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을 응원하는 중국팬들의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박태환을 응원하는 중국팬들의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 이종득


"아빠 나도 박태환선수 직접 볼 수 있어?"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와 25일부터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제88회 동아수영대회에 참가했다. 수영입문 4년차인 딸아이가 5월28일에 열리는 전국소년체전에 강원도 대표로 선발되어 그 전에 전국대회 경험을 위하여 참가한 대회다. 그런데 대회신청을 하고나니 뜻밖의 행운이 있었다. 딸아이와 같은 수영꿈나무는 물론 슈퍼스타인 박태환 선수가 대회에 출전한다는 소식이었다.

"아빠, 그럼 나도 박태환선수 직접 볼 수 있어?"
"당연하지. 그것도 얼굴만 보는 게 아니고 수영하는 것도 직접 볼 수 있지."
"친구들에게 자랑해야겠다."

딸아이는 정말 좋아했다. 그러고는 반친구들에게 숙제 아닌 숙제를 받았는데, 반친구 21명에게 줄 사인을 받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둔 선수에게 사인을 부탁하는 것은 엄청난 실례라고.

대회 첫날인 25일 딸아이는 평영 200m 종목에 출전해서 예선 탈락 했다. 그러나 딸아이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후에 열리는 자유형 1500m 경기에 출전하는 박태환 선수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딸아이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박태환 선수가 경기장에 도착하자 수영꿈나무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다니며 웅성웅성거렸다.

7번 레인에서 경기를 시작한 박태환 선수는 중반까지 2위로 레이스를 벌이다 800m 이후 1위로 앞서가던 전주시청의 박석현 선수를 추월하더니 점차 사이를 벌리기 시작했다. 결국 2위와 15초 가까운 간격으로 1위로 터치패드를 찍자 관중석과 꿈나무 팬들은 박태환을 연호했다.

 자유형 1500m 경기 스타트장면. 7번레인이 박태환선수

자유형 1500m 경기 스타트장면. 7번레인이 박태환선수 ⓒ 이종득


열악한 출전 준비 장소에서도 대회신기록 갈아치우는 박태환

이날 박태환의 기록은 15.10.95이다. 2012년 NSW state 오픈챔피언쉽에서 자신이 세운 한국신기록 14.47.38에는 못미치는 기록이지만, 2015년 백승호가 세운 15.31.99를 21초 앞당기며 대회신기록을 수립했다.

박태환의 이날 기록은 리우올림픽 출전 자격이 주어지는 A기록인 15.14.77을 뛰어넘었다. 특히 이날 최종 50m를 남겨두고 스퍼트를 할 때 26초대로 들어오는 놀라운 막판 집중력과 힘을 함께 보여줘 관중의 큰 박수를 받았다.

둘째 날인 26일에는 딸아이가 평영100m 출전했다. 딸아이는 보조경기장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때 박태환 선수가 200m 예선 경기 출전 1시간 여를 남겨두고 몸을 풀기위해 딸아이의 옆 레인으로 들어왔다. 딸아이는 몸을 풀다 멈춰 서서 박태환의 훈련 장면을 바라보았다. 물론 딸아이뿐만이 아니었다. 각 레인에는 경기를 앞둔 남녀 선수들이 많게는 20여명 가까이 들어가 있었다. 그 모든 선수들이 일순간 훈련을 멈추고 수영영웅 박태환의 훈련 장면을 지켜보았다. 박태환 선수도 별 수 없이 어린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들이 몸을 푸는 레인에 들어가 함께 경기 준비를 하게 된 것이다.

