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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는 허름해 보이지만 아주 맛있는 호쇼르를 파는 식당이다.
▲ 하르호린의 식당. 외부는 허름해 보이지만 아주 맛있는 호쇼르를 파는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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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호린(Kharkhorin)의 왕궁터와 사원 유적지를 답사한 나와 아내는 다리가 꽤 뻐근했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몽골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몽골 음식을 맛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나는 박람회장의 허름한 부스 같이 생긴 여러 식당 중 가장 중앙에 위치한 한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몽골 전통음식인 호쇼르(Hushuur)를 파는 곳이었다. 아주 촌스러운 색상으로 치장한 작은 식당은 마치 우리나라의 1970년대 식당같이 허름했다.

식당 안 주방에서는 식당 주인이 직접 만두 속과 반죽을 만들고 있었다. 식당 주인은 큰 반죽을 동그랗게 만든 후 납작하게 눌러 만두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이 호쇼르를 기름 솥에 넣는데 만두가 너무 커서 솥 안에는 만두가 많이 들어가지 못한다. 튀겨진 만두는 촉촉함을 유지하기 위해 플라스틱 뚜껑으로 덮어두었다. 내가 몽골 말을 잘 하지 못하니 호쇼르 주문은 운전기사로 나와 동행한 몽골 친구가 해주었다.

주방에서 만두 속을 만들고 있던 식당 주인 부부가 환하게 웃고 있다.
▲ 식당 주인. 주방에서 만두 속을 만들고 있던 식당 주인 부부가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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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대표적인 만두튀김으로 고기 호쇼르와 감자 호쇼르가 있다.
▲ 호쇼르. 몽골의 대표적인 만두튀김으로 고기 호쇼르와 감자 호쇼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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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쇼르는 몽골의 양고기로 만드는 일종의 큰 튀김만두이다. 얼핏 보면 밀가루를 기름에 넣고 튀긴 튀김같이 보이지만 안에 고기가 들어있는 고기만두이다. 자연환경상 몽골 음식에는 육류가 아주 많은데 그 고기 중에서도 양고기가 가장 많고 이 호쇼르 안에도 양고기가 들어있다. 가축의 수가 워낙 많은 몽골이어서인지 우리나라의 만두와는 달리 만두 안에 고기가 듬뿍 들어있고 양고기도 방금 잡은 고기인지 아주 싱싱하다.

호쇼르를 한입 베어 무니 만두를 튀긴 기름과 함께 육즙이 줄줄 흐른다. 고기의 싱싱한 맛과 함께 양파와 후추, 소금이 들어가 살짝 상큼한 맛도 난다. 큰 만두피가 접힌 부분이 가죽옷의 매듭처럼 두툼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고기와 만두피와 함께 잘 씹힌다. 만두 속에서 양고기의 고소하고 짭짤한 맛이 느껴지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다.

호쇼르는 아주 맛있는 만두이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는데 밀가루 만두피에 기름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느끼한 맛이 강하다. 그리고 만두 속에서 약간의 양고기 냄새도 난다. 고기 호쇼르를 먹다 보면, 한국 사람들은 김치와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느끼한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이 호쇼르가 입맛에 잘 맞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아내도 호쇼르를 몇 입 먹더니 더 이상 먹지 않는다.

호쇼르 안에는 양고기가 가득하고 감자도 너무 맛이 있다.
▲ 호쇼르 먹기. 호쇼르 안에는 양고기가 가득하고 감자도 너무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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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받은 호쇼르 여러 개 중에는 양고기 말고 감자를 넣은 감자 호쇼르도 있다. 이 감자 호쇼르 안에는 맛있는 몽골 감자가 가득 들어있다. 아삭한 만두피와 어울리는 고소한 맛의 감자가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몽골 감자는 정말 맛있는데 아무래도 비료로 쓰이는 가축의 분뇨가 풍부하기 때문인 것 같다. 감자 호쇼르 만두피에도 기름기는 많아서 케첩을 뿌려서 먹었다.

