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KB손해보험
 KB손해보험
ⓒ KB손해보험

관련사진보기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전보라고 결정하고 원직복직시키라고 했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이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노동위원회 판정에 불복, 이행강제금까지 물어가면서 행정소송을 냈어요. 소송을 맡긴 대형로펌 변호사 세 사람에게 들어간 수임료만 몇천만 원입니다. 회사야 공금으로 재판비용 대면서 1심, 2심, 대법원까지 몇 년을 질질 끌어갈 수 있지만, 저는 지금 하루하루가 지옥 같습니다."

KB금융지주회사 계열의 KB손해보험(아래 KB손보) 운전기사 A씨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집이 있는 대전지사에서 근무했다. 지난 2005년 파견직 기사로 대전에 있는 KB손보 충청본부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이래, 2011년 11월 정규직 기사로 채용되어 지난해 4월까지 임원전담 기사로 대전에서만 근무했다. A씨는 지난 해까지 모두 4명의 본부장(상무급)을 모셨다.

"출퇴근하는데 하루 택시비가 2만 원 드는 상황인데..."

2015년 1월 현재 본부장이 취임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A씨의 진술에 따르면 신임 본부장 B상무는 처음부터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은 A씨를 불편해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제가 나이가 많아서 상무님이 불편해 하신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그 다음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절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구요. 또 제가 '상무님이 저녁에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오후 6시에 퇴근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그것도 노여움을 샀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A씨가 오후 6시에 꼬박꼬박 퇴근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해 3월 30일 사측에서 작성한 면담일지를 보면 A씨가 "지난 3개월간 모든 인간관계가 올스톱됨. 저녁 일정이 없을 경우 저녁 6시 정시퇴근을 원함"이라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어, 본부장이 취임한 직후인 지난해 1월부터 3월 말까지 약 석 달 동안 A씨가 오후 6시에 퇴근하지 않고 일정과 무관하게 대기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본부장 출퇴근 문제가 발생했다. 본부장 사택이 있는 곳에서 A씨 집까지는 거리가 먼데다 대중교통을 여러 차례 갈아타야만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침 일찍 사택으로 가서 본부장을 모시고 출퇴근할 때도 본부장을 사택으로 모셔다 드리고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반드시 차량은 사택에 두고 가라는 지시였다.

A씨가 모신 이전 본부장들의 경우에는 A씨가 차량을 저녁 때 집으로 가져가서 아침 출근업무 수행 시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회사 측은 규정을 내세웠지만, 기사가 차량을 가지고 출퇴근하는 것은 본부장의 재량에 달린 문제라는 방증이다.

"신임 본부장은 매일 아침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찜질방으로 출근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도  회사 규정이라면서 차는 반드시 사택에 두고 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퇴근 후 본부장이 자주 가는 찜질방 앞에 세워 두게 했어요. 만약 제가 차를 쓰지 못하면 출퇴근하는 데 하루 택시비가 2만 원 가량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짜증을 내면서 그러면 자신이 알아서 운전할 테니 저보고는 그냥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겁니다."

휴가 신청하자 본부장 "그날 내가 운전하고 다닐 테니 휴가 쓰라"

이 밖에도 본부장 일정이 있을 때 외부에서의 식사 문제, 기사 대기실에서 대기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번은 본부장이 새조개 축제 기간 중 직원들을 데리고 가서 회식을 하는데, 다들 방에서 새조개를 먹으면서 저만 홀에 따로 앉아서 비빔밥을 먹으라는 겁니다. 너무 수치스러웠어요. 어느 날은 배탈이 나서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본부장이 '밥 먹으라고 했는데 왜 먹지 않느냐'며 언짢아 하더군요.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지 혼란스러웠어요.

대기실 문제도 그래요. 사람이 잠시 화장실을 갈 수도 있는 거고, 담배 한대 태우러 나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핸드폰으로 연락할 수도 있을 텐데, 꼭 대기실에 있는 유선전화로 전화해선  통화가 안 되면 정위치를 이탈했다고 합니다. 기사 보고 대기실에서 대기하라는 건 운전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는 이유일 텐데, 제가 이 문제로 단 한번이라도 본부장 업무에 지장을 줬던 적은 없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4월초 연차 휴가 사용 문제로 A씨는 본부장과 마찰을 빚었다. A씨는 이 일이 자신의 서울 전출에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 생각했다.

