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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람객이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전시장을 들어서며 전시장 입구에 걸려있는 대형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다.
 한 관람객이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전시장을 들어서며 전시장 입구에 걸려있는 대형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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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만 원' 전두환 전 대통령은 6월 중 회고록을 출간할 모양이다. 그러나 이 회고록에 "5.18 광주항쟁 발포 안 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자 궤변이라는 비난이 잇따랐다. 83세 노태우 전 대통령은 10년 넘게 와병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장남 노재현씨가 세운 유령회사가 10여 곳에 달한다고 <뉴스타파>가 폭로했다.

그 와중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테니스도 하고, 4대강도 유람 다니면서 말 그대로 '잘 삽니다'를 실천 중이다. 그리고 고 박정희 대통령 다음으로 취임한 대통령 중 최규하·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두 서거했다.

어쩌면 박정희 대통령이야말로 미우나 고우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고, 또 지금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전직 대통령 중 하나로 꼽아야 할 것 같다. 지난해 7월, 갤럽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전직 대통령 중 해방 이후 우리나라를 가장 잘 이끈 대통령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를 물은 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그렇다.

전국 성인남녀 2천여 명 중 44%가 '박정희'를 꼽았다.(관련 기사 : 5060은 "박정희" - 2030은 "노무현·김대중" ) '잘한 일이 많다'(67%)는 견해가 '잘못한 일이 많다'(16%)보다 압도적이었다. 예상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은 5060세대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반면 2030세대는 약 60%가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았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 중 긍정 평가가 우세한 건 이 3인뿐이었다.

어찌 됐건 '대통령 박근혜'를 가능케 한 일등 공신인 '독재자 박정희', '인간 박정희', '전직 대통령 박정희의 위력은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안 될 건 안 되는 법이다. 아니, 안 되는 건 막아야 한다. 최소한의 상식을 요구해야 한다. 서울시 중구가 다시 추진하려는 '박정희 공원' 얘기다.

논란 재점화되는 '박정희 공원'

서울시가 복원한 중구 신당동 박정희 전 대통령 가옥의 복원 후 풍경
 서울시가 복원한 중구 신당동 박정희 전 대통령 가옥의 복원 후 풍경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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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박정희가 5.16쿠데타를 모의했던 그곳. 서울 중구 신당동 주택가에 위치한 박정희 가옥은 그런 역사적 의의(?)가 있는 곳이다. 이 박정희 가옥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최근엔 또다시 중구가 이 부지에 '박정희 공원' 건립을 재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24일, 중구의회가 동화동 공영주차장 건립 예산 52억을 증액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총 사업비 300억 원 규모로 알려진 동화동 역사문화공원(박정희 공원) 건립 예산을 추진해온 중구의회가 박정희 가옥 인근 동화동 공영주차장의 올해 건립 예산을 84억 원에서 136억 원으로 늘린 것이다. 52억은 주변 건물 매입비 41억에 11억이 추가된 숫자다.

새누리당 소속 최창식 중구청장은 2013년부터 현재 지상 2층인 동화동 주차장을 지하 주차장으로 만들고, 지상에 박정희 가옥과 연계해서 동화동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구의회 심사과정에서 예산 삭감 등 진통을 겪었지만, 인근 주택 3채의 매입비용 등으로 올해 예산이 다시 상정되고 증액된 것이다. 

전체 297억 원이 들어가는 이 대규모 사업은 당시 '박정희 기념공간 조성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다가 2013년 결국 서울시와의 이견차로 성사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막대한 예산을 중구 구비로만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월, 최창식 청장은 다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름만 '동화동 역사문화공원'으로 바꾼 채 사실상 '박정희 공원' 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3년이 흘렀건만, 오매불망' 최창식 청장의 논리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5.16 군사 정변의 역사적 의의?

최창식 중구청장.
 최창식 중구청장.
ⓒ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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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혁명'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우리 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 이 지역의 가치를 살려 역사적 사실과 의미,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유익하다."

