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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사람이 의도를 더하는 거지.'

지난 정부였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내세운 4대강 사업에 대한 근거 논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의아하던 참인데, 국책 연구소가 4대강 사업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는 뉴스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조직 안의 연구원들은 그 보고서에 쓰인 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을텐데, 왜 이런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까? 물론 이는 수 많은 유사 사례 중의 하나일 뿐이다.

최근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 논란에서도 연구원들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화학 물질의 인체 위해성에 대한 실험을 수행한 것도 연구조직이었을 것이고, 그에 대해 '문제없음' 결과를 내놓은 것도 연구조직이었으니 말이다. 이와 같이 '의도적으로 왜곡된' 결과로 인한 수많은 폐해들은 결과적으로 연구조직 및 해당 연구그룹 종사자들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키고 있다.

상기의 사례가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어온 모든 연구집단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디에선가 분명히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얻어내려는 연구자들의 노력도 존재하고 있음을 믿는다.

하지만, 이런 몇 개의 사례들을 통해서라도, 대한민국의 연구 조직내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대한민국의 연구집단은, 조직의 이익을 위해,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과물인 '데이터'의 변질을 수용할 수 있는 집단이 된 것일까?

<엔지니어들의 한국사: 근현대사 속 한국 엔지니어들의 변천사>
 <엔지니어들의 한국사: 근현대사 속 한국 엔지니어들의 변천사>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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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해 작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여, 이 책 <엔지니어들의 한국사>를 집어 들었다. 과연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폭풍같이 휘몰아치던 산업화의 30년을 통과하면서, 어떠한 집단적인 자아를 형성하게 된 것일까?(이 책에서는 과학과 공학을 통틀어 해당 분야의 종사자들을 '엔지니어'로 통칭했다. 이 글에서도 대한민국의 국가 연구소나 기업체의 연구조직 구성원을 포함하는 용어로 언급한다).

책에서는 조선 말기부터 현대까지 대한민국의 엔지니어 집단의 특성을 역사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조선 말기에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실용주의를 통해 조선의 엔지니어들이 잠시 주목받기는 했으나, 조선은 어디까지나 사대부의 나라였다. 게다가 조선 말의 혼란은 국가가 새로운 정치/경제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수동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변화시켰다.

이에 반해 일본은 메이지 유신 직후인 1870년에 최초의 기술학교를 설립하면서, 사회의 산업 전반을 농업에서 공업으로 변화시키며 사무라이 계급을 기술자 계급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책을 수립하였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의 엔지니어는 적극적인 중공업 부흥을 주창했던 1970년대의 제3공화국 즈음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집단이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엔지니어는 제 3공화국에 들어서면서, 국가의 경제 개발 정책이 필요로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엔지니어는 1970년대에 들어서서야, 국가의 경제 개발 및 과학기술의 발전과 관련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관료 계급으로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급 관료로의 엔지니어들이 주도하는 정책 개발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급격한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함께 1980년대까지 그 권한이 급격하게 성장되었다.

하지만, 반어적으로 이들의 주도권은 그들의 권한이 정점에 달해있던 1980년대 말에 이르자 서서히 퇴색되기 시작했다. 이는 대학교육을 통해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사회에 배출되는 시점과 일치한다. 1990년대에 이르자 대한민국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공계 출신 엔지니어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으며, '희소성'에 의해 빛을 볼 수 있었던 권력의 집중은 점차 다른 직업 집단과의 차이를 찾을 수 없이 평범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면, 2010년대의 대한민국 엔지니어 집단을 상상해 볼까? 대부분의 기업체나 연구소는 거의 1970년대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당시 대한민국은 제 3공화국의 주도로 진행된 급격한 산업화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시작으로 수많은 국책 연구기관과 대기업 집단들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2016년 대한민국의 대다수 연구 집단들은 어떤 모습일까?

조직의 위계를 통해 그려보자면, 성공한 1980년대의 관료형 엔지니어들이 조직 위계의 상부를 점하고 있을 것이며, 1990년대 이후에 배출된 다수의 평범한 엔지니어들은 조직 위계의 중간 혹은 하부를 채우고 있을 것이다. 과장스러울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이런 연구집단들이 1980년대의 관료로서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애를 쓴다면 어떨까?

'사장님이 원하시는 일이야.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
'뭔가 의도가 있어서 결정된 것일테니, 따라야 하지 않겠나?'
'지시를 따르는 게 조직을 위하는 거야. 네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어.'


혹시라도 지금 속한 조직에서 이런 대화가 자연스럽다면, 이는 책을 통해 분석된 대한민국 엔지니어의 특성에 의한 것은 아닐까? 애석하게도, 이런 조직 구성의 위계를 가정해 본다면, 글의 서두에 언급된 수많은 사례들이 쉽게 이해가 된다. 구성원들의 의지는 쉽게 무너진 채, 조직 상부의 의지만이 중요했다면 말이다.

저자의 결론은 조금 모호하다. 책에서는 지금의 대한민국 엔지니어 집단은 기존의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된 '한다면 하는'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탈추격시대인 21세기에는 선진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것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다양성'을 기반으로 창의적인 문화를 수용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의 강력한 위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를 수용할 수 있으려면, 보다 적극적이고 현명한 전략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서두의 사례에서와 같이 엔지니어의 의도로 인해 진실이 왜곡되는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의 모습이기를 기대한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결과를 통해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엔지니어의 역할이다.'

덧붙이는 글 | <엔지니어들의 한국사: 근현대사 속 한국 엔지니어들의 변천사> 한경희.게리 리 다우니 지음/김아림 옮김 휴머니스트



엔지니어들의 한국사 - 근현대사 속 한국 엔지니어들의 변천사

한경희.게리 리 다우니 지음, 김아림 옮김, 휴머니스트(2016)


태그:#오늘날의 책읽기, #엔지니어들의 한국사, #데이터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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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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