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철이면 건물은 새 단장을 한다. 겨울의 묵은 때(대기 중 오염물질, 자동차 매연)를 닦는다. 건축물의 미관 개선과 외장재의 수명 단축을 예방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다.

예를 들어 15층 높이의 건물일 경우 5명이 팀을 이루어 3일간 작업을 한다. 또한 작업 도중 발생할 위험 요소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시내에서 하는 작업은 인적이 드문 새벽 5시에 시작하여 낮 12시 전후에 끝낸다.

30년 동안 건물 외벽청소를 한 전형준 제이엘서비스 총괄 팀장을 지난 4월 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대일빌딩 옥상에서 만났다. 그는 외벽을 타기 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담배 한 개비를 태운다. 여유와 긴장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그는 줄이 능청거릴 때를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동료의 줄을 묶어도 내 줄을 묶듯"

건물 외벽청소전문가 전형준
 건물 외벽청소전문가 전형준
ⓒ 김광섭

관련사진보기


- 건물 외벽청소는 언제 시작했나요?
"18살 때, 전북 고창에서 서울로 올라왔지. 검정고시 학원에 다녔는데 공부가 잘 맞지 않는 거야. 학비를 술값으로 다 쓰고 방황했지. 부모님께 손 내밀 수 없으니까 신문보급소에서 일도 했지. 그때 서울역에서 노숙했는데, 매일 술 사주는 사람이 있는 거야. 6살이 많았는데 술친구가 되었지. 그런데 내가 그 사람만 기다리고 있는 거야. 정신을 차렸지. 그 사람이 줄 탔어. '나도 좀 배우면 안 되냐?' 생각했어. 그때가 24살이었어."

- 가족의 걱정이 컸을 것 같아요.
"8남매였는데 큰형이 사우디에서 일해서 부쳐준 돈으로 학원에 다녔었어. 꿈은 컸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술만 마시면 집에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지. 집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줄 알았겠지.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지. 그냥 나는 잘 있다고 그랬지."

- 안전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을까요?
"로프가 끊어져서 사고가 나지는 않아. (로프를) 두 번 묶는데, 바쁘다 보면 한 번만 묶을 때가 있지. 그때 줄이 풀려서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아. 줄이 뜯기는 거지. 오래된 건물의 안전 고리가 허술해서 나기도 하고."

- 선생님이 타는 줄은 직접 묶나요?
"이 작업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하기 때문에 동료의 줄을 묶어도 내 줄을 묶듯이 해. 그리고 서로서로 묶은 줄도 확인해주고."

- 팀의 단합도 중요할 것 같아요.
"회사에서 하루에 두세 곳 현장을 잡아줘. 그러면 한 현장에 4, 5명이 간다고 보면 되지. 평소에 회식도 하고 당구도 치고 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침에 하는 안전 교육이지. 모닝커피 먹으면서 해. '건물의 구조가 매번 다르니까 이 부분을 조심하자' 이런 식이지. 서로 심리적으로 안정을 시켜주는 거야. 마음이 불안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이 일은 하면 안 돼. 사고가 나면 경상이 아니라 큰 사고이기 때문에 서로 위로해주는 말들을 많이 건네."

힘들 때도 있지만... 뿌듯함 느끼는 일

인사동 대일빌딩 건물 외벽청소
 인사동 대일빌딩 건물 외벽청소
ⓒ 김광섭

관련사진보기


인사동 대일빌딩 건물 외벽청소
 인사동 대일빌딩 건물 외벽청소
ⓒ 김광섭

관련사진보기


인사동 대일빌딩 건물 외벽청소
 인사동 대일빌딩 건물 외벽청소
ⓒ 김광섭

관련사진보기


인사동 대일빌딩 건물 외벽청소
 인사동 대일빌딩 건물 외벽청소
ⓒ 김광섭

관련사진보기


- 작업할 때 어떤 점을 신경 쓰면서 하나요?
"조심성 있게 물을 뿌리지. 바람도 신경 써야 하고. 중성 세제를 쓰는 것은 화공약품보다 건물 외장재 손상이 덜 가기 때문이지. 스폰지 같은 것으로 빡빡 문질러. 그러면 때가 볏겨지지. 유리는 물기 없이 닦아내고. 또 건물 아래 조경수에 해가 덜 가지."

- 외벽청소를 하는 로봇인 자동화 곤돌라시스템 월봇(wallbot)이 개발되기도 했어요.
"10년 전에도 비슷한 게 나왔지. 아파트 베란다 유리를 닦는 기계였어. '아, 이제 일 다 해 먹었네' 했는데 사실 그게 무의미하더라고. 안전하지만 곤돌라가 너무 더뎌. 설치하는 것도 한나절 걸리지. 로봇이 알파고처럼 생각하고 팔과 다리가 잘 움직인다면 모를까. 근데 로봇이 한다고 해도 건물 외관 구조가 다 달라서 쉽지 않을 거야. 그런 로봇이 나오기까지 최소한 20년은 걸리지 않을까. 그래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많을 거야."

- 보람도 있을 것 같아요.
"일이 운동과 다름없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체력 관리를 하는 점에서 좋았어. 옛날에는 용산 국제빌딩이 제일 높았는데, 그 건물 올라가면 한강이 다 보여. 다른 사람은 밑에서만 보는데 나는 서울 시내를 훤히 다 보니까 뿌듯하지. 선선한 바람 쐬면서 담배 하나 태울 때 그 희열은 정말 대단해."

- 이 일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15여 년 전만 해도 이 분야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어. 견적 내는 방법도 많이 가르쳤지. 관심이 있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덤벼 봐, 얼마든지 가능해. 건물 천지잖아? 건물이 세워지는 순간부터 없어질 때까지 유지 관리가 계속 필요하니까 이 일로 밥벌이할 수 있지. 하고 싶은 사람은 내가 가르쳐줄 수도 있어, 지금도 가르치고 있고. 자신 있게 덤벼 보라고 전하고 싶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건물외벽청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