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한화 이글스는 24일 서울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맞대결에서 1-5로 완패했다. 최근 3연패포함 올 시즌 두산에게만 6전 전패를 당한 한화는 3승 16패로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즌 개막 전 5강은 물론 우승후보로까지 꼽혔던 한화의 몰락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비난의 화살은 자연히 김성근 감독에게 쏠리고 있다. 지난해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파격적인 투자로 수백 억을 쏟아부어 대대적인 전력보강을 단행했고, 김 감독에게 팀운영의 전권을 보장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갈수록 역주행하는 성적에 구단과 팬들 모두 실망감이 크다.

하지만 최근 한화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단지 성적의 문제가 아니다. 한때 야구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큰 신드롬을 일으켰던 '김성근 판타지'가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김성근 감독은 올 시즌 팀 운영과 리더십을 둘러싼 잇단 구설수로 끊임없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열흘 전 두산전에서 벌어진 송창식의 '벌투' 논란을 기점으로 김성근 감독의 후진적인 야구스타일과 용병술이 비판의 표적이 됐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는 스파르타 훈련과 벌떼야구로 대표되는 김성근식 야구는, 사실 한화 이전에도 그랬고 지난해만 해도 '혹사' 논란으로 여러 번 비판의 대상이 됐다. 다만 그동안은 성적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었기에 논란을 어느 정도 무마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혹사는 선수 생명과 팀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성적만 다 좋으면 만사형통'이라는 김성근식 논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올 시즌엔 그동안 가려졌던 김성근 야구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아직도 KBO에 잔존해있던 '옛날 야구'와 전근대적인 리더십의 문제점을 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더이상 통하지 않는 김성근식 야구

머리 만지는 김성근 지난 17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LG의 경기. 한화 김성근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던중 머리를 만지고 있다.

▲ 머리 만지는 김성근 지난 17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LG의 경기. 한화 김성근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던중 머리를 만지고 있다. ⓒ 연합뉴스


보통 김성근 야구하면 떠올리는 강점들은 철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스몰볼로 여겨졌다. 강도 높은 지옥훈련을 바탕으로 한 안정된 투수운영과 수비력은 김성근 야구를 지탱하는 기둥과도 같았다. 그런데 올해 한화 마운드의 평균자책점은 6.34로 10개구단 중 최하위이며 실책도 25개로 가장 많다. 반면 팀타율(.261, 9위)과 홈런(10개, 10위)는 모두 리그 최하위권이다.

지난 24일 두산전에서는 한 경기 실책만 5개가 쏟아져 나오는 졸전 속에 타선마저 침묵하며 완패했다. 매일 반복되는 특타와 지옥훈련, 벌떼야구에도 김성근 감독의 방식이 지금의 현대야구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경기운영 방식도 매 경기 일관된 로테이션이나 원칙이 없다.

경기 외적인 측면에서는 아들인 김정준 전력분석 코치를 둘러싼 구설수가 팬들이 김성근 감독에게서 등을 돌리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한 매체를 통하여 김정준 코치가 자신의 독특한 팀내 지위를 이용하여 월권을 자행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에이스 에스밀 로저스의 2군행과 고바야시 전 투수코치의 갑작스러운 사임과도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팬들의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김정준 코치는 의혹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만 해도 SNS를 통하여 해당 매체에 대한 법적 대응 가능성을 거론하며 강경한 반응을 보였으나, 오히려 추가 폭로가 이어지고 여론이 악화되자 자신의 SNS 발언을 삭제하고 최근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는 김성근 감독의 리더로서의 신뢰와 공정성에 뼈아픈 흠집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언론이 김성근 감독과 한화에게서 본격적으로 등을 돌리는 시점도 이와 맞물린다. 일반 팬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김성근 감독은 소위 '언론플레이의 달인'으로도 꼽혀왔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과는 종종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언론을 이용하여 적절히 논쟁적 이슈를 제기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데 대단히 능한 인물로 통했다. 언론 역시 타고난 이슈메이커로서의 김성근 감독을 사랑했고 그의 언행과 일거수일투족을 화제의 중심으로 부각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김성근 감독이 '야신'(야구의 신)이자 '비주류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표본', '쓴소리라도 할말은 하는 야구계 어른' 등의 이미지로 각인되며, 단지 야구인을 넘어선 오피니언 리더로까지 부상할수 있었던 것도, 알고보면 친김성근 성향의 언론이 연출해낸 이미지의 힘이 컸다. 이를 바탕으로 김성근 감독은 원로 야구인으로는 드물게 유명 아이돌이나 정치인 못지않은 강력한 대중적 팬덤을 형성하기도 했다.

김성근 감독과 주변의 불화

하지만 이 과정에서 김성근 감독은 자신에게 반하거나 대립각을 세운 많은 이들을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김 감독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SK 시절, 뛰어난 성적과는 별개로 김 감독의 노골적인 언론플레이와,  비신사적인 야구스타일에 환멸을 표시한 야구인들도 적지 않았다.

빈볼 의혹, 사인 훔치기, 크게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빈번한 투수교체 등 상대를 짓밟아서라도 승리하는 것만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운 김성근 야구는, 심지어 잘나가던 시절에도 통상적인 신경전의 범위를 넘어선 비매너로 여러 번 도마에 올랐다. 김 감독 본인은 심지어 유사한 상황에서도 피아 입장에 따라 잦은 말바꾸기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타팀의 야구스타일이나 선수 기용방식에 대해서도 간섭하다가 타 감독들의 격렬한 반발을 초래하기도 했다.

