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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복어탕은 주로 지리로 끓인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 복어 특유의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살아있다. 여수 장안복집에서 2인분을 시켰더니 쫄복 5마리와 콩나물과 미나리가 듬뿍든 쫄복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여수의 복어탕은 주로 지리로 끓인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 복어 특유의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살아있다. 여수 장안복집에서 2인분을 시켰더니 쫄복 5마리와 콩나물과 미나리가 듬뿍든 쫄복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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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복어탕은 궁합이 안 맞는 걸까?

오래전 일이다.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산에서 '초원복집' 사건이 터졌다. 1992년 김영삼-김대중-정주영 3자구도 대선을 앞둔 12월 11일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부산 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민자당 김영삼을 당선시키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들은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 모였다.

이 비밀 회동에선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해"라는 '불법 선거 개입' 모의와 '지역감정 조장' 발언이 나왔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대체... '쫄복탕'이 무엇이길래?

쫄복 네 마리와 황복의 모습. 노란 황복은 임진강 쪽에서 많이 나지만 쫄복은 목포와 신안에서 많이 잡힌다.
 쫄복 네 마리와 황복의 모습. 노란 황복은 임진강 쪽에서 많이 나지만 쫄복은 목포와 신안에서 많이 잡힌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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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4년이 흐른 후 '쫄복탕'으로 한 정치인이 인구에 회자됐다. 주인공은 국민의당 박지원 신임 원내대표다. 그는 세월호 2주기였던 지난 16일, '복어탕' 때문에 혼쭐이 났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진도는 보배의 섬! 풍광이 좋아 관광객이 많습니다. 국립남도국악원 군립민속예술단의 국악공연도 명품! 바닷가 'OO식당'에서 쫄복탕을 잡수셔야 진도관광 진수입니다. 진도로 오세요. OO식당 쫄복탕을 잡수세요."

이를 본 많은 누리꾼들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오늘 같은 날 맛집 자랑이라니…"라면서 박 의원을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SNS에 올린 그의 글은 급속히 공유됐다. 그의 글을 공유한 한 누리꾼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모르는 날에 쫄복탕 먹으러 오라니 니가 그러고도 인간이냐"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물론 박 당선자는 '쫄복탕 홍보'에 앞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세월호 참사를) 이렇게 잊어서는 안 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바르게 처리돼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뒤이어 올린 유력 정치인의 쫄복탕 예찬론은 시기상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과연 그가 극찬한 '쫄복탕'이 어떤 음식이기에 '마성의 힘'을 갖는 걸까? 쫄복(졸복)은 '작은 복어'의 일종이지만 성어가 되면 20~30cm까지 자란다. 남해안 여수 지역의 섬들은 쫄복의 교미장소로 뒤늦게 알려진 곳이다. 복어는 세계적으로 100여 종이 있다. 국내와 일본에 분포하는 복어는 약 38종이다. 자주복, 황복, 참복, 검복이 대표적이다. 황복은 임진강 쪽에서 많이 나지만, 쫄복은 목포와 신안에서 많이 잡힌다.

쫄복탕을 취재하기 위해 며칠간 여수의 이름난 복어집을 수소문했다. 지난 27일 여수시청 1청사 바로 옆에 위치한 '장안복집'을 찾았다.

쫄복을 손질하는 모습. 쫄복은 핏대에 모든 독이 들어 있기에 먼저 배를 가른다.
 쫄복을 손질하는 모습. 쫄복은 핏대에 모든 독이 들어 있기에 먼저 배를 가른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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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복 손질하는 모습. 쫄복은 숫놈의 정액 덩어리인 곤의 모습이다. 곤은 끓여 먹으면 식감이 별미다.
 쫄복 손질하는 모습. 쫄복은 숫놈의 정액 덩어리인 곤의 모습이다. 곤은 끓여 먹으면 식감이 별미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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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복 손질하는 모습. 배를 가른후 쫄복에서 핏대를 제거하면 독이 없어진다.
 쫄복 손질하는 모습. 배를 가른후 쫄복에서 핏대를 제거하면 독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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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주방장의 복어 손질을 직접 지켜봤다. 복어는 손질이 무척 까다롭다. 아무리 손질을 하더라도 약간의 독성이 남기 때문이다. 칼로 배를 가르니 내장이 나왔다. 복어 독이 모인 곳은 피(혈관)다. 핏대를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제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쫄복 네 마리와 황복 한 마리를 손질하니 정액 덩어리인 '곤'을 가진 수놈 한 마리가 나왔다. 곤을 가진 숫복어가 나온 걸 보면 지금이 교배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어는 태어날 때부터 독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알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사리나 갑각류를 캐먹는 등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독이 생긴다. 양식복이 독이 없는 이유다. 복어의 제철은 늦가을에서 2월까지다. 지금처럼 유채꽃이 필 무렵부터 독성이 강해져 4~6월이면 복어 독이 절정에 이른다. 산란철이기 때문이다. 복어는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자갈밭에서 암컷이 산란하면 재빠르게 수컷이 정자를 뿌려 체외수정을 통해 번식한다.

여수의 복어탕은 주로 지리로 끓인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 복어 특유의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살아있다. 2인분을 주문했더니 쫄복 네 마리, 황복 한 마리와 콩나물 그리고 미나리가 듬뿍 들어간 쫄복탕이 식탁 위에 올라왔다. 속이 확 풀렸다.

내장 빼도 1시간 동안 헤엄쳐 다니는 '복어'

장안복집 주방장 김경희(58)씨는 "복어는 일반 생선과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장안복집 주방장 김경희(58)씨는 "복어는 일반 생선과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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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복집 주방장 김경희(58)씨는 "복어는 일반 생선과 다르다"라면서 "쫄복은 독성이 강한 대신 살이 연하고 부드러워 식감이 좋다"라고 설명했다. 복어가 일반 생선과 다른 이유는 뭘까.

"생선은 손질하면 바로 죽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치망에서 갓 잡아온 살아있는 복어는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물에 담가둬도 한 시간 동안 뽁뽁뽁 헤엄쳐 다녀요. 그만큼 복어는 생명력이 강해요."

복어 요리는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이란 독 때문인데 복어독은 청산가리의 10배가 넘을 만큼 강력하다. 성인의 경우, 0.5mg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다. 복어 한 마리로 30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잘 익은 쫄복을 건져 양념초장에 찍어먹으니 그 맛이 환상적이다.
 잘 익은 쫄복을 건져 양념초장에 찍어먹으니 그 맛이 환상적이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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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탕을 먹고 탈이 나면 처음에는 혀 끝에서 얼떨떨한 감이 온다. 어지러움을 동반한 피로를 느끼기 시작해 잠이 쏟아진다. 이후 언어 장애가 따르고 점점 독이 퍼지면 온몸이 마비되고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증상이 오면 즉시 119를 불러야 한다.

애주가들은 숙취해소용으로 복어탕을 즐겨먹는다. 또 항암환자들도 복집을 찾는다. 그 이유는 복어 국물이 독한 약기운을 해독시키기 때문이란다. 극소량의 테트로도톡신이 몸에 들어가 피를 맑게 하고 숙취 후 복국을 먹으면 주독이 배출되는 원리다.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복 요리를 먹은 후 '그 맛은 죽음과도 바꿀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요즘도 일부 미식가들은 독성이 강할수록 복어맛이 좋아진다고 믿으며 복어독을 과신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한다. 소량으로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자기 몸을 과신하는 자나, 분위기 파악 못하는 정치인이나 시원한 쫄복탕 한 그릇 드시고 속 좀 차렸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쫄복탕, #박지원, #장안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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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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