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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분기 제주의 건축허가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9.6% 늘었다고 합니다. 특히 주거용 건축물은 54.2% 증가했습니다. 제주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제주는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쓴 이연희 시민기자는 몇 해 전 제주로 이주해 '제주도 한달살기집 레이지마마' 등을 운영하며 부동산 관련 일도 겸하고 있습니다. 제주에 정착한 타지인의 시선에서 본 제주 개발과 대한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이와 관련한 다양한 반론과 논쟁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내가 운영하는 제주 한달살기집.
 내가 운영하는 제주 한달살기집.
ⓒ 이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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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나는 '촌에 뭐 볼 거 있다고 들어와, 집값 땅값 다 올려놓는 빌어먹을 육지 사람'이다.

일 년 전만 해도 제주도 땅 중국 사람이 다 산다며 중국 사람들만 비난하더니, 이제는 외지인들이 와서 중산간 동네까지 집들을 짓는다며 무분별한 난개발 어쩌구 분통을 터뜨리는 분들이 많다. 3년 전만 해도 1억 원대이던 아파트가 3억 원이 넘는 게 정상이냐, 육지 사람들 거품이 언젠가 싸악 빠지면 이 오른 가격을 누가 책임질 거냐고 한다.

제주에 오지 마라, 나만 빼고?

시장 원리에 따라 집값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면 오르는 거다. 유입인구는 늘어나는데 집이 부족하니 오히려 집이 많아져야 가격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그냥 '육지 것'도 아니고, 중산간 동네에 집을 지어 파는 부동산 개발업자이기까지 한 입장이니 만큼 가만히 찌그러져 있는 게 상책이다.  

하긴, 연세 (보증금이 적거나 없는 대신 1년치 월세를 선불로 내는 방식. 도민 사회에선 죽어지는 세라고도 불린다) 150만 원, 200만 원짜리 집이 즐비하던 시골동네에 연 1000만 원, 2000만 원 집들이 출현하고 평당 17만 원이던 땅값이 1, 2년새 70만 원으로 올랐다니 황망하기도, 놀랍기도 하실 테지.

우리 가족이 처음 제주도 땅을 밟은 지난 2012년에도 '거품이 심하다'며 오를 대로 올랐으니 집이나 땅은 좀 더 기다렸다 사라고 만류하시던 분들이 수두룩했다. 그 때 그분들은 아직도 '거품론'을 주장하며 집을 못 사고 계신다. (심지어 갖고 있던 집을 파신 분도 있다.) 그리고, 작금의 상황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하거나, 외지인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

어쨌든, 한 평생 큰 변화없는 환경에 사시다가, 제주에 이는 급격한 변화의 물결에 두려움을 느끼시는 제주도민들의 심정은 막연하게나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또 다른 삶을 찾아 한 두해 전에 이주해 온 동병상련의 제주 이민자들이 난개발 운운하며 주택 건축 허가를 제한해야 한다는 투의 의견을 개진할 때면 '그럼 댁들은 왜?'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려는 걸 꾹 참는다.

물론, 나도 은근슬쩍 걱정이 된다. '이 아름다운 제주가 오염되지 말아야 할 텐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와서 이 그림같은 풍광을 볼 수 없게 되면 어쩌지?' 하지만, 제주도에 우리 가족까지만 와서 살고, 더 이상은 사람들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제주 사랑을 빙자한 이기심에 다름아니기에 그런 생각을 대놓고 주장할 수는 없다.

기형적인 도시 생활에 지쳐 삶의 패턴을 바꿔보고자 제주도로 날아드는 사람들 아닌가. 한 달간 제주도의 느린 삶을 경험하며, 그동안 아이를 쥐잡듯 잡았던 것을 반성하고 삶의 또 다른 가치를 찾기위해 어렵게 제주도 행을 택한 사람들을 나는 계속 옆에서 보고 있다.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국내 인구이동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입에서 전출인구를 뺀 제주지역 순유입 인구는 1만4257명으로 사상 최고였다. 지난해 8만3323명이 제주를 떠나는 동안 9만7580명이 전입했다. 제주에 새로 정착하고 한편으로는 떠나면서 하루에 39명씩이 매일 인구가 늘어난 것이다."
- 2016년 1월 28일자 <동아일보> 기사 발췌–


유입인구는 계속 느는데 이주민의 수요와 요구에 맞는 집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대단위 아파트가 우후죽순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전원주택 단지는 아무리 많이 생겨봤자 한단지에 30세대 전후 규모다. 도시가 싫어서 온사람들이 제주 시내 아파트나 구도심 다세대 주택에 살고 싶어서 오는 건 아닐 테니, 전원 주택의 공급은 아직도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작년 한해 7154명이 이주해 전체 유입인구의 50.2%를 차지한  30, 40대의 경제 여건과 요구에 맞는 소형 전원주택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제주에서 살려는 사람들, 그들을 어쩌라고

제주의 한 프라이빗 타운 모형도를 둘러보는 중국 부동산 투자자들.
 제주의 한 프라이빗 타운 모형도를 둘러보는 중국 부동산 투자자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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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개발업자의 입장에선 집을 작게 지어 싸게 파는 것이 여러모로 손해다. 20평대 집을 평당 1000만 원에 파는 것보다, 40평대 집을 평당 900만 원에 파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다. 똑같은 40평이라도 두 세대를 나누어 짓는 것과, 한 세대로 짓는 것은 시공단가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한 개의 사업자가 지을 수 있는 세대수에도 제한이 있다. 2억짜리 집이든 5억짜리 집이든지을 수 있는 집의 세대수는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영업력만 있다면 가능한 큰 평수로 비싼 집을 지어 파는 것이 유리하다.

