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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에서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다시 봄이 올 거예요>(창비, 2016, 아래 <다시 봄>)를 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봄>에 담긴 10대들의 목소리를 좀 더 깊이 듣고 새로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위해 <오마이뉴스>에 '<다시 봄>을 읽다'라는 제목으로 여섯 차례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그 첫 번째 글인 이 글은 '움직이는청소년센터 EXIT'와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의 활동가와 청소년들이 '4.16 기억과 행동 청소년 실천단'을 꾸려 활동했던 경험, 그 과정에서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읽고 유가족 형제자매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경험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머리를 맞대어 함께 쓴 글입니다. 아래 인용된 이야기는 실천단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옮긴 것입니다. - 기자말

2015년 봄,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와 우리 주변 청소년들의 팍팍한 삶이 언제 풀어질지 길이 쉽게 보이지 않던 때였다. 가족이나 주변의 그 누구도 우리의 생존에 대한 책임을 나눠질 수 없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책임'을 요구했지만, 책임질 수 있는 힘을 가질 기회나 자원은 허락하지 않았다. 졸업장이나 이렇다 할 기술이나 일 경험을 가지지 못한 어린 존재들이 내미는 손길을 세상은 쉽사리 붙잡아주지 않았다. 경제적인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별로 없었지만, 시간은 많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 즈음 세월호가 침몰한 지도 일 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절박한 외침이 이어졌지만 세상은 무엇 하나 제대로 변하지 않은 듯 보였다. 유가족들이 세상의 벽을 마주할 때 느낄 막막함이 우리에겐 왠지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끼리 서로의 손을 붙들어 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검정고시를 치른 뒤 안산에 모여 '416 기억과 행동 청소년 실천단(아래 실천단)'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유가족 부모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세월호참사와 우리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토론했다. 또 도보행진을 하기도 하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올해 우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번째 봄을 맞아 다시 실천단을 꾸렸다.

어린 까닭에, 어린 덕분에

ⓒ 4.16 기억과 행동 청소년실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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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실천단'은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 <다시 봄>을 함께 읽고, 직접 형제자매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언니를 잃은 10대와 동생을 잃은 20대 초반의 형제자매가 우리의 초대에 응답해주었다. 실천단이 마주할 상대가 또래라는 사실이 처음에는 조심스럽고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어느새 또래인 덕분에 서로의 이야기에 더 깊게 닿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처음엔 만나기 싫었어. 부담스러웠어. 그분들을 대하는 나의 행동이 너무나 조심스러워야 할 것 같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근데 점점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분들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고 부담감 같은 게 줄어들었어."
"유가족 부모님보다 좀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어. 뭔가 어른들하고는 다른 느낌... 같은 유가족이긴 한데, 뭔가 또래니까 말 한마디 한마디가 더 마음에 와 닿는 느낌?"

실천단 청소년들에게는 한국 사회에서 '어린 존재'로 살아가면서 감정과 생각들을 삼켜야 했던 공통의 경험이 있었다. 누군가가 조언이나 위로랍시고 건넸던 말들에 상처를 받았던 순간들, 누군가에게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당했던 순간들도 많았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친구나 형제자매를 잃은 '어린 존재'들의 고통은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에 가려지곤 했다. 가까운 사람을 잃은 슬픔과 고통의 크기는 그 누구도 섣불리 재단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이에 더해 희생된 형제자매들의 몫까지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게 되거나 슬픔에 잠겨 있기보다는 학생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재촉에 내몰리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공통의 경험들은 세월호 형제자매들과 실천단 청소년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감응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어주었다.

"아파본 사람이 아픔을 안다고 하잖아. 내 경험을 비춰서 상대방을 바라보고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으니까 더 서로 배려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들도 그들만의 아픔이 있었을 텐데 슬픔을 슬픔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했던 거 같아."
"나를 생각해도 어떤 특정 시기나 순간을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은 항상 했던 거 같아. 오히려 내 생각이나 감정을 인정받고 존중받는 게 더 어색했어. 사회적으로 인식이 바뀌어야지. 아무리 법을 개정하고 아무리 떠들어도 사람들이 계속 그렇게 생각하면 바뀔 수가 없어."

배가 기울던 당시 선내에 울려 퍼지던 '가만히 있으라'는 메시지를 두고 누군가는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을 대하는 태도와 교육 방식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목소리를 막으려 하는 국가를 떠올리며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고 했고, 그 말은 형제자매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실천단 청소년들 역시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여전히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말과 행동을 가로막는 '가만히 있으라'는 세상의 메시지에 질문을 던지고 분노를 표했다.

