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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경기도 안산 세월호참사정부합동 분향소에서 출발해 단원고를 거쳐가는 세월호참사 2주기 추모행진에 참석한 유가족이 단원고 기억교실을 방문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다시 찾아와도 또 흐르는 눈물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 세월호참사정부합동 분향소에서 출발해 단원고를 거쳐가는 세월호참사 2주기 추모행진에 참석한 유가족이 단원고 기억교실을 방문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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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돌 때 실을 잡았는데
명주실을 새로 사서 놓을 것을 쓰던 걸 놓아서 이리 되었을까
엄마가 다 늙어서 낳아서 오래 품지도 못하고 빨리 낳았어
한 달이라도 더 품었으면 사주가 바뀌어 살았을까
엄마는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다
몇 푼 벌어보겠다고 일하느라 마지막 전화를 못 받아서
미안해, 없는 집에 너 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갈게 딸은 천국에 가


2년 전 합동 분향소에 놓여있던 어머니의 편지다. 세월호로 소중한 자식, 자매, 형제, 친구를 잃은 사람들 가운데 덧없는 자책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수학여행 떠나는 것을 왜 막지 않았을까, 왜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전화를 왜 못 받았을까, 전화를 받고도 왜 구하지 못했을까, 심지어 왜 낳았을까.

한국 정부와 언론, 일부 국민은 '사고로 죽은 이들의 책임을 왜 정부에게 묻느냐'며 유족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국가에게 쏟아낸 분노보다 훨씬 큰 자책을 자기 자신에게 쏟았고, 지금까지도 자신을 괴롭히고 있을 것이다. 아무 죄도 없는 자신들에게 말이다.

곱디고운 딸을 잃은 어머니는 자신이 지옥에 갈 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빌었다. 정부와 언론은 그런 부모들에게 '불온'과 '탐욕'의 딱지를 붙이며 비난했다. 그들의 자식이 '단순 사고'로 죽었다고?  

배가 항로를 이탈하고 선체가 급격히 기우는 사고에도 승객들은 멀쩡히 살아있었다. 선원이 배를 버리고 도망치고, 선실로 물이 차올라올 때에도 그들은 살아있었다. 살아있었을 뿐 아니라, 완전히 뒤집혀 물 속에 잠긴 뒤에도 탈출하기 위해 철문을 맨 손으로 뜯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국가는 이들에게 손을 뻗어 끌어올리지 않았다.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국가의 방치로 죽었다. 수백 명의 어여쁨이, 자랑이, 희망이, 안타까움이 어처구니없이 꺼져갈 때, 수천 명의 부모, 형제, 친구, 그리고 수천 만 명의 국민이 비통함 속에 삶의 의욕을 잃었다. 그들 입에서 '이건 나라도 아니'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정부의 무능'을 탓하는 이들이 많았으나, 세월호 참사는 '무능'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의 결과였다. 책임자들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사이, 윗 사람에게 자신을 돋보일 '그림'을 만들려고 궁리하는 사이, 이들보다 훨씬 오래 살았어야 할 아이들은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국민 목숨보다 '윗분용' 보고서 숫자가 더 중요한 나라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하고 있다.
▲ 실종자 가족 요구사항 듣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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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세월호편은 이 참사가 불행한 상황이 우연히 겹쳐 일어난 결과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만 톤 급의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현장에 처음 도착한 것은 고무보트 한 척과 헬기 두 대뿐이었다. 이들의 어설프기 짝이 없는 구조작업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은 청와대의 몰상식한 행동이었다.

배가 급속히 물 속으로 꺼져가고 있을 때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은 구조 지휘에 바쁠 해경 본청에 전화를 걸어 배 이름을 물은 뒤, "'에'자, '세자'...울? 아, '세월호'..."하며 느긋하게 철자법을 확인한다. 여기에 '출발 시간'과 '도착 예정 시간'을 물은 뒤 '배의 크기'까지 확인하고는, '현지 영상이 나온 게 있느냐'고 묻는다.

해경 측에서 사진을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난처해 하자, "여기 지금 VIP(대통령) 보고 때문에 그런데" 하며, 빨리 보내라고 재촉한다. 결국 구조중인 대원들에게 영상 주문이 전해지고, 현장 작업을 벌이던 대원이 사진까지 찍어야 했다. 청와대는 이제 '구조 인원이 몇 명인지' 알려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청와대의 끈질긴 요구는 몇 명 되지도 않는 일손마저 빼앗아 갔다. 방송에서 인터뷰한 생존자 한 사람은 "해경이 구조는 안 하고 인원수만 계속 세고 있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다시 집요하게 '영상'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영상 시스템(탑재한 배가) 언제 도착하느냐"고 묻더니, 배가 오는 대로 "영상 바로 띄우라"는 명을 내린다. 그 다음 정말 기막힌 주문이 내려진다.

