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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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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의 곰파.(날라에서) ⓒ 양학용
두려움과 설렘을 양손에 쥐고 기다려왔던 히말라야 트레킹 첫 날이었다. 우리들은 라다크 히말라야의 여러 길 가운데에서 라마유르(Lamayuru) 코스를 선택하였다. 라다크는 동서로 길게 뻗은 히말라야 서쪽 끝자락에 위치하였는데, 라마유르 코스는 그 라다크 히말라야의 깊고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 중 하나였다.

일반적인 여행자들에게는 덜 알려진 곳이어서 독립적이고 탐험적인 느낌을 주는 코스라 했다. 실제 우리들이 걷는 동안 만난 다른 여행자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보통 4박 5일이 소요되고, 해발 3500미터에서 5000미터 사이의 험준한 고개 두세 개를 넘어야하는 힘겨운 코스였다.

처음 여행을 준비할 때 아내와 나는 레(Leh) 현지에서 텐트, 침낭, 조리기구, 식료품 등 야영 장비를 구하여 직접 밥을 해먹으며 트레킹을 할 계획이었다. 다만 당나귀와 당나귀몰이꾼만을 구해서 짐을 싣고 그들을 가이드 삼아 걸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레(Leh)에서 아이들이 고산병과 싸우는 동안 아내와 나는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히말라야를 걷는 일만으로도 아이들에겐 충분히 벅차고 힘든 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라마유르 마을, 길 떠나는 당나귀 ⓒ 양학용
현지 여행사들을 몇 군데 돌아보며 가이드 1명, 요리사 2명, 헬퍼 4명, 당나귀 10여 마리와 캠핑 준비물 및 식료품 일체를 패키지로 계약한 것이다. 그리고 트레킹 도중 있을지 모를 급격한 산소부족 상황을 대비해 휴대용 산소통 10개, 끓인 물을 담을 수 있는 개인물통 15개, 계곡물을 정제하는 정제알약 3통, 고산증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다이아막스 2통 등을 추가로 구입함으로써 트레킹 준비를 마쳤다.

페이(Phey) 마을을 떠나는 날 아침. 사륜구동, 트럭, 미니버스가 한 대씩 마을로 들어왔다. 트럭에는 4박 5일 동안 우리들의 집이 되어줄 텐트와 요리 장비와 식료품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여행사 대표 가쵸가 가이드, 요리사, 헬퍼들을 소개해주는 사이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히말라야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페이 마을을 떠나 물길을 몇 차례 건너고 하늘을 향해 뻗은 도로를 달려 3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트레킹의 시작점인 라마유르였다. 우선 라마유르를 돌아보기로 한다. 천천히 언덕 위 하얀 곰파(Gompa, 사원)를 향해 걸었다. 마을은 구멍이 숭숭 뚫린 사막 빛 산비탈을 따라 곡예하듯 가옥들을 품었고, 곰파는 언덕으로 난 길 끝자락에 푸른 하늘을 날개 삼아 하얗게 서 있었다. 더없이 황량하였다. 그리고 지독히 아름다웠다.

누런 산과 하얀 곰파와 티베트 스님의 자줏빛 승복이 서로를 신비롭게 대비시키고 있었다. 그 길에서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하는 노인들을 만난다. 또 어디에서부터 타고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오토바이 여행자를 만난다. 만약 여행학교 아이들과 동행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저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저토록 황량한 언덕에 서서 저처럼 고고한 얼굴로 마을을 내려다보았을 거란 생각에 사로잡힌다.
라마유르 마을의 풍경 ⓒ 양학용
아이들이 처음 방문한 곰파를 한 바퀴 돌아보는 사이, 나는 하늘을 보며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그리곤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고산지역이므로, 아이들의 얼굴은 곰파를 다녀온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에너지를 사용한 듯 상기되어 있다. 드디어 가이드 '지미'가 선두에 섰다.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로 접어든 것이다. 그때 아이들 사이에서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려올 거면서, 곰파에는 왜 올라간 거야?"

