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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 사업, 친기업적 대학 구조조정으로 대학가 몸살

'프라임 사업' 반대 기자회견 정부의 '프라임 사업'에 반대하는 대학생 대표자들이 모여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프라임 사업' 반대 기자회견 정부의 '프라임 사업'에 반대하는 대학생 대표자들이 모여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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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많은 대학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3월 31일 신청이 마감된 프라임 사업의 후폭풍 때문이다. 프라임 사업은 교육부가 추진하는 대학 구조조정 사업으로, 정식 명칭은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Program for Industrial needs-Matched Education)"이다. 2016년에 2012억 원이 투입되고, 향후 3년 동안 6천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교육계에서는 단군 이래 최대의 대학 지원 사업으로 불린다.

사업은 두 유형으로 구분된다. 사회수요 선도대학(대형)과 창조기반 선도대학(소형)이다. 사회수요 선도대학의 경우 8개 학교가 150억 원씩 지원을 받고, 1개 학교는 300억 원을 지원받는다. 예산 부족이 심화되고 있는 몇몇 대학들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일 만한 '큰판'이다. 조만간 4월 말이면 승자와 패자의 명암이 엇갈릴 것이다.

프라임 사업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 혹은 "사회수요 맞춤형 고등교육 인재양성" 등을 내세운다(교육부 2015.12, 2∼3). 액면 그대로 보면 아주 좋은 말이다. 향후 우리나라 대학이 지향할 바를 간명하게 표현한 어구다. 그런데 왜 신청한 대학들이 몸살을 앓는 것일까? 정부 지원을 받으면 학내 교육의 질도 높아지고,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대학 본연의 위상을 되찾는 일인데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프라임 사업이 말하는 '사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회가 아니다. 프라임 사업이 지칭하는 사회는 '기업'이다. '사회=기업'이라는 논리 구조 속에서 사회적 수요란 곧 기업이 원하는 인재 육성을 의미한다. 대학을 기업 인력의 보급창 정도로 치부하는 친기업적 사업의 노골적 추진이 부담스러웠는지, 추진 계획 곳곳에 '기업'이 들어설 자리에 '사회'가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프라임 사업은 "정부의 재정적 수단을 통한 친기업적 대학 구조조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구조조정의 방향은 명확하다. 대부분 대학은 취업경쟁력이 떨어지는 인문, 예체능, 사회, 자연계열의 정원을 줄이고 공학계열의 정원을 늘리는 계획을 제출했을 것이다. 교육부가 "기존 학과의 정원을 축소 또는 폐지하여 산업수요 중심의 학과로 이동하라는" 아주 구체적인 방안을 신청 요건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원이 줄거나 심지어 폐과가 되는 구성원들의 반발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반발을 줄이기 위한 정부나 대학의 노력은 사실상 없었다. 교육부는 "대학 현장의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했다고 자체 평가를 하고 있으나, 각 대학 총장과 기획처장 간담회 정도를 실시했을 뿐이다. 각 대학들 역시 학생들 몰래 사업을 신청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라임 사업의 선정평가 지표에는 대학 구성원 간 합의를 평가하는 내용이 있다. 이 지표에 대한 교육부의 공식입장은 "교무회의, 사립대 이사회 등 학내 최고의결기구에서 의결된다면 원칙적으로 합의가 됐다고 본다"는 것이다(한국대학신문 2016.04.08). 대학 구성원 간 합의를 학내 최고의결기구의 의결과 동일한 것으로 해석하는 비약적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프라임 사업이 얼마나 즉흥적으로 추진되는지는 그 기간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2015년 12월 29일 프라임 사업의 기본계획이 확정된 이후 지난 2016년 3월 31일 프라임 사업 신청이 마감되었다. 오는 4월 말에 프라임 사업 선정 대학이 발표될 예정이다. 세종대는 만화애니메이션과와 산업디자인과를 폐지할 계획이고, 경성대와 신라대는 무용학과를 폐지한다고 한다. 겨우 3개월 만에 학과 폐지가 일사천리로 결정되었다. 이는 누가 봐도 심사숙고의 결과라 보기 어렵다.

각 대학이 적극 추진 중인 프라임 사업을 통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점이 생긴다. 오늘날 기업 환경의 변화 속도를 고려한다면, 프라임 사업으로 새롭게 등장할 신규 학과에 대한 수요가 4년 뒤에 유지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신규 학과의 입학생이 졸업하는 4년 뒤에 해당 학과에 대한 기업의 수요는 사라질지 모른다. 배재대학교는 2008년도에 신설한 아펜젤러국제학부를 2011년에 폐지한 바 있다. 졸업생이 나오기도 전에 신생학부를 폐지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오마이뉴스>, 2016.01.30).

이러한 민망한 사태가 프라임 사업으로 새로 생긴 졸속 학과에서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다. 실제 이번 프라임 사업에 지원한 대학들이 제출한 학과 신설계획을 조사한 결과, 최근 인공지능 열풍을 감안한 소프트웨어, 사물인터넷(IoT) 등 ICT 계열 전공 인원을 늘리겠다는 계획이 압도적으로 많았다(<한국대학신문>, 2016.04.08.). 정부 예산에 눈이 먼 대학들이 학생들의 미래를 좌우할 사안에 너무 무책임하게 대응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회적 수요에 부합하는 대학으로 변화해야

기업 맞춤형 정책을 사회적 수요를 위한 정책으로 포장한 정부의 프라임 사업의 문제점과 별도로 사회적 수요와 대학의 관계를 고민해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대학은 사회적 변화를 선도하거나 적어도 이에 부응하는 자격을 갖출 것을 요구 받아 왔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나 연구자들은 사회의 주요 이슈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 지식 권력을 부여 받았고, 사회 문제 해석의 권위를 부여 받았다.