나는 호쇼르 식사와 함께 뜨끈뜨끈한 수태차(Suutai Tsai)를 사발에 담아 함께 마셨다. 몽골의 음식은 대부분 기름기가 많은 육류여서 차가운 음식을 함께 먹으면 배탈이 날 수 있기 때문에 따뜻한 차를 마신다. 이 수태차는 원래 게르에서 고기요리를 한 냄비에 우유를 넣고 끓인 차이다. '수(Suu)'는 몽골어로 우유라는 뜻이고 '수태(Suutai)'는 우유를 보탰다는 뜻이다.

몽골의 우유로 만든 일종의 밀크티인데 소금을 섞어 오묘한 맛이 난다.
▲ 수태차. 몽골의 우유로 만든 일종의 밀크티인데 소금을 섞어 오묘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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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이 수태차는 손님들에게 가장 많이 접대하는 차이기도 하다. 몽골의 우유에 차(茶)를 섞은 일종의 밀크티인데, 소젖에 소금으로 간단한 간만 해서 조금 비리고, 치즈를 넣어 기름기 때문에 조금 느끼하다. 이 맛은 우유와 차와 치즈, 소금이 섞인 아주 묘한 맛이다. 이 맛이 구수하다고 느끼기까지는 몽골에서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몽골에서 수태차를 거부하면 집주인에게 실례라고 해서 나는 수태차도 싹 비웠다.

수태차를 마시고 있는데 몽골 친구가 나에게 묘한 이야기를 했다. 하르호린 에르덴조 사원(Erdene Zuu)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진산(鎭山)이라고 할 수 있는 산이 있는데 그 언덕 위에 아주 의미가 큰 돌이 있다고 하였다.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몽골여행 안내서에도 여행자의 호기심을 끊임 없이 자극하는 것이 이곳에 있다고 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하르호린의 남근석(男根石)이었다.

여성의 음부를 닮아 여성의 기가 세졌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 하르호린의 진산. 여성의 음부를 닮아 여성의 기가 세졌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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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우리는 에르덴 조 사원과 하르호린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금 후 저 멀리에 철망으로 둘러싸인 한 기념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기념물 앞에는 파란 비단천인 하다크(Hadak)로 덮인 돌무더기 어워(Ovoo)가 바짝 붙어 있었다. 겉모습만 봐도 몽골인들이 신성시하며 기원을 드리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산 중턱의 잘 닦인 길 위에 차를 주차시킨 후 우리는 몽골 친구의 설명을 들었다.

"이곳에 남근석이 있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남근석이 놓인 위치가 묘하다는 생각이 들어."
"남근석이 향하는 방향의 산골짜기 형상을 자세히 봐봐. 꼭 여인의 깊은 곳처럼 생겼지? 이곳은 바로 자궁의 입구야."

우리나라처럼 몽골도 풍수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산다고 한다. 풍수상으로 여인의 음부를 닮은 이 골짜기 때문에 하르호린 남성들이 오래 살 수 없다는 전설이 하르호린에 전해지고 있었다. 실제로 하르호린이 몽골의 수도로서 번영했던 13세기에도 하르호린의 많은 남성들이 사고로 수명이 짧았고, 결국 몽골 반란군의 본영이 된 하르호린에서 많은 남자 군인들이 죽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도 결국은 이곳 여성들의 기가 너무 세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남녀와 관련된 무슨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게 분명해."
"산 아래에 있는 에르덴 조 사원이 한때는 만 명의 남자 스님들이 모여서 수도를 할 정도로 번창했었지. 그런데 아무래도 젊은 남자 스님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하르호린 시내의 아가씨들과 만나 파계하는 일이 많이 발생했대. 스님들의 수도를 어지럽히는 것이 계곡의 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고승이 음기를 약화시키기 위해서 이곳에 인공의 남근석을 세워 계곡의 음기를 막았지."

계곡에서 느껴지는 여성의 강한 기를 막기 위해 남근석을 세워두었다.
▲ 남근석. 계곡에서 느껴지는 여성의 강한 기를 막기 위해 남근석을 세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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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명의 스님이 생활하던 사원이었으면 남근석을 세울 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길이가 1m도 넘는 화강암 남근석은 마치 절구통 위에 놓인 절굿공이 같이 비스듬히 걸쳐져 있다. 남근석 밑에 있는 절구통 모양의 화강암은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몽골 친구가 이 남근석이 전에는 완전히 직립으로 세워져 있었다고 해서 한참을 웃었다.