박태환은 200m 예선을 1.50.92의 기록으로 통과했고, 결승에서 1.46.31로 1위를 차지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한국신기록 1.44.80과 대회신기록 1.46.09보다 떨어지는 기록을 남겨 그를 지도하는 노민상 감독은 많이 아쉬워했다. 노 감독은 "전날 1500m를 하고 바로 다음 날 경기인데다가. 또 다음 날에 주 종목인 400m를 남겨두고 있어 많이 부담되었다"며 "여러 가지 일로 심리적 부담이 큰데다, 훈련도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래도 전성기 때 못지않은 기록을 보여준 제자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1500m 출전 경기 장면. 2위그룹 선수들과 엇갈릴 정도로 간격이 벌어져있다

1500m 출전 경기 장면. 2위그룹 선수들과 엇갈릴 정도로 간격이 벌어져있다 ⓒ 이종득


4종목 모두 리우올림픽 출전 위한 A기록 통과

박태환은 27일 주 종목인 400m에 출전해서 3.44.26의 기록으로 자신의 종전 기록인 3.47.41을 3초 이상 앞당기며 대회신기록을 갈아치웠고, 28일에는 100m에 결승에서 48.91로 대회신기록을 갈아치우며 1위에 올랐다. 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국신기록 48.42기록보다 0.5초 부족한 좋은 기록이었다. 박태환은 4관왕에 올랐다.

48.91 역시 리우올림픽 출전 A기준을 통과한 기록으로 박태환은 이번에 출전한 4종목 모두에서 국제수영연맹 기준에 따른 리우올림픽 출전 자격을 충족했다. 하지만 그는 출전할 수 없다.

특히 주 종목인 400m 기록은 2016년 기준으로는 세계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박태환의 능력은 이미 대한민국에서 독보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줘야 한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독보적인 기량을 선보인 그가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태환 선수는 이미 약물사건으로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징계기간 열악한 일정과 장소 문제로 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번 대회에서 좋은 기록을 냈다. 더군다나 대회에 참가하여 몸을 풀고 쉴 곳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뤄낸 결과다.

그런 그가 만약에 리우올림픽에 나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훈련 일정과 장소에 대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세계 톱클래스 선수의 대우를 받으면서 올림픽을  준비한다면 좋은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그가 선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은 기록을 경신한 대회도 대부분 세계대회나 아시안게임 등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1500m 경기를 마친 박태환선수

1500m 경기를 마친 박태환선수 ⓒ 이종득


"규정을 바꾸면 되지, 그게 어려운 거야?"

기자는 딸아이의 수영선수 활동을 적극 돕고 있다. 벌써 4년째다. 그동안 몇 번이나 딸아이가 수영을 포기하게 하려고 설득했었다. 정말 힘들어서 그랬다. 지도자에게 관심 받지 못하는 선수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아빠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딸아이는 수영을 정말 좋아한다. 자기도 박태환선수처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정말 진지하게 말한다. 딸아이를 가끔 지도해주는 정다래 전 국가대표선수처럼 자신도 꼭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수영꿈나무 아빠 노릇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정말 힘들다.

대회를 앞두고 훈련하는 딸아이를 보는 것도 힘들고, 대회출전을 해서 긴장하는 모습도 보기 너무 힘들다. 게다가 기록이 잘 안 나와서 실망하는 딸아이를 보는 것은 더 그렇다.

아마도 박태환선수 부모도 그렇게 지켜보며 적극적으로 응원했을 것이다. 족히 20여년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 그 부모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빠 박태환선수 정말 리우올림픽에 못 나가?"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운전하는 아빠에게 딸아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물었다.

"규정이 있어서 못나간다는데 어떡하니."

사회규범이 어쩌고 하면서 어렵게 설명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규정을 바꾸면 되지. 그게 어려운 거야?"
"규정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국민이 공감해줘야 가능한 일이거든."
"나는 공감하는데. 아빠는 안 그래?"
"아빠도 공감해. 한 번 실수로 너무 큰 죄 값을 치르는 것도 분명하단다."

딸아이는 아무튼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로 운전하는 나를 집에 올 때까지 괴롭혔다. 박태환 선수는 무조건 리우올림픽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 딸아이의 주장이었다. 그래야 자기같은 꿈나무들이 더욱 열심히 훈련할 것이라는 협박도 서슴지않았다.

솔직히 나는 딸아이의 협박에 박태환 선수가 당연히 리우올림픽에 출전해야 한다고 동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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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수영국가대표 리우올림픽 동아수영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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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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