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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 13곳이 모여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본부'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단체는 지난 4월 21일 전경련 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내유보금을 사회로 환수해 노동자·서민 생존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가계부채는 늘어만 가는데, 기업은 현금을 쌓아둔다는 국민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이와 유사한 주장이 많이 나옵니다. 사내유보금 과세를 주장하는 목소리 중 가장 적극적인 것은 전체 이익잉여금 증가액을 대상으로 하자는 쪽입니다.

반면, 이익잉여금 증가액이 모두 기업 내에 현금으로 쌓여 있는 것은 아니고 이미 투자된 금액도 포함되어 있으니 단기금융자산의 증가액만을 대상으로 하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보다 더 적은 금액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감세액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세통계연보를 활용하여 추정해 보면 약 41.2조 원

이명박 정부가 기업에게 준 감세효과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국회예산정책처는 의원들의 개별요청에 따라 몇 차례 감세효과를 계산한 적이 있습니다. 연간 대략 5~6조 원 수준이었는데 감세가 이루어진 전체 기간에 대한 자료는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세통계연보를 활용하여 간단히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는 단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2008년에 2억 원 이하 구간에만 13%를 11%로 인하했고, 2009년에 2억 원 초과의 구간을 25%에서 22%로 인하했습니다. 2010년에 2억 원 이하 구간을 다시 11%에서 10%로 인하했고, 마지막으로 2012년에 2~200억 원 구간을 신설해서 22%에서 20%로 인하했습니다.

[표 1 : 법인세율 변경 추이]
법인세율 변경 추이
(*) 2007년 이전에는 최저세율 구간이 1억원 이하였음
(자료 : 조세의 이해와 쟁점(법인세편), 국회예산정책처)
 법인세율 변경 추이 (*) 2007년 이전에는 최저세율 구간이 1억원 이하였음 (자료 : 조세의 이해와 쟁점(법인세편), 국회예산정책처)
ⓒ 국회예산정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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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율 인하 자료에 근거하여 구간별 감세비율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과세표준이 2~200억 원에 해당할 경우, 2009년에 25% 세율을 적용받아야 하는데 22%를 적용받기 때문에 그 구간에서 12%(3%/25%)의 법인세가 줄어들었습니다. 과세표준이 2억인 기업이라고 하면, 예전에 3800만 원(1억원 × 13% + 1억원 × 25%)을 내고 있다가 2008년에 2200만 원(2억원 × 11%)만 내면 되기 때문에 감세 비율은 42%(16/38)가 됩니다.

과세표준이 2~200억 원에 해당하더라도 2012년 이후에는 25% 대신에 20%를 적용받기 때문에 20%(5%/25%)의 법인세가 감소합니다. 과세표준이 20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2009년 이후로 25% 대신에 22%의 세율을 적용받았으므로 역시 12%(3%/25%)의 법인세가 줄어듭니다.

[표 2 : 2007년 이전 대비 구간별 감세비율]
법인세 감세비율
 법인세 감세비율
ⓒ 홍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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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과세표준 구간별로 기업이 얼마의 세금을 부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자료를 200억 원 이하 구간과 200억 원 초과 구간으로 구분하여 집계해 보면, 2014년의 경우 총 법인세 부담액이 35.4조 원인데 과세표준이 200억 원 이하의 기업들이 11.5조 원의 세금을 부담했고, 과세표준이 200억 원을 초과하는 기업들이 23.9조 원의 세금을 부담했습니다.

감세비율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과세표준 200억 원 초과 기업들이 부담한 세금 중 200억 원 이하 분을 따로 집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2년 이후 이 조건에 해당하는 기업들의 숫자는 각각 926개, 918개, 998개 입니다. 2014년의 경우 4.0조 원(998개 × 200억 원 × 20%)이 과세표준 200억 원 이하에서 발생한 세금입니다.

동일한 방식으로 계산해 보면 과세표준 200억 원 초과 기업이 부담한 세금 중 상대적으로 높은 감세비율을 적용받은 세금이 2012년부터 각각 3.7조 원, 3.7조 원, 4.0조 원입니다. 이 금액의 분류를 조정한 결과가 아래와 같습니다. 2008년의 경우, 2억 원 미만의 구간에서만 세율 인하가 있어 집계에서 생략했습니다.

[표 3 : 연도별 과세표준 구간별 부담세액]
(단위 : 조원)
연도별 부담세액
 연도별 부담세액
ⓒ 국세통계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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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각 연도별 국세통계연보)

이제 표2의 감세비율과 표3의 과세표준 구간별 부담세액을 활용하면 감세액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과세표준 200억 원 이하 중 2억 원 이하 구간에서 감세비율이 더 높지만 금액적으로 크지 않으므로 별도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즉, 200억 원 이하 구간은 2011년 이전 12%, 2012년 이후 20%의 감세비율을 적용했습니다. 과세표준 200억 원 초과 구간은 2009년 이후로 동일하게 12%의 감세비율을 적용했습니다.

이러한 추정방식에서는 2014년 200억 원을 초과하는 기업들이 총 23.9조 원의 법인세를 부담했는데, 이 중 4.0조 원은 200억 원 이하에서 발생한 세금이므로 20% 감세비율을, 19.9조 원은 12%의 감세비율을 적용하는 결과가 됩니다. 한편, 2015년의 경우 아직 국세통계연보 자료가 나와 있지 않으나 징수액 기준으로 2014년 보다 증가했기 때문에 최소한 2014년의 감세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표 4 : 이명박 정부의 감세효과 추정]
(단위 : 조원)
법인세 감소효과
 법인세 감소효과
ⓒ 홍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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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2015년까지 7년간 감세액을 더해 보면 총 41.2조 원입니다. 연평균 5.9조 원인데, 2012년에 7조 원을 넘었고 그 이후로 6.6조 원 수준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비공식 자료보다 조금 더 높게 추정됩니다. 법인세율을 당장 원상회복한다고 하면 이 정도의 세수가 증가할 것입니다.