"정말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어서 4월 8일 하루 휴가를 써야 했어요. 일주일 전부터 본부장께 말씀드리고 그날 꼭 휴가를 쓰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일정이 있다고 안 된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5차례나 간곡히 말씀드렸는데, 휴가 하루 전날 짜증을 내면서 '그날 내가 운전하고 다닐 테니 휴가를 쓰라'고 하시더군요. 마음이 아주 무거웠는데, 그 일이 있은 직후 충청본부 마케팅팀장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사측이 노동위원회에 제출한 면담일지에 따르면, 휴가 하루 전인 지난 해 4월 7일 A씨와 면담한 충청본부 마케팅팀장은 "지난 3개월 동안 업무수행과 관련하여 개선을 요청하는 면담을 실시했고 일부 사항은 개선되었으나, 향후 계속 함께 일하기에는 본부장 업무수행에 필요한 역량이 부족하고 본부 업무 수행에 맞지 않아 어려움이 많음"이라며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A씨의 업무역량과 원하는 근무 패턴 등을 고려해서 전배 결정을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면담이 이뤄진 시점과 휴가 날짜를 고려하면, 다른 이유보다 A씨의 휴가신청이 본부장의 심기를 결정적으로 언짢게 했고, 이것이 전보발령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에서는 노동자의 휴가는 본인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서울 본사 총무팀으로 전보... 사측, 대리기사 불러 본부장 차량 운전

서울로 전보발령난 KB손보 운전기사 A씨가 가족과 떨어져 지난 해 4월 이후 거주하고 있는 한 평 남짓한 고시원 방.
▲ A씨가 거주하는 고시원 방 서울로 전보발령난 KB손보 운전기사 A씨가 가족과 떨어져 지난 해 4월 이후 거주하고 있는 한 평 남짓한 고시원 방.
ⓒ A씨 제공

관련사진보기


A씨가 휴가 문제로 본부장과 갈등을 빚은 직후인, 지난 해 4월 13일부터 KB손보 충청지역본부는 A씨 대신에 대리기사를 불러 본부장 차량을 운전하게 했고, A씨는 운전업무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사측은 일주일 만인 4월 20일 사내 포털을 통해 A씨를 그동안 근무하던 충청지역본부에서 서울에 있는 본사 총무팀으로 전보발령을 냈다.

A씨는 사내 신문고(본사 인사팀장만이 접근하는 민원창구)와 이메일을 통해 전배 조치의 부당성을 호소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A씨는 지난 해 4월 20일 이후부터 주중에는 가족들과 떨어져 서울 본사 근처 고시원에서 월세를 내며 생활하고 주말에 대전 집에 내려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객지에서, 발도 제대로 뻗기 힘들 정도로 비좁은 고시원 생활은 쉰이 넘은 A씨에겐 유배나 다름없었다. 매끼 밥을 해먹을 도리가 없어 매번 사 먹다 보니 건강도 나빠졌다,  

그런데 회사 측의 전보조치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은 점들이 발견된다. 

A씨를 서울 본사로 보낸 후 충청지역본부장의 기사 업무는 외부의 법인 대리기사가 수행했다. 원래 이 일을 하던 A씨를 서울로 발령 내고, 추가 경비를 들여 그 업무를 외부의 법인 대리기사로 대체한 것이다. 사내 인력을 활용하지 않고 불필요한 비용을 추가로 들여가면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비효율적 인사관리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이런 점은 서울 본사로 간 A씨의 운행기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즉 지난 해 4월 중순 전보발령 이후 6월 말까지 약 50여 일 동안 A씨는 단 4회만 운전업무를 수행했고,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대기 상태로 있었다. 해야 할 업무가 많지도 않은데 굳이 서울로 발령을 낼 필요성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노동위원회 "부당전보... 원직복직" 판정... 재심신청도 기각

그렇다면 KB손보가 업무 필요성이 별로 없음에도 A씨를 서울로 발령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A씨는 자신에게 '불편하다'고 했던 충청지역 본부장의 언급에서 어렴풋하게 전출 이유를 찾았다. 하지만 이것이 생활근거지인 대전에서 서울로 원격지 전보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는 없다.

A씨가 부당전보를 시정해 달라며 구제 신청을 낸 노동위원회의 판단도 그러했다. 지난 해 9월 9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A씨가 낸 구제신청에 '사측이 A씨에게 행한 전보는 부당전보임을 인정하고, A씨를 원직에 복직시키라'는 판정을 내렸다.