한때 같은 편도 예외는 아니었다. SK 시절인 2011년 재계약 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빚던 김성근 감독은 결국 경질됐다. 당시에는 구단에 최고의 성공을 안겨준 명장에 대한 '토사구팽'이라는 여론몰이가 대세였지만 실제로는 구단의 운영 방향과 권한 범위를 둘러싼 입장의 충돌이었다. 김 감독은 우승이라는 성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싶어했고, 구단은 프런트의 공로나 구단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인정하지 않고 성공의 전유물만 감독 혼자 좌지우지하려는 독선적 태도를 용납할 수 없었다.

김 감독은 SK에서 물러난 이후 오히려 독립 구단 고양 원더스 사령탑 등을 거치며 존경받는 야구 원로로서의 입지를  더욱 강화해 나갔다. SK 프런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던 김 감독은 경질 이후에는 틈만 나면 인터뷰나 자서전에서 SK 구단과 자신의 후임이 된 이만수 감독을 직간접적으로 비난하며 앙금을 드러냈다. 정작 이만수 감독과 SK 구단은 엄청난 비난을 들으면서 김 감독에 대하여 끝까지 말을 아꼈다.

시간이 흘러 프런트의 적절한 견제와 분업화, 리더 대한 직언이 사라진 현재 한화에서 김성근 감독이 그토록 갈망해 오던 현장의 '절대권력'이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SK 시절의 사건들이 오히려 재조명받는 근거가 되고 있다.

또한 한화에서 김 감독은 단순히 선수를 지휘하고 경기를 운영하는 헤드 코치의 역할을 넘어, 전반적인 팀 운영을 좌우하는 매니저형 감독에 가깝다. 하지만 매니저로서 한화에서 김성근 감독의 영향력은, 성적 부진보다 더 최악이다. 김 감독 부임 이후 당장의 성적을 위하여 즉시 전력감 선수들을 영입한다는 핑계로 비싼 FA와 노장 선수들을 영입하느라 팀 총연봉(전체 1위)은 급격히 증가했지만, 이는 라인업의 고령화와 유망주들의 대거 이탈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한화는 지금 1,2군 모두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2군에서도 올릴 선수가 없어서 출전 명단을 짜기도 어려울 정도다. 한화는 8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지금보다 2~3년뒤가 더 걱정이라는 이야기가 벌써 나올 정도다. 팬들이 더욱 격분하고 있는 것은 김성근 감독이 단순히 혹사 논란이나 현재의 성적 부진 때문만이 아니라, '현재를 담보로 팀의 미래까지 망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김 감독과 한화를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은 완전히 공격적으로 돌아선 분위기다. 언론보도만 해도 지난해까지는 김성근 리더십에 대하여 어느 정도 찬반양론이 공존하던 분위기와는 달리, 최근에는 연일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에 대하여 노골적일 만큼 강도 높은 비판 일색이다. 김 감독의 절대권력과 김정준 코치 사건 등 일련의 페쇄적인 행보로 인하여 그동안 어느 정도 상호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던 언론과 등을 완전히 돌린 것이  김감독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화려한 '야신' 이미지에 가려졌던 김성근 야구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속속 폭로되면서 김 감독은 더욱 궁지에 몰리고 있다. 심지어 한때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에 대하여 찬양 일색이던 일부 언론인들도 여론이 완전히 돌아설 조짐을 보이자 재빠르게 '김성근 비판'으로 태세 전환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 도리어 조롱을 당하고 있다.

또한 이는 한편으로 김성근 감독에 대한 비판과는 별도로, 한 사람의 이미지를 영웅에서 역적으로 만들 수 있는 언론의 무서운 영향력과, 대중적 인기의 허무함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급기야 김성근 퇴진 운동 나선 팬들

팬들도 급기야는 행동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김성근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등장할 정도로 여론이 악화됐다.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팬들이 직접 영상 제작과 1인 시위등을 통하여 김성근 감독의 영입을 구단에 청원하며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민심의 변덕스러움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들 역시 언론이 만들어낸 '김성근 판타지'에 속았던 선의의 피해자들일 뿐이다.

김성근 감독이 항상 선수들이나 언론에 강조했던 이야기가 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성공"이라는 지론이다. 말 자체는 분명히 귀담아들어야 할 명언이다. 문제는 선수들에게만 줄곧 그러한 변화와 노력을 강요하기 전에, 김성근 본인은 과연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변화하려는 시도를 얼마나 했느냐다.

야구도 세상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과거에 어떤 방식이 통한다고 해서 내일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풍부한 경험도 혁신이라는 업데이트를 제때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시대에 뒤처진 과거의 유산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좋은 리더는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변화할 줄도 알아야한다. 어쩌면 무능한 리더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자신이 유능하다고 착각하고 모든 일을 다 자기 방식대로만 하려는 리더다. 

김성근 감독에겐 이제 결자해지의 시간이 왔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고집과 독선으로 가득한 구시대의 명장으로만 남던지. 다만 김 감독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할 용기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깨끗이 떠나는 것이 팬들을 위한 마지막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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