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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정치사가 주 전공인 김영수 교수(경상대 사회과학원 학술연구교수)의 새 책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알렙 펴냄)에는 국가의 권한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권리를 최대화하는 민주국가의 상상적 대안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정치학자인 저자는 가장 기초적인 질문부터 던집니다. 당신은 권리와 권력과 권한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아느냐고. 아프리카 변혁운동과 조합운동에서 실마리를 찾고, 한국 민주주의의 실천 현장에서의 활동 경험을 토대로, 저자는 상상의 대안을 던집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대한국민" 헌법으로 바꾸자고. 이제 제안에 대한 화답으로 인권보호관, 사회학자, 정치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서평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또 한 번의 선거가 끝났다. 스무 번째 총선이라고 했다. 정강과 후보의 정치적 견해보다는 기호와 이름을 알리려는 선거 유세 차량의 시끄러운 노랫소리와 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선거의 전부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진짜 정책을 이야기 하고 한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정치 세력은 선거 과정과 언론 보도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소외된다. 결국 주권자인 국민은 표를 찍어 주는 수동적 존재일 뿐 스스로의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방관자로 전락하고 만다.

국민은 그것 이상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선거라는 제도, '대의' 민주주의라는 허상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주권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저항'은 고작 '주권'을 포기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뻔뻔스럽게도 그렇게 만드는 데 앞장섰던 사람들이 투표를 독려한다. '정치적 무관심'을 질타하고 소중한 한 표가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원래 그렇다고 치자. 기존 정치 질서를 무너뜨리겠다는 진보 정당의 모습도 거기서 멀지 않다. 그들 또한 철저히 선거공학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인다. 그들이 낡은 기존 정치 정당들과 차별성을 보이는 것은 고작해야 소수 정당들의 진입을 허용하도록 선거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일 뿐이다. 이런 방향의 선거법 개정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문제는 다른 주장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유명 정치인의 이름값에 기대어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는 진보 정당이라니!

선거 결과를 보면서 착잡했다. 어떤 사람들은 권위주의적이고 일방통행이었던 정권을 심판했다고 좋아했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낡아서 대체되어야 할, 한국 사회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가기 위해 소멸해야 할 정치 세력들은 그들이 얻은 의석을 근거로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착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정당성은 곧 구태를 조금도 벗어던지지 않는 것을 정당화해 줄 것이다. 언론이 말하는 '친박'과 '친노'의 패권이 아니라 정당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섯 석을 얻은 진보 정당은 그 여섯 석의 정치적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빠르게, 이전보다 더 심각하게 '게임의 법칙'에 충실해질 것이고 그들이 비판했던 대상을 닮아가게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허상 파헤친 <당신은 민주 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겉표지.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겉표지.
ⓒ 알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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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잡한 심정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읽기 시작한 책이 김영수의 <당신은 민주 국가에 살고 있습니까>였다. 저자는 동서양의 과거와 현재, 고전과 동시대의 저작들을 오가며 한국의 지배 세력이 말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허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물론 넓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말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와 역사적 사실을 넘나들면서 생겨나는 약간은 '과잉된' 주장, 조금은 '단순화된' 역사 해석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종종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너무 많아 초점을 잃고 독자의 호흡과 리듬을 방해하기도 한다.

넓은 독자층을 고려한 글쓰기에서 오는 불가피한 선택이겠지만 종종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엄밀한 논증이 부족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독자들이 마음 한구석에 꾹꾹 눌러놓았던, 우리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정치 질서에서는 표현할 수 없었던 민주주의적 열망을 풀어놓는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배반하고 있는 우리의 정치, 주권자인 국민의 욕구를 충족해야 하는 사명을 저버린 '민주주의'를 가장한 억압적 국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강력하게 조직화된 권력인 국가 앞에 왜소한 개인으로 쪼그라들었던 사람들을 '인민' 또는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립된 개인들이 '인민' 또는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적대하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대는 무조건적인 통합이 아니라 적대를 인식하고 그것을 전제로 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민'이 정치적 주체가 되는 연대의 실현은 지금의 정치 질서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상상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은 곧 지배 질서와 권력이 허용한 것이며, 지배 질서와 권력을 부정하고 도전하는 '인민'에게 그것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는 것'으로 비틀어 보고, '불가능한 것'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상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상상은 '허구적'이거나 '공상적'이지 않다. '상상 혁명'은 형식적이나마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정치 질서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기본적인 필요충족과 민주적인 참여가 실제로는 억압적 국가와 독점적 시장에 의해 침해받고 있는 현실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질문'이다.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지만 형식적으로 주어진 대의민주주의의 허상 속에 사라져 버리는, 인민을 개인으로 고립시키는 정치 제도와 이데올로기적 효과 속에 상실되고 있는 주권자의 힘을 되찾기 위해서는 '당연함'으로 받아들여진 질서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스스로의 의식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제기해야 하는 것이다.

인민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고민과 지적인 모험은 저자 개인의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진보를 고민하는 모든 이가 나누어 져야 하는 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주장은 완결적이지 않다. 앞에서 지적한 책의 완성도와 유기적 구성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한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 또한 저자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큰 문제 하나를 지적하고자 한다.

저자는 지금의 정치 질서를 비판하면서 지배 이데올로기에 묶여 있는 수동적 존재, 훈육된 존재로서의 인민에 대해 길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또한 저항적이고 혁명적 존재로서의 인민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이 두 모습의 인민 사이에 단절이 존재한다. 하나는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인 것일까? 많은 경우 진보를 꿈꾸는 사람들은 이 둘 사이에서 진동한다. 그래서 현실에 투항하거나 이상에 집착하거나!

권력 앞에 고립되고 나약한 개인은 충족되지 못한 필요를 매개로 깊은 불만과 저항감을 가지며 이러한 감정 상태는 공통의 정치적 행위를 통해 연대의 감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일상의 불만과 저항감은 곧 수동적이고 훈육된 개인들 속에 저항적이고 혁명적인 힘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민의 두 가지 모습은 단절된 '현실'과 '바람'이 아니라 현실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민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 '구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첫 번째 과제는 가능성을 실현하는 정치적 실천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 수는 없다. 여기로부터 앞으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렇게 출현하고 구성되는 연대'들'을 정치적 상상을 통해 '자본주의 이후'의 정치를 이끌 수 있는 대항 헤게모니 기획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다양한 실천들을 묶어줄 수 있는 이론적-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의 저자가 독자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이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는 길에 함께 나서자는 것이다. 기꺼이!

덧붙이는 글 | 영국 에식스대학교에서 사회주의 지방정치에 관한 연구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2008-2011)로 재직하였고, 현재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로 있다.



당신은 민주 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김영수 지음, 알렙(2016)


태그:#정치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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