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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북초등학교 학생들이 상자텃밭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다. ⓒ 맹정영
교직 경력 32년의 맹정영 교사(54). 서울월드컵경기장 인근의 신북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그는 1년에 단 이틀만 집에서 쉬고 나머지 365일은 어김없이 학교에 나온다.

학생들은 휴일에 등교하지 않지만,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존재가 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교실 한 켠 상자텃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채소들이다.

맹 교사가 아이들 환경교육의 일환으로 시작했던 텃밭 가꾸기는 벌써 4년째. 야외에는 텃밭을 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교실에서 할 수 있는 상자텃밭을 택했다. 자신의 학급에서 하던 게 지금은 학교 전체 40개 반으로 확산됐고, 올해는 옥상에서도 해볼 생각이다.

"아이들 정서교육에 텃밭 가꾸기 만한 게 없습니다. 고학년이 되면 사춘기가 오고 돌발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이들 관심을 텃밭 가꾸기로 돌리면 과격한 부분을 가라앉힐 수 있고 함께하는 과정에서 친구관계가 좋아집니다. 우리 학교에 학교폭력이 없는 것도 다 텃밭가꾸기의 영향이라 믿습니다."

믿기지 않지만, 이 학교의 상자텃밭에서는 봄에 모내기까지 한다. 시골 논에서나 볼 수 있는 곤충들이 자란다. 가을에 벼를 수확하여 떡메로 쳐서 인절미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서울신북초등학교 학생들이 상자텃밭에서 수확한 쌀로 인절미를 만들기 위해 떡메를 치고 있다. ⓒ 맹정영
"서울 같은 거대도시에서 무슨 농업을 하냐고요?"

"몇 년 전 뉴욕에 가보고 깜짝 놀랐어요.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들의 옥상에 올라가보니 각종 꽃과 채소들을 빽빽이 심어놨더라고요. 여기가 정말 세계에서 제일 번잡한 도시 맞나 싶었습니다."

세계 여러 '도시농업 선진국'들을 다녀본 송임봉 서울시 도시농업과장은 "도시농업이 발전하지 않은 선진국은 없다"는 말로 도시농업의 중요성을 요약했다.

지진에 대비해 미리 확보해놓은 도심 녹지공간을 잘 활용하는 일본, 도심에서 채소재배·과수원·축산·자원재생까지 '모든 걸' 하는 영국, 도시 근교에 별장형 농장 '클라인가르텐'을 조성해 힐링의 장소로 삼는 독일 등이 그 예다.

송 과장은 "서울같은 거대도시에서 무슨 농업이냐는 사람들도 있는데, 도시 열섬화를 방지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경제적 가치, 생태계 복원의 환경적 가치, 나눔의 문화를 실천하는 사회적 가치, 아이들의 정서적 함양을 위한 교육적 가치 등 그 부수적 효과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미 우리보다 10년 앞서 도시농업법을 만든 일본에 비해 서울은 후발주자이지만, 텃밭조성 비율을 보면 일본을 넘어섰다고 본다"며 "도심 공간에 이미 확보된 녹지공간만 도시농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일본에 비해 서울은 새로운 텃밭은 개발하고 옥상, 지하까지 활용하는 등 훨씬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송 과장은 "올초 UN산하 세계식량기구(FAO)로부터 서울의 성공사례를 전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며 "서울의 도시농업은 이제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으쓱해했다.
서울의 한 주말농장에서 참가자들이 텃밭을 가꾸고 있다. 참가 신청이 많아 제비뽑기를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 서울시제공
2018년까지 '집에서 10분거리 텃밭' 1800개 조성

도시농업을 할 수 있는 서울의 전체 농지 면적은 1100㏊. 그러나 지금까지 도시농업을 위해 개발된 면적은 아직 141㏊에 불과하다. 그만큼 서울의 도시농업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도시농업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0년 경 도시생활의 삭막함에 싫증이 난 사람들이 주말농장을 선호하면서부터이다. 지난 2010년에 도시농업법이 제정되고 도시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서울의 도시농업은 본격화됐다.