곰파에 다녀오느라 이미 1시간이나 걸었지만,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총량에서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이들 마음을 괴롭히는 모양이었다. 그러게. 내려올 것을 왜 올라갔을까. 아이들은 그 이유를 아직 모른다. 물론 그들만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토록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도 아직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앞으로 5일 동안 우리들이 매일 매일 해야 할 짓이 결국 내려갈 것을 힘들여 올라가는 일이고, 또 올라가야 할 길을 굳이 내려가는 일임에도. 아마도 그 까닭을 여행학교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알게 될 즈음이면 아마 우리들의 트레킹도 끝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걸어온 길을 흘깃흘깃 뒤돌아보며 히말라야 어느 자락에 흘려두고 온 마음 한 쪽을 애써 감추느라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다.
엽서 한 장 써넣을 걸. (라마유르 마을의 우체통) ⓒ 양학용
다시 내려올 길을 공들여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히말라야의 하늘은 푸른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파랬고, 대기는 투명했다. 앞뒤좌우 눈 닿는 곳마다 해발 5천 미터, 6천 미터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드는 산봉우리들이 연이어 솟아 있었다. 우리들이 걸어야 할 길은 능선을 따라 이어지고 이어지고 이어져서 결국 산머리 뒤편으로 아스라이 사라지곤 했다.

이 길 위에 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길이란 원래 끝나지 않는 것이고, 그것만이 길의 유일한 속성이라고 믿게 될 것만 같았다. 30분 만에 여행학교의 당당한 거북이 유진이와 막내 우현이가 뒤쳐지기 시작했다. 유진이는 정호가, 우현이는 아내가 함께 걸어주기로 한다.

길 위에 내딛는 발걸음이 시간으로 쌓여가며 아이들은 점점 말이 없어진다. 그리고 자신과의 진검승부에 들어간다.

'힘들어. 끔찍해. 미칠 것 같아... 언제 이 길이 끝날까...?'

아이들 얼굴은 그런 말들을 하고 있지만, 입술은 열리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극한의 힘듦 속에서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말로 되어 나오는 순간 단 한 발걸음도 더 내딛을 수 없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길은 내 안에서 흔들린다. ⓒ 양학용
'조그만 오르막길에서 숨이 차올라 너무 힘들었는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중간에 산 하나를 넘었는데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이래서 5일을 버틸 수 있으려나 걱정이다.'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솔지)

'오늘은 트레킹을 하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들뜬 상태였다. (중략) 점심을 먹고 나서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섰다. 너무 힘들어서 올라가기 싫었다. 처음 트레킹인데 너무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트레킹을 할 것인지 앞이 막막하였다.'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철민)

'처음엔 괜찮았는데 가면 갈수록 힘들어 미치는 줄 알았다. 어지럽기도 했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트레킹을 끝내고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거의 바로 잠들었다.'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우현)

'히말라야의 경치는 정말 멋있었고, 죽기 전에 못 보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를 생각했다.'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진실)

'힘들긴 했지만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그리고 아무 생각이 안 나서 참 좋았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 힘든데. 머리가 하얘지며 풍경만 눈에 들어왔다.'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아라)

길은 누구에게는 혼자 걷는 즐거움이지만, 또 누구에게는 죽을 고비가 된다. 앞으로 걷게 될 길들이 설렘으로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힘든 이 길을 5일 동안 걸을 생각에 눈앞이 막막해지기도 한다. 길은 하나인데도, 길이 사람을 만나는 순간, 길은 이처럼 다양해진다.

수천 년 동안 이 길을 앞서 걸었을 수많은 순례자와 상인과 여행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삶이 그렇듯이, 히말라야의 길은 그들에게 생명과 환희와 자유였다가, 때론 고통과 막막함과 죽음이기도 했을 것이다. 여행학교 아이들에게도 환희였다가 고통이었다가, 다양한 극한의 감정들을 선물하던 그 길이 3시간 만에 작은 단락을 이루었다.
첫 번째 봉우리 해발 3750m 프린키티-라에 올라서다. ⓒ 양학용
미칠 듯이 힘들다고! (해발 3750m 프린키티-라) ⓒ 양학용
마침내 첫 번째 고개인 해발 3750m 프린키티 라(Prinkiti La)에 올라선 것이다. 아이들 몇은 히말라야 산들을 가슴에 끌어안듯 팔 벌려 소리 질렀고, 몇은 마지막 걸음을 옮겨놓는 순간 바위 위에 기력을 다한 식물처럼 쓰러졌고, 또 다른 몇은 마지막 기운을 모아 사물놀이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올라섰다. 그때 푸른 바람이 하늘 끝에서부터 불어왔다. 잘했다. 잘했어. 여기까지 잘 왔어. 히말라야 영봉들이 굽이굽이 물결치며 우리들을 그렇게 위로하는 듯했다.

고개를 넘어서자 길은 줄곧 내리막이었다. 가파른 길을 벗어나자 예쁜 강을 따라 자작나무가 줄지어 선 넓은 길이 이어졌다. 길이 편해지자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하며 걸었다. 얼굴들이 밝아졌다. 첫 봉우리를 무사히 넘어섰다는 자신감과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와 나란히 걷던 고등학교 2학년 철민이가 뜬금없이 다짐 하나를 내놓는다. 평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서툰 아이다. 

