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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통영 이순신 공원.
 경남 통영 이순신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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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사막여우가 왕자에게 한 말이다. 나도 직장 나들이 장소가 결정 나면서 행복해졌다. 그리고 기다려졌다. 기다리는 동안 <이순신평전>과 <인간 이순신평전> 두 권의 책을 번갯불에 게눈 감추듯 읽었다.

장소는 다름 아닌 경남 통영. 통영이라는 이름처럼 조선 수군 통제영이 있던 곳이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순신의 흔적이 짙게 드리운 곳이다. 즐겁게 기다린 그 날은 비가 내렸다.

 통영 이순신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메타세쿼이아 나무 사이로 걸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통영 이순신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메타세쿼이아 나무 사이로 걸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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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지난 7일 내렸다. 그런데도 일정을 연기할 수 없었다. 더구나 내 행복한 기다림은 비에 흔들리지 않았다. 직장이 있는 경남 산청에서 통영으로 떠났다. 대전-통영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위해 산청읍에서 신안면을 거쳐 단성면 단성나들목에 이르는 길은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다.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것처럼 백의종군은 원래의 계급이 삭직되거나 일개 병졸로 근무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직책만 정지될 뿐 신분은 그대로다. 이순신 장군도 서울에서 이곳까지 와서 합천에 있던 도원수 권율 휘하로 가는 길이었다.

 동북아국제전쟁 때 한산도대첩을 거둔 통영 한산도 앞 바다.
 동북아국제전쟁 때 한산도대첩을 거둔 통영 한산도 앞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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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떨어지는 길에는 조팝나무가 하얗게, 유채꽃이 노랗게 이어달리기 하듯 피고 있었다. 한 시간여 걸쳐 도착한 곳은 이순신 공원. 올라가는 길에는 메타세퀘이아 나무가 두 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로 나란히 하고 있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 사이로 걸어가는 재미가 쏠쏠할 무렵 한산도를 바라보며 아주 커다랗게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순신 공원 전망대 한쪽에는 총통(銃筒)이 한산도 바다를 겨누고 있다.
 이순신 공원 전망대 한쪽에는 총통(銃筒)이 한산도 바다를 겨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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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칼을 옆에 차고 있는 장군의 동상 아래에는 '必生卽死 必死卽生(필생즉사 필사즉생)'이란 친필 휘호가 새겨져 있다. 장군의 묘비명에도 나오는 말이다. 영화 <명량>에서도 "여러 장수를 불러 모아 약속하면서 이르되, 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고 했으며,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이라도 두렵게 한다고 했음은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라는 말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장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통영 이순신 공원은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좋은 만큼 넉넉하고 아늑하다.
 통영 이순신 공원은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좋은 만큼 넉넉하고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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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앞 전망대 한쪽에는 총통(銃筒)이 한산도 바다를 겨누고 있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의 빛나는 한산도대첩을 떠올리게 한다. 해전에서 연전연패를 당해 보급로가 위협받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와키자카 야스하루, 구키 요시다카, 가토 요사이키 등 육지에서 싸우고 있던 수군 장수를 남하시켜 조선 수군과 싸우도록 했다. 용인전투에서 1600여 명으로 조선군 5만 명을 대패시킨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다른 일본 수군장수보다 전투준비를 마치고 자신이 거느린 총 73석(대선 36척, 중선 24척, 소선 13척)으로 단독으로 출전을 강행했다.

  이순신 공원 학익정(鶴翼亭)
 이순신 공원 학익정(鶴翼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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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이억기 전라우수영 함대와 합류한 이순신 장군은 6일 출전했다. 연합함대가 노량에 이르자 원균도 판옥선 7척을 이끌고 합류했다. 판옥선 59척, 협선 50척으로 꾸려진 연합함대는 7월 7일 강한 바람으로 항해가 어려워 고성 당포에 이르렀다. 이때 피란해 산으로 올랐던 목동 김천손이 적이 견내량에 이르러 머무르고 있다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레이더가 없던 시절에 적의 동향을 먼저 파악한 장군은 판옥선 5, 6척으로 거짓으로 패해 달아나는 척 해 일본함대를 한산도 앞 넓은 바다로 유인한 뒤 일시에 뱃머리를 돌려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학익진'을 형성하여 일본 함대에 화포를 쏟아부어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조선 수군은 일본함대 대선 35척, 중선 17척, 소선 7척 등 59척을 섬멸했다. 와키자카는 간신히 도망쳐 미역으로 며칠 연명하다 돌아갔다고 한다.

 이순신 공원 학익정(鶴翼亭)에서 바라본 한산도와 통영 앞바다.
 이순신 공원 학익정(鶴翼亭)에서 바라본 한산도와 통영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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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 아래 고양이 한 마리가 해안 산책로 옆 풀밭을 무심한 듯 지난다. 비 내리는 하늘과 바다는 회색빛이다. 미륵산이며 한산도며 모두가 뿌옇게 형체를 겨우 드러낸다. 공원은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좋은 만큼 넉넉하고 아늑하다.

