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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생각] 죄수의 딜레마가 있다. 두 명의 죄수가 있다. 둘은 서로 다른 방에서 심문을 받는다. 둘다 범행을 부인하면 구류 3일 만에 풀려날 수 있다. 그러나 한명이 배신하여 자백을 하면 묵비권을 행사한 죄수는 10년형을 살고 자백한 죄수는 무죄로 풀려난다. 이러한 극도의 긴장감속에 시간은 흐른다. 저 놈이 나를 배신하지 않을까? 결국 두 죄수는 상대방을 믿지 못해 둘 다 자백을 하고 5년형을 산다.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이야기이다.

입시는 죄수의 딜레마이다. '학종(학생부 종합 전형)' 사태를 보면서 죄수의 딜레마가 떠오른 건 나만의 생각일까? 오늘은 학생부 종합 전형이 왜 확대되면 안 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한가지 오해를 하면 안 된다. 학생부 종합 전형은 꼭 필요한 전형임을 밝혀둔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종 사태'처럼 이 전형이 마치 모든 입시의 문제를 또는 교육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우려를 표명하면서 이 글을 쓴다.

[두번째 생각] 학생부 종합 전형은 모호한 경쟁이 되기 쉽다. 명확하지 못한 기준으로 대학입시가 이루어지면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산다. 이러한 예는 시골마을의 싸움과 주주총회의 싸움으로 비교해볼 수 있다. 돈이 걸린 주주총회의 싸움과 자존심이나 묘한 경쟁심이 걸린 시골마을의 싸움 중 어느 싸움이 더 격렬할까? 주주총회 싸움은 명확관화하다. 끝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골마을의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이다. 그러다 보니 냉장고 음료수에 농약을 타는 것이다. 학생부 종합 전형이 취지는 좋지만 전방위적으로 확대되면 납득하지 못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엄청 양산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다. 학생부 종합 전형은 이러한 우리 국민의 성향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세번째 생각] 학생부 종합 전형은 모든 경쟁을 교내로 끌여들여 구성원들간 공동체 의식에 상처를 받을 것이다. 지금도 내신 때문에 학교내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학생부 종합 전형이 생겨난 이후 이제 성적만이 경쟁이 아니다. 비교과 활동도 경쟁을 해야 한다. 다함께 잘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천진난만한 생각이다. 동아리를 만들어도 회장을 해야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회장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능이 경쟁이라면 함께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을 함께 잘보면 된다. 그러나 학생부 종합 전형은 내 옆에 친구들을 따돌려야 한다. 한번이라도 선생님의 관심을 더 받아야 학생부에 기록될 수 있다. 아이들을 완전히 해바라기로 만드는 것이 학생부 종합 전형이다. 선생님들은 더 좋을 것이다. 예전보다 자신들에게 매달리는 아이들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단체 소속  교사들이 이 학생부 종합 전형에 올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자신들의 영역 확대를 주장하는 측면이 있다.

[네번째 생각] 입시란 이기주의 가설로 설명되어져야 한다. 이기주의를 숨긴 채 입시를 이야기하는 건 본질을 흐리는 화법이다. 입시과열로 경쟁이 난무하는 시대라느니, 입시과열이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좋지 않다느니 하는 감언이설로 아이들을 속여서는 안 된다. 입시는 어차피 함께 손잡고 들어가는 게임이 아니다. 누군가는 합격하고 누군가는 패배의 쓴잔을 마시는 게임이다. 입시를 착한 사람들이 하는 게임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하는 것이 학생부종합전형이다.

입시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공정성이다. 서울의 강남 아이와 지방의 똑똑이가 경쟁을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공정한 게임인가? 난이도 높은 문제를 제한된 시간 안에 풀어서 합격하는 놈을 뽑으면 된다. 이러한 게임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강남의 학부모들이다. 지방의 똑똑이들이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자기 자녀들과 경쟁하는 구조를 치가 떨리게 싫어하는 학부모들이 강남 학부모들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입시가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려온 것이다. 입시제도가 좀 바뀌어 지방의 똑똑이들이 좀 따라갈 만하면 또 바뀐다. 그 끝판왕이 학생부 종합 전형이다.

