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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래, 엄마야>는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구절 하나가 떠올랐다.

'장애 아이가 태어난다면, 물론 당신이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건 마치 런던이나 파리를 여행하려 했는데, 암스테르담에 내린 상황과도 같다. 그러나 여행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 여행지 역시 꽤 괜찮은 곳이었다는 걸.' 

이 책은 그 암스테르담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괜찮을까?' 처음부터 길은 패이고, 막혔다. 표지판도 없고. 그래도 엄마들은 길을 간다. 장벽은 넘고, 패인 길은 메우고, 막힌 길은 숨을 고르고 우회하면서. 그리고 울면서.

"저런 애를 왜 데리고 나와? 집에 있어야지"

이선일 작. <그래, 엄마야> 삽화 중. 벌새는 작지만 가장 놀라운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이 새는 엄마들처럼, 그리고 발달장애아이들처럼 보인다.
▲ 나는 새는 발자국이 없다 이선일 작. <그래, 엄마야> 삽화 중. 벌새는 작지만 가장 놀라운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이 새는 엄마들처럼, 그리고 발달장애아이들처럼 보인다.
ⓒ 이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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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의 아이는 발달장애입니다. 평생 동안, 아주 조금만 나아질 겁니다."

이 말은 단순한 사실의 전달 같다. 그렇지만 언어란 그 안에 사회적 가치와 평가가 담긴다. 우리 사회가 쌓아온 차별과 배제의 감정은 '아이의 병명' 뒤에 수레바퀴 자국처럼 딸려온다. 엄마들은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느껴지는 그 강고한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    

세상은 고해다. 그 고해에 아기는 선물이다. 아이는 닫힌 세상을 여는 열쇠다. 아이를 안고있는 엄마보다 안전한 이는 없다. 아이를 앞세우고 걸을 때 세상은 친근하게 엄마에게 문을 연다. 하지만 사회는 가끔 혹은 자주 예외를 둔다.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엄마들에게.  

"저희 어린이집이 미래에게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저런 애를 왜 데리고 나와? 집에 있어야지!"


'불편'을 겪은 사람들은 쉽게 말을 내뱉는다. 주변 사람들은 대개 방관하고, 어떤 때는 동조한다. 분연히 나서 '잔인한 이런 말'에 저항하는 이는 드물다. 이들 편에 서는 우군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실은 잘 몰라서인데... 이런 상황은 사회 기관도 마찬가지다. 유치원에서, 초중고 학교에서, 식당에서 카페에서, 음악회, 박물관, 도서관에서.

국가의 공공도 상업적인 사적 장소에서도 아이는 통행금지가 된다. 몇 번 제재를 당하면 엄마도 위축된다. 그늘 안에, 집 안에 숨는다. 아마도 이런 이유가 우리가 발달장애인을 잘 만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한국에서 발달장애인은 전체 장애인 500만 명 중 20여만 명쯤 된다. 

내 삶이요? 그게 뭐였더라...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지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공동기획, 오월의 봄 펴냄.
▲ <그래, 엄마야>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지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공동기획, 오월의 봄 펴냄.
ⓒ 오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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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아이는 블랙홀처럼, 엄마의 사랑과 시간 그리고 힘을 빨아들인다. 아이 때문에 아내와 남편은 각방을 쓴다. 장애 아동은 엄마를 '독점'한다. 타이르고 양해도 구해보지만, '소리도 못 내고, 뚝뚝 눈물을 흘릴 만큼' 다른 자식들은 '편애'에 상처받는다. 엄마 자신도 어느새 우울증, 조울증에 걸린다. 다음 구절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어떠한 질문을 던져도 기록자와 구술자의 대화는 결국 자녀와 관련된 이야기로 수렴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꿈, 내가 나의 삶에서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 앞에서 그녀들은 생경한 무언가를 만난 듯 머뭇거렸다.'

