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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니도 이제 우리 가족
▲ 아이들 고모가 그려준 우리 가족 짜니도 이제 우리 가족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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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은 그랬다. 지난해 여름휴가차 친정 동네 산청에 갔을 때의 일이다. 식구들과 동네 단골 까페에서 오랜만에 고향친구들을 만났다. 못 본 사이 자란 아이들 얼굴과 그만큼 나이가 든 서로의 얼굴을 보며 그 간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친구가 작은 강아지를 안고 왔다.

사연은 그랬다. 며칠 전부터 근처 편의점 앞에 혼자 있었다는 강아지. '길을 잃었나 보다, 주인이 곧 찾으러 오겠지'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계속 그 근처를 혼자 돌아다녔단다. 딱한 마음에 친구는 강아지를 돌보다 유기견으로 결론을 내렸다. 얘기를 들어보니 휴가 때 시골에 버려지는 애완견들이 꽤 있다고 한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는 강아지를 키울 사정이 되지 않고 소문을 내어도 선뜻 유기견을 맡을 사람이 나서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휴가를 맞아 내려온 우리를 보고 얼른 달려왔다. 1순위 후보로 너른 마당이 있는 우리 친정집, 2순위 후보로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한 서울 우리집을 염두에 두고 말이다.

우리집 강아지 짜니
▲ 서울 집에 온 짜니 우리집 강아지 짜니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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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우자고?

생후 3개월이나 됐을까. 아주 작은 강아지였다. 며칠 강아지를 돌봤던 친구는 있는 말 없는 말 다 지어내며 자꾸만 우리에게 강아지를 안겼다. 어릴 적 오랫동안 개를 키웠고, 지금 집으로 이사하면서 개를 키우고 싶어했던 남편은 덥석 강아지를 받아 안았다. 아이들도 귀엽다며 쓰다듬어댔다. 그러나 난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내 사정은 그랬다. 태어날 적부터 친정집엔 개가 있었다. 여러 마리의 개가 친정집을 거쳐갔다. 진돗개도 있었고, 흔히 말하는 똥개도 있었고, 콜리, 세인트버나드 같은 개도 있었다. 동물이라면 무조건 사랑하시는 친정 아빠의 선택이었다. 담도 대문도 없는 산 속 집엔 집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개가 필요했다.

아빠처럼 오빠도 개를 무척 좋아했다. 어릴 적 키우던 개에게 몇 번 물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개를 좋아한다. 냄새도 나고 털도 날린다며 엄마는 개 키우는 걸 못마땅해 하셨지만 개밥을 챙겨주는 정성은 늘 엄마가 맡으셨다. 친정 아빠가 돌아가시고 텅 비어버린 집에서 엄마는 처음으로 개도 가족이구나 하시며 '반려'견으로 받아들이셨다.

외가집 마당에서 강아지 짜니와
▲ 짜니를 처음 만난 날 외가집 마당에서 강아지 짜니와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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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댈세, 나도 반댈세... 엄마들은 다 반대

그러나 난 37년 동안 개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준 적도, 밥을 챙겨준 적도, 이름을 불러준 적도 거의 없다. 친정집에서 키웠던 많은 개 중 이름을 외우고 있는 개가 한 마리도 없다면 개에 대한 내 사정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그 까닭은 이렇다. 털 있는 건 곰인형도 싫다. 어릴 적의 나는 물론이거니와 우리집 세 아이들에게 혹시라도 털인형이 선물로 들어오면 몰래 버리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버릴 정도다.

그런 나한테 개를 키우자고 한다. 사랑 넘치는 눈길, 손길은 늘 아빠가 주셨지만, 끼니마다 밥과 물을 챙기고 똥 치우는 손길은 늘 엄마의 품이 들어야 했던 걸 본 터라 친구에게도,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럼 외가에서라도 키우자고 조르는 아이들. 이미 한 마리 개를 키우고 있는 친정 엄마도 거절하셨다. 혼자서 두 마리는 힘드시다는 이유.