서울시는 지난 2012년 4월 도시농업 원년을 선포한 뒤 명실상부한 '도시농업 수도'로서의 서울이 정착됐다고 보고, 작년 초 오는 2018년까지 유휴지·폐부지 220㏊를 개발해 집에서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에 '도심텃밭' 1800개를 조성하는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그동안의 도심 텃밭이 대부분 주거공간과는 거리가 있는 외곽지역의 주말농장형이라서 시민이 손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3평 남짓에 연 사용료 고작 6만원... 씨앗만 사면 'OK'

일반 시민들이 도시텃밭을 하기 위해선 매년 3월 중하순경 각 구청 홈페이지에 가서 신청하면 된다. 신청자가 많아 제비뽑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구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3평(10㎡)에 직영은 연 3-6만원, 민영은 연 10만원 정도의 참가비를 받는다.

서울의 자치구 가운데는 드물게 별도의 도시농업과가 있을 정도로 도시농업이 활성화된 강동구의 경우 직영은 12㎡에 6만원, 민영은 7만원이다. 구와 협력을 맺은 민영텃밭은 구가 보조금 3만원을 보태주기 때문에 타 구보다 싸다는 설명이다.

그 외에 텃밭을 운영하는 데 참가자가 들여야 할 비용은 씨앗을 사는 것 외에 거의 없다. 봄 개장 때와 가을배추 심을 때 친환경 비료가 무료로 지급되고, 웬만한 농기구는 농장에 구비돼있기 때문이다.

강동구 도시농업과 윤동열 주무관은 "저렴하고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구청에서 하는 텃밭을 선호한다"며 "참가자가 지켜야 할 것은 화학비료나 합성농약 그리고 비닐멀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의 한 동주민센터 옥상에 상자텃밭이 가득 조성돼있다. ⓒ 서울시제공
도시농업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

도시농업은 기본적으로 도시민들의 휴식이나 힐링이 주목적이지만, 그 자체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서울의 한 법대 4년생 노순호(25)씨는 남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려다 자신의 일자리를 얻게 된 경우. 3년 전 학교의 사회적기업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 4명과 함께 발달장애인의 사회적응을 돕고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동구밭'이란 이름의 도시농업팀을 꾸렸다.

발달장애인과의 프로그램을 이어나가다 한 청년투자회사로부터 투자까지 받게 된 그는 이제 서울시내 17곳에서 텃밭을 가꾸는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졸업 후에도 취직하지 않고 이 일을 이어가겠다는 그는 "창업까지 한 만큼 이젠 제대로 해야겠다"며 야무진 꿈을 펼치고 있다.

노원구 공릉동에 사는 이은수(53)씨는 아예 하던 일을 정리하고 도시농부 전문가가 됐다. 통신케이블 설치 사업을 하던 이씨는 일을 하고 다니면서 서울 도심에 의외로 빈 공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5년전 사업을 정리한 뒤 마련한 건물 옥상에 텃밭을 가꿨다.

텃밭가꾸기가 사회환경, 기후변화에 유용한 일이란 것 깨닫게 된 그는 사회단체가 하는 도시농부학교를 마친 뒤 스스로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란 단체를 만들었고 이제 회원수 130명을 자랑하게 됐다.

이씨는 처음엔 옥상에 텃밭을 조성하고, 빗물을 받아 쓰고, 음식물쓰레기로 퇴비를 만드는 등 자신의 건물을 친환경적으로 만드는데서 시작했지만, 이젠 지하공간에서 버섯과 수경재배하기, 야산에서 표고버섯 기르기, 공원에서 허브 재배하기 등으로 관심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그는 '사업적으로 발전시켜볼 생각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없다"고 잘라 말하고 "어정쩡하게 시민운동과 사업을 같이 하면 둘 다 실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신 "나의 목표는 전 시민들이 도시농사꾼 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초구에서 400여명의 회원들을 상대로 텃밭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박종민 서울도시농업전문가회 회장(55)은 "참가자들에게 수확에 대한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팍팍한 도시생활로 인해 받은 상처를 힐링해주는데다, 아이들 인성교육에 이 만한 게 없으니 안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며 도시농부가 될 것을 권유했다.
태그:#도시농업,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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