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용의 역주 1950년 보스톤마라톤 우승당시 함기용이 역주하는 모습

▲ 함기용의 역주 1950년 보스톤마라톤 우승당시 함기용이 역주하는 모습 ⓒ 강명구


오월 첫째 주 월요일, 남산 밑 충무로의 오후는 햇살이 가득하고 분주한 행인들과 관광객들의 발걸음으로 바빴다. 그러나 그들의 발걸음이 아무리 바빠도 1950년, 만 19세의 나이로 보스턴의 합킨턴을 출발한 함기용의 발걸음에 비할 수가 있을까?

이제 막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가슴에 태극기를 당당하게 달고 보스턴 상심의 언덕을 질주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기엔 날씨가 아주 기분 좋게 화창했다. 아마 그는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베를린을 달렸을 손기정 선배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의 경험으로 보면 그 언덕을 넘을 쯤이면 색즉시공, 모든 것이 무가 되는 무아의 경지에서 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한극장 앞에서 1시에 만나기로 하고 10분 전에 나갔는데 그는 이미 나와 있었다. 나는 초면이지만 이 전설적인 마라토너를 알아볼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87세의 노신사에게서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운명적인 만남이 될 지도 모를 이 만남을 나는 지난 가을부터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권위인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한국인이 1·2·3등을 휩쓴 사건은 두고두고 세계 마라톤 역사에 회자될 일이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그는 운동 대신 음악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 음악가가 되길 꿈꾸었다고 한다. 공부를 잘했던 그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춘천사범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이제 교사의 길을 걷게 되어 있었다.

그런 그의 인생행로를 바꾼 것은 손기정, 남승룡과의 만남이었다. 때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만남은 있다. 함기용의 자질을 발견한 손기정은 그가 육상명문인 양정고보에 편입학하도록 도와주었다. 1950년 2월 보스턴 마라톤 선발대회에서 그는 2위를 차지해 최윤칠, 송길윤과 함께 보스턴으로 간다.

함기용과의 만남 마라톤 전설 함기용(맨 왼쪽)과 그의 금메달을 찾는 데 도움을 준 김태형 교수(가운데)와 냉면집에서 만났다.

▲ 함기용과의 만남 마라톤 전설 함기용(맨 왼쪽)과 그의 금메달을 찾는 데 도움을 준 김태형 교수(가운데)와 냉면집에서 만났다. ⓒ 강명구


대회가 열린 4월 19일 보스턴의 날씨는, 당시 해방은 되었지만 혼란스러운 한국의 상황을 연상시키듯 진눈깨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출발선에는 181명의 세계 각 나라에서 선발된 최고의 선수들이 서 있었다. 그 당시에는 여자 마라토너도 없었고 일반인 마라토너도 없었다.

함기용은 20km지점까지 50위권으로 처져 있었다. 여기서부터 함기용이 두 손을 불끈 쥐고 달리기 시작하자 25km 지점에서 그의 앞에는 오로지 선두를 이끄는 경찰 사이드카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것은 프로의 세계에서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이미 발동이 걸린 그는 38km, 심장파열의 언덕까지 드라마같은 질주를 계속하다 4km를 남기고 쥐가 나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를 따라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국 사람들은 그가 걸어서 들어와 우승을 차지했다고 해서 '워킹 챔피언'이란 별명을 지어주었다.

6.25 사변은 모든 우리 민족에게 재앙이었지만, 19세의 나이에 세계 최고의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지한 그에게는 특히 재앙 바로 그 자체였다. 운동선수로서 최고의 나이를 전쟁이 앗아가서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가 없었고, 전쟁으로 아수라장이 된 조국의 시민들은 그에게 환호를 보낼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피난길에 동대문야구장 외야 구석에 묻어 두었던 소중한 금메달을 분실하고 말았다.

다행히 2007년 에머리 의과대학 교수로 있는 재미동포 김태형씨가 보스턴마라톤 조직위에 딱한 사정을 알리고 새 메달을 부탁하여 똑같은 모양의 메달을 특수제작하여 보내왔다.

 함기용(왼쪽)과 김태형 교수의 우정.

함기용(왼쪽)과 김태형 교수의 우정. ⓒ 강명구


이 전설적인 마라토너가 내가 한 '나홀로 미 대륙 횡단'이 대단한 일이라고 치하하면서 술을 한 잔 따라주는데 술이 아니라 자신이 농축한 그 엄청난 기를 따라 부어주는 것 같아서 나는 최고의 예우를 받들어 마셨다. 내가 그에게 유럽의 땅끝 마을인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북한을 통과하여 서울까지 들어오는 통일마라톤을 설명하자 그는 다시 한 잔 부어주며 내게 힘을 실어주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한민족의 가슴 속에 있는 통일에 대한 염원과 세계 시민의 평화에 대한 갈망을 유라시아 대륙, 실크로드를 달리면서 모두 다 담아와 평화통일의 불길을 되살리고자 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나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오늘 그에게 메달을 되찾아준 김태형 교수와 마라톤 전설 함기용씨와의 만남은 아마도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릴 만남인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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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온몸의 근육을 이용하여 달리며 여행한다. 달리며 자연과 소통하고 자신과 허심탄회한대화를 나누며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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