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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옛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하르호린(Kharkhorin)의 유적지를 아내와 함께 답사하고 있었다. 하르호린 중앙에 자리잡은 불교사원, 에르덴 조 사원(Erdene Zuu)의 북문 밖으로 나오니 몽골의 광야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이 광활한 초원 안에 원나라 초기 수도의 왕궁이었던 만안궁(萬安宮) 터가 남아있다. 이렇게 탁 트인 평지에 호기롭게 수도를 정한 나라는 몽골의 원나라가 최초이자 마지막이지 않았을까 싶다.

짙푸른 초원 위에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덩그러니 서 있다. 나무를 다듬어 만든 표지판에는 거북바위의 사진과 함께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사진 속 거북바위는 세월의 흔적을 잔뜩 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오랜 나이를 말해주는 이 거북바위를 찾아가기로 했다.

광활한 초원에 거북바위 가는 이정표가 덩그러니 서 있다.
▲ 거북바위 이정표. 광활한 초원에 거북바위 가는 이정표가 덩그러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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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에 커다란 거북바위가 있고, 초원 위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만들어진 작은 길이 보였다. 초원 위에는 그늘도 없이 강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역사유적 답사를 워낙 좋아하는 나의 취미를 알기에 아내도 햇살 쏟아지는 초원으로의 발걸음을 함께 했다.

바로 앞에까지 와서 보니 이 거북바위는 엄청나게 크다. 길이 2m, 높이 1m의 거대한 거북바위는 옛 몽골 수도의 영화를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이 거북바위의 모양은 한국 사람이 보면 전혀 낯설지 않게 생겼다. 돌거북이라고도 불리는 이 거북바위는 비석의 받침, 즉 비석의 대좌(臺座)를 이루는 귀부(龜趺)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을 웅크리고 머리를 치켜 든 거북이의 모습에서 몽골제국의 힘이 느껴진다.
▲ 거북바위. 발을 웅크리고 머리를 치켜 든 거북이의 모습에서 몽골제국의 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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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으로 몽골의 수도를 이전한 쿠빌라이 칸(Khubilai khan)이 반란군의 근거지가 되어버린 이 하르호린을 파괴할 당시에 이 돌비석의 비신도 파괴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석재를 길쭉하게 다듬어 만든 비신은 파괴하기 쉬웠지만 이 귀부는 부수기도 어렵고 옮기기도 어려울 정도로 커서 지금까지도 이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다.

다리를 한껏 오므린 채 고개를 쳐들고 자신 있게 올려보는 모습에서 당시 세계로 뻗어나가던 몽골제국의 힘이 느껴진다. 까맣게 이글거리는 거북이의 눈빛과 꽉 다문 입이 마치 당시 몽골인을 보는 듯해서 오싹해지기도 한다. 

이 거북이 몸체의 등에 세워져 있었을 비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정확한 고증이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원래 이 거북바위는 하르호린 왕궁을 지키기 위해 왕궁 입구의 사방에 4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도 수없이 많은 귀부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위대한 인물의 무덤이나 고승의 부도 앞에 있으니 이 거북이 등 위에도 어느 영웅의 서사시적인 일대기를 그리는 내용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누가 이곳까지 이 무거운 거북바위를 옮겨놓지는 않았을 것이니, 이곳에 귀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곳에 바로 만안궁이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귀부 위의 비석은 사라졌지만, 인근 에르덴 조 사원에서는 방치된 일부 석재 중에서 만안궁과 관련된 비문이 발견되었다. 에르덴 조 사원 건축 당시 폐허가 된 만안궁 터에 있던 석재를 이용하여 사원을 지었기 때문이다. 몽골어 아래에 한문이 함께 조각된 비문 조각 5개가 수습되었는데, 확인해 보니 흥원각비(興元閣碑)의 잔해였다.

