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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드라마 <화정>의 한 장면. 광해군 역을 맡은 배우 차승원.
 MBC 드라마 <화정>의 한 장면. 광해군 역을 맡은 배우 차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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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 인사들의 한 표만 중요한 게 아니다. 일반 백성의 한 표가 정권의 명운을 좌우할 때도 있다. 광해군 시대도 그랬다. 광해군 정권은 인조 쿠데타(인조반정) 때문에 몰락했지만, 어떻게 보면 일반 백성의 한 표를 간과했기 때문에 몰락한 측면도 있다. 광해군 정권이 그 한 표에 신경을 썼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 한 표의 주인공은 강원도 춘천 출신의 식당 주인인 우 사장이다.

우씨에 관한 이야기는 전 의령현감 서유영이 지은 <금계필담>과 조선 후기에 나온 위인전인 <국조인물지>에 나온다. 그는 임진왜란 종전(1598년) 몇 년 뒤 춘천에서 출생했다. 아버지가 고위직 무관이었으니, 양반 가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양반이란 개념은 명문가를 뜻했고 고위직 중에도 명문가 출신이 아닌 경우가 많았으므로 '고위직 무관이니 양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표현한 것이다. 

양반의 후예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어릴 적에 부모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우씨는 고아로 성장했다. 부모가 남겨둔 재산도 거의 없었다. 친척들은 한양에 살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씨의 아버지는 춘천에서 그를 낳았다. 그래서 춘천에서는 의지할 데도 없었다. 그는 하층민 고아로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아버지가 고위직이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저 헐벗은 고아일 뿐이었다. 

이처럼 흙수저로 인생을 시작했지만, 그는 서러워하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잘살아보겠다는 성공 전략을 세우고 그 걸 성취하기 위한 일념으로 불탔을 뿐이다.

<금계필담>에 따르면, 우씨는 총명하고 지혜로웠다. 어떻게 배웠는지, 관상도 잘 봤다. 성격도 쾌활하고 입담도 좋았다. <국조인물지>에 따르면, 그러면서도 정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인격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이런 자질을 갖추고 있었기에 '잘 살아보겠다'는 성공 전략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성공 전략의 끝부분이 광해군 정권의 명운과 맞닥뜨렸다. 우씨는 평범한 백성이었다. 그런 평범한 사람의 한 표가 광해군 정권에 영향을 미쳤다. 지금 같은 투표 제도는 없었지만, 분명히 그랬다. 그래서 우씨의 사례는 일반 백성의 한 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우연의 시작

성공 전략을 세운 초기에, 우씨는 '사람이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좋은 파트너를 만나 힘을 합쳐야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성공 전략의 첫 단계는 '좋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좋은 남자를 만나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하지만 춘천에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그래서 좋은 남자를 소개해줄 중매자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척들을 찾으러 한양으로 떠나게 되었다. 친척들의 도움을 구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여성 혼자 힘으로 한양까지 걸어가는 것은 위험했기에, 남자 옷을 구해 입었다.

 경기도 여주시의 명성황후 생가에서 찍은 사진. 사진은 본문 내용과 상관 없음.
 경기도 여주시의 명성황후 생가에서 찍은 사진. 사진은 본문 내용과 상관 없음.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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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 차림으로 경기도 양주까지 왔을 때였다. 남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 남자한테 곧바로 꽂혔다. 그래서 용감하게 헌팅을 한다. 남장을 한 사람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상대방 남자는 적잖게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헌팅은 성공했고, 두 사람은 곧바로 결혼했다. 

<금계필담>에서는 그 남자가 "몹시 추악하고 미련하며 어리석어 보였다"고 했다. 우씨는 얼굴이아니라 관상을 보았다. 관상을 보니, 부귀영화를 누릴 상이었다. 돈과 지위가 들어올 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씨의 인생 목표에 도움이 될 남자였다. 그래서 용감하게 접근했던 것이다.

이기축이란 이름을 가진 그 남자는 우씨보다 16세 연상으로 추정된다. 알고 보니 그는 왕족의 후예였다. <국조인물지>에 따르면, 태종의 아들인 효령대군의 8대손이었다.

이기축 본인은 엄밀한 의미에서 왕족은 아니었다. 효령대군의 4대손이자 이기축의 고조부인 이철동까지만 왕족의 의무와 특권을 누렸다. 증조부 이후로는 왕족이 아니었다. 왕족의 후예일 뿐이었다. 거기다가 이기축 때 와서는 경제적으로 가난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우씨와 이기축은 사실상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신혼 생활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한양 근처로 추정되는 곳에서 부잣집 머슴 생활을 시작했다. 신혼 생활이 머슴 생활로 시작됐던 것이다. 노비는 법적으로 예속 상태인 데 반해, 머슴은 일반인과 똑같은 법적 자유인이었다. 머슴은 자유계약에 기초한 노동자였다. 그래서 누구라도 머슴이 될 수 있었다. 이기축도 그래서 머슴이 되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그 집에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직장에서, 우물 긷고 절구 찧는 일을 했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사내 커플'이었다. 두 사람은 직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았다. 여기서 말하는 돈에는 쌀이나 옷감도 포함된다.

돈이 좀 쌓이자, 우씨는 남편을 데리고 부잣집을 나왔다. 이때가 '입사' 1년 뒤였다. 부잣집을 나온 것은 셋방 구할 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씨는 주점에 딸린 방을 세냈다. 17세기는 전세 제도가 막 생기던 때였다. 그래서 아직은 전세가 귀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구한 방은 월세 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셋방에 들어간 뒤로도 두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재산을 축적했다. 우씨는 그 돈으로 조그만 땅을 샀다. 움막을 지어 이곳으로 이사하기 위해서였다. 움막이기는 해도 '은행 대출' 없이 한양 근처에 내 집을 장만했으니,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둔 셈이 됐다.

