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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센총리와 은밀한 대화중인 싸켕 부총리 겸 내무부장관(좌측). 싸켕 부총리는 지난해 3월 호주를 전격방문해 호주 이민국장관과 함께 캄보디아로의 난민이주에 관한 최종 협약서에 서명한 바 있다.
 훈센총리와 은밀한 대화중인 싸켕 부총리 겸 내무부장관(좌측). 싸켕 부총리는 지난해 3월 호주를 전격방문해 호주 이민국장관과 함께 캄보디아로의 난민이주에 관한 최종 협약서에 서명한 바 있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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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캄보디아 정부 대변인이 호주의 캄보디아 난민 이주정책이 실패했음을 공식 인정하는 바람에 호주 정부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져들고 말았다.

호주와 캄보디아 양국 정부는 지난 2014년 9월 호주 정부가 그동안 관리해 온 나우루섬(나우루 공화국) 수용소 난민들의 캄보디아 이주에 관한 협약을 맺은 바 있다(관련기사: 가난한 나라는 만만해? 호주 정부의 '인권유린').

나우루섬은 호주 인근 남태평양 작은 섬으로 그동안 호주로 배를 타고 온 난민들을 주로 수용해온 수용소다. 많을 때는 1000명이 넘는 난민들이 수용됐는데, 열악한 처우와 관리 소홀로 수용소 난민들이 여러 차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복수의 언론 보도에 다르면 호주 정부는 협약 체결조건으로 캄보디아에 무려 미화 4100만 불을 지불하기로 약속했었다. 한화로 환산하면 무려 470억 원이 넘는 거액이다.

하지만 호주 정부는 난민이주협약을 맺기도 전부터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국내외 인권단체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골치 아픈 난민 문제를 제3국에 떠맡기려고 한다는 인권단체들과 국제여론의 비난에 부딪친 것이다.

비난에도 난민 역외 이주 강행 

지난 3월 25일(현지시각)  호주 관내 나우루섬 수용소 어린이들을 포함한 난민수 십여명이 현수막을 든체 이 수용소에서 무려 1000일을 보냈다며 이 지옥에서 제발 탈출하도록 도와달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3월 25일(현지시각) 호주 관내 나우루섬 수용소 어린이들을 포함한 난민수 십여명이 현수막을 든체 이 수용소에서 무려 1000일을 보냈다며 이 지옥에서 제발 탈출하도록 도와달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호주난민지원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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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 정부는 난민들의 역외 이주를 끝내 강행했다. 이유는 같은 보수 정당이었던 토니 애버트 전 정권이 과거 총선에서 나우루 수용소 난민들의 호주내 입국을 불허하겠다는 공약을 지키는 한편, 난민보호와 수용소 운영 관리에 자신들의 세금을 쓰는 일을 극구 반대해 온 보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였다.

역외 이주 소식을 접한 나우루섬 수용소 거주 난민들은 예상보다 훨씬 크게 반발했다. 대부분 난민들은 캄보디아로의 이주를 극구 반대하며 시위까지 벌였다. 심지어 자신들의 입을 바늘과 실로 꿰맨 난민들도 있었다. 난민들은 사회보장제도가 빈곤하고 정치적으로 불안한 나라 대신 호주에 정착하거나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 국가로 이주하길 간절히 희망했다.

하지만 호주 정부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지난해 1월 중순 난민 담당관을 나우루섬으로 파견해 난민 1000여 명을 상대로 설득 작업에 착수했다. 예상대로 이들을 환영하는 난민은 아무도 없었다. 난민을 대상으로 열린 이주 설명회에는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아 결국 무산됐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지난해 난민 5명이 캄보디아로 이주를 결정했다. 이란인 커플을 포함한 이란인 3명과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가족 무슬림 남성 2명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6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캄보디아 프놈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캄보디아 정부가 보안을 책임지는 프놈펜의 한 안전가옥으로 옮겨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동시에 호주 정부는 이들이 현지 정착할 수 있도록 캄보디아 정부에 거액의 정착지원금을 지불했다고 발표했다. 이 비용에는 정착비, 언어교육, 직업교육, 건강보험 등이 포함되어 있다. 호주 정부는 창업을 희망할 경우 필요한 자금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지난해 6월에 입국한 이란인 커플과 미얀마 로힝가 출신 남성이 각각 올해 2월과 지난해 10월에 캄보디아 정착을 포기하고 자국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들이 자국으로 돌아간 이유는 뜻밖에도 매우 단순했다. 현지에서는 고국에 대한 '향수병'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인권단체와 지인들에게 털어놓은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당초에 약속한 내용과 다르다"는 게 실제 이유였다.

