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포스터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는 팀 캡틴 아메리카와 팀 아이언맨으로 나뉜 초인들의 싸움을 그렸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드는 묘한 무기력감과 불편함은 무엇일까.

▲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포스터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는 팀 캡틴 아메리카와 팀 아이언맨으로 나뉜 초인들의 싸움을 그렸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드는 묘한 무기력감과 불편함은 무엇일까.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좀 의아해지기도 한다. 초인들이 등장하는 SF 활극이 어마어마한 흥행 성적을 기록하는 현재의 추세가 말이다. 세계의 안위를 뿌리째 뒤흔들려는 '슈퍼빌런'에 맞서 '슈퍼히어로'들이 '슈퍼파워'를 활용해 적의 위협을 물리친다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 이런 이야기가 21세기인 지금도 '슈퍼 하지 않은' 여러 사람의 이목을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영화의 완성도에 따라 영화의 성적과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배트맨 대 슈퍼맨>) 같이 평이 갈리는 영화도 있는 걸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슈퍼히어로 영화 꼬리표가 붙는다고 해서 다 대박이 나는 건 아닌 듯싶다. 그렇긴 해도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아래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끌어모으고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아래 <시빌 워>)가 95% 넘는 예매율을 기록하는 현상은 분명 '현상'이라 부를 만큼 예사롭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신화의 자리를 대체한 영웅서사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무수한 신화와 전설을 통해 알 수 있듯, 인간적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초월하는 조건을 상상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일이다. 마법과 신통력이 미신으로 판명된 오늘날에는, 과학적 가설이 새로운 신화를 구축하는 토대가 된다. 현대의 신화가 되기를 자처함으로써 슈퍼히어로 영화는 신이 죽은 시대의 유사 신화로서 자신의 자격과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에 남았던 대목은 본편이 아니었다. 잡다한 서브플롯 때문에 산만해지고 별반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는 빌런 때문에 영화 본편은 지루했다. 오히려 슈퍼히어로들을 CG로 대리석 조각처럼 재현해놓은 스태프 롤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신화 속의 영웅들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슈퍼히어로들을 연출해놓은 것을 보며, 어쩌면 제작사인 마블 스튜디오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현대의 신화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해보기도 했다.

토르 같은 슈퍼히어로는 애초부터 북유럽 신화를 본떠 만든 외계인 히어로이기도 하지 않나. 다른 제작사에서 만들어졌고 아직 예고편만 공개되긴 했지만, 개봉을 앞둔 <엑스맨 : 아포칼립스>에서도 라, 크리슈나, 야훼와 같은 유명한 신들의 이름이 호명된다.

<어벤져스>나 <배트맨 대 슈퍼맨>과 같이 다수의 슈퍼히어로들이 (저작권이 허락하는 한에서) 제휴를 맺는 경향이 있다는 걸 보면 이 신화는 일신교가 아니라 다신교에 기반을 두고 있나 보다. 만신전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재능이 뛰어나거나 대단한 재력을 가진 덕에 신적인 힘을 지닐 수 있었던 소수 엘리트가 초월적인 적에 맞서 세계를 구원한다. 여기에 어떤 인간적인 요소가 끼어들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슈퍼'하지 않다

초능력이 없는 우리 디시인사이드 히어로 갤러리의 유저들이 합성해서 만든 이미지. 본래 배트맨의 대사는 "우린 용기를 나눌 수 있어,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이다. 웃고자 만든 패러디이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들의 무기력함이 지금 슈퍼히어로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 초능력이 없는 우리 디시인사이드 히어로 갤러리의 유저들이 합성해서 만든 이미지. 본래 배트맨의 대사는 "우린 용기를 나눌 수 있어,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이다. 웃고자 만든 패러디이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들의 무기력함이 지금 슈퍼히어로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 디시인사이드 히어로 갤러리


<시빌 워>의 스토리도 결국 개인적 원한이 공공선의 추구라는 대의에 가려지는 구도로 전개된다. 이야기가 비인간적인 영웅들의 활약상에 가까워질수록 영화는 점점 더 스펙터클한 구경거리에 가까워진다. 현실에 가까운 무엇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초인적인 힘으로 범죄와 맞서 싸우면서도 고담 시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해 주인공이 악역이 되기를 자처해야 할 상황으로까지 몰리는 <다크 나이트> 정도가 어쩌면 슈퍼히어로 영화가 확보할 수 있는 현실성의 최대치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일반' 대중의 여론이 <다크 나이트>에서는 이겨낼 수 없는 힘으로 작용하는 반면 <시빌 워>에서는 슈퍼히어로들의 진로를 일시적으로 방해하는 장애물 정도의 역할을 하는 데서 그친다. 이런 점에서도 <시빌 워>는 결국 여러 흥미로운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슈퍼한 그들'만의 이야기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어쩌면 애초에 슈퍼히어로 영화로부터 현실과의 접점을 찾는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관객이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고자 결정한 순간부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영웅의 활약상을 지켜보기로 동의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권능을 가진 소수가 가상의 현실을 지켜내는 과정을 한자리에 앉아 올려다보는 동안, 실제의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그것을 닮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보게 된다. 현실에 개입하고 그를 개선하는 것이 자질과 능력을 갖춘 소수의 일이 되고, 권한 없는 다수는 거리를 둔 채 '능력자'들이 활약하여 그 결실이 낙수효과라는 시혜로 다가오기만을 기대하고 지켜볼 뿐인 상태가 당연시되고 있지는 않나.

이 나라의 정치권이나 정치권을 다루는 언론의 행태를 생각하면 당연히 그런 의심을 해볼 만도 하다. 어떤 정책적 대안이나 노선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유력한 몇몇 정치인이나 계파의 세 싸움 따위나 주목받곤 한다. 익숙한 대립구도가 만들어지면 시청자들은 그 진부한 '드라마'를 욕하면서도 구경할 뿐인 상황이 지속한다.

'마드리드 디사이드'(인터넷을 통한 스페인 마드리드의 직접민주주의 실험)와 같은 형태로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는 한다. 하지만 이 땅의 '범인'들에게 현실에 참여할 여지가 얼마나 확보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별반 낙관적인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극장에서 슈퍼히어로들의 활약상을 우러러보는 것이 만신전의 제의가 되고, 그에 동참하는 것이 거부하기 어려운 대세가 된 지금이다. 우리의 현실은 정말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인가 곱씹어보게 된다.

슈퍼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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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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