"그것부터 하세요, 다른 것 하지 말고."

배가 머리만 남기고 가라앉은 상황에서 청와대는 "지금 거기 배는 뒤집어졌는데 지금 탑승객들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아직 선실 안에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라고 답하자, "네? 언제 뒤집어졌어요?"라며 되묻는다. 청와대 담당자가 가장 경악한 순간은 대통령에게 인원이 잘못 보고된 것을 깨달은 때였다.

"166명이라고? 큰일 났네. 이거 VIP(대통령께)까지 보고 다 끝났는데."

청와대는 이렇게 세월호가 가라앉던 위급한 순간에 1시간 50분이나 통화를 하며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그 뒤 나온 것은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대통령의 질문과, 청와대 대변인의 "청와대, 콘트롤 타워 아니다"라는 책임회피 발언이었다. 보고의 목적이 구조가 아니라 보고 그 자체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각하'와 '존영'의 호칭 뒤에 도사린 죽음

위계적 권력은 사람을 지위로 구분한다. 대통령과 상관은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경외의 대상이고, '아랫것들'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하는 무가치한 존재가 된다. 이런 위계적 구조 속에서 국민은 (선거날 하루만 빼고) 권력의 사다리에서 가장 밑바닥에 놓인 하찮은 존재로 전락한다. 

이승만 독재에서 시작되어 군사정부를 거치며 형성된 한국의 정치권력은 '윗분'들의 심기를 국민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모신다. 이런 나라에서는 대통령의 추가 안전 보장을 위해 피난하는 국민들로 가득한 다리를 폭파할 수 있고, 대통령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국민을 간첩으로 만들어 처형할 수 있고, 대통령 자리를 얻기 위해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있고, 발포 명령이 즉각 수행된다.

그런 나라에서는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이 '각하'나 '절대존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의 얼굴을 담은 사진은 '존영'으로, 그가 쓰는 화장실은 '세면장'으로 표기된다. 그의 결정은 항상 옳으며, 그에 대한 비판은 어느 경우도 허용되지 않는다.

실책을 드러냄으로써 절대적 위엄을 해치는 짓은 용납될 수 없었으므로, 국가의 책무를 묻는 유족들은 당연히 불순세력이 되어야 했고, '종북'이 되어야 했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집권한 권력은 책임만 회피한 게 아니라, 경제난의 원인까지 유족들에게 돌렸다. 정부는 '이제 경제살리기에 매진할 때'라며 시신 수습도 안 된 상태에서 '세월호 지우기'에 나섰고, 보수언론은 '경제 살리기 골든타임'이라며 대대적인 여론환기 작업에 돌입했다.

그 결과는 또 다른 국민의 희생이었다. 이듬해 메르스라는 또 다른 재앙이 터진 것이다. 세월호 때 그랬듯, 국민 목숨보다 담당자가 책임을 면하고 윗분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더 중요했으므로, 덮고, 감추고,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1명의 환자는 186명의 감염자와 37명이 사망자로 번졌다. 겨우 상황이 수습되자, 정부는 경제실패의 책임을 메르스에게 돌렸다. 

총선 결과가 보여준 상식 회복의 가능성

서울 은평갑에서 제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당선인이 14일 오전 당선 후 첫 일정으로 안산 화랑유원지내 세월호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방문해 유가족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 은평갑에서 제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당선인이 14일 오전 당선 후 첫 일정으로 안산 화랑유원지내 세월호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방문해 유가족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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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은 한국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돈보다 목숨이 중요하다'는 당연한 상식의 회복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후보가 단일후보로 추대되고, 결국 당선된 사실이다.

세월호 2주기의 뜨거운 추도 열기는 그 승리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 다수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소시오패스'가 아니었던 셈이다. 유족들은 이제 비로소 마음 놓고 울 수 있게 되었다. 

박주민 변호사는 세월호를 앞세워서는 표를 얻기 어렵다는 '전략적 우려' 따위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전면에 내걸며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정조준했다.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에 관해 조사 받았듯, 박근혜 대통령도 조사받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해왔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지나간 사건의 인과관계를 해명하고 책임을 묻는 '정의 회복'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것은 오직 힘의 행사에만 눈이 먼 야만적 권력에게 사람 목숨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일이다. 국민의 생명이 최소한 '윗분' 심기 챙기기만큼은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총선 패배 뒤 첫 대국민 담화에서 "앞으로 국민의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명감으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무리하도록 하는 데 혼신을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 목숨을 지키지 못하는 권력, 지키지 못한 것을 뉘우치지 못하는 권력, 국민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않는 권력이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주고, 행복하게 해주리라 기대하는 것이 현명한가? 다행히 우리는 표로 답했다.

"아니."


태그:#세월호, #박주민, #특별법, #박근혜, #그것이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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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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