그러나 정보의 제공과 접근, 활용이 용이해지면서 지식권력이 민주화 되면서 대학의 지적 권위는 하락했다. 대학과 사회의 연계 역시 현저히 줄어들었다. 고급 지식 정보가 대학 이외의 영역에서 쏟아지는 상황에서 대학의 선택은 대체로 사회로부터의 후퇴로 나타났다. 향후 사회적 변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므로 대학과 사회의 연계는 더욱 느슨해질 가능성이 높다.

현실이 이렇다면 고등교육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개혁 방안은 다른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프라임 사업을 단순히 반대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대학 교육 체계의 근본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논쟁의 프레임 자체가 프라임 사업에 대한 찬반으로 갈리는 한 사회적 변화에 부합하는 대학 혁신의 방향성은 찾을 수 없다.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사회로부터 후퇴한 대학은 지금보다 더 사회와 단절된 고립된 섬으로 전락할 수 있다. 대학이 사회와의 연계가 끊어질수록 정부와 기업에의 종속성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프라임 사업은 본질적으로 기업 친화형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선명한 목적을 갖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프라임 사업이 표명하고 있는 "사회수요 선도대학"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사회수요를 기업수요로 축소시켜 다소 자의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정부의 프라임 사업을 반대하는 세력 역시 사회적 수요라는 말에 대체로 둔감하다. 인문, 예체능, 사회, 자연계열의 정원을 줄이고 공학계열의 정원 증설을 '돈'으로 압박하는 프라임 사업은 분명 잘못되었다.

그러나 프라임 사업의 진행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반대 측의 논리가 자연 긍정되지는 않는다. 반대 측의 주장처럼 프라임 사업은 대학의 학문적 자율성과 다양성을 훼손할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대학사회의 학문적 자율성과 다양성은 어떠한가? 국가와 시장으로부터의 자율성은 약한 반면 정작 사회적 수요에 대해서는 매우 자율적이다. 사회적 필요로부터의 자율성은 사회와 대학의 단절을 의미한다. 학문적 다양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기 어려운 전통적인 학과 체계로 고착되어 있다. 프라임 사업과 관계없이 현재 수준에서도 대학사회는 학문적으로 그리 다양하지 못하다. 그런 면에서 대학은 프라임 사업과 반대의 방향으로 구조조정 되어야 한다. 사회적 수요에 부합하는 다양성 구축이 요구된다.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대학 구조 조정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 기존의 학과 시스템이 과연 시대적 흐름과 관계없이 보편타당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금단의 영역인가? 사회의 변화 속도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상황에서 대학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현재의 교원체계가 과연 적절한가? 물론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해 방향성이 고민되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두 가지 지점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첫째, 프라임 사업처럼 융・복합학과를 비롯한 학과 몇 개 신설한다고 해서 대학이 사회적 수요를 포괄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학과 체계를 구획하고 있는 장벽의 문턱을 대폭 낮추는 방안, 이상적으로는 학과 체계를 아예 파괴하는 혁신적 발상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전통적인 학과 체계를 무너뜨리고 학생들이 전공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한다면 사회적 수요를 반영하면서 교육의 최종 소비자인 학생 중심의 대학 교육이 가능할 수 있다.

둘째, 사회적 수요를 반영하는 대학의 혁신을 목적으로 할 때 교수사회에 대한 개혁을 경유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는 직업의 안전성이 성과의 기본 조건이다. 대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체로 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평균적으로 직업의 불안정성이 비교적 높은 학문적 성과로 이어진다. 예외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대학교수가 되면 공부를 하지 않는다. 반면 대학교수가 되고자 하는 박사들은 교수가 될 때까지만 열심히 연구한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대학의 사회적 기여 능력은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변화에 둔감한 교수사회, 사회로부터 연계가 끊어진 교수사회, 사회적 변화를 읽지 못하는 교수사회의 존재 이유는 별로 없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지만 이번에도 교육 이슈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미래세대를 위해 기성세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영역 중 하나가 교육 이슈다. 위기에 처한 대학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부재한 오늘날 총선 현장을 보면 우리 정치의 사회적 민감도가 얼마나 낮은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치문화에서는 사회를 기업과 등치시키는 교육부의 폭력적 언어 해석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통용될 수 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의 폭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의 폭과 비교할 수 없이 깊고도 넓다. 대학은 기업이 아닌 사회와 연계되어 자기 혁신의 동력을 찾아야 한다. 기업 맞춤형 대학 구조조정이 아니라 사회적 수요를 반영한 대학 혁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이다.

참고자료
교육부. 2015.12.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PRIME) 사업 기본계획".
오마이뉴스. 2016.01.30. "대학 구조조정의 다른 이름 '프라임 사업'"
한국대학신문. 2016.04.08. "프라임 사업 후폭풍 시작 … 벌써부터 '책임론'".

덧붙이는 글 | 똘레랑스 기자는 서울혁신센터 산하 사회혁신리서치랩의 선임연구원으로, 이 기사는 사회혁신리서치랩이 발행하는 <사회혁신 포커스>로 동시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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