2013년 6월, 최창식 청장이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 한 인터뷰 중 일부다. 그 당시 박근혜 대통령마저 "국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 세금으로 기념 공원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당시 야당은 물론 다수 누리꾼들이 약 300억이 소요되는 기념 공원 건립에 반대하는 의견을 쏟아냈다. 일부 시민들은 '박정희 기념공원 조성' 반대를 위한 온라인 서명을 진행하고 중구청장 주민소환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박정희 기념공원 재추진 논란이 불거진 지난 2월, 최창식 청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이 사업의 주목적은 주차공간과 녹지공간 확충을 통한 생활환경 개선이다. 박 전 대통령의 우상화니, 기념이니 하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가옥은 5·16 군사정변을 결의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녔다. 공과를 떠나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 주변 건물들로 가려지게 놔두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5·16을 미화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고 그대로 보여주자는 의미다."

"제3세계 국가들이 새마을운동을 배우고 경북 구미의 박 전 대통령 생가를 찾는다는데 동화동 역사공원이 조성되면 그 수요를 바로 흡수할 수 있다. 명동 관광객도 끌어들일 수 있다."

등록문화재 412호인 중구 동화동 박정희 대통령 가옥은 고 박 전 대통령이 1958년 5월부터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육군 1군 참모장 시절인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후 공관으로 옮기기까지 가족과 함께 살았고, 1979년 10·26 사건 이후 청와대를 나온 박근혜 대통령이 1982년까지 살았던 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옥과 연계한 기념공원 건립사업이 사실상 '박정희 공원'으로 알려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중구청은 2011부터 이 사업에 대한 기본구상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밝혀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2012년 12월 말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용역도 발주했다. 이듬해 2월, 박 대통령 취임식 직후 전문가와 지역대표 등이 참석한 사업 착수보고회를 열기도 했다. 시기도 시기고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 충성이지만, 경제적 타당성마저 의심을 받아왔던 사업이기도 하다. 왜 그런지는 서울 상암에 위치한 박정희 도서관이 이미 일러주고 있다.

전직 대통령에게 바치는 세금 줄여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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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말, <주간동아>는 "'이름만 도서관' 책임 공방... '독재 미화' 논란에 서울시 기부채납·토지매매 올스톱"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2012년 건립된 박정희 도서관이 '궁같이 지어놓고'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더불어 2003년 설립 이후 2006년부터 도서관을 제외하고 전시관으로만 활용되고 있는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에 대한 내용도 곁들였다.

이렇게 전직 대통령 관련 기념관이나 도서관은 자칫 천덕꾸러기나 국가 예산만 잡아먹는 허수아비로 전락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월간조선> 역시 박정희 기념공원 건립 논란이 불거진 2013년 8월, "[뉴스진단] '朴正熙 기념공원' 논란과 전직 대통령들의 경우"란 기사를 보도했다. "역대 대통령 기념시설 건립·기념사업에 3500억 원 넘게 들어"란 내용과 함께 "냉정한 평가 없는 기념사업은 국론(國論) 분열만 초래"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 와중에 경북 구미시는 내년 초 200억 원을 들이는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을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박 전 대통령 생가 인근에 연면적 4천㎡, 유품 5천 600여 점을 전시하는 자료관을 2018년 6월까지 완공한다. 이 역사자료관은 임기를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받는 최고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전직 대통령에게 바치는 '조공'에 들이는 국민의 혈세는 줄일 필요가 있다. 특히나 박근혜 대통령 임기 기간 중 유례없이 횡행한 '박정희 마케팅'은 이제 중단할 때다. 구체적으로 착공과 완공 시기까지 못 박은 박정희 역사자료관은 둘째 치더라도, 최창식 청장이 밀어 붙이고 있는 박정희 공원 만큼은 중단해야 마땅하다. 우리 국민들이 도대체 저 50년도 넘은 5.16 쿠데타를 새삼 기념해야 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지역 차원의 경제적 효과도 검증된 바 없다. 인근 신당동의 떡볶이 타운이나 명동과의 연계 효과도 거리상 희미해 보인다. 이미 전직 대통령의 기념관들의 선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박정희 마케팅이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조공'이든, 이제 그만 두시라. '새마을 운동' 운운하는 구시대적 발상도 함께 날려 버리시라. 국민들의 세금으로 시계를 유신으로 돌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태그:#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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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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