그래도 계속 되는 성화에 내 편이 돼줄 친정 엄마와 시어머님께로 결정권을 넘겼다. 역시나 두 분 모두 반대하셨다. 담이 낮고 사방이 트인 단독주택에서 방범을 위해 작은 개 한 마리쯤은 있으면 괜찮을 것 같지만, 이빨과 발 크기로 봐서 중형견 이상으로 클 것 같아 키우기 힘들 거라는 까닭으로. 두 분의 의견을 방패로 내밀며 다시 강경하게 귀엽고 딱하지만 내겐 부담인 길 잃은 강아지를 다시 한 번 더 밀어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반가운 상봉 사남매
▲ 안녕, 잘 잤어?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반가운 상봉 사남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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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키우자, 불쌍하잖아!

강경한 나의 태도에 남편과 친구는 뜻을 거두나 싶었는데…. 둘째 산들이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평소 길에서 개를 만나면 눈길도 잘 주지 않고, 크게 고집 부리는 일이 없던 산들이가 이틀을 꼬박 졸라댔다.

"엄마, 키우자. 불쌍하잖아. 집도 엄마도 없잖아. 우리가 키우자. 내가 혼자 밥도 잘 먹고 똥도 닦고 동생이랑 싸우지도 않을게. 강아지 밥도, 똥도 다 내가 치울게. 엄마, 엄마아아아 제발, 제바아아아알~"

산들이는 보란 듯이 혼자 힘으로 밥도 먹고 똥도 닦았고 친절한 형이 돼 내게 눈웃음을 보내고 또 보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결국 그 유기견은 '우리집 강아지'가 되고 말았다. 작은 상자에 담겨 서울로 떠나던 날, 친정 엄마는 "아직도 이불에 오줌 싸는 애가 있는데 무슨 개냐"라면서 걱정에 걱정을 하셨다. 나 역시 살아있는 생명을 하나 더 받아든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친정집에서 하루 머무는 동안은 차 밑으로 숨고 구석에서만 지내던 강아지는 서울로 오는 차안에서 늘어지게 자더니 서울집에 도착하자 처음부터 제 집이었냐는 듯 마당과 계단을 뛰어다니며 바로 적응했다. 묶어 키우냐 풀어 키우냐 고민하는 내게 남편은 마당이 넓으니 당연히 풀어 키워야 한다며 강아지와 함께 강아지를 쫓아다니며 유년의 한 조각을 소환했다.

마당에서 혼자인 짜니는 식구들이 마당에 나오면 행복해요
▲ 감 따던 날 마당에서 혼자인 짜니는 식구들이 마당에 나오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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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예방주사가 이렇게 많아

그렇게 식구들이 새 식구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동안 나는 적당한 사료와 개집, 산책 리드줄을 검색해 주문하고 평이 괜찮은 동네 동물병원을 수소문해 예약했다. 동물병원에서 첫 검진을 받아보니 3개월 남짓의 믹스견(똥개의 고상한 표현인 듯)이었다. 검진 후 예방주사의 행렬이 시작됐다. 아이들 예방주사만큼이나 많은 주사들을 맞혀야 했다.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다 보니 비용도 꽤 비쌌다.

시골에서 묶어 키우는 개만 보다가 도시에서 예방주사 맞히고 사료에 간식까지 챙겨 먹이며 산책시키는 개를 키우기 시작하려니 이런저런 품이 많이 들었다. 광견병 정도의 기본 주사만 맞힐까 싶었는데 어릴 적 키우던 개에 대한 애정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는 남편은 같은 이름 '짜니'를 새 강아지에게 붙여주며 모든 주사를 다 맞히는 몇십만 원의 패키지를 통크게 결제해버렸다.

