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날, 보러와요>의 포스터.

영화 <날, 보러와요>의 포스터. ⓒ 영화 홈페이지


먼저 요사이 젊은 영화평론가들 흉내부터 한 번 내볼까?

<날, 보러와요>? 단도직입하는 도입부, 지지부진한 전개, 지리멸렬한 결말. '보러오라'해서 갔더니. 괜히 갔군.

도입부 : 단도직입하는

평화로운 도시의 한낮. 납치하는 이의 얼굴도 확인할 수 없도록 조절된 스피디한 카메라 놀림 속에 여자(강예원 분)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곤경에 빠진다. 이어지는 암전, 그리고 종이 위 번지는 먹물처럼 떠오르는 영화 제목. 숨 쉴 틈도 없이 빠르다.

<날, 보러와요>를 연출한 이철하는 뮤직비디오와 상업광고(CF)를 만드는데 재주를 보인 감독. 이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높은 주목도를 이끌어내라"는 자본주의의 지상명령을 따랐던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능력은 영화 초반에서 극대화 돼 발휘된다.

시작하고 20분. 영화는 다양한 복선 속에서 군더더기 없이 진행된다. 사회 비리를 추적하는 방송사 PD(이상윤 분)의 몰락과 아직까진 알 수 없는 여자의 몰락을 자연스럽게 병치시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출도 나무랄 곳이 없다.

전개 : 지지부진한

 <날, 보러와요>에서 정신병원장을 맡아 연기한 배우 최진호. 그의 연기는 지나치게 패턴화돼 있다.

<날, 보러와요>에서 정신병원장을 맡아 연기한 배우 최진호. 그의 연기는 지나치게 패턴화돼 있다. ⓒ 영화 홈페이지


어? 이상하게 꼬여간다. 정신병동에 갇힌 여자와 PD가 연결선을 가지게 되는 사건은 필연성이 없고 겨우겨우 우연성에 기대고 있으며, 모호하게 비춰지는 여자의 아버지(사망한 경찰서장)와 정신병원 남자간호사의 캐릭터 설정은 '복선'이라기보단 해독불가 한 암호에 가깝다.

스릴러영화에 깔리는 복선은 관객이 짐작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제시돼야 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100명이라면 최소 10~20명은 그 복선이 무얼 의미하는지 눈치 채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 감독 혼자 아는 걸 '복선'이라고 강변한다면? 그건 잘난 체거나, 자기만족의 암호다.

그것 뿐 아니다. 경직된 연출 탓에 조연들의 동선도 헛갈린다. 악랄한 병원장(최진호 분)과 이에 대비되는 비교적 선량한 간호사 동식(이학주 분)의 연기가 특히 그렇다. 고루하게 패턴화 된 연기의 전형이라는 이야기다.

결말 : 지리멸렬한

반전은 '웰메이드 스릴러영화'의 기본 중 기본이다. 고품격의 반전은 보편의 예측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출발한다. 여기선 굳이 그 옛날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모든 관객을 놀라게 한 '카이저 소제'의 정체에 관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날, 보러와요>의 반전은 삼척동자도 짐작이 가능할 만치 뻔한 것이니까.

영화의 마지막 10분은 억지스럽고 지루하다. 그러니, 관객들은 심드렁해 한다. 도입부의 근육 조이던 긴장감과 속도감은 사라지고, 매번 보고 들어온 레토릭, 즉 "유년의 상처가 괴물을 만들었다"는 너무나 진부한 결론.

덧붙여 하나 더

 무언가를 끊임없이 복제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가 스릴러로 성공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끊임없이 복제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가 스릴러로 성공할 수 있을까? ⓒ 영화 홈페이지


한국의 영화관객은 영리하지만 어느 측면에선 순하고 착하다. 적정선의 만족감만 준다면 눈 딱 감고 호평을 내리기도 한다. 똑같이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지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밀로스 포먼 연출)나 <버디>(앨런 파커 연출)에서 얻은 만족감을 <날, 보러와요>에서 기대한 것도 아닐 것이다. 관객들은.

'약진하는 한국영화', '세계적 수준에 올라선 한국영화'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대략 10여 년 전이다. 외형적 성장곡선도 가파르게 올라갔다. 인구 5천만 명의 나라에서 '1천만 영화'가 해마다 한두 편씩 나왔으니. 그러나, 그런 상황이 오만을 불렀을까?

최근 몇 달 사이 본 한국영화 중 무릎을 치며 놀라거나,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던 작품이 떠오르지 않는다. 자기과신으로 인해 착각에 빠지는 건 순간이다. 그러나, 거기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다. '최근 한국영화는 1980년대 수준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생각이 나만의 오판이기를 바란다.

날 보러와요 한국영화 강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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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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