학익정(鶴翼亭)에 올라 공원 너머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와 드넓은 풍경들은 나를 겸손하게 이끌고 가지고 온 온갖 잡다한 생각들을 멀리 떠나보낸다. 비가 잦아들자 잿빛 풍경 사이로 분홍빛 벚꽃이 눈꽃 흩뿌린다.

 학익정에서 벚꽃 터널 사이로는 흙길이다. 마치 삶에 지친 나를 위로하듯 촉촉한 흙의 느낌이 딱딱한 신발을 너머로 마음을 편하게 한다.
 학익정에서 벚꽃 터널 사이로는 흙길이다. 마치 삶에 지친 나를 위로하듯 촉촉한 흙의 느낌이 딱딱한 신발을 너머로 마음을 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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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익정에서 벚꽃 터널 사이로는 흙길이다. 마치 삶에 지친 나를 위로하듯 촉촉한 흙의 느낌이 딱딱한 신발을 너머로 마음을 편하게 한다. 발아래 괴불주머니가 노랗게 생긋 웃자 옆에 광대나물이 보랏빛으로 인사를 건넨다. 새순이 난다. 초록빛 싱그러움이 좋다. 다시 바다를 보자 잿빛 사이로 푸른 빛이 물들어 온다. 붉은 밥알이 성그럽게 매달린 박태기며 하얀 목련, 연분홍빛 벚나무들이 사이좋게 이웃한 사이로 팔손이가 있다. 야트막한 산으로 올라가는 산책로 입구다. 잠시 편백 사이를 걸었다.

 1974년 2월 22일 이충무공 위패가 봉안된 충렬사를 참배하고 돌아가던 중 갑작스러운 돌풍으로 배가 전복, 순직한 장병들을 기리는 통영 해상순직장병 위령탑 옆으로 159명의 넋이 새겨져 있다.
 1974년 2월 22일 이충무공 위패가 봉안된 충렬사를 참배하고 돌아가던 중 갑작스러운 돌풍으로 배가 전복, 순직한 장병들을 기리는 통영 해상순직장병 위령탑 옆으로 159명의 넋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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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나오자 1974년 2월 22일 이충무공 위패가 봉안된 충렬사를 참배하고 돌아가던 중 갑작스러운 돌풍으로 배가 전복, 순직한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통영 해상순직장병 위령탑이 나온다. 탑 옆으로 순직 장병들의 이름이 나온다. 잠시 묵념을 한 뒤 차근차근 이름 석 자를 읽으며 꽃피우지 못한 159명의 넋을 기렸다. 탑 아래로 목이 툭툭 떨어진 동백꽃들이 비단처럼 서럽게 깔렸다.

탑 옆으로 난 숲길을 걸었다. 느리게 걸어가는 바다 산책로 '토영이야~길'이다. 사스레피나무 사이로 조팝나무가 빙수처럼 하얗다. 갈참나무에 맺힌 물방울이 봄기운을 돋는다. 갈참나무 사이를 지나 다시 동상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우산 하나에 둘이 하나된 연인이 다정하게 산책길을 걷는다.

벚꽃 잎으로 물든 긴 의자 옆에 까치가 카메라에 담는데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나에게 관심 없는 까치는 두 발로 땅을 종종거리며 벌레 잡아먹기 바쁘다. 두어 걸음으로 간격을 좁히자 그제야 푸드덕 날갯짓으로 날아간다.

 왼손으로 큰 칼을 다부지게 잡은 장군의 뒷모습이 보인다. 박제화된 이순신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이 보인다. 두 어깨에 걸린 무게가 내게 전해진다.
 왼손으로 큰 칼을 다부지게 잡은 장군의 뒷모습이 보인다. 박제화된 이순신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이 보인다. 두 어깨에 걸린 무게가 내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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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에 이르렀다. 왼손으로 큰 칼을 다부지게 잡은 장군의 뒷모습이 보인다. 박제화된 이순신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이 보인다. 두 어깨에 걸린 무게가 내게 전해진다. 신(神)으로까지 추앙받는 장군도 자신에게 불리한 사건은 은폐하거나 기록하지 않았다.

전공을 경쟁하는 과정에서 원균을 따돌리고 보고서를 올리기도 했다. 때로는 나약한 말도 내밷기도 했다. 장군은 절대 신이 아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주어진 열악한 운명을 이겨내려 끝까지 최선을 다한 참 군인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존경을 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순신 장군 순국 이후 최초로 세운 사당 착량묘.
 이순신 장군 순국 이후 최초로 세운 사당 착량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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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근처에서 동료들과 동동주를 곁들인 점심을 먹었다. 택시를 타고 착량묘로 향했다. 통영시 당동 해저터널 부근 언덕에 있는 착량묘는 이순신 장군 순국 이후 최초로 세운 사당이다. 더구나 조선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사당이다.

사당은 초가집 한 채로 지어졌다가 고종 때 이순신 직계 후손으로 통제사로 부임한 이규석에 의해 1877년 기와집으로 고쳐 지었다. 장군을 바라보는 조선 조정의 불편한 시선을 느낀다. 눈물처럼 후드륵 떨군 동백꽃이 긴 의자며 계단에 올라가는 길에 내 마음처럼 함께한다.