이곳에서 보이는 몽골 여인들은 남근석을 보고 피식 웃기만 한다. 그런데 주변 몽골 남자들은 짐짓 부끄러워하는 체하면서도 남근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참배를 올린다. 몽골은 우리나라 같이 샤머니즘이 아주 강한 나라여서 이 돌에도 신령스러운 힘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몽골 남성들은 무한한 힘이 남근에서 나오고 남근석에게 기도를 하면 힘이 솟는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 머나먼 몽골 땅의 신앙이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남근석 신앙과 너무나 똑같아서 또 한 번 웃음이 나왔다. 우리나라나 몽골이나 불교의 영향이 크지만 불교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닌 샤머니즘의 영향은 아직까지도 뿌리가 깊다.

"그런데 왜 남근석을 만지지도 못하게 이렇게 사면을 철창으로 막아두었지?"
"이 남근석에 올라타 앉으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야. 이 돌 위에 올라타면 미혼 여성은 좋은 배필을 만나고 아이를 낳은 여성은 다산이 가능하다는 거야.
특히 이 남근석이 확실한 효능이 있다는 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수도 없이 몰려와서 앉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울타리를 쳐 놓았다고 해."

친구의 설명을 듣고 자세히 보니 남근석 한 가운데를 시멘트로 땜질한 흔적이 보인다. 이 음양석을 잘못 세워두었다가 넘어져서 다친 줄 알았는데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많은 여인들이 남근석 위에 앉는 바람에 남근석이 부러졌던 것이다.

산 아래 고개에 서면 하르호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 하르호린 시내. 산 아래 고개에 서면 하르호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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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스러워 보이는 고개 위에 하다크가 가득한 어워가 있다.
▲ 고개의 어워. 신령스러워 보이는 고개 위에 하다크가 가득한 어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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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근석을 보다가 나와 차를 타고 산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전망이 탁 트이는 높은 고개 위에 섰다. 이 고개 위에서는 하르호린 시내 전체가 한눈에 조망된다. 이곳은 하르호린 평원 지대를 조망하는 하르호린 남쪽의 관문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오전에 보았던 에르덴 조 사원도 저렇게 조그마한 곳이었나 싶을 정도로 점같이 보인다.

전망 좋은 고개여서 고개의 정상에는 역시 거대한 어워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워 주변으로는 동서남북의 방향을 표시하는 돌무더기들이 함께 쌓여 있다. 이 고개의 어워는 푸른 비단 하다크로 온 몸이 칭칭 감겨 있다. 하르호린 고개의 신령함이 높다고 생각되어 다른 고개보다 훨씬 더 많은 하다크가 감겨있는 것이다. 이곳 어워를 대하는 몽골인들의 태도는 진지하기만 하다. 고개에 널린 돌을 집어 들어 어워에 쌓는 행위는 소박하지만 경건해 보인다.

어워 앞에는 말의 하얀 머리뼈 20여 개가 줄줄이 모여 있다. 몽골인들에게 말은 가족같은 가축인데 그중에서도 어워에 바쳐지는 말은 살아 있을 때에 가장 달리기를 잘 했던 이름난 말들이다. 그래서 주인에게 사람을 듬뿍 받았던 말들이기도 하다. 몽골 초원을 질주했던 명마들의 신령스러운 힘을 받기 위해 이곳에 모셔진 것이다. 다른 어워에 비해서 이 고개에 말머리 뼈가 많은 것도 이 고개가 워낙 신령스러움으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초원을 달리던 명마들의 말머리 뼈가 초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 어워의 말머리 뼈. 초원을 달리던 명마들의 말머리 뼈가 초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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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초원을 질주했을 말들의 뼈가 초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몽골의 초원과 참으로 어울리는 풍광이다. 순간 몽골에 와서 승마를 했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말과 오랜 시간 몸을 대고 이동하면서 무언가 말과 마음이 통하는 느낌. 말에게도 마음이 있고 말을 진정성있게 대하면 말과도 마음이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머리뼈를 남긴 말들도 자신을 예뻐해 주는 주인의 마음을 읽고 초원 위를 열심히 달렸을 것이다. 그 수많은 명마들이 머리뼈만 남아 하르호린의 초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하르호린, #호쇼르, #남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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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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