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장비는 과연 축복인가? 공권력은 시민의 사고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것을 사용하려 한다. 결국 기술은 자유를 위협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장비는 과연 축복인가? 공권력은 시민의 사고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것을 사용하려 한다. 결국 기술은 자유를 위협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 (주)컴퍼니 엘


자기 생각을 타인에게 완벽하게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심을 전달하고픈 인간의 욕망은 언어라는 제한된 수단 앞에서 한계를 느끼곤 한다. 타인의 진의를 들었다고 여겼으나, 거짓과 왜곡으로 얼룩졌음을 깨닫는 일도 빈번하다.

타자의 마음을 보길 원하는 인간의 근원적 욕구는 소설, 애니메이션, 영화 등에서 다양한 상상력으로 표출되었다.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AT필드'와 '인류보완계획'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엔 마음의 벽을 허물고 싶은 야망이 담겨 있다. 영화는 특수한 기계 장치를 이용하여 다른 이의 기억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자주 보여주었다. <인셉션> <사라진 기억> <더 셀> 등의 영화는 타인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그 속에 들어가 대화를 건네는 인물을 그린다.

타인의 마음을 엿보는 기계, 축복인가 재앙인가?

 마음을 읽는 장비를 함께 개발한 데이비드와 라이언은 의견 대립에 봉착한다. 한 사람은 자폐 아동 등 의사소통에 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 낙관하지만, 다른 한 명은 이것이 권력에 의해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될 거라 비관한다.

마음을 읽는 장비를 함께 개발한 데이비드와 라이언은 의견 대립에 봉착한다. 한 사람은 자폐 아동 등 의사소통에 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 낙관하지만, 다른 한 명은 이것이 권력에 의해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될 거라 비관한다. ⓒ (주)컴퍼니 엘


칼릴 술린스 감독이 연출을 맡은 <리스닝>도 타자의 진심을 알고 싶은 욕구를 소재로 삼았다. 데이비드(토마스 스토롭펠 분)와 라이언(아티 아르 분)은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장치를 함께 연구하는 공대생이다. 개발에 진척이 없던 차에 우연히 만난 조단(엠버 마리 볼린저 분)의 도움을 받으며 연구는 마침내 성공한다.

<리스닝>에서 그들이 만든 기계 장치를 이용해서 타인의 마음을 엿보는 장면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은밀하게 감추었던 성적 충동이나 감추고 싶은 과거 등은 맨살을 드러내며 타인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어떤 말과 행동도 필요 없다. 그저 기계에 접속하면 그대로 전송된다.

같이 개발한 장비를 두고 데이비드와 라이언은 대립한다. 한 사람은 이것이 식물인간, 후두암 환자, 자폐 아동 등 의사소통에 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 낙관한다. 다른 한 명은 이것이 권력에 의해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위험한 물건이라 비관한다.

상대방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장비가 성공하자, 공권력은 시민의 사고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것을 사용하려 한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것으로 믿었던 기술은 자유를 종식하는 위협으로 전락한다. 이것은 인간이 다룰 수 없는, 필요 이상으로 강력한 힘이었다.

<리스닝>에서 그리는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려는 세력은 소설 <1984>의 빅브라더를 연상케 한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작품인 <1984>는 과학의 눈부신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기보단, 복종을 강요하는 절대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어두운 미래 사회를 보여주었다. 소설에 나오는 '빅브라더'는 기술을 무기 삼아 인간의 생각을 철저히 조작하고 통제한다. <1984>의 경고는 <리스닝>에도 유효하다.

인공지능 시대, <리스닝>이 울리는 경종을 들어라

 <리스닝>은 기술 개발의 그림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처럼, 기술은 인간의 자유를 박탈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리스닝>은 기술 개발의 그림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처럼, 기술은 인간의 자유를 박탈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 (주)컴퍼니 엘


<리스닝>에서 데이비드와 라이언의 대화 중 "FBI가 통화를 감청한다고 휴대전화 자체를 없앨 순 없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휴대전화, CCTV 등은 분명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어떤 기술도 오남용할 수 있기에 견제할 수 있는 대비책은 분명히 마련되어야 한다. 더불어 윤리적인 면도 중요시해야 한다.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업체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 창업자인 빌 조이는 "새로운 기술을 악용한다면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술이 개발될수록 인류는 더욱 발전할 것으로 믿어왔다, 만약 사실이 그렇지 않다면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 이제 그것을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할 때다"라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을 앞세운 로봇공학이 발전을 거듭하고, 의료기술을 발달시키는 나노공학과 강한 생존력을 연구하는 유전공학이 급성장을 이루는 지금, 그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화씨 451> <매트릭스> <리스닝> 등의 영화가 무분별한 과학 맹신주의에서 비롯한 비극을 보여주며 경종을 울린다. 이 경종에 우리는 발길을 멈추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주위를 돌아보아야 한다. 기술은 유토피아라는 장밋빛 길도 안내하지만, 한편으로는 디스토피아를 향한 죽음의 초대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스닝 칼릴 술린스 토마스 스트롭펠 아티 아르 크리스틴 해버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