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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상담도 치료도 없었습니다. 하루 한 번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했습니다. 잠재적 성추행 가해자라는 낙인으로 밤이면 사람들과 떨어져 독방에서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지루한 하루의 끝은 외로움과 싸우는 것이었고, 성 정체성을 부정해야 버틸 수 있었습니다. '호모'라는 비아냥거림은 마음에만 담아야 했고 "마음에 두고 있는 간호장교 없냐"며 건넨 군의관의 인사에 수치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이 악몽 같은 시간과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경험한 모든 것을 머릿속에서 지우길 바랐습니다. 약 1개월 반의 시간이 지나고 자대로 복귀해 만기 전역했지만 19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한 그때 그 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등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이 사건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지난 25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등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이 사건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 친구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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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병사가 육군 37사단에서 군형법 92조의6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격리조치를 당하고 성 정체성이 노출되는 등 인권 침해를 당했습니다. 지난 25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등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이 사건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접하고 나서 당사자가 겪었을 그 시간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생각했습니다. 누구보다 동성애자라는 자기 정체성을 긍정하고 부대에서 생활하길 원했지만, 군 생활은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선임병과의 성적 접촉이 상황을 이렇게 만들지 몰랐을 겁니다. 부대에서 '성추행 가해 병사'가 되고, 지휘관이 접근불가 결정까지 내릴지 몰랐을 것입니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는지 일방적인 추행이었는지 지금도 불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합의와 추행이라는 경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군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추행 가해자'라는 낙인이 찍혀 동료 병사들이 자신을 피하는 상황에 직면한 병사의 이야기가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성적 접촉 합의 여부 따지지 않는 군형법... '동성애' 자체가 죄?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를 위한 1만인 입법청원운동 선포 기자회견 사진으로 약 2개월간의 청원운동을 통해 2013년 6월 26일 5690명의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를 위한 1만인 입법청원운동 선포 기자회견 사진으로 약 2개월간의 청원운동을 통해 2013년 6월 26일 5690명의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 차별신고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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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형법은 강제성과 공연성이 없는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도 처벌합니다. 바로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사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6 조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조항의 존치를 말하는 이들은 '군의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는 이유를 듭니다. 하지만 이 조항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규약 위원회(자유권 위원회)에서도 폐지를 권고한 법입니다.

해당 병사는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을 처벌하는 법 규정에 의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합의였는지, 추행이었는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동성애자라는 존재, 바로 그 때문에 '성추행 가해병사'라는 단죄가 내려진 것 아닐까요.

문제는 사건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가 들은 말과 의무대에 강제 입실되어 있었던 상황입니다. 정식 입실도 아닌 가입실에, 사실상 격리를 목적으로 한 위장 입실이었습니다.

해당 병사는 부대 안의 외딴 섬 같은 의무대에서 5개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외출과 외박, 휴가가 제한되고 전화조차 거의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환자복을 입고 급식실에 가야 할 때는 "그야말로 고통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신과 외래 진료를 받을 만큼 불안과 우울 증세가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지휘관들은 다른 병사들에게 가까이 가지도, 말도 걸지 못하도록 지시하였다고 합니다.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이 사건의 원인인 것처럼 몰아세운 군 부대의 태도와 동성애 혐오를 기반으로 한 질문에 당사자는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도 충분히 군 생활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 마음은 해당 부대의 미흡한 대처와 동성애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으로 무참히 무너졌습니다. 누구와도 연락할 수 없었고, 도움을 받을 방법조차 잘 몰랐던 그는 아마 자신의 정체성과 싸워야 했을지 모릅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원망, 자신의 존재에 대한 원망이 악몽과 같은 그 시간을 더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감춰야 하는 현실

제가 군 생활을 한 지 19년이 지났습니다. 사회가 변한만큼 군대도 많이 변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성애를 바라보는 인식, 편견은 여전히 개선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이라는 사실을 이 사건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동성애자인권연대를 통해 밝혀진 군 인권 침해 사건을 기억합니다. 동성애자였던 한 병사는 상관에게 군 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던 중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혔습니다. 이후 부대 측은 해당 병사에게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증명하라'며 성관계 사진을 요구하고 성관계 횟수를 물었습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지도 10년이 지났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대관리훈령'에 동성애자 병사의 복무규정을 두며 인권침해를 최소화하려는 제도가 마련되었습니다. 부대관리훈령 제7장 '동성애자 병사의 복무'에선 '병영내 동성애자 병사의 인권을 보호하고, 동성애자 병사가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군복무를 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보장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부대관리훈령조차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가끔 입대를 앞둔 동성애자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군대도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커밍아웃해도 되느냐"고 말입니다. "부대생활을 하다 보면 비밀이 쉽게 지켜지지 못할 텐데 혹시나 자신의 정체성이 알려지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습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2년이라는 시간이 힘들겠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정체성을 최대한 숨겼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좋은 지휘관을 만나고 좋은 동료들을 만나면 좋겠다는 로또와 같은 확률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군 안에 있는 인권센터나 상담가를 찾으라고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군 시스템 자체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숨겨야 한다는 말. 앞뒤가 안 맞지요? 정체성이 알려지면 성추행 가할 수 있다는 낙인이 찍히고,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물으려 하는 모습. 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당사자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제가 쉽게 판단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렸을 때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정신병원의 독방보다 사람들의 비아냥거리는 모습이 가장 힘이 들었으니까요.