[다섯번째 생각] 사교육과 학생부 종합 전형을 생각해본다. 얼핏 보기에 사교육을 유발하는 것은 영어나 수학같은 교과 지식을 쌓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학생부 종합 전형의 보편화는 전방위적인 사교육의 확산이 나타날 것이다. 특히, 알짜배기 사교육이 서울을 중심으로 더욱더 판을 칠 것이다. 이제 학생 한명에 사교육 담당자가 1:1로 붙어서 코칭을 해주는 사교육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학종'이 금수저 논란에 휩싸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입시철만 되면 대치동 학원가에 모대학 입시관계자가 와서 강의를 하는 풍경은 학생부 종합 전형이 얼마나 불공정 게임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오죽하면 정부는 입학사정관을 그만두고 학원가에 취업하는 것을 3년이 지난후에 가능하다고 법을 만들었을까?

[여섯번째 생각] 당사자에게 물어라. 대한민국은 어떤 문제가 나타나면 정작 당사자들은 제쳐두고 주변에서 더 난리다. 학생부 종합 전형의 당사자는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학생부 종합 전형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교사들이 토론하는 장소에 가보아도 자기들 이야기만 있지 아이들의 의견을 조사한 결과 같은 것은 없다. 대학의 입시관계자나 입학사정관들이야 자신들의 밥줄이나 권한이 확대되는데 당연히 학생부 종합전형의 확대를 주장할 것은 너무 뻔한 이야기이다.

[일곱번째 생각] 학종 사태는 사회적 맥락의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미시적 접근과 거시적 접근이 있다. 학생부 종합 전형을 단순히 교육의 문제, 입시의 문제만으로 보면 안 된다. 이는 입시제도의 큰 틀을 바꾸는 것이므로 거시적인 측면에서 조망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학생부 종합 전형이 학교교육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식의 주장은 너무 단순해 보인다. 이러한 미시적이고 순진한 생각들이 대한민국의 입시의 시행착오를 거듭해 왔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예견하지 못한 생각들이 입시를 이렇게도 바꾸어 보았다가 저렇게도 바꾸어 보았다가 하면서 우리의 교육을 망쳐온 것이다. 모닥불을 헤집으면 순간적으로 불길이 솟구치는 것처럼 우리의 입시는 헤집으면 헤집을수록 수많은 불길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여덟번째 생각]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제안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학생부 종합 전형은 미래인재를 키우기 위한 전략에 맞는 입시이다. 그러나 이 전형의 무분별한 확대는 교육계의 혼란과 사회적 고통과 비용을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학생부 종합 전형을 적정한 규모로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참에 대학별 본고사도 함께 여는 방안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는 학생부 종합 전형식의 인재도 필요하고 본고사형 인재도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의 교육정책이 3불(기여입학제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 본고사 금지)정책에 너무 얽매여 온 점이 많은데, 특히 이 3불 중 본고사 금지 정책의 경우는 나머지 2개와는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기여입학제와 고교등급제는 사람을 차별하는 아주 나쁜 정책이지만 본고사 금지의 경우는 사교육을 잡는다는 명분하에 3불에 포함되었지만 그렇게 하여 사교육이 잡혔다고 자신있게 주장할 사람은 거의 없다. 사교육은 사람들의 기대욕구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지 입시제도를 바꾼다고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학생부 종합 전형도 열고 대학별 본고사도 열어서 우리 학생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게 대학을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대학을 가는 학생, 논술로 대학을 가는 학생, 수능을 잘 봐서 대학을 가는 학생, 수능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본고사를 잘봐서 대학을 가는 학생등 그 길이 다양해질 것이며 학생들은 자신의 취향과 적성에 맞는 입시제도를 선택해서 대학엘 가면 되는 것이다.


태그:#학종사태, #학생부종합전형, #대학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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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교사로 산다는 것'의 저자 김재훈입니다. 선생님 노릇하기 녹록하지 않은 요즘 우리들에게 힘이 되는 메세지를 찾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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