이 감세액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세계금융위기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기업에 감세해 준 이유는 감세를 통해 경제가 활성화되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업에게 법인세를 깎아주면,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가계소득이 증가될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명시적인 것은 아니지만 국민과 기업 간의 약속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기업은 투자를 늘리지 않았고 고용도 증가시키지 않았습니다. 기업 내의 사내유보금이 늘고 단기금융자산만 늘어났을 뿐입니다.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자료를 보면, 2008년 말부터 2014년 말까지 기업의 단기금융자산 증가액은 180조 원이 넘습니다.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한 주장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보통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해서는 비우호적인 견해가 많습니다. 가장 강력한 반대논리는 이중과세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유보금이라는 것은 1년 동안 영업을 잘해서 벌어들인 이익 중 이에 대한 법인세를 납부하고 남은 돈이 쌓인 것입니다.

법인세를 한 번 납부하고 나면, 그 돈으로 배당을 할지 신규 투자를 할지는 기업의 선택입니다. 경제 상황이 불확실하다고 하면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현금을 보유하는 것은 적절한 대책일 수 있습니다. 법인세를 납부하고 쌓아둔 돈에 대해 또 과세를 하게 되면 이중과세의 주장이 나올 수도 있겠죠.

그런데, 위의 금액은 좀 성격이 다릅니다. 경제를 살리자는 국민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기업에게 법인세 절감액만큼 추가자금을 지원한 것인데, 사용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정부에서 걷어서 직접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지출할 금액이었지만, 어디에 투자해야 최선의 결과가 나올지를 기업이 더 잘 알 것이라는 신뢰 속에 잠시 위탁해 둔 금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위에서 추정한 감세액은 법인세가 한번 과세된 것이 아니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별도로 쌈지에 모아둔 성격의 돈입니다. 전체 사내유보금이 아니라 법인세 감세액에 해당하는 돈을 이제라도 원래 목적대로, 국민과 약속했던 대로 사용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가 아닐 것입니다.

법인세 감세액과 단기금융자산 증가액 중 작은 금액을 대상으로

물론, 기업별로 상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고용과 투자가 늘어나지 않았고 사내유보금만 쌓여 갔지만, 개별 기업에 따라서는 그 감세액을 활용하여 고용과 투자를 늘렸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법인세 감세액과 같은 기간 동안 증가한 단기금융자산 금액을 비교하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즉, 기업별로 지난 7년간 법인세 감소 효과를 계산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미 고용이나 투자에 사용한 기업이 있을 수 있으니 2008년부터 2015년까지의 단기금융자산 증가액을 계산합니다. 두 금액 중 작은 금액을 사내유보금 과세의 기준금액으로 사용한다면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금액을 1년 동안에 사용할 수는 없을 테니 일정 기간, 예를 들어 10년 동안 사용하는 것으로 한다면 기업 측에서도 큰 부담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세율차이로 법인세가 줄어든 금액이 삼성전자 3.8조 원, 현대자동차 1.3조 원입니다. 반면, 2008년 말에 비해 2015년 말에 증가한 사내유보금 중 단기금융자산에 해당하는 현금및현금성자산, 단기금융상품, 단기매도가능금융자산의 증가액을 계산해 보면, 삼성전자가 27.2조 원, 현대자동차가 10.1조 원입니다.

[표 5 :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단기금융자산 증가액]
(단위 : 조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단기금융자산 증가액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단기금융자산 증가액
ⓒ 홍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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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사내유보금 과세대상 금액은 아래와 같이 계산됩니다.

삼성전자 Min(3.8조원, 27.2조원) = 3.8조 원
현대자동차 Min(1.3조원, 10.1조원) = 1.3조 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경우, 전체 단기금융자산 증가액의 13~14% 수준입니다. 보통 사내유보금 과세라고 하면 이익잉여금 증가액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는데,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이익잉여금 증가액은 각각 88.2조 원과 33.0조 원입니다. 이익잉여금 증가액과 비교하면 4% 정도입니다.

연간 청년 12만 명 또는 비정규직, 하청기업 노동자 20만 명이 혜택 볼 수 있어

이 금액을 청년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하청기업의 임금 인상에 사용하도록 하고, 미 사용액에 대해서만 과세한다고 하면 어떨까요? 총 41.2조 원이니, 10년간 나누어 적용한다고 하면 연간 약 4조 원이 사내유보금 과세대상 금액이 됩니다.

전에 기업소득 환류세제 개편안에서 제안(관련 기사: 실패한 최경환식 소득주도 성장론... 대안은?)했던 것처럼 청년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하청기업의 임금인상에 적용될 공제율을 50%로 한다면, 총 8조 원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청년고용의 임금을 1인당 3300만 원이라고 한다면 연간 12만 명이 신규 고용될 수 있는 규모입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하청기업의 임금인상에 1인당 20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하면 연간 20만 명이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의 정책기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허상에 매달리지 말고, 적극적인 증세와 복지확대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총선에서 확인된 민심이 아닐까요? 법인세 원상회복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감세액을 이제라도 투자하도록 유도해 보면 어떨까요?

덧붙이는 글 |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사내유보금 과세, #사내유보금, #이명박 정부 감세액, #법인세 감세액, #MB 정부 법인세 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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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조세재정팀장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으로 일하는 회계사입니다 '숫자는 힘이 쎄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 쎈 숫자를 권력자들이 복잡하게 포장하여 왜곡하고 악용하는 것을 시민의 편에 서서 하나하나 따져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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