"쟤랑 있으면 성추행 당한다" "게이 섹스는 어떻게 하느냐" "게이클럽에는 가봤냐" "같이 있으면 너도 의심받는다" "너도 성추행당한 거 아니냐" 등 무수히 들었을 비아냥거림이 수치심으로 이어지고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그 힘마저 무기력하게 만든 건 아닐까요. 동성애 혐오와 차별은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당사자는 전역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억울한 감정을 치유하지 못한 채 악몽 같은 그때 그 시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사건은 한 명의 동성애자가 경험한 억울한 사연이 아닙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당사자의 정체성에 있지 않습니다. 해당 부대의 무능한 대처와 동성애자 병사의 인권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군대가 더욱 문제입니다.

국방부에 요구합니다. 이 건은 육군 37사단에서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해당 부대 지휘관을 몇 번 교육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군 복무를 하는 동성애자는 더 많을 것입니다. '부대관리훈령'이라는 허울 좋은 감투 뒤에서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감시가 필요합니다. 이 사건이 함의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인지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합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오늘(28일) 오후 2시 군형법상 '추행'죄(제92조의 6)의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레 선고를 연기했습니다.   

 육군 37사단 성소수자 인권 침해 사건, 네 가지 문제점 
지난 4월 25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소속 류민희, 조혜인, 한가람 변호사는 육군 27사단 성소수자 인권 침해 사건의 피해자를 대리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가람 변호사는 이 사건의 네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한가람 변호사의 동의를 얻어 해당 발언을 소개합니다.

"이번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에서 문제 삼는 것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군형법상 '추행'죄를 차별적으로 적용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진정인이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진술하고 주변 정황도 강제적일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진정인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가해자로 지목되었습니다.

특히 강제적이었다면 오히려 강제추행죄를 적용해야 하는데도 이상하게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상 '추행'죄를 꺼내 들었습니다. 추행범으로 몰리면서 진정인의 가족들은 상대방에게 합의금을 지급하고서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은 단 한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 병사가 동성애자였고 따라서 그의 행위는 동성애 처벌법에 따라 처벌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상대방은 피해자가 되고 진정인만 범죄자로 다루어졌습니다. 군대 내 동성애자가 언제나 잠재적 성범죄자로 여겨지고 있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동시에, 군형법상 추행죄가 있는 이상 군대 내에서 동성애자 병사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편견과 법률 때문에 헌병대와 수사관들은 진정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에만 집중했습니다. 남자랑 섹스해 보았느냐, 게이클럽에 가 보았느냐, 성추행을 저질러 오지 않았느냐 등을 묻고 추궁하면서 수치심과 모멸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렇게 벌어진 수사과정에서의 차별과 인격권 침해를 두 번째로 문제 삼으려 합니다.

세 번째로는 무려 5개월간 이루어진 동성애자 격리조치로서의 의무대 강제입실입니다. 진정인은 대대에서 떨어진 연대 의무대에 격리되어 5개월간 환자복을 입고 살아야 했습니다. 대대나 외부와의 연락은 차단되었습니다. 외출, 외박, 휴가가 모두 제한되었습니다. 위장입실, 강제구금이었습니다. 영장도 없이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신체의 자유, 통신의 자유 침해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대대에서 벌어진 다른 병사의 가혹 행위에 대해서는 가해자를 다른 부대로 전출시켰다고 합니다. 왜 어떤 사람은 전출이고, 어떤 사람은 의무대 강제입실인지 그 이유를 묻습니다. 이는 동성애자에 대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입니다.

전역 직전에는 기소유예 처분과 강제입실도 모자라 영창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입창자들은 모두 진정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과 영창에 들어오게 된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정체성을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알려서는 안 된다는 "부대관리훈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밀하고 민감한 개인정보인 성적지향을 공개하여 헌법상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것입니다."

원문은 이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4월25일 개최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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