이 가운데 지난 3월 호주 일간지 <시드니 모닝헤럴드>가 지난해 11월 캄보디아에 머물고 있는 미얀마 출신 무슬림 남성 모하메드 라시드(26)와 한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이 남성은 몸이 아픈데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으며 이렇게 있다가는 죽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외에도 호주 정부가 당초에 약속한 정착금 8천 불 중 절반인 4천 불만 받았으며, 그 중 오토바이 구입 명목으로 2천 불을 냈지만, 결국 오토바이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캄보디아 온 것은 큰 실수(Big Mistake)이며, 서둘러 캄보디아를 떠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이 언론에 공개되자, 캄보디아 정부는 즉각 이 난민을 '거짓말쟁이'라고 몰아세우며 수습에 나섰다. 캄보디아 측은 라시드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왔으며 지속적인 상담 서비스도 해왔다고 적극 해명에 나섰다. 호주 정부 역시 난처하긴 마찬가지였지만, 말을 아꼈다.

"호주 정부, 가난한 나라로 난민 떠넘겨"

지난 14일 오후(현지시각) 호주에서 열린 난민지원인권단체회원들의 나우루 수용소 난민 보호와 지원을  위한 피켓 시위모습.
 지난 14일 오후(현지시각) 호주에서 열린 난민지원인권단체회원들의 나우루 수용소 난민 보호와 지원을 위한 피켓 시위모습.
ⓒ 호주난민지원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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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와 엠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캄보디아 정부가 난민들에게 제대로 된 처우를 하지 않았을 것이란, 확증에 가까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난민이주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해 온 호주 정부 역시 실패에 대한 책임과 비난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난민지원단체들도 망명 희망자들을 가난한 나라로 떠넘기는 비윤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실효성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결국 세금만 낭비한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호주에 근거를 둔 난민활동연합(Refugee Action Coalition) 소속 호주인 이안 린토울씨 역시 "난민들의 장기적인 건강 문제는 호주 정부가 가장 마지막에 고려하는 부분"이라며 화살을 호주 정부에게 돌렸다. 그는 또한 "호주 정부가 난민 문제를 정치적으로만 접근할 뿐, 난민 개개인의 의료나 복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런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아 있는 20대 이란 출신 남성마저 호주 정부가 약속을 어겼다며 수개월 이내 자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친지들에게 말한 사실이 언론에 공개돼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캄보디아 프놈펜 주재 호주 대사관은 물론이고 호주 중앙 정부 역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 사이 캄보디아 정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난 4월 2일자 호주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인터넷판 뉴스를 통해 "파이 시판 캄보디아 정부 대변인이 호주의 난민 이주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실패의 이유에 대해서는 양국의 책임을 회피하는 대신 "난민들이 사회복지가 잘된 선진국 등 제3국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바람에 결국 이주정착프로그램이 실패했다"고 말한 캄보디아 파이 시판 정부 대변인의 해명도 함께 실었다.

그는 지난 3월 중순 아랍계 <알지자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이들 난민들이 미국이나 유럽 등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로 이주하거나 호주에 남아 있기를 원한다"라며 난민이주정책의 실패 원인을 다른 곳으로 지목한 바 있다. 덧붙여 그는 "캄보디아는 선진국들처럼 난민들을 도울 만한 사회보장서비스가 부족하고, 정부도 돈이 없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호주 정부의 난민 역외이주정책은 국제사회와 인권단체들의 비난만 받은 채 돈만 쓰고 실패로 끝나고 만 셈이다. 고작 5명의 난민을 보내는 비용으로 호주 정부가 4100만 불(약 470억 원)를 낭비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상태다.

이에 대해 피터 더튼 호주 이민국 장관은 지난 4일 호주 ABC 라디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아무도 그렇게 많은 돈을 쓰지 않았다"고 강력 부인했으나 얼마나 적은 비용을 지출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은 내놓지 않았다.

실제로 호주가 난민 이주 대가로 캄보디아에 얼마나 비용을 지출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캄보디아 정부가 나서 난민 정책 실패의 이유를 난민 개개인의 책임으로 돌린 상황에서 이미 지급한 거액의 돈을 캄보디아로부터 되돌려 받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더욱이 당초 양국 협약에서 지원금 액수를 이주난민 수와 연계 시키지도 않았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Human Right Watch)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부국장은 같은 매체와 지난 3일 한 인터뷰에서 미국 속담을 인용해 "어리석은 짓을 해서 누군가를 부자로 만들어버린 셈"이라고 말했다. 또 "캄보디아의 전통적인 수법(?)에 속은 것이다"라며 "이들은 앞에선 돈을 받고는 뒤에 가서는 일이 제대로 되게끔 조정하지도 않는다, 때론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그들은 일을 애매하게 만들거나 꼬이게 내버려둔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지난 8일 호주 정부 관계자는 다시 현지 언론에 "선상 난민들을 자국 땅에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뚜렷한 원칙 하에 역외 시설에 있는 수용자들을 제3국으로 보내려는 호주의 정책은 여전히 확고하다"라고 밝혔다.

<캄보디아 데일리> 등 현지 언론들은 "호주 정부가 결국 캄보디아로의 난민이주정책을 포기하고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다른 제3국가를 난민 이주 후보 국가로 물색 중"이라고 보도했다.


태그:#호주, #난민, #나우루섬,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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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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