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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그것이 문제로다.
 비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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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떠났다. 비자를 갱신하기 위해서다. 워킹홀리데이비자는 한 번에 한해 1년 연장할 수 있다. 세컨드 워킹홀리데이비자. 농장이나 공장 같은 노동력이 필요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다. 그러기 위해서는 90일을 농장이나 공장에서 일해야 한다.

비자가 귀하다 보니 브로커가 생긴다. 여기서 브로커는 암암리에 구할 수 있다. 농장이나 공장에서 대신 일을 해주거나 서류를 만들어주고 인터뷰 준비를 시키는 작업을 맡는다. 브로커는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떠나겠다는 동료는 90일을 정직하게 일하기로 했다.

"돈은 많이 벌겠죠?"

농장에서 일했던 사람에게 농장일에 대해 물어봤다.

"성과급이야 성과급. 얼마나 자기가 일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농장은 오전·오후로 나뉘어 일한다고 한다. 자기가 나가고 싶은 시간에 나갈 수 있다고. 다만 얼마나 임금을 받을 수 있느냐는 개인 능력 차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개인과 팀원제로 나눠서 하기로 하지."

개인은 말 그대로 개인이 알아서 하는 것. 팀원제는 각자 수확물을 모아 정확히 1/n로 나누는 방식을 취한다. 농장에서 얼마나 벌었느냐고 묻자 그는 놀랄 만한 대답을 해줬다.

"하루에 300호주달러. 오전에만."

"돈 많이 벌면 뭐해? 매일 술만 마시는 거지..."

술, 술, 술, 술,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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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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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주변엔 아무것도 없단다. 마트에서 장을 보려고 해도 차가 필요하다고. 그나마 주점은 많아 매일 술을 마시는 게 일상이란다. 농장은 대부분 한인들과 같이 사는 경우가 많단다. 말 그대로 한인 천국이라고.

"돈은 많이 벌어도 못 모으지. 그만큼 쓰거든. 할 게 없는데 뭐하겠어? 매일 술만 마시는 거지."

농장 환경도 천차만별이란다. 셰어 마스터가 말했다.

"이곳에서 농장은 정말 힘들어요. 몇몇 군데는 악명이 높아요."

악명이 높은 곳은 중간 관리자가 장난을 친다고 한다. 가령 한 바구니에 10호주달러를 계산해주기로 했는데, 수확철에 바구니 값이 점점 내려간다고.

"수확철 되면 바구니가 5호주달러, 이렇게 내려가요. 그래도 일을 할 수밖에 없어요. 세컨드 비자 받으려면 경력증명서가 필요하니까."

그래서 이것을 대신 해주는 브로커가 생기는 모양이다. 역시 비자의 나라다. 동료에게 슬쩍 이야기를 건네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별 수 있나요. 저는 이곳에 더 있어보고 싶거든요. 그럴려면 해야죠."

동료가 떠나는 날. 주방 사람들은 아쉬워 한다. 19살에 호주에 와서 1년을 있었다. 구박도 많이 받았지만 언제나 긍정적으로 웃어주던 그. 그가 떠난다니 모두가 아쉽다. 아무리 워홀러들이 '언젠가 떠날 사람'이라고 하지만, 막상 간다고 하니 반응이 이렇다. 매니저는 그 동료를 보면서 신신당부한다.

"혹시라도 농장일이 어려우면 다시 돌아와. 이전 경력까지 쳐서 시급 올려줄게."

동료가 떠났지만, 일은 남아있다. 그가 하던 일을 하는 사람이 비자 '누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인가'가 문제로 떠올랐다.

"니가 해."

매니저가 내게 지시한다. 나는 다시 포지션이 변경됐다. 아니, 사실 매일 변한다. 박스 포지션에 갔다가, 롤 메이커 포지션에 갔다가, 원래 있던 핫푸드 포지션으로 갔다가…. 하루하루가 정신이 없다. 평온하던 일상이 깨진다. 주방에서 잔소리와 핀잔이 날아온다. 물끄러미 보던 주방 이모가 말했다.

"니가 고생이다. 원래 포지션이 정해져 있는 게 주방인데."

정신 없는 주방에서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런데 문득 휴식이 주어졌다.

"월요일 하루만 쉬자."

캐쉬잡(임금을 현금으로 받는 직종)에게 고정된 시간은 없다. 사정에 따라 노동시간이 유동적으로 바뀐다. 여기서 사정은 내 사정일 수도 있고, 가게의 사정일 수도 있다. 고정적이지 않는 시간. 스시잡에 대한 불안이 커져간다.

덧붙이는 글 | 스물일곱.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왔습니다. 앞으로 호주에서 지내며 겪는 일들을 연재식으로 풀어내려 합니다. 좀 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풀어내고 싶습니다.



태그:#호주, #스시잡, #세컨드, #워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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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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