흥원각(興元閣)은 하르호린이 몽골의 수도였던 몽케 칸(Mongke Khan) 시대에 창건된 전각이다. 이 흥원각 터에서는 '흥원각'이라는 이름이 명확히 적시된 편액(扁額)도 함께 발견되어 이곳이 만안궁 터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흥원각비 조각은 원나라 때의 문필가 유임(有壬)이 지은 칙사흥원각비(勅賜興元閣碑)의 비문 일부였으며 원래 만안궁 내에 세워졌던 비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광야에 남은 거북바위의 비석이 흥원각비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이 거북바위의 등 위에 남아있던 비석도 원나라가 흥하기를 바라는 내용을 함께 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거북바위가 초원에 뜬금 없이 홀로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 거북바위 주변은 1235년에 제2대 칸(汗)인 오고타이(Ogotai)가 금(金)나라 원정에서 돌아온 후 도성을 정하고 성벽과 함께 몽골 제국의 왕궁, 만안궁(萬安宮)을 만든 곳이다. 만안궁은 귀위크 칸(Güyük Khan)을 거쳐 몽케 칸(Möngke Khan)이 사망한 1259년에 이르는 20여 년간 제국의 중심지였다. 당시 이 곳을 중심으로 몽골 제국 전역에 걸쳐 도로망을 정비하고 곳곳에 역사(驛舍)를 두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편하게 왕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이 하르호린과 만안궁의 역사를 정확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1235년부터 4년간 3차례나 고려를 침공하여 한반도를 초토화시켰던 몽골군의 침공 군대가 출발하였던 곳이 바로 이 하르호린이었다. 그 이후 1247년~1248년, 1253년~1254년, 1254년~1259년 고려 침공의 의사결정도 바로 이곳 하르호린의 만안궁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고려에서 잡혀온 포로만도 2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800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당시 고려의 백성들에게는 피눈물 나는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당시 몽골제국의 강인함을 칭송하는 것은 700년 후의 후손들이 조선을 침략했던 강력한 일본군대에 감탄을 보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거북바위 주변을 둘러보니 유적지 여기저기가 집중적으로 발굴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거북바위 주변의 많은 흙무지와 철조망 울타리가 있는 곳이 바로 몽골 제국 왕성의 발굴 현장이다. 주변에는 13세기의 유물일 수도 있는 기와 조각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궁궐의 영역이 어디까지였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지만 거북바위를 중심으로 에르덴 조 사원과 그 동쪽 평원이 모두 만안궁 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거북바위 등 위, 비석이 박혀 있던 홈에는 소원을 비는 작은 돌들과 지폐 몇 장이 들어 있다. 현재의 몽골인들은 이 거북바위가 당시 왕도의 수호신 역할을 하였다고 믿고 있기에 지금도 거북바위에게 소원을 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복 많게 생긴 거북의 얼굴을 만지면 복이 온다는 믿음도 있다. 몽골인 가족들 여러 명이 와서 순서대로 거북의 얼굴을 만지며 소원을 빈다. 몽골인들이 소원을 빌면서 거북의 얼굴에 기름칠을 해서 거북의 얼굴은 시커멓게 번지르르하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고 있지만 기념품 중에는 가짜가 많다.
▲ 노점 상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고 있지만 기념품 중에는 가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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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 근처에서는 여러 노점상들이 기념품을 좌판에 늘어놓고 팔고 있다. 외국인들이 많이 들르는 관광지에 상인들이 모여있는 것이다. 좌판에는 동전, 활촉, 불상의 파편 등을 13세기 유물이라면서 팔고 있는데 모두 모조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조잡하다.

가끔 주민들이 인근 유적지에서 주워온 깨진 기와조각 외에는 모두 가짜이다. 진짜 골동품이라면 몽골 당국에서도 당연히 단속을 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걸로 봐서도 모두 가짜인 것 같다. 몽골의 다른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불교용품 등 대부분의 기념품들은 중국과 티베트에서 싸게 수입해 들여온 것들이다.

청동 거북이 안에서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거북이가 5개나 나온다.
▲ 거북이 기념품. 청동 거북이 안에서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거북이가 5개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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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아주머니 한 분이 성격 좋아 보이는 아내에게 접근을 해서 한 기념품을 내민다. 마치 옥새같이 만든 청동 거북이였다. 우리가 거북바위에 관심을 보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작은 청동 거북상을 팔려고 생각한 모양이다. 청동 거북상은 바닥이 도장으로 되어 있는 거북 옥새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러시아의 전통 목각인형인 마트로슈카(Matryoshka) 같이 거북이 배 안에서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거북이가 5개나 나왔다.

몽골이 러시아의 위성국가이던 시절에 러시아의 가장 인기 있는 기념품인 마트로슈카를흉내 내어 만든 기념품이다. 거북이가 유명한 관광지여서 이곳에서만 보이는 기념품이기도 하다. 내가 흥미를 보이자 이 아주머니가 흥정을 하는데 내가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릴 때마다 청동 거북이의 가격은 계속 내려갔다. 마트로슈카 같이 잘 만들어졌으면 살지 몰라도 거북 조각이 너무 조잡해서 사지는 않았다.

과거 만안궁을 지키던 사자상으로 추정되는 돌짐승인데 눈매가 사납다.
▲ 하르호린 석수. 과거 만안궁을 지키던 사자상으로 추정되는 돌짐승인데 눈매가 사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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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를 태우고 몽골의 광야를 달릴 차를 타기 위해 다시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다 보니 거북바위를 보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석수(石獸) 2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석재의 마모상태나 돌짐승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인상이 분명히 13세기의 몽골 제국 당시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돌짐승의 얼굴에 기름을 바르며 소원을 빌어서 얼굴 전체가 마치 숯검뎅이를 덮어 쓴 것처럼 시커멓다. 이 돌짐승들은 아마도 만안궁을 지키던 2마리의 사자상이었을 것이다.

