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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 열린 삼일학림 공개강좌에서 이정우 교수가, 약자를 위한 경제학을 주제로 강연했다.
▲ 약자를 위한 경제학 강의 4월 23일 열린 삼일학림 공개강좌에서 이정우 교수가, 약자를 위한 경제학을 주제로 강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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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분배와 복지는 결국 인간에 대한 투자입니다. 분배와 성장이 동시에 이뤄지는 모델을 만들 수 있을까요? 분배가 개선되면 경제도 성장하는 것으로 정설이 바뀌고 있습니다. '복지국가+경제민주주의=포용적 성장'입니다."

불평등 해소, 약자를 위한 경제학을 관심을 기울이며 연구해온 이정우 교수가 한 말이다. 삼일학림(고등대학 통합과정 대안학교) 주최로 지난 23일 이정우 교수(경북대 명예) 초청 공개 강연이 열렸다. 이 교수는 세계 정치경제 모델을 비교하며 한국경제 현 상태를 진단하고,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통한 포용적 성장이 인간의 사회적 권리를 키운다고 제시했다.

이 교수는 "지금 한국경제는 '복지 기피 국가' 미국의 시장만능주의와 '토건 국가' 일본의 관치금융이 혼재된 분열적 체제"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1920년대 규제와 복지를 제도화한 뉴딜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했지만 2008년 또다시 경제위기를 맞았다. 사회 지출 수준이 낮고, 본인 부담이 높고, 선별주의로 인해 많은 소외집단이 발생하는 양극화가 고착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로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된 데다 불평등이 심화된 '격차사회'로 불리고 있다.

이정우 교수는 지난해까지 38년 동안 경북대 경제학 교수로 강의했으며,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 이정우 교수 이정우 교수는 지난해까지 38년 동안 경북대 경제학 교수로 강의했으며,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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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통제경제, 관치경제를 뒤따라가게 된 맥락을 설명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서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워 통제경제 실험을 했다. 그때 박정희는 다카키 마사오로 창씨개명하고 일본 육군소위로 만주국 관동군이 되었다. 일본 육군 중에서도 관동군은 제일 무서운 집단이었다. 관동군 사령관 도조 히데키는 다 죽을 때까지 싸우자고 대동아전쟁을 일으켜서 2차대전 후 A급전범으로 사형집행 된다.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 기시 노부스케가 만주국 경제정책을 총괄했는데, 전범재판 받고 풀려나서 일본 자민당을 창당했다.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가 지금 총리 아베 신조로, 전범들이 묻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해서 문제가 된다. 만주국은 14년 정도 지속됐는데, 당시 통제경제로 고속성장을 하는 걸 박정희가 젊은 시절 목격했다.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서는, 만주국을 경제모델로 삼았다. 고성장은 오래 못 간다. 지금 일본은 저성장 늪에 빠져 있다."

현재 우리나라 복지 지출 비율은 8~10%이다. OECD 평균 20%, 북유럽은 그보다 높다. 그렇지만 여전히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는 이들이 많다. 이 교수는 "한국경제는 국가 독재와 시장 독재를 청산하고 복지국가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재벌문제 해결 없이 양극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이 교수는 "미국은 국민 소득의 30%, 유럽은 40%, 북구사민주의인 덴마크, 스웨덴은 50%를 세금으로 거둔다. 한국 세금 비중은 20%로 OECD 중 최하위다. 우리나라가 세금 많이 낸다는 건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82조 원 부자 감세, '전봇대 뽑기'로 상징되는 규제 완화는 복지국가로 가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미국, 남미, 유럽, 중국, 일본 전 세계 경제정책을 차례로 짚어보면서 "부자나 강자 편을 드는 정부들은 실패했다"며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포용적 성장정책, 북구형 사민주의 등을 '약자를 위한 경제학'의 모델로 제시했다.

이정우 교수는 자신이 경험한 삶과 공부를 토대로 한 이야기를 마친 뒤, 삼일학림 학생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고 질문하라고 당부했다.
▲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경제학 이정우 교수는 자신이 경험한 삶과 공부를 토대로 한 이야기를 마친 뒤, 삼일학림 학생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고 질문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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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미국의 압박에서 벗어나 왜곡된 경제구조를 극복하고 민주정권을 세운 남미 사례들을 비중있게 설명했다. 민중연합 후보로 1970년 당선한 칠레 아옌데 대통령이, 미 CIA 공작으로 피노체트 쿠데타가 일어나자 대통령궁에서 "저들이 폭력으로 권력을 탈취하더라도 역사의 진보를 향한 발걸음은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대국민연설을 하고 끝까지 싸우다 최후를 맞는다. 쿠데타 세력의 음모로 비행기로 탈출하다 비굴하게 죽을 뻔했지만, 아옌데는 그 제의를 거절했다. 이 교수는 "사람이 판단을 참 잘해야 하는데, 그런 순간 자기가 어떤 선택을 할지 판단력은 평소의 역사와 철학 공부에서 나온다"고 했다.

삼일학림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강의는, 오전과 오후에 나눠 이뤄졌다. 오전 강의에서는 이정우 교수가 강의로는 처음이라며 '나의 삶, 학문, 실천'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구 출신으로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가 경북고등학교를 나온 학벌 집안이지만,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평생 독재권력 보기 싫다며 일간지에서 이승만, 박정희 사진만 오려 구멍 뻥뻥 뚫린 일간지를 보고 배우며 자라온 이야기, 고3때 일반사회 시간에 '경세제민'(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을 줄여서 '경제'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법대 대신 경제학과를 선택했지만, 수업이 영 경세제민과 거리가 멀어서 방황하다가 청계천 헌책방에서 아담 스미스, 리카르도, 마르크스, 케인즈, 마샬, 5대 고전을 읽고 눈을 뜨게 된 이야기, 하버드에서 공부할 때 수업에 연연하지 않고 좋은 강연을 열심히 찾아 들었던 그에 비해, 우리나라 학생들은 시험과 직결되지 않는 강연장에는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 경북대 교수로 지내온 38년 중 2년 반 동안 참여정부 정책실장으로 일하고 다시 경북대 교수로 돌아간 경험을 토대로, '폴리페서'가 옛날 선비들이 공부하다 정치하다 했던 '사대부'와 같다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입담이 펼쳐졌다.

이날 이정우 교수 초청 강연에는 삼일학림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 등 100여 명이 자리했다.
▲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경제학 이날 이정우 교수 초청 강연에는 삼일학림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 등 100여 명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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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끝으로 청소년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이야기로 "공부의 원동력은 호기심이이에요. 늙는다는 것은 호기심이 없어지는 것이에요. 저는 정년퇴직했지만 아직도 호기심이 많고 모르면 바로바로 찾아보고 질문합니다. <논어>에 '아는 것은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라, 그게 아는 것이다'라고 나와요. 자연과 벗하며 자꾸 찾아보고 질문하며 배워가길 바랍니다"고 남겼다.


태그:#이정우, #삼일학림, #경제학, #밝은누리움터, #사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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