시간만 나면 작은 강아지를 안고 부벼대는 남편과 아이들과 달리 나는 여전히 짜니 몸에 손 한 번 대지 않았지만 사료와 물, 간식을 부지런히 챙겼다. 개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냉장고에 붙여두고 수시로 체크하며 자식 먹여 키우는 엄마의 책임감으로 멸치 육수 내고 남은 멸치, 먹고 남은 고기 조각들을 헹궈서 부지런히 먹였다.

날씨에 맞춰 비가 오면 사료가 젖지 않게 지붕 밑으로 옮기고, 늦가을엔 오래된 베개를 뜯어 두툼한 방석을 만들어 개집에 넣어주고 솜이불과 비닐 등으로 개집 단열도 해주고 이유식 끓이듯 고단백질 개죽도 끓여 먹였다.

삼남매
▲ 짜니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삼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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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니와 함께 온 식구 공놀이
▲ 겨울 주말 오전 짜니와 함께 온 식구 공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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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개엄마'가 됐다

넷째 키우듯 짜니에게 갖은 정성을 들이는 나에게 식구들은 '개엄마'라는 별명을 붙였다. 다정하기보다 엄한 엄마인 내가 늘 불만이었더 첫째 까꿍이는 "엄마는 왜 짜니를 그렇게 다정하고 예쁘게 불러? 우리한텐 안그러면서!"라며 질투를 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 휴대전화에 짜니 사진이 늘어가고 외출해서도 혼자 있을 짜니가 계속 신경쓰였다. 그렇게 개가 싫다했던 내 사연은 그랬다. 내 손으로 해먹이는 생명의 존재는 생각보다 무겁고 진했다. 그래서 생명 있는 것을 들이기 그렇게 머뭇거렸나 보다.

유기된 경험 때문인지, 본래 사람을 많이 따르는 성격인지 짜니는 사람을 아주 좋아했다. 마당이 있어도 우리가 보이는 현관 앞에 꼭 앉아있고, 현관 방충망에 기어이 개구멍을 만들어 얼굴이라도 집안으로 들이밀었다. 아침이 밝으면 어서 나오라고 현관문을 긁어대고 식구들이 외출하면 골목길이 잘 보이는 계단 끝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고,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면 대문 앞에 와 꼬리를 흔들며 기다리는 짜니. 산책길에 만나는 누구에게나 반갑다고 다가가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를 내밀었다.

여름, 가을, 겨울을 함께 보내는 동안 거의 매일 짜니와 함께 동네와 한강, 뒷산을 한 시간씩 산책하며 운동을 시키고 잘 먹였더니 한손에 안기던 강아지 짜니는 갓 태어난 송아지만큼 쑤욱 자라 성견 짜니가 됐다. 훈련시키는 방법을 몰랐지만 딱히 훈련 없이도 무탈하게 생후 1년을 채웠다. 자주 오는 우체부, 택배아저씨, 이웃 할머니들 얼굴을 익혀 크게 짖지 않고 순한 개로 건강하게 잘 자란 듯했다.

짜니 덕분에 동네 구석구석을 누볐지요.
▲ 주말엔 다같이 긴 산책 짜니 덕분에 동네 구석구석을 누볐지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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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된 짜니, 야성이 드러나다?

그런데 진돗개가 많이 섞인 짜니는 남다른 사냥 본능과 호기심이 생후 1년이 되자, 긴 겨울 끝에 봄이 오는 냄새가 땅 밑에서 올라오기 시작하자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책길에, 야성이 살아나는 한밤중에, 동트는 아침에 '컹!' 하고 나오는 짜니의 야성.

도시에서 소형견이 아닌 중형견을 마당에서 풀어놓고 키우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담이 낮고 사방이 트인 탓에 소음에 민감한 이웃이 있는 작은 마을에서. 더 이상 강아지가 아닌 짜니를 우린 무사히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시작되던 차 사건이 도미노처럼 터지고야 말았다.

(* 다음 글에 계속)


태그:#육아일기, #반려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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