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포스터.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오는 5월 4일 개봉을 앞둔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은 일단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만나는 이들이 있어 반갑다. 영화 <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과 영화 <파파로티> 이후 복귀한 배우 이제훈이다. 둘 다 영화계에선 급히 떠오른 스타이기보다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해왔기에 이번 작품에서의 기대감도 큰 게 사실이다.

25일 오후 서울 왕십리 CGV에서 언론에 먼저 공개된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관객들의 갈증을 풀어줄 의무가 일부 있다. 최근 신작 한국 영화들이 흥행과는 별개로 만듦새나 완성도 면에서 관객들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일각에선 이런 영화에 실망한 관객들이 발길을 돌리면서 절대 관객 수가 줄었다는 분석 또한 나오던 상황이다.

한국형 히어로물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한 장면.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일단 설정 자체가 흥미롭다. 홍길동이라는 이름에서 생각할 수 있듯 영화는 한국 고전 히어로의 이미지를 빌리면서 활극의 유쾌함을 확보하려 한다. 그렇다면 고전 영웅물로서 이 영화가 충실히 기능할까.

막상 공개된 영화는 그 반대에 가까웠다. 1980년이라는 시대적 배경만 알 수 있을 뿐 영화는 오히려 미국 서부극이나 할리우드 느와르를 연상케 하는 의상과 소품으로 가득 차 있다. 즉 모든 공간과 등장인물이 가상이라는 얘기다.

어릴 적 어머니를 잃은 홍길동(이제훈 분)이 복수를 위해 흥신소 일을 하다 그 대상인 한 노인(박근형 분)을 만나게 되는 과정, 그 노인의 두 손녀딸을 인질로 삼아 잔인한 복수극을 보이고 싶었으나 그들을 둘러싼 더 큰 음모를 발견하면서 갈등하게 되는 과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큰 음모의 주체는 광기어린 종교집단이다. 이들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기 위해 벌이는 일을 알아챈 홍길동이 스스로 각성하는 모습이 바로 영화가 의도한 쾌감 포인트였지 싶다.

조성희 감독은 관점과 상황에 따라 영웅일 수도 악한일 수도 있는 홍길동이라는 인물을 매력적인 영웅으로 설정했다. 그가 "고전 속 홍길동을 재해석 하고 싶었고, 할리우드 클래식 느와르 영화의 장점을 가져오고 싶었다"고 스스로 밝혔듯, 우선 <탐정 홍길동>은 한국형 영웅물의 새로운 맥락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화면과 음악의 리듬감도 상당히 뛰어나다. 이 지점에선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이명세 감독의 영화 < M >이 떠오르기도 한다. 상업영화로서 갖춰야 할 미덕을 일정 부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숨은 맥락들

여기까지만 말하기에 <탐정 홍길동>이 품고 있는 또 다른 미덕이 아쉽다. 사실 이는 조성희 감독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보인 미덕이라 할 법한데, 바로 가상 설정에 숨겨놓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이 그렇다. 그의 영화 속 이야기와 캐릭터들은 가상이지만, 그걸 통해 현 대한민국의 구조와 권력 혹은 인간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찌르는 걸로 읽히기도 한다.

2009년 중편 <남매의 집>으로 데뷔한 조성희 감독은 그간 가상 설정 속에서 이야기와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직조하는 능력을 증명해왔다. <남매의 집>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가난한 오누이를 통해 인간 의식의 나약함을 비판했다면, 장편 <짐승의 끝>(2011)에서 그는 도로와 외진 마을을 오가는 인물들을 통해 지구 종말과 그에 대한 공포감을 사실적으로 전했다.

많은 관객들이 근작인 <늑대소년>(2012)을 기억할 것이다. 단순히 보면 야생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한 소년과 유약한 소녀의 사랑을 다룬 청춘 판타지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이면엔 전쟁 병기로 키우기 위해 수많은 청년들에게 생체실험을 강행한 국가권력의 야욕이 있었다.

조성희 감독만의 감수성과 주제의식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면 <탐정 홍길동> 역시 그 명맥을 잇는다. 죽은 엄마의 복수를 꿈꾸며 탐정을 자처한 홍길동은 상황에 따라 절대 악인이 될 수도 있었다. 노인의 두 손녀를 미끼삼아 치밀하게 계획을 실행하려는 그가 옳은 일과 사적 복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절대 선인 내지는 절대 악인을 설정해놓고 게으르게 이야기를 풀어가던 한국 영화(특히 대기업 자본의 기획영화)들이 일부 배워야 할 미덕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조성희 감독은 인파이터라기 보단 아웃복서로서 결정타를 날리는 데 탁월하다 말할 수 있다.

유쾌함과 허술함 사이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한 장면.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아쉬운 부분도 존재한다. 이야기의 유기성이 다소 떨어진다. 홍길동 이미지에 천착한 나머지 그와 적대하거나 그를 돕는 다른 캐릭터들이 소모적으로 쓰였다. 물론 이는 한국 상업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기도 하다.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각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살아나 있는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될 수 있는 지점이다. 홍길동에게 사건의 단서를 제공하며 도움을 주는 여관주인(정성화 분)이나 카센터 주인(유승목 분)의 활용이 아쉽다.

또한 영화의 초중반부가 상당히 유쾌한 분위기인데 대부분을 아역 배우의 천진난만함에 기대고 있다. 노인의 손녀딸 동이, 말순 자매 역을 맡은 노정의와 김하나의 연기력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영화적으로 큰 빚을 지고 있다는 말이다. 안될 건 없지만 이야기의 균형 문제다. 중후반부엔 그저 보호받을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것에 비할 때, 기능적으로 영화는 이 캐릭터들에 너무 기댔다.

오마이스타's 한줄평 : 판타지의 섬에서 권력의 폐부를 찌르는 아웃복서가 되다
평점 : ★★★ (3/5)

덧붙이는 글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관련 정보

제작 : 영화사 비단길
제공/배급 : CJ엔터테인먼트
감독 : 조성희
출연 : 이제훈, 김성균, 박근형, 정성화, 노정의, 김하나, 고아라
상영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 125분
개봉 : 2016년 5월 4일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이제훈 늑대소년 조성희 박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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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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