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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강정마을에 대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잼 다큐 <강정>이었다. 강정마을에 대해서 잘은 알지 못하지만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평화로운 어촌에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면서 주민들과 마찰이 생겼고, 주민 96%가 군부대 건설을 반대하지만 결국은 해군기지가 들어섰고, 주민들은 계속 싸우고 있고... 강정에 대해서 내가 아는 바는 그 정도였다.

'제주이민'이라는 유행에 편승하듯 삶터를 제주시로 옮기면서 언제고 강정마을에 가 보고 싶었다. 섬 생활에 적응하느라 여념이 없다가,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 개최 소식을 들었다. 오후 업무를 일찍 마치고 서귀포시 강정마을로 넘어갔다. 영화제 마지막날이었다.

강정마을 입구에 걸려 있던 현수막
 강정마을 입구에 걸려 있던 현수막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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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도 시골인 강정마을

대중교통으로 제주를 여행하려면, 시간을 넉넉하게 둬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북쪽의 제주시와 남쪽의 서귀포시로 양분된다. 내가 사는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려면 한라산을 넘어야 한다. 거기서 작은 시골마을인 강정까지는 버스를 갈아타고 좀 더 가야 한다.

한 시간 반은 잡아야 하는 코스다. 782번 버스는 사람들을 태우고 뱉어내며 남쪽으로 향했다. 20~30분에 한 대 오는 5번 버스를 못 기다려 택시를 타고 강정농협 앞에 내렸다. 낮에는 해가 쨍하더니, 빗물이 한두 방울 택시 앞유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제주도 날씨는 정말이지 변덕스럽다.

처음 만난 강정마을은 작고, 평화로웠다.

"이 정경 그대로 평화다"
 "이 정경 그대로 평화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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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관으로 쓰였던 강정마을 평화센터
 영화 상영관으로 쓰였던 강정마을 평화센터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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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에 있는 북카페 '평화책방'
 강정마을에 있는 북카페 '평화책방'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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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유난히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정마을과 세월호 추모는 '평화'라는 열쇳말로 이어진다.
 강정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유난히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정마을과 세월호 추모는 '평화'라는 열쇳말로 이어진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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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려 채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중에 들으니 개막식 날도 이렇게 비가 왔다고 한다. 망연해져 평화책방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제주 뎅유지차를 한 잔 마시며 영화제 홍보물을 들춰보았다.

아무래도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비닐우의를 하나 사 입고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비를 맞으며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비오는 강정마을의 정경
 비오는 강정마을의 정경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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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터미널 공사가 진행중이다.
 크루즈 터미널 공사가 진행중이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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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해안가의 모습
 강정 해안가의 모습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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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공사차량 '출입금지'. 강정마을에서는 주민들과 해군 간의 긴장이 상존한다.
 해군 공사차량 '출입금지'. 강정마을에서는 주민들과 해군 간의 긴장이 상존한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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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쨍하고 아름다운 강정 바다의 모습은 포착하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 이곳저곳이 공사장이었다. 해군기지 외에도, 크루즈 터미널 공사가 한창이었다. 군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강정마을에는 올레길 7코스가 지나간다. 평화로운 어촌이다. 고깃배가 정박해 있고, 민박집이 몇 군데 있는 정도다. 그 와중에 '제주 해군기지 복합문화센터'가 보였다. 번듯하니 지은 새 건물이었다.

주민도 문화도 없는 '제주 해군기지 복합문화센터'

본래 영화제 개막식은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서귀포시의 대관 불허로 서귀포성당에서 개최됐다. 그 외에도 마을회관 등 마을 곳곳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좁고 불편해도 주민과 관람객들로 북적이는 평화센터나 의례회관과 달리, 해군기지 복합문화센터 주변은 한산했다. 문화가 없는 문화센터였다.

중학교 때까지 군인 지역에서 살았던 나는 군부대로 영화를 보러 다니곤 했다. 친구들과 함께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500원인가 1000원인가 하는 관람료를 내고 당시 유행하는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군인 가족과 지역민의 복지를 위한 영화관의 추억을 떠올리며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영화제에 와 있었다. 영화란 이렇게도 저렇게도 활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는 보이지 않던 제주 해군기지 복합문화센터
 문화는 보이지 않던 제주 해군기지 복합문화센터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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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8년이 넘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내려온 건 평화를 얻고 싶어서였다. 물론 제주가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서울에서처럼 하루하루 전쟁하듯 살아내지는 않아도 된다. 대도시 같은 편리는 없지만, 나는 이 평화의 섬에서 사는 이민자 생활이 꽤나 만족스럽다.

'평화'를 위해 해군기지가 필요할까? 군사력으로 군사력을 억지할 수 있는가? 핵을 보유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는가?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평화와 안보로 귀결되는 듯 싶다. 강정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곳의 평화를 지키자는 입장이고, 해군기지 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안보를 위해서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평화와 안보는 결국 같은 말이지만, 목적지에 이르는 방법이 다르다. 여행은 목적지 뿐만 아니라 여정이 중요하다. 강정마을의 평화와 동아시아 안보를 위한 여정에 지금 해군기지가 있다. 그러나 내 눈으로 본 강정마을은 도무지 해군기지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민박집이나 몇 곳 있고 올레길 7코스가 지나가는 아름다운 해안가 마을이다.

강정마을을 지키는 장승
 강정마을을 지키는 장승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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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째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강정마을은 이제 평화운동의 성지가 되어가고 있다. 군부대와 평화가 공존하기는 어렵다. 중학생 시절 나는 군부대 영화관에서 값싸게 영화를 볼 수 있었지만 동네에 러브호텔이 무진장 많은 이유는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해군과 제주도가 강정을 포기한다면, 이곳은 세계적인 평화운동의 성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평화박물관을 짓고 평화영화제를 매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4.3사건 등을 겪으며 평화의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이 강한 제주는 이미 매년 평화포럼이 열리기도 하는 평화의 섬이다. 수십 년간 관광으로 먹고 살았고, 주민 다수가 관광업에 종사하는 제주도의 지향은 무엇인가. 군사제주인가, 관광제주인가.

영화제 폐회식에서는 강정평화영화상을 받은 <러브, 오키나와>팀이 즉석 공연을 펼쳤다.
 영화제 폐회식에서는 강정평화영화상을 받은 <러브, 오키나와>팀이 즉석 공연을 펼쳤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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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정마을, #강정국제평화영화제, #강정, #평화, #해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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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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