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 ⓒ tvN


"이 바닥엔 타인의 창작물을 도둑질해가는 도둑들이 매우 많다. 자기 머리로 작품 하나 구상하지 못하고 필력도 상당히 떨어지지만 작가입네 하고 다니는 인간들도 참 많이 봤다. 누가 봐도 핵심 플롯과 캐릭터를 가져가놓고, 중간에 이야기가 다르다고 우기는 작가들을 보면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다.

공모전에서 수상했던 내 시나리오를 베껴서 영화에 넣은 한 감독은 지금도 영화일 하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베꼈으면 주변 PD, 제작자분들이 고소하라고 난리였는데. 그땐 내가 너무 어렸다. <피리부는 사나이>가 정말 표절이 맞다면 아주 큰 처벌이 내려졌으면 좋겠다. 자꾸 봐주고 하니 더 심하게 표절들을 하는 것 같다."

21일 불거진 tvN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의 표절 논란을 접한 한 현직 시나리오 작가는 이런 소감을 전했다. 아직 논란중인 한 드라마의 표절 여부보다 표절이 만연한 영화/드라마 생태계와 종종 그 발단으로 기능하는 공모전의 역기능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다. 또다른 작가 역시 공모전에 얽힌 일화를 들려줬다.

"예전 시나리오 공모전 심사에 참여했던 모 감독에게 들은 얘기다. 심사 중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발견하고는 '이거 내가 해야겠다 싶어' 그 작품이 당선 못되게 뒤로 몰래 빼서 가지고 나왔다고 했다. 후에 술자리에서 그 사실을 자랑하는 걸 들었다. 물론 모 감독은 그 작가를 나중에 불러서 만났고, 자랑스레 '내가 널 발굴한 거다'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정작 시나리오는 개발한답시고 감독이 주물럭거리다 결국 엎어졌고. 작가는 계약은커녕 감독한테 술 몇 잔 얻어먹은 게 다였다. 그대로 뒀다면 그 시나리오는 당선될 수도 있었을 텐데."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표절 논란 말이다. 이미 월화드라마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SBS 및 원작 웹툰과 복잡한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피리부는 사나이> 표절시비가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 논란에는 좀더 깊히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있다.

"심사 본 작가가 내 작품을 훔쳤다"

 웹툰 '피리 부는 남자'.

웹툰 '피리 부는 남자'. ⓒ 고동동


지난 20일 웹툰 작가 고동동이 한 게시판에 표절 의혹을 제기한 것이 발단이었다. 고동동 작가는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가 2년 전 자신이 한 시나리오 공모전(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주최 '2014 창작스토리 기획개발')에 출품했다 탈락한 '피리부는 남자'와 유사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고동동 작가는 심지어 자신의 작품을 심사했던 심사위원이 <피리부는 사나이>의 류용재 작가라고 밝혔다.

고동동 작가는 "이 작품은 제가 10여 년 전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쓰기 시작해 20~30회의 탈고를 거쳐 2014년 완성한 작품"이라며 "심사위원이었던 분이 1년 3개월 후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드라마의 극본을 쓰셨습니다, 그분은 1차 심사면접에서 제 작품을 칭찬하며 얼굴 맞대고 잘 썼다고 힘을 주셨던 분이였습니다"라고 적었다.

고동동 작가는 드라마와의 동일성에 대해 "동화 속 <피리부는 남자>를 희대의 테러범으로 해석했고, 테러를 하는 이유가 동화처럼 부패한 권력에서 맞서는 것이며, 가스 살포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고 진실을 얻어낸다"는 점 등을 꼽았다. 주제와 캐릭터, 디테일 면에서 모두 유사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tvN 측은 이 같은 표절 시비에 대해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심사는 류용재 작가가 한 게 맞지만, 소재나 설정 자체가 아예 달라 류 작가가 억울해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구체적인 입장은 웹툰의 원안을 확인하는 등 추후 상황을 확실히 확인하고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박은 다시 이어졌다. 고동동 작가 역시 "해명을 접하고 어안이 벙벙했다"며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을 논의 중"이란 입장을 전했다. 2~3차 심사까지 류 작가가 직접 봤다는 점도 강조했다. 언제나 그렇듯 공방이 오가는 표절 시비가 드라마 종영을 앞두고 또다시 시작된 것이다.

전형적인 패턴

매해 수차례 반복되는 패턴은 크게 두 가지다. 기성 작가의 기존 유·무명 콘텐츠를 표절하는 것, 그리고 주로 신인 작가가 각종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의 소재나 아이디어를 베끼는 것.

<피리부는 사나이> 논란 역시 법정으로까지 시비가 옮겨질지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애초 그 출발이 공모전이었고, 표절 당사자로 지목된 이가 작가였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앞서 현직 작가들이 얘기한 '공모전 표절'의 전형적인 사례들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공모전의 경우, 2004년 한 시나리오 작가가 '한류 PD' 윤석호 PD의 <여름향기>를 두고 10년 전 공모전에 제출한 자신의 작품을 도용당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대본 배포금지 소송을 전개한 것이 시초라 할 수 있다. KBS와 (주)팬엔터테인먼트, 윤석호 PD, 작가 최호연씨 등을 상대로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1년 여간 진행됐던 소송은 결국 밝혀지지 않은 적절한 합의금을 지급하는 합의 형태로 마무리됐다. 재판부가 한창 물이 올랐던 한류붐이 타격을 입을까 걱정해 합의를 적극적으로 요구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항상 여전히 이런 식이다. 법정까지 가봐야 길고 긴 소송의 끝엔 별게 없다. 베낀 창작자들의 의도와 행위를 제대로 검증할 수 없는 재판부는 단순 텍스트 비교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합의가 가능하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그야말로 안 좋은 선례들이 관행을 만들고, 표절이란 심각한 '절도' 행위에 기이한 면죄부들을 쥐어준다.

특히나 '일단 흥행에 성공하고 나면 모든 게 묻힌다'는 법칙이 제작자나 방송사 사이에서 이미 공고화됐다는 것이 현직 작가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심지어 이제는 저작권 등록을 해놔도 이른바 '우라까이'라는 부분적 베끼기가 횡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게 다 표절에, 성공한 작품에 관대한 한국사회의 분위기가 만든 폐해다.

'공모전 표절'이 더 질이 나쁜 이유는 명백하다. 어차피 약자일 수밖에 없는 (대부분이 무명이거나 신인인) 작가들의 작품을 훔치는 갑의 횡포이기 때문이다. <피리부는 사나이> 표절 시비가 어떻게 해결될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피리부는 사나이>에는 신하균, 유준상, 조윤희 등의 배우들이 출연한다.

<피리부는 사나이>에는 신하균, 유준상, 조윤희 등의 배우들이 출연한다. ⓒ tvN



피리부는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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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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