착량(鑿梁)은 '파서 다리를 만들다'라는 뜻이다. 전쟁 때 당포해전에서 참패한 일본 수군들이 도망가면서 미륵도와 통영반도 사이 협곡에 돌을 파고 다리를 만들어 달아난 데 붙여졌다.

 이순신 장군의 사당 착량묘 앞에 있는 통영 해저 터널은 일본이 조상 뼈를 조선인들이 밟고 지나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통영 해저터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이순신 장군의 사당 착량묘 앞에 있는 통영 해저 터널은 일본이 조상 뼈를 조선인들이 밟고 지나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통영 해저터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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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내려가 해저터널을 걸었다. 해저터널은 통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이다. 일본 강제 점령기인 1932년 완공한 터널은 길이 483m, 너비 5m, 높이 3.5m의 콘크리트 터널이다.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터널이지만 한산도 대첩 때는 죽은 일본 수군들의 송장들이 쌓여 '송장목'이라고 불렸다 한다. 일본은 조상 뼈를 조선인들이 밟고 지나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터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통영 충무교에서 바라본 통영항.
 통영 충무교에서 바라본 통영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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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이순신 장군 사당과 해저터널. 가깝고도 먼 지금의 한일 관계처럼 묘하다. 터널로 바다 밑을 지나 다시 충무교로 바다를 건넜다. 다리 아래로 미역을 채취하는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이 멀리서도 보인다. 산복도로 주위는 온통 벚꽃이다. 천사의 날갯짓처럼 손톱만 한 꽃잎들이 은빛 날개로 함박눈처럼 내려 세상을 뒤덮었다.

초록 사이로 앙증스런 하얀 나팔같은 알라섬이 심어진 화단을 지나자 노란 유채꽃밭이 나온다. 효자 '박효자 쉼터'라는 안내판이 걸음 세운다. 동피랑 맞은편 서피랑이 보인다.

 통영 충렬사.
 통영 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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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앞 사거리에서 우산을 접은 아이들이 신호를 기다린다. 신호를 기다리기 지루해 '통영 명정'이라는 우물가로 내려갔다. 1670년에 만들어진 우물은 사체나 상여가 우물 위를 지나가면 물이 흐려지는 이변이 생긴다고 한다.

우물가를 나와 충렬사로 향했다. 봄과 가을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제사를 올리는 이곳은 1895년 통제영이 폐지되자 지역 유지들이 충렬사보존회를 결성, 제사를 모시고 관리하고 있다. 홍살문을 지나자 400년 가까이 된 동백나무가 먼저 반긴다.

<강한루>를 지나자 덕수 이씨 후손 통제사의 공적비와 함께 충렬묘비를 만났다. 이충무공 한 분의 위패를 모시고 역대 통제사가 300년 동안 제향을 받는 정당(正堂)은 보수 공사 중이라 임시 참배소로 걸음을 옮겼다. 향을 피우고 참배를 올렸다. 참배를 마치고 중국 명나라 황제가 장군에게 보낸 8종류의 선물을 전시한 <통영 충렬사 팔사품>을 구경했다.

  소설가 박경리 생가.
 소설가 박경리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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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를 나와 소설가 박경리 생가 안내표가 이끄는 서문고개로 향했다. '~영혼의 맑은 샘가/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충일한 곳/ 사랑은 가난한 사람이 한다~'(박경리 <축복받은 사람들> 중에서) 시화처럼 벽에 씌인 골목길에 박경리 선생 태어난 집이란 표지판이 붙은 생가가 나온다. 생가를 돌아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서포루가 나온다. 조선 수군의 망루로 강구안과 남망산, 한산도를 조망할 수 있는 서포루가 보이는 서피랑은 동피랑과 달리 꾸밈이 없다.

"생각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또 배제합니다.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자주 마주 앉아보세요. 모든 창작은 생각에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통영 서포루.
 통영 서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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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글이 씌여진 담벼락 글을 읽으면서 동피랑과 다른 서피랑의 매력을 느꼈다. 평상에 둘러앉은 동네 아낙 사이로 슬며시 엉덩이 하나 걸쳤다. 내가 진주에서 왔다고 하자 이름 밝히길 꺼리는 문화동에 사는 60대 아낙은 자신의 첫사랑이 진주 사람이었다며 찰진 말로 박경리 선생에 얽힌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여행에서 만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나비가 형형색색으로 날아가는 벽 사이를 지나 통제영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염병과 액운을 막는다는 돌장승 '벅수'가 입을 한가득 벌려 해맑게 먼저 반긴다. 통제영 세병관은 7월까지 보수 공사 중이다. 아쉬움을 달래며 가쁜 숨을 돌렸다. "휴~"

이순신의 바다, 통영에서 본 이순신의 뒷모습은 완전무결한 영웅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으로, 최선을 다한 장군의 기운을 얻은 날이었다. 장군을 재발견한 날이다. 기분 좋은 일상으로 돌아올 에너지를 충전한 시간이었다.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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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경상남도 인터넷 뉴스 <경남이야기>
진주지역 인터넷 언론 <단디뉴스>
<해찬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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