법적으로 건폐율 40%, 4층까지 지을 수 있는 계획 관리지역의 땅에서, 4층 이하의 단독주택을 지어 파는 것 또한 사업적으로 보면 그리 현명한 짓은 아니다. 똑같은 면적의 땅에 4층짜리 빌라를 지으면 세대당 분양가를 좀 싸게 해도 집 한 채를 파는 것보다는 훨씬 이익이기 때문이다. 유능한 개발업자라면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면적을 활용하는 것이 맞다. 보존 관리지역이나 녹지 지역에 비해 계획 관리지역의 땅이 비싼 게 그런 이점 때문 아닌가.

나는 어쩌다 주어진 '부동산 개발업자'라는 타이틀이 아직도 어색하고 낯설다. 한달살기집을 운영하다 보니 제주도에 작은 집을 하나 마련하고 싶다며 땅이나 집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데 소개할 만한 적당한 집이 없어 직접 지어 팔았을 뿐이다. '당장 이주를 올 형편은 안 되지만, 언젠가 제주도로 올 그날을 위해 더 오르기 전에 미리 사두고 싶다. 집이 비어 있으면 망가질 텐데.... 비어 있는 동안만 관리를 해주면 안 되는지?'라는 요청을 귀담아 들었다가 별장으로 1년에 두 달을 사용하고 나머지 달은 '한달살기집'으로 임대하는 지금의 사업 시스템을 만들게 된 것이다.

나에게 사업수완이 대단하다고 칭찬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시지만, 이 모든 건 사실 내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냥 주변의 수요와 요청에 따라 일을 저질렀을 뿐이다. 가진 것이 거의 없었기에 다소간의 모험심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정도의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냉정하게 분석하자면, 나의 정체성은 부동산 개발업자나 사업가라기보다 콘텐츠 개발자나 기획자에 가깝다. 집을 지어 팔고 임대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팔고 있는 상품은 '레이지마마 - 게으른엄마가 되어 아이도 엄마도 여유롭게 살아보는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 가족이 꿈꾸었던 삶을 실천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보람있고 뿌듯하다.

제주를 살리는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골드코스트 전망대 스카이타워에서 본 아름다운 도시 전경입니다.
▲ 호주 골드코스트 주택가 전경 골드코스트 전망대 스카이타워에서 본 아름다운 도시 전경입니다.
ⓒ 이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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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집을 지어 파는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제주의 자연을 파괴하는 육지 사람'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 드는 건 괜한 피해의식일까? 인생 2막을 준비하며 제주도에 집을 짓거나 산다는 이유로 투기꾼 취급하고, 그 사람들을 위한 집을 짓는 것을 '난개발'이라 부르며 허가를 제한하는 처사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도시개발용어 사전에서 일컫는 '난개발'이란 '종합적인 도시계획 없이 이루어진 개발로 다양한 도시 문제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개발형태'를 말한다. 집을 신축하는 것을 개발이라 한다면, 유입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무조건 개발을 막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공급 부족으로 오히려 집값이 올라가고 서민들의 삶이 더 어려워진다.

'난개발' 문제를 초래하는 것은 '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환경을 배려한 적절한 도시계획이 없는 것이다. 어차피 주택 공급이 되어야 한다면, 대책 없이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집과 자연이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는 예술적인 도시 계획과 행정적 지도가 필요하다.

무조건 지붕이 삼각형이어야 한다는 둥 그런 관료적인 미관심사 제도 말고, 제대로 된 도시 디자이너, 건축 디자이너들을 영입해서 기왕이면 예쁜 집과 건물이 들어서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한다. 신축 단독주택의 고도를 2층 이하로 제한하고 건폐율만큼의 조경(녹지 공간) 확보,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는 돌담 면적의 확보 등을 의무화하는 것도 하나의 안이 될 수 있다. 소형주택을 짓는 업자에게 큰 평수 판매의 이익을 상쇄할 만큼 세제 등의 혜택을 주면 젊은 연령층이 거주할 수 있는 소형 주택이 더욱 많이 지어질 것이다.

인구 증가로 늘어난 세금으로 너저분한 해안가나 도로변, 악취나는 마을 클린하우스(제주도의 마을 공동 쓰레기 분리수거장)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등 가장 기본적인 일부터 제대로했으면 좋겠다.

빼곡하게 집이 들어차 있어도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잘 가꾸어진 정원과 가로수, 깨끗하게 관리된 도로와 곳곳에 위치한 공원. 지난 주 출장으로 간 호주 골드코스트의 주택가를 돌아보며 내내 제주도를 생각했다.


태그:#제주부동산, #제주땅값, #제주단독주택, #제주개발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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