역시 역사 오랜 유적지의 조각작품들은 제작 당시의 문화상과 국력,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하던 당시에 만들어진 이 동물상은 강인한 표정 속에서 아주 센 기(氣)가 느껴진다. 마치 표범 한 마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얼굴 표정에서 살벌함이 느껴진다.

발이 묶인 검독수리가 처량하게 관광객들의 사진모델이 되고 있다.
▲ 검독수리. 발이 묶인 검독수리가 처량하게 관광객들의 사진모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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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덴조 사원 앞에는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이 마치 전시장 부스처럼 늘어서 있다. 가게들을 둘러보고 있으려니 그 가게들 앞 한 중앙에 독수리 3마리가 발이 묶여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독수리의 주인 아저씨는 지나가는 외국 관광객들을 보고 열심히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독수리는 알타이 초원을 호령하는 알타이의 제왕 검독수리다. 용맹한 검독수리들이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기념사진 모델이 되어있는 것이다. 육식성의 사나운 새가 관광객들의 팔에 올라 얌전히 사진을 찍는 모습이 괜히 안쓰럽다.

과거 몽골제국의 영화를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전통복장을 입는다.
▲ 몽골 전통복장 입기. 과거 몽골제국의 영화를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전통복장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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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 가게 앞에서는 몽골 젊은이들이 원나라 당시의 몽골 전통복장을 입고 있다. 몽골족이 가장 강력했던 당시의 자랑스러웠던 역사를 사진으로 기념하기 위해서다. 초원의 강한 바람과 추위에 견뎌야 하는 몽골의 전통 옷은 두껍고 질겨 보였다. 화려한 원색으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인의 옷들 위로는 원나라 당시에 우리나라에도 전래되었던 족두리가 걸려 있었다. 여인들이 옷을 입은 것을 자세히 보니 몽골에서 족두리는 여인들이 전통 복장을 입을 때마다 머리에 쓰는 필수복장이다.

젊은 남자들은 플라스틱으로 허접하게 제작된 투구와 찰갑옷을 둘러쓰고 마치 몽골제국의 병사가 된 것 마냥 으쓱거린다. 전투를 경험해보지 않은 젊은 남자가 옛 군복을 입고 있으니 전혀 군인의 자세와 표정이 나오지 않는다. 단지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한 모습들이지만 세계를 호령하던 옛 몽골 제국 수도에서 몽골군 병사로 변장한 몽골 젊은이들을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8백년 전, 저 갑옷을 입은 몽골 기병들이 말을 타고 하르호린의 경계, 거북비석 앞을 출발했을 것이다. 그들은 동쪽의 고려를 정복시키기 위해 말을 달려나갔다.

전통복장을 입은 몽골인들이 한껏 즐겁게 이동을 하고 있다.
▲ 전통복장을 입은 몽골인들. 전통복장을 입은 몽골인들이 한껏 즐겁게 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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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기병들이 달려가던 고려에는 정권유지에 급급한 무신 정권이 기다리고 있었고 기댈 곳 없는 불쌍한 백성들이 있었다. 하르호린을 출발한 몽골기병의 침략은 고려가 항복할 때까지 수 차례 이어졌다. 국제 정세를 무시한 지배층의 무책임함 속에서 한반도의 유구한 문화유산들은 재로 변했고, 고려 백성들은 수십 년 동안 도륙 당하고 몽골 땅까지 끌려갔다. 그래서 지금 몽골인들의 8백년 전 조상 중에는 고려에서 끌려온 슬픈 고려 여인들의 피도 섞여 있을 것이다.

에르덴 조 사원과 그 동쪽 평원 일대에 몽골 제국 왕궁인 만안궁이 있었다.
▲ 만안궁 터. 에르덴 조 사원과 그 동쪽 평원 일대에 몽골 제국 왕궁인 만안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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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기병의 후예들은 과거의 병사 복장을 입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역사는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에 하르호린까지 오는 한국인들은 이곳 초원에서 고려로 향하던 말발굽의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 들어야 할 것이다.

그 교훈은 큰 나라에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지도층이 지도층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외세의 공격이 이어지고, 외세의 침략 아래 국민들이 고충을 겪으며 스스로 항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국민은 고려로 향하는 몽골제국의 말발굽 같은 외세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서 진정 국민을 위하는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역사적 숙명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몽골기병들이 먼지를 날리며 말을 박차고 떠나던 몽골의 광활한 초원에는 무심한 바람만 불고 있었다. 고려 여인들이 살아가던 과거 하르호린에도 고려 여인들의 애절함에 아랑곳하지 않는 무심한 바람이 불고 있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하르호린, #에르덴 조 사원, #만안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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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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