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2014년 방송을 통해 노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알린 저자들은 "갈수록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럼에도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만들어진 제도를 재검토하지 않는 것이 노후파산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조금의 저축액이라도 있으면 국가에서 제공하는 복지제도를 받지 못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인데도 제도를 제대로 몰라 신청하지 못하는 등,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사회복지제도의 허점도 지적한다.

이 책을 읽기 전인 한 달 전쯤, '잠자리와 식사가 보장되는 감옥에 갇히려고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는 경범죄를 저지르는 일본 노인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다. 책에 의하면 이런 노인들은 앞으로 계속 늘 것이며, 노인들의 자살이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 노인들의 상황이다. 그래서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일본의 노인 빈곤율은 우리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19%로 알려져 있는 데다가, 우리보다 사회복지제도가 훨씬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파산 상태에 이르러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틴다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니.

우리는 어떤가. '노인 빈곤율 49.8%로 OECD 국가 중 1위, 노인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한해 3500명가량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노인 10명 중 7명은 가난, 질병, 고독 등 2가지 빈곤을 함께 경험하는 '다차원 빈곤증'에 처해 있다고 한다. 게다가 2020년이 되면 노인인구가 천만을 넘길 것이라니, 이 책이 불편한 진실로 그리고 무겁게 읽히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의 내용들이 방송을 통해 알려졌을 때 일본 사회의 반향이 컸던 이유는 무엇보다 젊은 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그런 지경에 내몰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대로 내 집이 있고, 연금을 받으며, 얼마간의 저축이 있다면 노후가 어느 정도 보장될 것이란 믿음을 깼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엇이 그들의 노후를 무너뜨렸을까?

장수는 축복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줄곧 드는 생각은 돈 없는 장수는 악몽일 뿐이라는 것이다. 노후에 대해, 아니 이 책의 저자들이 "노후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말하는 '노후의 돈'과 관련해 막연하게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언제까지 막연히 불안해만 할 것인가? 나의 문제다. 내 모습일 수도 있다.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구체적인 대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이 책이 그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노후파산> (NHK 스페셜 제작팀 씀) | 김정환 옮김 | 다산북스 | 2016-02-29 | 15,000원



노후파산 - 장수의 악몽

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 김정환 옮김, 다산북스(2016)


태그:#노후파산, #하류노인, #사회복지제도, #일본 노인, #노인빈곤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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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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