자기 집이 생긴 때부터 우씨는 옷감을 지어서 팔고, 남편은 산에서 나물을 캐어다 시장에 팔았다. 우씨가 부유층을 상대로 옷감을 팔았는지, 몇 년 안 되어 700~800냥으로 평가되는 재산이 모아졌다.

조선 후기 경기도에서는 논 1마지기가 보통 10냥에서 20냥으로 거래됐다. 텔레비전 사극에서는 1냥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지만, 1냥은 동전 100푼으로 상당한 가치를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이 모은 돈이 800냥이라고 한다면, 이 돈은 경기도에서 논 40~80마지기를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우씨는 그 돈으로 한양 서대문 밖 대로변에 식당을 차렸다. 이곳은 지금의 홍제동이었다. 한양 밖 10리까지 한성부로 인정됐기 때문에, 이곳은 사대문 밖이기는 해도 한성부였다. 정확히 하면, 한성부 북부 연은방이었다. 춘천에서 고아로 살던 사람이 한성부에 식당을 차렸으니, 상당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우씨는 돈만 많이 번 게 아니다. 남편의 과거시험 무과 준비도 지원했다. 남편한테 전적으로 공부할 기회만 준 것은 아니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남편은 무과에 급제했다. 이때가 1620년이다. 광해군 정권 몰락 3년 전이었다. 한성부에 식당도 차리고 남편도 급제시켰으니, 우씨의 성공 전략이 대단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가 인조 편에 서지 않았더라면...

 드라마 <화정>에서 인조 역을 맡은 배우 김재원.
 드라마 <화정>에서 인조 역을 맡은 배우 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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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성공 전략의 다음 단계가 광해군 정권의 명운과 연결됐다. 광해군 정부는 개혁 정권이었다. 하지만 집권 후반에는 인기가 없었다. 광해군은 이복 동생 영창대군을 죽이고 계모 인목대비를 덕수궁(서궁)에 연금했다. 거기다가 궁궐 공사를 많이 벌였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세금도 많이 내고 노동력도 무상으로 제공해야 했다. 임진왜란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했으니, 인기가 급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음 임금인 인조를 중심으로 쿠데타 음모가 시작됐다. 그런데 음모가 벌어진 장소 중 하나가 홍제동과 접한 인왕산이었다. 우씨는 점잖아 보이는 사람들이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우씨는 그들에게 접근해서 '공짜 쿠폰'을 나누어주었다. 술과 식사를 공짜로 드릴 테니 한번 들러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조의 측근들이 우씨의 식당에 출입하게 되고 이들이 우씨의 팬이 되기 시작했다. 우씨는 쾌활하고 입담이 좋았다. 이 때문에 인조 쪽이 이 식당을 자주 출입하게 되었다고 <금계필담>은 말한다. 그러는 사이에 우씨는 쿠데타 음모를 소상히 파악하게 되었다.

이때 우씨가 '112'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면, 쿠데타가 불발로 끝났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우씨는 신고하지 않았다. 광해군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 광해군 정권에 한 표를 던졌다면, '인조 쿠데타'니 '인조반정'이니 하는 것이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훨씬 더 힘을 발휘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씨는 '112'를 외면했다.

우씨는 세상 흐름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광해군 정권은 이미 기울었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그는 쿠데타에 가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나도 끼워주시오"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남편을 통해 인조에게 쪽지를 보냈다. 쪽지에는 딱 세 글자만 적혀 있었다. 탕방걸(湯放桀)이란 글자였다.

'탕방걸'은 '탕왕이 걸왕을 추방하다'란 뜻이다. 하나라 마지막 군주인 걸왕을 탕왕이 몰아내고 은나라를 세웠다는 뜻이다. 이 사건은 역성혁명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우씨가 그런 쪽지를 인조한테 보낸 것은 '나도 당신들의 계획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쿠데타를 준비하는 오늘날의 누군가가 단골집 사장으로부터 '5·16' 혹은 '12·12'라고 적힌 쪽지를 받는다면,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조도 그랬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란 인조는 우씨 부부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우씨가 더 빨리 행동했다. 인조가 자기 부부를 죽이기 전에, 인조를 찾아가 자신들을 믿고 끼워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인조는 입담 좋은 우씨한테 넘어갔다. 이렇게 해서 이 부부도 쿠데타에 가담하게 됐다. 남편 이기축은 쿠데타군의 선봉장이 되었다.

 폐위 후 유배가는 광해군(차승원 분). MBC 드라마 <화정>의 한 장면.
 폐위 후 유배가는 광해군(차승원 분). MBC 드라마 <화정>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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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가 성공하고 광해군이 실각하면서, 이기축은 고관대작이 되고 우씨는 정부인이 되었다. 정부인은 장차관의 부인이 받는 작위다. 춘천에서 고아로 성장한 사람이 식당 사장을 거쳐 정부인까지 됐으니, 개인적으로 본다면 대단한 성공이었다. 개혁 정권을 망가뜨린 것은 좀 그렇지만, 우씨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쨌거나 성공이었다. 

만약 광해군이 우씨 같은 평범한 백성들의 동향에 좀더 민감했다면, 그래서 지지율을 떨어뜨릴 만한 일을 좀더 자제했다면, 쿠데타 계획을 알아낸 우씨가 그렇게 과감하게 인조를 지원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광해군은 그러지 못했다. 개혁 의지를 지닌 군주였지만, 백성들의 생각을 좀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결국 그것이 우씨 같은 백성이 인조한테 한 표를 던지도록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어찌 보면, 개혁정권이건 보수정권이건 간에, 망하는 순간에는 그 한 표 때문에 낭패를 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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