"어른들은 우리가 실패를 하지 않게 도와준다고 생각하잖아. 그래서 정보를 주지 않고. 자기가 이렇게 살았으니까 너도 이렇게 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청소년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 선택이 가능할 수 있게 다양한 정보들을 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어릴 때부터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해낼 수 있어야지 더 생각이 많고 더 깊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세월호 교과서나 단원고 교실에 관한 이야기도 학생들에게 알리지 않고 다 비밀로 하려고 하잖아. 무조건 학생들에게 피해가 된다고 하지만 그거 완전 다 개뻥이고. 에이그. 원래 세월호 같은 일은 학생들에게 더 많이 알려주고 그래야지 그 아이들이 그걸 보고 느끼는 감정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것조차 안 되는 데 무슨..."

위로의 공동체를 만나다

ⓒ 4.16 기억과 행동 청소년실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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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처음엔 큰 배가 바다에 빠졌고 그래서 사람이 많이 죽은, 그렇지만 남의 일 같은 뉴스라고 생각했다. 슬프긴 했지만 내 곁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진 않았다.

하지만 <다시 봄>은 뉴스를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참사 현장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했다. 책에는 세월호 참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겪은 생존학생과 형제자매들이 참사 이후에도 '이어진 참사'와도 같았던 일상을 겪어낸 이야기와 그럼에도 일구어낸 크고 작은 변화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세월호가 그저 단순한 해상사고가 아니라 무언가 진실이 숨겨져 있는 복잡한 사회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실천단 청소년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혈연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 않거나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등의 이유로 받아왔던 편견과 상처들을 떠올리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유가족 형제자매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참 많이 눈물이 났고,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그 만남에서 자신이 싸워야 하는 이유를 찾기도 했다.

"처음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는 그냥 배가 사고 난 줄 알았고 선장만 나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실천단 활동하면서 내가 알고 있던 거랑 진실이랑 너무 달라서 충격적이었어."
"<다시 봄>에서 자기가 살인자 같다고 생각하는 친구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남자 아이를 살리려고 최대한 노력했다가 구하지 못한 건데 그걸 자기 탓으로 돌리고 죄책감을 느꼈잖아. 왜 노력한 사람이 힘들어야 하는지 화나고 짜증나."

우리는 세월호참사로 아픔을 겪고 있는 또래 친구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었지만, 그들에게 예상치 못한 위로와 힘을 얻기도 했다. 때문에 사회적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주변의 사람들도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우리는 발견했다.

"우리도 진실을 알고 싶고 무엇보다 힘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
"오히려 우리가 유가족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를 받으니까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 유가족 형제자매들에게 힘이 있어서 우리가 그 힘들을 받았어. 그렇게 해서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기고 슬퍼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긴 것 같아."
"상처를 계속 이야기하고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 특히 세월호 참사처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발생한 상처일 때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프고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더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슬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도 모두 그 당시를 목격한 목격자이니까 같이 슬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계속 함께 이야기를 하다보면 조금씩 어떤 부분은 덤덤해지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힘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실천단 활동을 하는 동안 어려움도 많았다. 처음엔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낯설었고, 직접 기획했지만 생각보다 빡빡한 일정이 버겁기도 했다. 안산의 청소년들이 직접 준비했다는 안산 청소년 촛불문화제에 설레고 반가운 마음으로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찾아갔지만 교복을 입지 않았고 학생증이 없다는 이유로 떨어져서 행진하도록 제지당하고, 광장에 입장하는 것도 거부당하는 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또 사람들에게 직접 만든 노란리본을 나눠주며 도보행진을 하면서는 리본을 안 받으려 하는 사람들, 아직도 그 이야기냐며 화를 내는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를 뚜벅뚜벅 앞으로 나가게 하는 힘은 친구들과 그 과정을 함께 겪으며 서로에게 보낸 위로와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듯했다.

<다시 봄>에서 형제자매 최윤아 님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힘든 투쟁을 하고 있는 엄마를 보며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해도 억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 사람이라는 확신과 믿음을 느꼈다고 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합동분향소에 갔을 때 편지를 읽었던 게 기억에 남아. 유가족인 누나가 쓴 편지였는데, 만약에 나도 억울하게 죽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편지를 써준다면 위로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마도 우리 실천단들은 나를 위로도 해주고 진실도 밝혀주지 않을까 하는 안도도 생기고... 실천단 활동을 하면서 내가 변화한 게 있다면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진상규명을 하라고 모인 게 놀랐어. <다시 봄>에서도 그렇고 시위에서도 그렇고 경찰들은 우리들이 모여 있으면 계속 헤집어 놓으려고 하잖아. 이야기는 안 듣고. 근데 나랑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도망치지 않고 동등하게 요구하니까 뭔가 되게 신기하고 재밌었어. 내년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야지."

