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 2주기 저녁에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진행자 김상중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이 눈에 띈다. ⓒ SBS
이른바, 탐사보도의 실종 시대다. 지상파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정부 비판에 해당하거나 논쟁적인 수위의 다큐멘터리들은 죄다 TV가 아닌 극장으로 탈출해야 했다. <다이빙벨>부터 <나쁜 나라> <업사이드 다운>에 이르는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가 대표적이다.
<추적60분> <세계는 지금> 등을 만든 KBS 허양재 PD의 tvN 이적 소식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다. 지상파 드라마·예능 PD들이 끊임없이 케이블과 종편으로 이적하는 시대, 이제는 시사교양과 탐사보도의 영역마저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붕괴는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의 친정부 편향과 안일한 대처에 힘입은 바 크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2주기를 맞아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세타(Θ)의 경고! 세월호와 205호, 그리고 비밀문서'(아래 <그알>)편과 같은 날(16일) 방송된 <KBS 스페셜> '지옥고, 청년의 방'(아래 <지옥고>)은 지상파 탐사보도와 시사교양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또 왜 변함없이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필요한지에 대한 답을 제시해주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나 <그알> '세월호'편의 경우 뉴스를 제외한 지상파의 유일한 세월호 2주기 관련 프로그램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KBS는 세월호 대신 <지옥고>를 통해 주거 현실로 바라본 이 시대 청년들의 열악한 실상을 조명했다. 혹시 지난 토요일 이 프로그램을 놓친 분들이 있다면 다시보기를 통해서라도 꼭 시청하시기를 권하는 바다.
세월호 참사 2주기, <그알> 제작진의 질문들
▲ SBS <그것이 알고싶다> '세월호 편'의 한 장면. 청와대와 VIP의 메시지. 화면 왼편 상단 프로그램 로고 옆 노란 리본이 선명하다. ⓒ SBS
진행자 김상중은 "처음 접하는 사실들이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시 세월호 참사의 그 현장을 화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일은 여전히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알> '세월호 편'은 왜 우리가 그 버겁고 꺼려지는 참사 현장을 다시금 꼼꼼하게 확인해야 하는지에 대한 적절하고도 소중한 질문들로 빼곡히 차 있었다.
먼저 <그알>은 도대체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가 어디서 나왔는지 끈질기게 추적했다. 이를 위해 고 양대홍 사무장의 통화 기록과 세월호 탑승 직원의 증언 등을 종합했다. 국정원과 세월호와의 '특별한 관계'는 윤곽이 거의 드러났고, '해체'라는 철퇴를 맞은 해양경찰의 미흡한 구조 역시 또다시 지탄을 받기에 충분해 보였다.
"첫째, 단 한 명도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인명피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그다음에 여객선 내의 객실, 엔진실 등을 포함해서 철저히 확인해가지고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하라. 자, 그 두 가지를 말씀하셨으니까 일단 청장님한테 메모로 넣어 드리고."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25분, 청와대 직원은 "받아 적으라"거나 "영상 기록을 빨리 보내달라"는 요구를 포함한 채 VIP(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를 해경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이날 하루 수차례 보고와 지시가 오갔지만, 잘 알려진 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그날 사고 후 7시간이 지나서야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어이없는 말로 국민을 허탈하게 했다.
<그알>은 국정원과 해경, 청해진 해운과 '콘트롤타워'가 실종됐던 청와대 역시 우회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그간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단원고 희생자들의 영상도 재차 공개됐다. 더불어 지난달 열린 2차 세월호 청문회 현장도 담겼다. 아마도 <그알> '세월호 편'은 지금 지상파가 세월호 유가족들과 국민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의도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김상중은 세월호 2주기 추모문화제가 마무리된 그 시각, 프로그램 말미에서 이렇게 전했다.
"2년 전 우리는 어른이어서 미안하다고 했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들을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요. 아이들이 떠난 지 어느새 두 번째 봄이 왔습니다. 여전히 아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는 그만하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충분히 진실 곁으로 다가온 걸까요.아직 세월호는 수심 44m 탁한 바닷물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찾은 진실 역시 아직은 그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세월호가 인양되는 시점은 마침표가 아니라 진짜 여정을 시작하는 진정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문제의 답을 오롯이 품고 있는 세월호, 그 속에서 그날의 진실들을 모두 찾아낼 때 매년 돌아올 4월 16일이 그저 아프기만 한 후회의 날로 남겨지지는 않을 겁니다."빚쟁이 청년을 옥죄는 주거문제
▲ '지옥고, 청년의 방'의 한 장면. 벼랑 끝에 몰린 청년들을 향해, 어른은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 KBS
"대학에 입학했을 때요? 그때만 해도 제가 철이 없었던 게 대학이라는 게 제 미래를 보장해 줄줄 알았었던 거 같아요. 제가 바보였던 거죠. 제 탓이죠. 성공 못 한 거."서울대 졸업생 조은혜씨는 "지금은 5평"이지만 "열다섯 평 정도가 저에겐 지금 꿈의 크기인 것 같아요"라며 희미하게 웃어 보인다. 중등 임원 고시를 준비 중인 그는 지금 모든 연락을 다 끉고 공부에만 매진 중이다. 방세를 내주는 부모님이 있어 자신은 '금수저'라고 말하는 은혜씨는 그러나 수 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지옥고>, 그리니까, '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사는 이 시대 청년들의 공통점은 다들 '빚'에 허덕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많게는 수 천만 원의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고, 여차하면 생활비가 필요해 또 대출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지하 단칸방이나 옥탑방, 고시원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삼 남매가 단칸 원룸에서 함께 동거하기도 한다. 우리보다 10년은 앞선 경제사회 지표를 보여주는 일본도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취직을 해도 20대 평균 임금은 '130만 원'에 불과하고, 서울 1인 청년 가구 주거 빈곤율은 36.3%에 달한다. 그렇게 부모보다 빈곤한 첫 번째 세대인 지금의 청년들은 빚에 허덕이고, 기록적인 청년 실업에 시달리면서도, 남루하지만 생활에 꼭 필요한 주거 공간을 찾아 헤매며 힘겨운 생활을 버텨 나가는 중이다. 그래서 <지옥고> 제작진은 "청년의 방에 봄이 오지 않았습니다"라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4.13 총선이 끝났다. 그에 앞서 '20대 개새끼론'이 횡횡했다. 하지만 청년들은 최고의 사전투표율과 확 뛰어오른 투표율로 자신들의 존재감과 분노를 표출했다. '지옥'과도 같은 삶을 버텨내고 있는 그 청년들에게, "결혼은 애초부터 꿈꾸지 않는다"는 그들에게 어른들은, 정치권은 이제 뭐라고 답해 줄 것인가. 세월호 2주기에 방영된 <지옥고>가 건조하게 던진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