"학교에 돌아가면, 저 이제 급식을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먹을 거예요."
"그래? 멋진데~! 사진 찍어 보내라. 인증샷! 알지?"

히말라야를 걷다가 갑자기 학교급식이 왜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따위 개연성은 중요치 않다. 소중한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유도 모른 채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바쁘게만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볼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지금까지 철민이의 인증샷은 도착하지 않았다. 대신 한 달 쯤 되었을 때다. 제주도 집으로 편지 하나가 도착했는데, 철민이 어머니께서 보낸 편지였다. 철민이가 달라졌다고 하셨다. 아이가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무엇이든 스스로 하려 한다며 아내와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내려가는 길, 그러나 더 깊은 곳으로. ⓒ 양학용
날라 마을의 영문 입간판(NALLA)을 먼저 발견한 것도 철민이었다. 우리들이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조금씩 해가 지고 있었다. 행복하게도, 앞서 걸어갔던 요리사와 헬퍼들이 이미 텐트를 쳐놓았고 요리가 준비되고 있었다. 치킨 카레와 토마토 스튜와 라다크 정식 '달'. 그리고 김치! 당연히 아이들은 열광했다. 김치는 레의 껠라쉬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여행사 대표 가쵸를 통해 보낸 것이다.

그녀의 정체는 다음 이야기에서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열광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깊은 산골 날라 마을에도 작은 상점 하나가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상점으로 달려가 진열대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자고 있던 탄산음료들을 사들였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다수의 아이들은 텐트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내와 나는 아직 기운이 남은 몇몇 아이들과 함께 계곡으로 산책을 나갔다. 완전한 어둠이 우리들을 삼켰다. 단지 계곡물 소리만이 어둠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때,

"삼촌! 별똥별!"
"또, 또! 이모! 봤어요?"

별똥별이 하나, 둘, 그리고 셋. 떨어졌다. 그리고 모두가 조용했다. 계곡물 소리가 다른 모든 이야기를 삼킨 탓도 있겠으나, 아이들은 별똥별을 보며 말을 잊었다. 마음속에 소원 하나 새기는 것일까. 나도 하나, 둘, 그리고 셋. 소원들을 하늘로 올려 보낸다.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하나. 고산병이 우리들의 발걸음을 막지 못하도록, 둘. 라다크에서의 이 시간만이라도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있도록, 셋. 그렇게 완전한 어둠 속으로 우리들의 소원들을 던져두고 텐트 불빛 속으로 돌아왔다.
고마운 헬퍼들(화장실 텐트!) ⓒ 양학용
'(캠핑장에) 도착하고 시냇가에서 머리를 감았다. 아, 정신이 맑아지는 이 기분은 와~~. 얼음? 물? 구별이 안 간다. 밥에 김치가 나와서 힘이 불쑥! 이제는 내가 에베레스트도 점령할 수 있겠다. 오늘은 모두 다 괜찮은지 일기 쓰는데 아주 시끄러워 죽겠다. 특히 유진이 누나.'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남수)

'산소가 정말 부족했다. 캠핑장에 간신히 도착했다. 밥을 맛없게 먹고 나서, 배가 아파 강가에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주위에서 도움을 주지 않아 바로 잤다.' -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문중)

'난 초반 평지에서 분노의 걷기를 선보였다. 가이드인 지미와 정다웁게 이야기하며 선두를 유지했다. 그러다 갑자기 오르막이 나오자 죽을 것 같은 거였다. 그리하여 선두에서 꼴찌가 된 한 방 인생을 맛보게 되었는데, 진짜로 힘들었다. 그때 정호가 "삼촌이 누나 챙기래"라면서 왔다. 오르막을 가면서 박정호 이 아름다운 녀석은 "아 누나, 쉬면은 더 힘들어,  빨리 가, 빨리!" "누나만 힘든 거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도 힘들게 가고 있잖아"라며 우리 언니보다 심한 잔소리를 연타로 날렸다. (중략) 캠핑장에 도착하고 나서 박정호가 "누나, 나 아니었음 지금도 산에 있어"라고 말했는데,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 고마워 정호야~!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유진)
반가운 룽가. 왜냐하면? 마을이 나올 테니까. ⓒ 양학용

덧붙이는 글 | 본 연재기사는 2015년 3월~11월 제민일보에 게재되었던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라다크, #여행학교, #라마유르, #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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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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