바뀐 것이 없다? 우리가 변하고 있다

ⓒ 4.16 기억과 행동 청소년실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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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단 활동 첫 무렵에는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겠어. 힘들어. 내년엔 안 올래"라는 말을 자주 하던 한 청소년이 있었다. 그랬던 이가 마지막날 광화문까지 도보를 하는 동안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외면에도 굴하지 않고 "세월호를 기억해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노란리본을 나눠줬다.

그이는 일주일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던 전철에서 "너무 슬퍼서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라고 말했다. 6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가 가장 마지막으로 울었을 때라고 했다. 이튿날 <다시 봄>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되었는데, 사실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봄>에 담긴 이야기로 만든 웹툰을 찾아 건네줬다. 그리고 몇 분 뒤, 그는 새빨개진 얼굴로 뚝뚝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실천단 하면서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했어. 나의 옛날을 돌아보니 내가 남들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았던 거 같아. 나는 사람들에게 받은 것도 많았는데, 나는 남들에게 배신을 때리기도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어. 그렇게 남들을 아프게 했던 이유는 나도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 같지만... 반성을 많이 했어. 이런 마음들이 들면서 철든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내 스스로가 좋아."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또 한 명의 청소년이 있었다. 실천단 활동을 하기 전에는 평소에 울지 못해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기도 하고, 가끔 소리 내어 우는 활동가에게 핀잔을 주기도 하던 이였다.

"형제자매들 앞에서 오열하면서 운 게 처음이었어. 실천단 하면서 감정을 숨기거나 참기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제 쌤이 우는 거 이해하겠다고 했던 거야. 어떻게 보면 울지 말라면서 쌤의 감정을 막으려 했던 게, 이제 그만 좀 하라는 사람들과 똑같은 행동이었던 거 같아. 사람들이 유가족들이나 우리들에게 그만 말하라고 하는 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몰라서 그러는 것 같아."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가 이미 지나간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노란 리본을 만들고 유가족들에게 전할 메시지 액자를 채우고 서명을 받기 위해 천막을 치고 있을 때, 지나가던 한 남자 청소년이 다가와 말했다.

"세월호요? 그거 벌써 2년이나 지났잖아요."

실천단 청소년들은 그이에게 <다시 봄>에서 읽고 다큐에서 보고 형제자매들에게 직접 들었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이는 천막을 접을 때까지 4시간 동안 자리에 함께 있다가 돌아갔다. 그이가 노란리본에 남긴 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살아남은 우리들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행동합시다."

옆에서 사람이 쓰러져도 가던 길, 하던 일을 멈추지 말라는 일상의 속삭임은 우리가 서로의 곁을 지켜줘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게 맞는 줄 알았다. 우리는 실천단 활동을 통해 옆에 있는 서로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 4.16 기억과 행동 청소년실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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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 지나도록 바뀐 것은 하나도 없지만 우리들이 변하고 있었다. 내가 변하고, 내 옆의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변하고, 또 나의 변화가 내 옆의 사람을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서로의 곁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되었을 때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공감의 힘과 우리들이 바라는 세상을 일구는 동력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런 공감의 힘은 더욱 더 조밀하게 곁을 잃은 사람들을 찾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4월 16일. 우리는 범국민추모집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광화문 역사 한 편에 있는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농성장을 지나게 되었다.

유심히 현수막과 피켓의 문구를 살피던 이는 실천단 평가회의에서 다양한 단위의 활동에 결합을 제안했고 또 다른 이들은 세월호를 일상에서 알리는 활동을 기획 중이기도 하다.

"일인시위나, 리본 나눔을 가까운 역에서 주기적으로 하면 일상 속에서 세월호를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의 모임이 지속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들로 활동해 보고 싶어."
"내가 제일 크게 달라진 건 사회에 대해서 관심이 생긴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소년이나 20대들을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활동을 시작으로 사회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뭔가 활동을 하는 것에 더 관심 가지게 됐고 나도 더 많은 목소리를 내보려고 하게 된 것 같아. 위안부 집회나,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퀴어퍼레이드 집회가 있는데 거기에도 우리들의 힘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지 들어보고 싶어."

서로의 곁을 지키며 만들어낸 위로들은 우리에겐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덧붙이는 글 | 4.16 기억과 행동 청소년실천단이 함께 쓴 글입니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창비(2016)


태그:#<다시 봄이 올 거예요>,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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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에 관심이 많다. 함께 쓴 책으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여기 사람이 있다>,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재난을 묻다>,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이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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