지난 1월 28일 중앙노동위원회는 KB손보가 A씨에게 행한 전보는 부당전보임을 인정하고, A씨를 원직에 복직시키라는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의 초심 결정을 재확인 하고, 사측의 재심 신청을 기각했다.
▲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서 지난 1월 28일 중앙노동위원회는 KB손보가 A씨에게 행한 전보는 부당전보임을 인정하고, A씨를 원직에 복직시키라는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의 초심 결정을 재확인 하고, 사측의 재심 신청을 기각했다.
ⓒ 김도균

관련사진보기


회사 측이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지난 1월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를 기각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 역시 지방노동위원회의 판단과 같았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위원회가 노동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부당전보 구제신청은 노동자가 여간해선 이기기 어려운 사건으로 통한다. 노동자 전보나 전직, 배치전환은 원칙적으로 인사권자인 사용자의 권한에 속한다고 보고, 업무상 필요한 범위 내에서는 상당한 재량권을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리 남용에 해당하는 부당전보까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부당전보에 해당하는 요건은 크게 세 가지다. 바로 회사의 업무상 필요성, 노동자의 업무상·생활상 불이익 정도, 정당한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다.

노동위원회는 A씨 전보발령과 관련, 정당한 절차가 있었느냐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A씨가 서울 본사에서 근무해야 할 업무상 필요성이 없고, A씨가 가족과 떨어져 집에서 출퇴근이 사실상 불가능한 서울 본사로 전보됨에 따라 입게 되는 어려움을 감안하면 A씨의 '생활상 불이익'이 현저히 큰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A씨 전보발령은 인사권의 재량을 남용한 부당한 인사명령이라는 것이다.

KB손보측, 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불복... 행정소송까지 제기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 판정(2015년 9월 9일)과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2016년 1월 28일)에도 불구하고 KB손보 측은 A씨를 원직복직 시키지 않았다. 판정 불이행에 따른 이행강제금 납부까지 감수하면서다. 뿐만 아니라 사측은 지난 달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대한 행정소송까지 제기한 상태다.

사측은 원거리 발령자에 대한 지원제도(월세 50만원 지원, 월 3회 왕복 귀향 여비) 등을 A씨에게 지원하고 있기에 전배조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다. 또 임원에 전속된 운전기사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B본부장과 마찰을 빚은 A씨를 계속 대전에 근무하게 하는 것은 곤란하고, 이미 A씨를 대신해 다른 기사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원직 복직은 어렵다는 설명이다.

KB손보 측이 제기한 행정소송의 당사자는 외견상 중앙노동위원회다. 하지만 A씨의 마음은 편치 않다. 중노위 변호사가 과연 자신의 처지를 잘 대변할 수 있을까 하는 노파심도 있지만, 언제 끝날지도 모를 지루한 소송전에 휘말려 힘든 서울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여년 일했던 것처럼 대전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는 제 요구가 얼마나 과도한 것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가 꼭 서울에서 일해야 할 만큼 업무상 필요성도 없다고 노동위원회가 판정했는데, 저도 남들처럼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일하고 싶습니다."

A씨를 대리해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에서 부당전보 판정을 이끌어낸 김재광 노무사(노무법인 필)는 "사측의 설명대로 A씨가 임원 전속 기사라는 특성이 있다고 해도, 어느 한 사람의 불편 때문에 인권이 훼손될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따지고 보면 B본부장이 A씨에게 불편하다고 느낀 부분이 A씨의 정당한 요구 때문인데, 노동자가 정당한 자기 권리를 요구한 것이라면 설사 불편함을 느낀다 하더라도 당연히 감수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 노무사는 "중소기업의 경우 간혹 오너의 자존심 때문에 이런 문제가 잘 풀리지 않기도 하지만, 보험업계에서 3, 4위를 다투는 KB손보가 노동위원회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참으로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KB손보측 "본부장과 기사 사이 신뢰관계 많이 어그러져 전보발령"

한편, KB손보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임원과 전속운전 기사 사이에는 상당한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B본부장과 A기사 사이에는 이미 신뢰관계가 많이 어그러진 상태"라면서 "결국 같이 일하는데 있어서 서로 불편함을 느끼고, 이로 인해 본부장의 업무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A씨에 대한 전보발령이 이루어졌다"고 해명했다.

중노위 결정을 이행하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선 "중노위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A씨가 원직으로 복귀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현재 근무하고 있는 충청지역본부 기사가 교체되어야 하는 등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면서 "중노위 결정은 회사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판단되어 회사 입장이나 억울한 부분들을 충분히 반영해서 법원의 합리적 판단을 구하기 위해 행정소송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태그:#대기업 갑질, #노동위원회, #부당전보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