지체장애인은 인지능력의 장애가 없기에 자기의사를 표현하고, 자기가 결정하며, 사회적 관계를 맺고, 당면한 문제를 풀어간다. 그러나 발달장애는 이 모든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엄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아이'를 이해하는 일부터, 소아정신과·특수치료실 등을 찾고 등록하고 치료하는 전 과정에 매달려야 한다.

특별한 보통 아이들의 소원, 일-관계-기쁨

장애가 있는 아이를 엄마에게, 혹은 가족에게 온전히 고립시킬 때, 우리 사회는 일견 '효율과 편리'를 누리는 것 같다. 그러나 '인권'의 문제를 외면할 때, 우리가 지닌 '진보'의 힘 역시 차단된다.

차도에서 인도로 넘어가는 모든 턱을 없앴을 때, 모든 공공화장실에 경사로를 만들었을 때, 지하철마다 엘리베이터를 두었을 때, '이동권'의 혜택은 사회의 약자들과 공공 모두 돌아갔다. 거기에서 삶을 바라보는 새 관점이 생겨났다. 지금 과제는 무엇일까?

2014년 5월 발달장애인법(발달장애인 권리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 통과되었다. 그 덕에 활동보조인이 아이들 집으로 왔다. 산책하고, 함께 운동해 주는 잠시 동안의 '엄마'가 생겼다. 엄마들에게 숨 쉴 여유가 생겼다. 오래 찾은 끝에 공립 '통합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을 때 가졌던 그 안도감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시 엄마의 집으로 돌아온다.

발달장애인도 일을 구해야 하고,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하며, 스스로를 찾아 존엄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엄마들의 꿈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과제들은 우리 인간 모두가 기본권으로 누려야 할 권리이기도 하다. 그들이 가질 수 있다면, 우리 모두 가질 수 있다.

점과 점만으로 삶은 유지되지 않는다. 삶은 최소한 선이어야 하고, 면으로 나아갈 지향을 가져야 한다. 지역사회가 아이들의 주거모델을 함께 생각하고, 각자에 맞는 직업교육을 해내고, 작은 힘으로 이들을 돕는 자조단체를 지원하고. 사회와 국가가 나설 영역이 아직 남았다. 각자의 삶이 이어져 풍요로운 전체를 이루어야 한다. 이건 가능한 삶이다.   

발달장애인 위한 지도 겸 탐험기

이 책은 곳곳에 눈물과 절절함이 묻어나는 '고난의 일기'다. 미지의 길을 기록한 탐험기다. 그런데 그 아픔과 슬픔 안에서 위로를 느끼게 된다. 부조리하게 주어진 가혹함 안에서도, 사람들이란 용기를 일으키고 평정을 창조하는 존재였다.

"저 바보 같은 게 아직 글을 모르나, 바보 아닌가!" 이렇게 주제넘은 참견을 하는 사람들에게, 엄마는 이제 댓거리 할 용기를 낸다.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학교폭력을 사회 이슈로 만들고, 소모임을 조직으로 성장시키고, 단지 가능성뿐이었던 희망을 정책과 제도로 엮어간다. 그 힘이 모두 이 엄마들의 심장에서 나왔다. 

1911년 12월에 아문센은 남극을 밟았다. 다음해 1월 스콧이 그 뒤를 이었다. 아문센은 뒤에 올 스콧을 위해 침낭, 장갑, 육분의, 측고계를 대피소에 남겼다. 그러나 스콧은 고향에 가지 못하고 죽었다. 스콧은 대신, 일어난 모든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축음기도 여정에 동행시켰다. 그는 본래부터 자신의 여정을 학문적인 탐험으로 여겼고, 그것이 인류를 위해 쓰이길 바랐다.

최초의 남극탐험 기록보다 소중한 것은 여정 그 자체에서 보여준 그들의 인간애이다. 이 책 <그래, 엄마야> 역시 기록되어 남았다. 이 '소리'들은 때로 지도가 될 것이다. 장애를 넘어 성장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공명(共鳴)으로도 울릴 것이다.


그래, 엄마야 -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오월의봄(2016)


태그:#발달장애인, #발달장애인지원법,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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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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